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36화 (436/524)

황금가 (436)

뇌신강림

건륭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이곳을 발견한 건 삼십 년 전이다. 쫓기다가 우연히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고 미지의 힘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됐다.

원나라는 반원 세력의 모태를 중원무림으로 보고 무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고대, 즉 역사 이전에 전란의 시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현대 무림보다 더 강한 힘을 지녔다고 했다. 하지만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문자로 기록된 것도 거의 없었다. 여덟 개의 가문이 있는데, 그들을 마왕마가, 화천신가, 천수해가, 낭천전가, 은자혈가, 지국철가, 녹림사가, 지옥암가라고 불리고 그들이 노예 가문과 전쟁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때의 가문 중 한 곳인 지국철가 옛터를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이곳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십여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인간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특이한 존재가 있음을 알았다.

그들을 부리는 방법을 발견한 건 지국철가 옛터였다. 그들을 부리는 데 다시 오 년이 걸렸다.

그들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 천하무적이라 확신했다. 자신의 생각엔 어떤 방법으로도 해칠 수 없었다.

지국철가 옛터에는 자신들이 만든 무기 중 혼천이라는 도가 천적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혼천이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혼천이 나타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것들이 당할 리가 없다.

“전부 다섯 명이라 했더냐?”

건륭은 잔능을 보며 물었다.

“무기는 어떤 걸 사용하더냐?”

“팔왕으로 보이는 자는 중원도와 형태가 다른 기다란 도를 사용하고 한 명은 도관들이 사용하는 법기 비슷한 걸 사용합니다. 그리고 한 명은 맨손입니다. 나머지 둘은 검을 사용하긴 합니다만 특별히 주의할 정돈 아닙니다.”

“그 도가 혼천이군.”

건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잔능은 의아한 얼굴로 건륭을 보았다.

“아니다. 그럼 사흉도 죽었겠구나.”

“네.”

“내가 당했구나.”

“누구에게 당했단 말씀이십니까?”

“좌무백 그자를 말하는 거다.”

“그자가 팔왕 일행이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그렇겠지. 그러다가 이곳에 우리가 있는 걸 알고 은근슬쩍 떠넘긴 거다.”

“우리가 막아 줘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거군요.”

“맞다.”

건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만두고 싶은 거냐?”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라 팔왕을 없애 봐야 좌무백 그자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 주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삼 개 성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현재 가장 강자는 그자다. 우리가 원하는 걸 관철하기 위해서는 협조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협조를 할 때 우리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럼 다음 관문은…….”

“무인은 더 이상 투입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잔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악에게서는 연락 왔느냐?”

“아직 아무런 연락 없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면 이사를 갈 테니까, 부하들에게 알려라.”

“드디어?”

잔능의 얼굴에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중원 진출 준비는 십 년 전에 마무리됐다.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지어 악부惡府라는 이름까지 붙여 놓았다. 몸만 가면 되는데도 건륭은 이곳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이주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가 봐라.”

“네.”

잔능은 밖으로 나갔다.

잔능이 나가자 건륭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거처 안쪽에는 내부로 향하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문에는 손바닥 형상의 음각 문양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건륭은 손바닥 문양에 자기 손을 댔다.

내기를 끌어 올리자 손바닥 사이로 푸른 광채가 새 나왔다. 건륭은 손바닥을 뗐다.

그르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오른편으로 열렸다.

팟!

문이 열리자 천장에 있던 등에 불이 켜졌다. 건륭은 안으로 들어갔다. 가로세로 이 장가량 되는 정방형 공간이었다.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폭 두 자, 길이 일곱 자 정도 되는 단이 서 있다. 단 위에는 붉은색을 머금은 도끼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길이는 반 장에 달하고 날은 한 자 반 정도였다.

마치 초승달을 따다가 달아 놓은 것처럼 도끼날은 곡선이었다. 도끼날을 완전하게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진 등과 길게 이어진 손잡이에는 갖가지 문양과 문자처럼 보이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은 너무 생생해 손잡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적부.”

건륭은 도끼 손잡이를 쥐었다.

파앗!

그가 손잡이를 쥐자 도끼는 피처럼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고대인들이 만든 열 개의 무기 중 하나. 나는 이걸 얻고 나서야 내 핏속에 드워프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석식을 찾아낸 건 우연이었다.

손바닥 문양을 발견하고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왜 손바닥 문양을 새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이라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바닥을 대고 내기를 주입해 보았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손바닥 문양 왼편에 길게 선이 생겨나더니 석문이 오른편으로 이동하고 석실이 나타났다.

그 석실 안에 도끼, 즉 적부가 있었다.

건륭은 적부가 놓여 있던 단 앞 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 벽에는 적부로 펼치는 무공인 혈인광령부血刃狂靈斧와 적부와 이곳 지국철가에 대한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내용 중 가장 특별한 건 드워프의 피를 잇지 아니한 자 이곳으로 들어올 수도 없고 적부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이었다. 그 글대로라면 자신의 핏속에 드워프의 피가 흐른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대에 만들어진 십대무기 중 하나인 적부를 얻었고 어쩌면 중원 최강의 무공일지도 모르는 혈인광령부를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일천 년 이상의 공력에 더해진 혈인광령부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것과 마찬가지였지.”

건륭은 싱긋 웃었다.

