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29화 (429/524)

황금가 (429)

두 사람은 바닥을 살폈다. 검은 옷을 입은 자 두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날개처럼 생긴 특이한 걸 등에 차고 있었다.

“누군지 아는 사람?”

무혼이 물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등에 차고 있는 건 압니다.”

자운영이 말했다.

“뭔데?”

무혼은 자운영을 돌아보았다.

“비행구飛行具라는 물건입니다.”

“하늘을 날 때 쓰는 물건이라고?”

“네.”

“이걸 어디서 만들었는데?”

“원나라 황실에서 만들었습니다.”

“명나라가 아니고 원나라?”

“네. 하지만 연구 단계에서 폐기됐다고 했는데…….”

자운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지금은 적에 집중하도록 하자고요.”

금장생은 일행을 향해 소리치고는 왼편으로 달렸다. 그곳에서 네 명의 기척이 감지됐다. 어떻게 바람을 타는지 이편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슈캉!

번쩍!

금장생의 왜도가 푸른 광채를 허공에 남겼다.

털썩! 털썩! 털썩!

“차하!”

금장생에 이어 자운영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털썩! 털썩!

두 명이 몸통이 잘린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두릅시다.”

금장생은 바람을 뚫고 달렸다. 직진하면서 왜도를 휘두르고, 옆으로 이동하면서도, 절벽을 타면서도 왜도를 휘둘렀다. 왜도가 허공에 광채를 남길 때마다 몸통이 잘려 나간 자들이 추락했다.

―춘추오패일까?

무혼이 물었다.

―우리를 공격할 자는 그들밖에 없지 않나요?

이곳으로 오라고 한 사람이 방가련데 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들켰다는 뜻이 된다. 공연히 방가려가 걱정됐다.

―아무튼 없애다 보면 누군지 알게 되겠지.

일행은 바람 속에서 공격해 오는 자들을 없애며 전진했다. 적의 공격이 그친 건 백여 명 정도를 없애고 난 후였다. 바람도 뚝 그쳐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일행은 절벽 아래쪽에 움푹 들어간 장소를 골라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전부 당했어요.”

오십 대 후반의 여자가 건륭에게 보고를 했다.

어깨가 넓고 키가 상당히 큰 이 여자는 실전십패 중 한 명인 적엽 수수였다.

“몇 명이지?”

“다섯 명이에요.”

“다섯 명에게 백 명이 모두 당했다고?”

“네.”

“바람이 불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지?”

“반 식경 정도 남았어요.”

“다음은 이협二峽인가.”

“네.”

“관진關陣을 발동해.”

건륭은 이곳으로 들어와 흑풍협을 총 열 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일협부터 십협이란 이름을 부여했다.

각각의 협곡은 관문 형태로 돼 있고, 진식이 구축돼 있으며 바람이나 절벽 혹은 바닥에 무인이 숨어 있다.

“알았어요.”

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자리를 떴다. 수수는 협곡이 아닌 절벽 안쪽에 나 있는 길을 따라 달렸다.

그녀가 달리는 도중에 멈췄던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한 식경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녀가 도착한 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자 백 명이 대기해 있었다. 그들은 수수가 오자 일제히 바라보았다.

“놈들에게 일대가 당했다. 놈들을 우습게 보는 순간 너희들도 일대처럼 당한다는 걸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시작하라!”

“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달려가는 곳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였다.

협곡에 도착한 그들은 머리 위쪽에 손바닥을 대고 한편으로 밀었다. 그러자 천장이 열리고 강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들은 열린 천장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전방을 노려보다가 내밀었던 머리를 집어넣었다.

“여긴 바람이 그치질 않네.”

무혼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투덜댔다.

“바람이 자는 곳이라면 흑풍협이라고 하지 않았겠지요.”

“그러게. 그런데…… 헉!”

무혼의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졌다.

푸악!

그 순간 바닥이 폭발하며 검광이 솟구쳤다.

창!

“음!”

무혼은 신음을 내뱉음과 동시에 혼천을 휘둘렀다. 십만마도법 첫 번째 초식인 풍風이었다. 혼천에서 쏟아져 나온 검강은 폭풍처럼 쏘아져 나갔다.

“응?”

무혼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적이 솟구친 순간 공격을 했다. 적이 아무리 빨라도 걸려들어야 한다.

그런데 혼천이 자른 건 빈 공간이었다.

“뭐지?”

그는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도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도 그래?”

무혼은 소리쳐 물었다.

“적이 생각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크게 대답했다.

“억!”

바로 옆에서 자운영의 비명이 들렸다. 무혼은 고개를 돌렸다. 자운영의 가슴에서 피가 번지고 있었다.

“조심해!”

무혼이 소리쳤다.

“진식이에요.”

권말남의 외침이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나타나는 건 허상이에요.”

“진짜는 어디 있는데?”

무혼은 물었다.

“몰라요.”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그것도 모르겠어요.”

“알아서 대처하라고?”

“지금 당장은 그 수밖에 없어요.”

“젠장. 그냥 위로 갈걸.”

무혼은 전면을 노려보며 투덜댔다. 주위를 가득 채운 건 짙은 어둠과 바람뿐이다.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자들의 기척을 감지할 수가 없다.

휙!

