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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37화 (437/524)

황금가 (437)

여전히 운무는 주위를 감싸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광경이다.

죽고 죽이는 살인만 없다면.

금장생 일행은 운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 일행이 새로운 장소라고 생각하는 건 특별한 표식이나 이정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기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대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 긴장감 속에 살기가 얹혀 있다면 그곳은 새로운 관문이 된다.

새로운 관문은 새로운 진식의 시작이기도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운무가 더욱 짙어졌다. 운무는 점점 짙어져 시계가 이 장으로 좁혀졌다.

“온다!”

바타르가 말했다.

쿠어어억!

곧 바닥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일행은 서로 등을 맞대고 상황을 주시했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부분의 직경은 사 장 정도였다.

퍽!

십여 장 높이로 솟구친 거대한 기둥이 둘로 쪼개졌다. 일행은 흙기둥 속으로 추락했다.

꾸어어억!

둘로 쪼개졌던 흙기둥이 다시 빠르게 합쳐졌다. 마치 위에서부터 쪼갠 대나무가 다시 합쳐지는 것 같았다. 서로 합쳐지는 흙벽에서 창처럼 날카로운 무기가 생겨났다.

“차핫!”

일행은 기합과 함께 솟구쳤다.

척! 척!

일행은 흙기둥 위로 올라섰다.

퍼억!

떨어졌던 흙더미가 다시 하나가 됐다.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쿠어어어어!

일행을 잡는 데 실패하자 거대한 흙더미는 다시 둘로 나뉘었다.

“떨어지지 마!”

무혼이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날리기 위해 발을 찼다.

“어?”

발이 바닥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금장생은 고개를 숙였다.

스르륵!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흙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일행은 재빨리 몸을 털었다. 하지만 흙은 떨어지지 않았다. 흙의 양은 점점 많아져 일행은 흙기둥처럼 변했다.

“욱!”

금장생은 신음을 내뱉었다. 흙이 온몸을 조여 온 것이었다.

“타하!”

바로 옆에서 기합이 들려왔다.

퍼어억!

흙이 사방으로 날리며 자운영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솟구치는 자운영의 전신은 피투성이였다. 아마도 창두 모양으로 변한 흙에 당한 모양이었다.

금장생은 감각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자신의 몸을 찌르는 창두 모양의 촉수가 감지됐다.

“하압!”

금장생은 기합과 함께 힘을 외부로 발산했다.

퍼억!

그를 감쌌던 흙이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허공으로 솟구쳤던 자운영이 금장생 곁으로 내려섰다.

“투구!”

금장생은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갑옷 목 부분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그의 얼굴을 감쌌다. 곧 뿔이 돋아난 위압적인 투구가 생겨났다.

푸아악!

흙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앞에 있단 흙이 파도처럼 일어나더니 금장생과 자운영을 덮쳤다.

금장생은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

“파이어!”

발사 명령이 떨어지고 혈반이 쏘아졌다.

퍽! 퍽퍽! 퍽퍽퍽!

쿠어어억!

흙의 파도가 좌우로 뒤틀렸다.

자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한 시진 넘게 겪고 있는 광경이지만 흙더미가 고통을 표현하는 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흙더미 안에 무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자운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자운영이 말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눈앞에 있는 흙더미는 안쪽에 악인곡 무인이 숨어 있는 흙기둥보다 더 강했다.

스아아악! 스아아악! 스아아악!

“헉!”

자운영은 질겁했다.

덮쳐 오는 파도 형태의 흙더미 중간 부분에서 자신들을 향해 촉수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촉수는 흙과 달랐다. 창두처럼 날카롭고 예기를 흘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조금 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것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차하!”

자운영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캉! 캉캉캉! 캉캉!

“맙소사.”

자운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흙을 잘랐는데 쇳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저 촉수는 흙이 아니라 쇠였다.

“자 진무사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촉수를 잘라 내며 말했다.

“뭐가 맞다는 겁니까?”

“안에 무인이 숨어 있던 흙기둥보다 저 녀석들이 더 강하다는 말입니다.”

금장생은 천마구유이혼대법을 펼쳤다. 싸움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흙더미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정령귀를 없애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귀안으로 흙더미를 살펴도 정령귀는 보이지 않았다.

흙더미 아래쪽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었다.

“부, 부영반!”

겁먹은 자운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도 형태의 흙더미가 머리 위까지 다가와 폭포처럼 아래를 덮치고 있었다.

“파이어!”

금장생은 먼저 나머지 혈반을 쏘았다.

그리고 흑사아와 백사아를 연속으로 내던졌다. 순간 그 전면이 검은색과 백색 폭풍으로 뒤덮였다.

푸스스스!

두 사람을 덮치던 파도 형태의 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금장생은 곧바로 왼 주먹을 바닥으로 찔러 넣었다.

―카!

그리고 카를 불렀다.

―알겠습니다, 주공.

카는 곧바로 악마수를 빠져나가 땅속을 헤집고 다녔다. 카가 땅의 정령과 귀신이 합쳐진 정령귀를 찾아낸 곳은 밑바닥에서였다.

―멈춰라!

카는 강력한 사념을 보냈다.

―크아아아아!

―헉! 아이고, 귀야.

카는 얼른 물러났다. 그리고 빠르게 이동해 악마수 안으로 들어갔다.

―찾아 없앴나요?

카가 돌아온 걸 감지한 금장생이 물었다.

하지만 카는 대답이 없었다.

―카!

금장생은 다시 카를 불렀다.

―너 대답 안 할래?

라가 버럭 소리쳤다.

―도망쳐 왔습니다.

―도망쳐?

