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23)
“차하!”
이호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열 자루의 비수가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이호의 최강 무공인 십천비十天匕였다.
금장생을 향해 날아가던 열 자루의 비수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금장생이 왼팔을 쭉 내민 건 그때였다.
악마수에서 백안白眼 수십 개가 쏘아져 나갔다.
캉! 캉캉! 캉캉캉! 캉캉캉! 캉!
백안은 정확하게 허공에 숨은 비수를 찾아내 막아 냈다.
‘수고하셨습니다.’
금장생은 라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방금 펼친 백안에는 라의 의지가 더 강하게 개입돼 허공에 숨은 비수를 막아 낸 것이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놈 도망친다.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이호가 날개를 펼친 채 빠르게 솟구치고 있었다.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이호가 최후의 절초를 펼친 건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망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금장생은 오른손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드헬은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는 오른손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슉!
가드헬이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
“크아악!”
곧 이십 장 높이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빠르게 솟구치던 이호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다리부터 시작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다리가 없어지고 허리가 없어지고 가슴이 없어지고, 마지막으로 머리가 사라졌다.
슉!
발출했던 가드헬이 돌아와 금장생 몸 안으로 들어갔다.
“뭐냐, 그건?”
무혼이 다가오며 물었다.
“얼마 전 얻은 무깁니다. 이 녀석 정도면 늙고 힘없는 드래곤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드래곤은 늙을수록 강해지는 종족이라니까 그러네.”
“어쨌든 가능은 하겠죠?”
“그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의 몸속으로 들어간 녀석은 자신이 가진 혼천보다 몇 배는 더 강한 힘을 지녔고 더 위험해 보였다.
게다가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몸속으로 들어가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최강의 위력을 발휘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겁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척사랑 말이 춘추오패가 총출동했다고 해서 왔다.
척사랑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가 없어 전음으로 말했다.
“그랬군요. 일단 올라가죠.”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놔두고?”
무혼은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살아남은 자는 칠팔십 명쯤 되는 것 같다. 전의를 상실한 상태라 위험하진 않지만 이편을 주시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뿌리를 뽑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자비심을 베풀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야 할 때가 지금이라는 거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사실 남은 신족을 그대로 두려는 건 유적기 때문이다.
유적기는 부상을 입은 것처럼 위장하여 이곳 어딘가에 쓰러져 있다.
부하들에게 자연스럽게 발견되도록 해야 임무 실패에 대한 책임도 면하게 된다. 물론 완전히 면책이 되진 않겠지만, 목숨을 잃는다거나 직위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알았다. 그만 가자.”
무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금장생 옆에 서 있는 방가려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잠시 후, 살아남은 신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존자를 찾아.”
그들은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여기다! 여기 환영마존님이 계신다!”
한 식경쯤 지났을 때 신족 한 명이 소리쳤다.
신족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응급조치를 하자 유적기는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된 거냐?”
유적기는 아무것도 모른 척 물었다.
“전부 당했습니다.”
신족 한 명이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 위로 올라가면 우리도 당하겠지?”
유적기는 낭떠러지 위를 가리켰다.
“네.”
신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저쪽으로 가자.”
유적기는 낭떠러지 반대편을 가리켰다.
“일단 몸을 추스를 장소를 찾겠습니다.”
신족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적당한 장소를 찾아 유적기를 데리고 갔다.
한편 낭떠러지 위로 올라온 금장생은 회의를 했다.
가장 먼저 한 건 적에 대해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준 사람은 방가려였다.
“완전 포위됐다고 봐야겠네요?”
금장생이 방가려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포위망이 더 좁혀졌을 거야. 네가 빠져나갈 곳은 우리 쪽뿐이야.”
“누이가 길을 터 주겠다고요?”
“응.”
“그러다가 의심을 사면 어떻게 하려고요.”
“속이는 건 내 전문이잖아. 걱정 말고 하루 정도 있다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와.”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마법으로 이동하자.”
바타르가 권말남을 보며 말했다.
“안 돼요. 전 부제독님을 따라가야 해요.”
“그러니까 장생 네가 우리 말남이를 못살게 군다 이거지?”
바타르는 금장생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못살게 구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권 첩형입니다.”
“흥! 부첩형님이 쫓아다니라고 했잖아요.”
‘헐!’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권말남을 보았다.
권말남과 자운영이 그를 쫓아다니는 건 금의위 영반과 제독동창의 명령에 의해서다. 그와는 전혀 상관없다.
아니, 그는 오히려 쫓아오지 말라고까지 했다.
“사과해라.”
바타르가 금장생을 윽박질렀다.
“이건 사과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임시직이고 저들은 평생직입니다. 저들은 날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감시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사과하라고 했다, 장생.”
“미치겠네.”