놀라운 말이었다. 건륭은 일천 년도 아니고 일천 년 이상의 공력이라고 하였다. 그건 곧 일천 년 공력이 더 된다는 뜻이다. 무림사가 수천 년이지만 아직 그런 공력을 지녔다는 무인은 나오지 않았다.

천하제일인이라고 추앙받던 자들이 십 갑자 정도였고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천마도 천 년 공력을 쌓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건륭은 자기 입으로 천 년 이상의 공력을 지녔다고 한 것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혈인광령부 때문이라는 걸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그랬다.

남들은 그를 향해 실전십패라고 떠받들었지만 실제 건륭은 무공 초식을 익히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한탄했다. 그렇다고 아무 무공이나 익힐 수가 없었다. 일천 년 공력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무공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무공은 없었다.

그나마 나은 게 지옥혈사마공이었는데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았다. 무공이 없다면 창안하고 말겠다는 생각에, 지옥혈사마공을 제외한 다른 무공은 익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천 년 공력을 고스란히 쏟아부을 수 있는 무공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둥둥 뛰었다.

그 무공이 바로 혈인광령부였다.

혈인광령부를 익히는 데 무려 이십 년을 보냈다. 무공을 완성하고 이제는 중원으로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좌무백이 찾아와 동업을 제안한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너희 초인삼황이 아니라 천마가 살아와도 나는 이길 자신 있다.”

건륭은 단을 향해 적부를 가볍게 찍었다.

적부가 단 위로 파고들었다.

쩍!

퍼억!

위아래로 금이 간다 싶더니 단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건륭은 밖으로 나갔다. 그의 처소로 간 그는 옷을 벗고 한쪽 벽에 걸려 있는 방패 같은 걸 가슴에 댔다.

헬라간이라 부르는 갑옷을 얻은 곳도 이곳이었다.

“오픈!”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오고 촉수가 튀어나와 온몸을 덮었다. 잠시 후 건륭은 갑옷을 걸친 모습이 됐다. 그는 적부를 등에 대고 밀었다.

철컥!

갑옷에서 고리가 튀어나와 적부를 고정했다.

“투구!”

건륭은 나직하게 소리쳤다.

슥슥슥!

목 부분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머리를 덮었다. 그리고 양쪽 귀 위쪽에 뿔이 달린 투구가 생겨났다. 어떻게 보면 약간 우스꽝스럽기도 해서 투구 모양을 바꿔 보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어떤 자들인지 구경이나 해 볼까?”

건륭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스윽!

그러자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섰다. 건륭이 펼친 건 극성에 이른 축지성촌이었다. 건륭은 다시 축지성촌을 펼쳐 지하 공동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수십 명이 협곡 아래를 바라보며 엎드려 있었다. 어둠 때문에 시야가 나오지 않는데도 고개를 돌리는 자는 없었다. 이들은 마원의 무인들이었다.

협곡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바람이 매서웠지만 아무도 춥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기를 끌어 올려 몸을 데우면서 상황을 주시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은밀하게 다가서는 자들이 있었다. 흑의를 입고 복면을 쓴 이들은 사악 황보산이 이끄는 악인곡 무인들이었다.

황보산은 먼저 좌측을 보았다.

맨 끝에 있는 자가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황보산은 이번에는 오른편을 보았다. 오른편 끝에 있는 자 또한 손을 들어 올렸다.

황보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 열에 있던 자들이 어깨에서 뭔가를 내렸다. 그것은 활이었다. 옆구리에 찬 전통에서 화살 한 대를 꺼내 시위에 걸고 당겼다.

그때 황보산이 손으로 전면을 가리켰다.

스윽! 스윽! 스윽!

복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조용히 전방으로 나아갔다. 십여 장을 나아간 그들은 조용히 숨을 골랐다.

속으로 셋을 센 후 바닥을 찼다. 셋까지 세고 공격을 하는 건 이곳으로 오기 전 정한 규칙이었다. 백여 명의 무인이 밤새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응?”

천파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뒤편에서 살기가 감지됐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허공을 가득 메우고 떨어지는 검은 새들이 보였다.

“적이다!”

천파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척! 척척척! 척척척! 척척!

푹! 푹푹푹! 푹푹! 푹푹푹!

“커억!”

“크윽!”

“으윽!”

“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적이다! 적이다! 아악!”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에 성공한 자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쏴라!”

어둠 속에서 차가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퉁! 퉁퉁퉁! 퉁퉁퉁! 퉁퉁퉁!

“컥!”

“큭!”

“윽!”

나직한 비명과 함께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섰던 마원 무인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대원들은 나를 따라라!”

천파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됐다. 악인곡 무인 앞에 도착한 천파는 무차별하게 양팔을 휘둘렀다.

퍼억! 퍽퍽! 퍼억!

“크악!”

“아악!”

“으아악!”

천파의 무공은 가공했다. 그의 팔이 스칠 때마다 악인곡 무인들은 온몸이 부서진 채 쓰러졌다.

“죽여라!”

천파가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마원 무인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조직적으로 대항했다.

그러자 악인곡 무인들은 빠르게 물러났다. 기습 공격을 할 때만큼이나 물러나는 속도도 빨랐다. 그들은 금세 모습을 감췄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냈으냐!”

천파는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죽은 자들의 복면을 벗겨 보았지만 신분을 알 만한 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천파는 욕설을 내뱉었다.

화가 나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크아아아!”

그는 바로 옆에 있는 바위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억!

바위가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놈들을 찾아라!”

“존!”

나직한 대답과 함께 마원 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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