―네.

―불의 최상급 정령인 네가 도망쳐 왔다는 게 말이 돼?

라는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저 아래쪽에 있는 녀석도 최상급 정령입니다.

―같은 급이면 불의 정령이 더 강하잖아. 그리고 넌 네 입으로 최상급 정령이지만 힘은 정령왕만큼 강하다고 했잖아.

―물론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쪽에 있는 녀석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분명 제가 이깁니다.

―그런데?

―저 아래쪽에 있는 녀석은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입니다. 빡 돈 녀석이라고요. 게다가 녀석처럼 빡 돌아 버린 귀신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제가 무슨 수로 이깁니까?

―그러니까 미친 것들이라 너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거야?

―네.

―그럼 너도 미치면 되잖아, 자식아!

라가 버럭 소리쳤다.

―정령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존잽니다. 미치고 싶어도 미칠 수 없는 존재란 말입니다.

카가 볼멘소리를 했다.

정령이 가장 안정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건, 불안정하면 자연 이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령에 의해 발생하는 자연 이변은 홍수나 폭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종말이 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래서 신은 정령을 가장 안정된 존재로 만들었다. 간혹 미친 정령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건 종신 계약을 한 계약자가 죽었을 경우다.

보통 정령과 소환자의 계약은, 계약자가 죽으면 자동적으로 파기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간혹 십 년 혹은 이십 년 동안 기간을 정해 놓고 계약을 맺곤 하는데, 그때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계약자가 죽는 경우가 생긴다. 정령이 미치는 경우는 그때다. 결국 정령은 미쳐 날뛰면서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발산하고 소멸해 버린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정령은 광기에 휩싸인 상태인데도 모든 힘을 발산하지 못하도록 금제돼 있다.

즉, 어떤 힘이 소멸 상태로 가는 걸 막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 어떤 힘이 바로 진식인 것 같다.

―끙!

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카의 말이 맞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존재가 정령이다. 그리고 정령은 거짓말을 못 한다. 아울러 계약자를 위해 목숨을 건 희생도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존재가 정령이다.

그사이 금장생과 자운영은 빠르게 움직여 다니며 흙더미의 공격을 피했다.

“어떻게 좀 해 보십시오.”

자운영은 금장생을 보며 소리쳤다. 그는 완전히 혈인이었다.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촉수를 완전히 막아 내지 못했다. 촉수는 모든 면이 날카로운 검날 같아서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생겼다.

물론 상처가 난 사람은 자운영뿐이었다.

갑옷과 태극선의로 무장한 금장생은 멀쩡했다.

그는 악마수와 삼천혼 두 자루로 쉬지 않고 공격을 해 보지만 없앤 건 흙더미뿐이었다. 땅속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정령귀를 없애지 않는 이상 흙더미 공격을 멈출 방법은 없다.

―카!

금장생은 다시 카를 불렀다.

―네.

―정령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알았습니다.

카는 악마수에서 나와 아래로 내려갔다.

금장생은 그 자리에서 회전했다. 빠르게 돌아가자 땅을 뚫고 들어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한 압력이 밀려왔다.

‘어지간한 무인은 파고들지도 못하겠네.’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하!’

그는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몸이 더 빨리 회전하자 내려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여깁니다.

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전면을 보았다.

‘맙소사.’

그의 눈이 커졌다. 집채만 한 검은 덩어리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구체 수십 개를 한데 붙여 놓은 것 같다.

실체인지 검은 운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빙의하고 있는 귀신도 한 마리가 아니었다. 각 구체에는 몇 마리에서 수십 마리의 귀신이 애벌레처럼 달라붙어 있다. 귀신들의 몸에서는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녀석이 그렇게 강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바로 귀신들 때문이다.

―거기 있는 게 좋아요?

귀신 중 한 명에게 사념을 보내 보았다.

금장생이 말을 걸어오자 귀신은 깜짝 놀랐다. 귀신은 금장생을 보았다.

‘빙의한 게 아니라 잡아먹힌 거네.’

금장생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보통은 귀신이 들러붙으면, 숙주보다 귀신의 의지가 더 강하게 발현된다. 그런데 저기 있는 귀신들은 정령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만 할 뿐 자신들의 의지를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즉, 귀신들은 정령의 종이 된 상황이었다.

쿠어어어억!

검은 덩어리 한가운데가 쩍 벌어지며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검은 운무가 암기처럼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왔다.

“웃!”

금장생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를 중심으로 강기막이 생겨났다.

퍽! 퍽퍽퍽!

검은 운무가 강기막에 부딪쳤다. 그런데 바로 사라지지 않고 먹물처럼 흘러내리며 막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건 귀신들이 만들어 낸 어둠의 기운인데?”

주위가 점점 어두워졌다.

금장생은 재빨리 암왕칠구를 꺼내 들었다. 정령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귀신들을 떼어 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혈종을 팔목에 끼우고 묵야와 사백을 들고 금소를 물고 혈라를 얼굴 앞에 띄웠다.

제일 먼저 혈라로 시선을 주었다.

쾅쾅! 쾅쾅!

혈라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소고와 같은 소리를 냈다. 동라 소리가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금소를 불었다.

삐이이이이이!

이어 오른손을 흔들어 혈종을 쳤다.

뎅! 뎅!

크어어어어억!

동라와 금소와 혈종이 동시에 울자 귀신들은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른 건 잠깐이었다. 무엇인가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었거나, 아니면 암왕칠구의 힘이 부족했는지 모르지만 귀신들은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그 순간 금장생의 가슴 부분에서 푸른 광채가 솟아 나왔다.

“어?”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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