금장생은 권말남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권말남은 혀를 쑥 내밀었다.
―그러고 싶어요?
금장생은 혜광심어를 보냈다.
―헹! 너 때문에 한 고생을 생각하면 한참 멀었어, 자식아.
―내가 따라다니라고 한 적은 없는 걸로 압니다.
―아무튼 사과해.
―치사하게.
금장생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권말남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됐어?”
바타르가 권말남에게 물었다.
“호호홍! 응! 기분이 좀 풀렸쪄.”
권말남의 입에서 코맹맹이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가 됐든 말만 해라.”
“알아쪄.”
‘맙소사.’
―어떻게 된 겁니까?
금장생은 무혼에게 전음을 보냈다.
―콩깍지가 낀 거지, 뭐.
무혼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바타르는 사람이 아니고 드래곤이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같은 종족이 아니면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약간 높은 지성을 가진 몬스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지 필요에 따라 동료로 인정하곤 할 뿐이다. 그런데 바타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권말남을 두둔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무리 콩깍지가 끼었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요?
―조금 전에 헬파이어 마법을 펼친 게 누구 때문이었는지 알아?
―무 형이 부탁해서 펼친 거 아니었어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면 헬파이어 마법을 펼치지 않아.
―그럼 권 첩형이…….
―맞아. 권말남 저 여자가, 아니 저놈이 아양을 떠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펼쳤어.
―완전히 빠진 모양이네요.
―그런 모양이야.
―그럼 바타르에게 황실에 있는 그자들을 없애 달라고 해 볼까요?
―바타르가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세 놈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야.
―하긴.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갈게.”
그때 방가려가 금장생에게 말했다.
―저분이 금제를 풀 수 있는데 지금 풀어 달라고 할까요?
금장생은 눈빛으로 바타르를 가리키며 물었다.
―금제를 풀면 표시가 바로 나겠지?
―안 날 겁니다.
―하지만 초인삼황 중 누군가가 금제를 이용해 내게 명령을 내렸을 때 내가 듣지 않으면 바로 발각되겠지.
―그래서 지금 풀지 않겠다는 거예요?
―저 사람, 어딜 가거나 하지 않겠지?
―당분간은 중원에 머물 겁니다.
―그럼 나중에, 중원이 정리되고 그때 풀기로 하자.
―나는 기회가 있을 때 풀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냐, 나중이 나아. 이건 너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이야.
―알았어요. 누이 알아서 하세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금장생은 감사의 말을 했다.
“우리 쪽으로 오는 거 잊지 마.”
방가려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천야교는 낭떠러지에서 오 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었다.
산 위로 올라가다가 멈춘 건 산이 흔들릴 정도로 강했던 폭발음 때문이었다. 진영을 구축한 채 무슨 일이 일인지 알아보았다.
“어서 오세요.”
그녀가 진영 안으로 들어가자 단출한 천막이 나왔다. 천야교 교주의 숙소이면서 작전을 짜는 회의실이었다.
천막 앞에 서자 초전전 장로가 나왔다.
며칠 만에 봤으면 반갑게 맞아 줘야 하는데 그녀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왜…….”
방가려는 의아한 얼굴로 초전전을 보았다.
―손님이…….
“들어와라!”
묵직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응?”
방가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북경에 있어야 할 좌무백이었다.
‘금제를 풀지 않길 잘했네.’
방가려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좌무백과 고독혼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바위였다.
‘응?’
방가려를 본 좌무백의 눈이 살짝 커졌다.
―련주.
좌무백은 혜광심어로 무적혼을 불렀다.
―네.
―천야교 교주가 원래 저렇게 강했느냐?
좌무백은 바로 방가려의 공력을 알아보았다.
―아닙니다. 우리보다 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더 강합니다.
―요 며칠 새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뜻이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순간 좌무백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를 봐라, 방가려.”
좌무백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방가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녀는 좌무백이 이렇듯 갑작스럽게 금제를 발동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니, 좌무백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공력이 강해지면서 굴복하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방가려는 이내 좌무백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좌무백은 물었다.
“그게…….”
방가려는 얼굴을 찌푸렸다.
“말하라!”
좌무백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결국 방가려는 금장생을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누구냐?”
“황금전가 셋째 아들인 금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지금 신분이 뭐냐?”
“그는 과거엔 천객 일호였고 현재는 팔왕입니다.”
“허!”
좌무백은 멍한 얼굴로 방가려를 보았다.
사실 그는 방가려를 심문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들이 가장 없애고 싶어 하는 천객 일호에 대한 정보가 방가려의 입에서 흘러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그자가 천객 일호이면서 마왕이고 팔왕이라고 했느냐?”
“네. 그리고 루하라고도 했어요.”
“억!”
좌무백의 입에서 신음이 비명처럼 비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