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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30화 (430/524)

황금가 (430)

정령귀

―대원들은 삼관으로 후퇴하라!

수수는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금장생 일행을 공격하던 자들이 절벽으로 이동했다. 절벽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앞으로 내달렸다. 일각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넓디넓은 공터였다. 그곳 역시 절벽 안쪽이었다.

지금까지 바위로 이루어져 있던 협곡 바닥과는 달리 이곳의 바닥은 땅이었다. 절벽 안에 있던 자들은 밖으로 나와 땅 곳곳에 엎드렸다.

“지마령주 있느냐?”

수수는 낮게 소리쳤다.

“네.”

공터 중앙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곧 적이 들이닥칠 테니 준비하라.”

“준비는 끝났습니다.”

수수는 조금 전 그녀가 왔던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부하들과 함께 공격을 몇 번 해 보았다. 적의 무공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적은 무림 삼대 암기 중 하나라고 불리는 사엽死葉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 냈다. 물론 약간의 부상을 입었지만 생채기에 불과할 정도다. 그걸로 놈들을 없애는 건 역부족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다르다. 흑풍협의 진짜 관문은 이곳부터니까.”

수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놈들이 도망쳤다.”

주위를 살피던 무혼이 소리쳤다.

바람 속에 스며들어 있던 살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아울러 땅을 향해 몇 번이나 진력을 쏟아부었지만 비명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건 곧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무혼 말이 맞다.”

바타르가 맞장구를 쳤다.

“가자.”

일행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일행은 지금까지 왔던 곳에 비해 바람이 잠잠한 곳으로 들어섰다. 바람 소리는 강하게 들렸지만 공터에서 부는 바람의 세기는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는 약간 덜했다. 바람 속에 들어 있는 나뭇조각이나 뾰족한 돌 등은 여전히 경시할 수 없는 암기 수준이었다.

“멈춰!”

바타르가 손을 들었다.

일행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바타르를 보았다.

“정령기다.”

바타르가 말했다.

“정령기라고?”

“정령기요?”

무혼과 금장생이 동시에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공터를 보았다.

“저기에 정령이 있다는 거냐?”

무혼이 물었다.

“그건 모른다. 하지만 저 정도 정령기면 정령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정상적인 정령일까요?”

전에 정령의 땅이 기억난 금장생이 물었다.

“정상적인 정령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

바타르가 되물었다.

“정상적인 정령이라면 이곳이 아니라 정령계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가 보자.”

무혼이 먼저 공터로 들어갔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다. 공터 끝까지 거리는 백 장 정도였다.

‘여긴?’

금장생은 의아했다. 조금 전 바타르는 이곳에 정령기가 가득하다고 했고 자신 또한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정령기가 전부가 아니었다.

정령기와 더불어 귀기도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었다. 그는 재빨리 천마구유이혼대법을 끌어 올렸다. 눈이 귀안으로 변하자 공터 상황이 좀 더 명확하게 들어왔다.

‘귀긴데 귀신이 없어?’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 귀기가 모여 있으면 귀신이 배회해야 한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귀신은 한 명도 없다.

스윽!

느닷없이 땅이 움직였다.

“지, 지진?”

그 광경을 본 자운영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지진이 아니다.”

무혼이 전방을 살피며 말했다.

“그럼 뭡니까?”

자운영이 물었다.

“정령이다.”

“저게 정령이라고요?”

“정확하게는 정령의 힘이다.”

“정령과 정령의 힘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자아의 유무 차이라고 보면 된다.”

“자아를 가진 존재란 말입니까?”

“전부 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면 된다.”

자아도 인식의 차이에 따라 나눌 수 있지만 자운영에게 세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정령이 뭡니까?”

“…….”

무혼은 자운영을 빤히 보았다. 지금껏 질문하지 않았기에 정령에 대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귀신의 한 종류로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다른 것 같아서요.”

“귀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영성을 가진 사물에 더 가깝다.”

“쉽게 말하면 ‘정精’이란 말이군요.”

“정?”

이번엔 무혼이 물었다.

“오랜 세월 동안, 여기서 오랜 세월은 수천 년 이상을 말합니다. 아무튼 그 세월 동안 한 가지 기운에 노출되면 종래에는 그것들이 모여서 응축되고 약간의 자아를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약간의 자아란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하는 자발적 능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물을 구분하는 약한 인지능력 정돕니다. 그 상태를 일컬어 ‘정’이라고 합니다.”

“정령과 아주 비슷하긴 하구나.”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또다시 땅이 움직였다.

일행은 움직이는 땅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공터 중간에 도착했을 때였다.

스윽!

느닷없이 일행 한가운데서 흙이 솟구쳤다.

“차하!”

무혼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고 혼천이 허공을 갈랐다.

츄아악!

혼천이 흙기둥을 통과했다.

크어어어어!

흙기둥 상단이 쩍 벌어지더니 괴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자운영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흙더미가 기둥처럼 솟구치는 것만 해도 경악할 노릇인데 비명까지 질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풀썩!

솟구쳤던 흙기둥이 철퍼덕 쓰러졌다.

“합!”

그 순간 금장생이 오른팔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손바닥 형상이 전면을 가득 채웠다. 옹전에서 얻은 무공인 철장鐵掌이었다.

퍽! 퍽!

“커억!”

“크윽!”

