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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41화 (441/524)

황금가 (441)

수백 명이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이들은 흑풍협에서부터 금장생 일행을 쫓고 있는 춘추오패 무인들이었다.

선두에서 달리는 자들은 패도 천파가 이끄는 마원 무인과 적룡 철전혼이 이끄는 운성 무인들이었다.

천파와 철전혼은 진영의 중간에서 좌무백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접니다, 심황.

그때 좌무백의 귓전으로 카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가라.”

좌무백은 천파와 철전혼에게 말하고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알겠습니다.”

“네.”

천파와 철전혼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무리에서 이탈한 좌무백은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 끝에 섰다. 그가 선 가지는 손가락 두께밖에 되지 않았지만 휘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았다.

휘익!

그가 서 있는 나뭇가지 앞으로 신족 다섯 명이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카단과 능천대 대주 네 명이었다.

“능천대가 여긴 웬일이냐?”

좌무백은 직감적으로 능천대가 모두 출병했음을 알아차렸다.

“집행사자단과 부활전사단이 전멸했습니다.”

“엘은 어떻게 됐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전멸한 것과 네가 능천대를 이끌고 온 게 관련이 있느냐?”

―제가 엘과 함께 없애려고 했던 자는 팔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싸우는 중에 황금색 날개를 보았습니다.

옆에 있는 능천대 대주들에게까지 신왕에 대한 걸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음으로 말했다.

―황금색 날개?

좌무백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날개의 정확한 수는 확인하진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여덟 개가 넘었다는 겁니다.

뚝!

그 순간 좌무백이 밟고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몸이 쑥 꺼지자 좌무백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떨어지던 좌무백이 다시 솟구쳤다.

―정말 여덟 개가 넘더냐?

―제 머리를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분명 열 개 이상이었습니다. 그걸 보자마자 바로 북경으로 날아갔습니다.

―치천좌는 뭐라고 하더냐?

좌무백은 카단이 심무극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 말을 듣고 나서 동패를 주시고 능천대를 데리고 가서 그자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으음!”

좌무백은 신음을 내뱉었다. 여덟 장 이상의 황금색 날개. 자신이 알기론 그런 자는 신왕 루하뿐이다.

‘그래서 라헬을…….’

문득 헌원소야가 당한 이유가 그 때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신족은 날개의 개수에 따라서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 물론 그 차이는 무공으로 극복이 가능하지만 둘 다 강한 무공을 익혔다고 가정한다면 날개가 많은 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가 루하가 맞다면 우리도 알겠구나.

―그건…….

카단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함부로 대답할 사안이 아니었다.

“좋다. 그놈이 누가 됐든 변하는 건 없다. 잡아 없애면 된다. 은신술을 최대한 발휘해서 놈을 찾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카단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능천대 대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존!”

능천대 대주들은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날아올랐다.

“특별한 일이 생기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카단은 좌무백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해라.”

“그럼.”

카단은 고개를 숙이곤 날아올랐다.

능천대 대주들과 카단이 본대가 있는 곳에 도착한 건 반 시진 후였다.

카단은 대주들을 모아 놓고 작전을 지시했다.

“놈이 현재 가고 있는 곳은 황산이다. 능천 일대는 황산 남쪽을 확인하고, 이대는 북쪽, 삼대는 동쪽, 사대는 서쪽을 확인하도록 한다. 누가 됐든 놈을 발견하면 즉시 신호탄을 쏘도록.”

“알겠습니다.”

능천대 대주 네 명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능천대 대주들은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이곳저곳에서 수천 명이 솟구쳤다. 그들은 곧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며 사라졌다.

* * *

“교주님!”

초전전은 방가려를 불렀다.

“왜?”

방가려는 초전전을 돌아보았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남쪽입니다.”

“북쪽이 아니고?”

방가려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금장생은 북쪽으로, 즉 안휘성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앞을 막았습니다.”

“누가?”

“운성과 마원 무인들입니다.”

“그런데 돌파하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는 거지?”

“네.”

“남쪽이면 강서성으로 가는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강서성에는 어떤 세력이 있지?”

“검의 명가라고 불리는 검각이 있습니다.”

“검각은 해림의 산하단체잖아.”

무림에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네.”

“검각이라…….”

방가려는 검각에 대한 기록을 떠올렸다.

검각은 오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문파이고 뛰어난 검수를 많이 배출했다. 무림을 장악하고 있는 춘추오패가 워낙 강해 중소 문파의 한 곳으로 불리지만 대문파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강하다.

특히 검각의 문주 평천일은 천중제일검天中第一劍으로 불릴 정도로 고수다.

검각이 해림의 산하 문파가 된 건 전 문주인 파운양 때였다. 안휘성의 주인이 된 파운양이 검각에 도전장을 보냈다.

그 당시 해림은 검각보다 더 강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비슷한 전력으로 보았다. 평천일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검각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파운양이 모든 것을 걸고 비무를 하자고 하였으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다음 내용에 의해 싹 지워졌다. 파운양은 비무를 거절하면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다. 승리할 자신이 없다면 결코 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평천일은 해림에 대해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건 바로 해림이 자신들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전쟁을 하면 패할 확률은 십 할이었다.