바람 소리가 들려오자 곧바로 혼천을 들었다.

차앙!

스악!

상대의 무기를 방어함과 동시에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혼천은 허공만 갈랐다.

스윽!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스악!

“크윽!”

옆구리가 슴벅하더니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무혼은 왼손으로 옆구리를 만져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암기다! 조심해라!”

무혼은 크게 소리쳤다.

“컥!”

자운영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다쳤나요?”

금장생은 자운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자운영은 혈도를 눌러 지혈하며 대답했다.

“이거 걸치세요.”

금장생은 태극선의를 벗어 자운영에게 건넸다.

“절 주시면 부영반께서는…….”

나는 갑옷이 있어요.

금장생은 옷을 전부 벗어 가방 안으로 집어넣고 헬라간은 꺼냈다. 방패 형태의 헬라간을 가슴에 대고 ‘오픈!’이라 소리쳤다. 곧 그는 전신 갑옷을 걸친 상태가 됐다.

“뭐냐, 그건?”

무혼이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무 형이 살던 곳에는 이런 게 없습니까?”

“처음 봐.”

“헬라간이라 하는데, 고대의 산물 중 하납니다.”

“위력은 어느 정도지?”

“이제 확인해 봐야죠.”

금장생은 왜도를 허리춤에 걸었다.

―가드헬은 왜 안 쓰는 거냐?

그때 머릿속으로 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과 자운영, 권말남에게는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요.

―뭔가 하나는 숨겨 두고 싶다는 거구나.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렇지. 아무튼 잘 생각했다.

“시작해 볼까요?”

금장생의 신형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푸악! 푸악! 푸악!

그가 움직이자 세 곳에서 동시에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솟구치며 공격을 해 왔다.

금장생은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헬라간이 적의 무기를 막아 주기 때문이었다. 적의 무기가 헬라간을 치는 순간 역공을 해 없앨 참이었다.

캉! 캉캉!

연속해서 세 번의 소리가 헬라간 표면에서 흘러나왔다. 금장생은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단순히 휘두른 것이 아니라 검술을 펼쳤다.

그를 중심으로 전방 오 장은 초토화시킬 수 있는 강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가 잘라 낸 건 빈 공간이었다.

“돌겠군.”

금장생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맞는 순간 왜도를 휘둘렀기 때문에 수십 장 떨어진 곳에서 공격한 게 아니라면 걸려들어야 한다. 그런데 허공만 자른 것이다.

―너 지금 도를 어디로 휘두른 거냐?

라가 물었다.

―전방으로 휘둘렀는데요?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전방으로 휘둘렀다면 라가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네가 휘두른 방향은 전방이 아니라 아래쪽이다.

―네.

―땅을 향해 휘둘렀단 말이다.

―말도 안 돼요. 난…….

문득 진식이라 하였던 권말남의 말이 떠올랐다.

―이번엔 아래쪽을 공격해 볼게요.

캉! 캉캉캉!

어둠 속에 숨은 적의 검이 몸을 치는 순간 아래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아래쪽이다.

라가 말했다.

그 후로도 금장생은 방향을 달리해서 공격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가 펼친 무공의 방향은 아래쪽이었다. 놀랍게도 진식 안쪽에서는 어디로 공격하더라도 방향은 모두 아래쪽이 되는 거였다.

“큭!”

“컥!”

“윽!”

“말남아!”

연이어 비명이 들려오고, 바타르의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렸다.

“이런 개자식들! 윈드 블레이드!”

바타르는 버럭 소리치고는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백 개에 달하는 바람의 칼날이 나타나 사방을 헤집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공만 갈랐을 뿐 숨어 있는 적을 없애지 못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정말!”

바타르 주변으로 엄청난 기운이 모여들었다.

“지옥불은 좀 참아 주라.”

바타르가 헬 파이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무혼이 소리쳤다.

“왜?”

바타르는 무혼을 돌아보았다.

“네가 그 마법을 펼치면 이 협곡이 무너지게 되잖아. 그렇게 하면 적도 없앨 수 있긴 하겠지만 우리도 이렇게 되잖아.”

무혼은 손날로 목을 스윽 그었다.

“빠져나가면 되지, 자식아.”

“암석이 약해서 연쇄반응을 일으켜 다 무너지면 빠져나가고 싶어도 불가능해, 인마. 아무튼 그 마법은 참아 줘.”

“알았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세상을 얼음 구덩이로 만드는 블리자드 마법을 준비했다. 흑풍협 상단에 차가운 기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콰앙!

“커억!”

느닷없이 바닥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닥입니다.”

금장생이 소리쳤다.

“바닥?”

무혼이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적이 은신해 있는 장솝니다.”

금장생이 대답했다.

“좋아! 어디!”

무혼은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서면서 혼천을 찔러 넣었다.

“억!”

그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허공을 찌른 것이었다.

“바닥에서 발을 떼면 안 됩니다.”

“바닥에 발을 붙여야 한다고?”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무혼은 혼천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내리찍으며 힘을 쏟아부었다.

푸아악!

그가 혼천에 쏟아부은 힘은 방사형으로 퍼져 나갔다.

“커억!”

“크윽!”

“으윽!”

여기저기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잡았다, 놈들!”

무혼은 차갑게 소리치며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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