나직한 비명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흙기둥과 함께 금장생 일행을 공격하던 악인곡 무인이었다.

스윽! 스윽! 스윽!

일행 주변에서 흙기둥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타하!”

무혼은 기합과 함께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됐다.

“우雨!”

차가운 외침이 흘러나오고 혼천 끝에서 빗줄기 같은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푹! 푹푹푹!

꾸어어억! 캬아아아아아!

중간 부분에서 잘려 나간 흙기둥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철퍼덕 쓰러졌다.

스윽!

무혼이 서 있던 자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차하!”

무혼은 그 자리에서 빙글 돌며 혼천을 휘둘렀다. 이번에 그가 펼친 무공도 역시 조금 전 펼쳤던 ‘우’였다. 빛줄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나직한 비명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흙기둥 주위에 은신해 있던 악인곡 무인들이었다.

휙!

무혼은 혼천을 역수로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향해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푸아악!

새하얀 광채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땅속으로 파고들었던 광채가 밖으로 새 나오더니 흙기둥이 폭발했다.

“크악!”

흙기둥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흙기둥 안에도 적이 숨어 있었다.

휙!

무혼은 곧바로 몸을 날리며 혼천을 휘둘렀다.

스악! 스악! 스악! 스악!

혼천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흙기둥이 잘려 나가며 무너졌다. 무차별하게 흙기둥을 무력화시키는 무혼과 달리 금장생과 자운영, 권말남의 공격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들의 무기는 무혼과 마찬가지로 흙기둥을 잘라 냈고, 간혹 안에서 비명도 비어져 나오곤 했다. 그런데 흙기둥은 무너지지 않았다. 녀석들은 물기둥처럼 가라앉았다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을 다시 솟구쳤다.

푸아악!

솟구친 흙기둥 속에서 악인곡 무인이 뛰쳐나왔다. 몸보다 검이 더 빨랐다. 금장생은 왼팔을 들어 올리면서 왜도를 휘둘렀다.

차앙!

왼팔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장생이 걸친 헬라간은 완전한 방패였다. 금장생의 왜도가 거미줄 같은 선을 허공에 남겼다.

“크어억!”

금장생을 공격한 자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사내의 몸을 갈가리 찢어 버린 금장생의 무공은 공전에서 얻은 검법인 극결極結이었다.

“크윽!”

옆에서 비명이 들렸다. 흙기둥 네 개에 포위된 자운영이 내지른 비명이었다. 금장생은 자운영 옆으로 달려가며 왜도를 휘둘렀다.

퍽! 퍽퍽퍽!

자운영 왼편과 뒤편에 있는 흙기둥이 수십 조각으로 잘렸다.

“커억!”

“크윽!”

비명과 함께 네 명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흙기둥 속에 숨어 있던 자들이었다.

쿠어억!

갑작스러운 괴성이 들려오자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흙기둥 네 개가 그를 향해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흙기둥 맨 위쪽과 금장생과의 거리가 이 장으로 좁혀졌을 때였다.

푸악! 푸아악!

흙기둥 끝과 몸통 부분에서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수는 모두 여덟 명이었다.

“차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검은 광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바로 흑사아로 펼치는 흑우黑雨였다.

슥! 슥슥! 슥슥슥!

위쪽과 아래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털썩! 털썩! 털썩!

금장생을 공격했던 여덟 명이 거의 동시에 처박혔다. 그들은 곧 핏물로 녹아내렸다. 사방으로 퍼져 나갔던 검은 광채는 다시 금장생에게로 모여들었다.

“타하!”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기합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푸아악!

흙기둥에 둘러싸여 있던 무혼이 혼천을 하늘을 향해 뻗은 채 솟구치고 있었다. 오 장여를 솟구친 그는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폭暴!”

우렁찬 기합과 함께 강력한 힘이 기둥을 강타했다.

퍼억!

쿠어억! 크어억! 캬아악!

흙기둥들은 괴성을 내질렀다. 거대한 뱀처럼 꿈틀거리던 흙기둥은 곧 원래 흙으로 돌아갔다.

“혼천 때문이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혼이 가진 검은 고대에 만들어진 열 개의 신기 중 파괴되지 않았던 무기 중 하나다. 그 당시만 해도 이방인들은 노예 가문을 통해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무기에 적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었다.

아마도 혼천에는 정령을 없앨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영감님!

금장생은 라를 불렀다.

―왜…… 어?

라는 깜짝 놀랐다.

―영감님도 감지하셨습니까?

―이건 땅의 정령 기운인데?

―땅의 정령이라고요?

―응.

―땅의 정령은 어떤 종족이 부렸습니까?

―드워프다.

―그럼 이곳은 드워프들이 살았던 옛터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럴 게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발견한 거냐?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우연히 여길 지나가게 됐는데 공격을 받는다는 거냐?

―네.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순식간에 오 장을 주파한 그는 전방에서 솟아 나온 흙기둥을 향해 왼손을 내질렀다. 순간 그의 전방이 수백 개의 손바닥으로 들어찼다. 허공에 나타난 손바닥 수는 총 삼백예순 개였다. 강기로 이루어진 손바닥은 무자비하게 흙기둥을 쪼갰다.

퍽! 퍽퍽퍽! 퍽퍽!

“크악!”

“아악!”

“으악!”

흙기둥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온전한 정령이 아니구나.

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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