문제는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검각의 모든 건 무너질 테고 철저하게 유린될 게 분명했다.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그 회의에서 전쟁보다는 비무를 택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필패라는 결과가 나온 이상 전쟁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평천일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 자신도 있었다.

평천일과 파운양은 모처에서 비밀리에 비무를 벌였고 파운양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날부터 해림은 검각의 휘하로 들어가 강서 지부가 됐다.

하지만 그건 파운양과 평천일 사이에 이루어진 협약을 뿐, 림주가 바뀐 지금도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평천일 그자가 협약을 지킬 거라 생각해?”

“지킬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야흐로 난세가 시작됐습니다. 난세가 오면 중간은 없습니다. 어느 쪽이 됐건 줄을 서야 하고, 평천일 입장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팔왕가보다는 십오 년 이상 친분을 유지해 온 해림이 더 낫겠지요.”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림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거네?”

“평천일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저예요.

그때 방가려의 귓전으로 옥천환 옆에 머물고 있는 좌영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 있어?

방가려는 물었다.

―옥천환이 검각으로 갈 생각인가 봐요.

―출발했어?

―가는 길에 들른 거예요.

―알았어.

―가 볼게요.

―수고해.

―네.

좌영영의 기척이 곧바로 사라졌다.

“옥천환이 검각으로 간대.”

“결국 그렇게 하는군요.”

초전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강서성에 검각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

“무림십패의 한 사람인 사상인데 모를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검각이 해림 산하라는 사실을 모를 거다?”

“네.”

“흠!”

방가려는 생각에 잠겼다.

“그분께 알려 주실 겁니까?”

초전전이 물었다.

“뭘?”

“강서성으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니?”

방가려는 고개를 저었다.

초전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왜 그래?”

방가려가 물었다.

“두 분은…….”

“잠을 잔 사이 아니냐고?”

“네.”

초전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 장로, 천야교 문도 맞아?”

“네?”

“남자와 잤다고 해도 모든 걸 다 내주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하지만 두 분은……?”

“물론 어렸을 때 약간의 인연이 있었고, 남자로서 그는 최고가 맞아. 나를 기절시킬 정도로 엄청난 정력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그런 남자와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어.”

“풋!”

초전전은 피식 웃었다.

“웃을 일이 아냐.”

“그런데 왜 그를 잡지 않는 겁니까?”

“내가 천야교 교주이기 때문이야. 만일 내가 평범한 여자였거나, 아니 무인이라고 해도 어딘가에 소속된 그런 위치였다면 모든 걸 버리고 그를 따랐을 거야. 그만큼 그는 대단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일단 몸이 따라가면 언젠가는 마음도 따라갈 거라는 주의거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나를 쳐다보는 문도 수천 명이 있기 때문이야.”

“하면 그를 돕는 이유는 뭡니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야.”

“궁금하군요.”

“첫째는 그가 이끌고 있는 팔왕가가 일방적으로 패하면 우린 영원히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내가 바라는 건 팔왕가와 춘추오패의 양패구상이야. 물론 우리 천야교는 양패구상 하는 세력에서 제외될 테고.”

“두 번째 이유는 뭡니까?”

“내가 중재를 잘못해서 팔왕가가 일방적으로 이기게 된다고 해도 우린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거야.”

“중재요?”

초전전은 의아한 얼굴로 방가려를 보았다. 중재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쪽의 힘을 조금씩 조율해 나가는 거니까 중재하는 거잖아.”

“클! 그럼 세 번째 이유는 뭡니까?”

초전전은 웃으며 물었다.

“이건 여자로서의 욕심인데, 그와 한 번 더 자고 싶어.”

“딱 한 번만?”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그러다가 정들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초 장로가 더 잘 알잖아.”

“알겠습니다.”

초전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방가려를 따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방가려에게는 천하정복이란 확실한 목표가 있다.

그녀는 그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자신이 금제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금제를 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금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차곡차곡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다가 금장생이 나타나자 찾아가서 몸을 치료했다. 치료 과정에서 엄청난 공력을 얻었고 좌무백과 싸워도 패하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나이가 절반도 되지 않는 방가려에게 완벽하게 굴복한 게 어쩌면 저런 모습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초전전은 방가려를 가만히 보았다.

금제를 풀었는지가 궁금했다.

“뭔데?”

“금제 말입니다.”

“풀렸는지 궁금하다는 거야?”

“네.”

“그게 중요해?”

“네?”

“우리 천야교가 무림의 주인이 되는데 금제가 중요하냐고.”

“무림의 주인이 됐는데 금제가 풀리지 않으면 그자들만 좋은 일을 시켜 주는 셈이 되잖습니까?”

“아냐, 그건 초 장로가 잘못 생각한 거야.”

“뭘 잘못 생각했다는 거죠?”

“그자들을 없애지 않으면 천야교는 무림의 주인이 될 수가 없어.”

“그들을 없애려면 금제가 풀려야…….”

“그들을 없애 줄 사람이 있는데 내가 왜 걱정을 해.”

“그러니까…….”

“우리가 천하의 주인이 되는 데 금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야.”

방가려의 입가에 미소가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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