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22)
콩깍지
물론 강한 무공이 있으니 바위가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다칠 일은 없다.
하지만 금장생과 방가려는 연못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와 방가려가 한 것이라는 숨을 참는 것뿐이었다.
두 사람에게 이렇듯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건 연못 주변에 있던 엘 일행이 떨어지는 바위를 무공으로 쳐 냈기 때문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구나, 일호!”
이호가 차갑게 소리쳤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이호와 엘 두 사람은 끝났습니다. 내가 아는 한 삼사천가 가주, 아니 초인삼황은 임무에 실패한 지휘관을 용서할 정도로 너그러운 성격이 절대 아닙니다. 내 머리를 가지고 간다고 해도 부하 이천오백 명을 잃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이것뿐이죠.”
금장생은 머리를 툭툭 치며 연못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오자 아직 몸이 멀쩡한 자들이 무기를 꼬나들고 포위했다.
“이들까지 죽게 내버려 둘 건가요?”
금장생은 엘을 보았다.
“단주!”
엘은 이호를 불렀다.
“네.”
이호는 엘을 보았다.
“지금부터 여기 지휘관은 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권한을 네게 넘긴다는 뜻이다.”
엘은 날개를 펼쳤다.
“단주.”
“네가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이호.”
엘은 날개를 펄럭였다. 곧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금장생은 엘을 보았다.
“뭐냐?”
“백사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요.”
“백사가 누구냐?”
“당신과 함께 발굴한 중천인을 말합니다.”
“나와 함께 발굴된 중천인이면 크시아나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보다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지?”
엘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자신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금장생이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시실은 마족인 크시아나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사를 발굴한 사람이 납니다.
금장생은 전음으로 말했다.
“어쩐지 눈에 익다 했는데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나는 백사의 안위가 궁금합니다.”
“그 계집과 바쿠스는 내 손에 죽었다.”
엘은 다시 날갯짓을 했다. 그의 신형은 빠르게 사승했다.
푹!
낭떠러지 위로 올라선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배로 파고들었다.
“크윽!”
엘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하늘 높이 올라갔다.
두 대의 화살이 더 날아왔으나 간신히 피했다.
그는 날아가면서 아래쪽에 있는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바로 드래곤 일행이었다.
“드래고오온!”
엘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이제야 부하들이 전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바로 드래곤 때문이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반드시.”
엘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저 자식이 널 부르는데?”
무혼은 멀어지는 엘을 가리켰다.
“너 때문이야, 자식아.”
바타르가 무혼을 향해 인상을 썼다.
“저 자식이 겁나는 모양이지?”
“나는 드래곤이다.”
“그런데 왜 쪼는 건데?”
“쪼는 게 아니라 귀찮아질까 봐 그러는 거다.”
“귀찮으면 브래스 한 방 쏴 주면 되잖아.”
“지 일 아니라고 막 던지네.”
바타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나는 저 아래로 가서 나머지 놈들을 정리해야겠다.”
무혼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이미 한번 내려갔던 곳이라 발 디딜 곳을 알고 있었다.
이십여 장을 내려가다가 첫 번째 착지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좌우로 움직여 절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디디며 내려갔다.
콰앙! 쾅쾅! 쾅쾅!
아래쪽에서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벌써 시작한 모양이네.”
무혼은 혼천을 꺼내 들고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갔다.
남자 네 명과 다수의 신족이 금장생과 여자 한 명을 공격하고 있었다.
‘저 자식은 갈수록 강해지네.’
그런데 금장생과 여자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적의 수가 마흔 명가량 되는데도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었다.
“크악!”
비명과 함께 신족 한 명의 머리가 떠올랐다.
“나도 한번 가 볼까?”
무혼은 바닥을 찼다.
잠시 후 그는 신족 후미에 도착했다.
“조무래기들은 내 취향이 아냐.”
그는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십 장 높이까지 올라가서는 방향을 틀었다.
그때까지도 금장생과 싸우는 신족들은 무혼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곳에 신경 쓰기에는 앞에 있는 금장생과 방가려가 너무 강한 탓이었다.
‘저놈!’
무혼의 시선이 대머리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그자는 철마존 마적천이었지만 무혼은 알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마적천에게로 쏘아져 갔다.
“헉!”
금장생을 공격하던 마적천은 질겁했다.
갑자기 뒷목으로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었다. 몸을 돌려 막을 여유가 없었다.
재빨리 좌우를 살폈다. 오른편에 부활전사단 두 명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내력을 동원해 그쪽으로 굴렀다.
스악!
“커억!”
왼편 어깨가 슴벅하며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살필 겨를이 없었다.
“크악!”
“아악!”
“으악!”
주변에 있던 신족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마적천은 일 장을 더 구른 후에 일어났다.
“차하!”
기합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쇄도해 왔다.
“넌 또 뭐냐?”
마적천은 양손을 내질렀다.
“억!”
그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오른손은 그의 생각대로 주먹 형태의 거대한 강기를 쏘아 보내는데, 왼팔은 강기 대신 다량의 피만 쏟아 내고 있었다.
앞쪽이 가려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피였다.
“우雨!”
무혼의 입에서 짤막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혼천이 전방으로 쭉 내밀리고 검은 광채가 폭사되었다.
십만마도법 두 번째 초식이었다.
검은 광채는 커다란 주먹 형태의 강기를 간단하게 뚫었다.
퍽! 퍽퍽퍽! 퍽!
“크윽!”
마적천은 뒷걸음질 쳤다.
그의 전신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차하!”
“타하!”
“이햡!”
주변에 있던 신족들이 무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火!”
짤막한 외침과 함께 혼천이 푸른색 불길을 토해 냈다.
“아악!”
“으악!”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무혼을 향해 달려들었던 자들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무혼은 마적천을 향해 계속 돌진했다.
“빙氷!”
또다시 기합이 터져 나오고 극한의 한기가 마적천을 덮쳤다.
마적천은 전 내력을 끌어 올려 양팔을 휘저었다.
퍽! 퍽퍽퍽! 퍽퍽!
수많은 빙극기가 튕겨 나갔다.
하지만 일부는 마적천이 만들어 낸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몸으로 틀어박혔다.
“크윽!”
마적천은 다시 물러났다.
“폭暴!”
무혼은 차갑게 소리치며 마적천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보다 먼저 혼천에서 일어난 폭풍이 마적천을 덮쳤다.
단순한 폭풍이 아니라 칼날을 머금은 도풍刀風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마적천의 피부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겼다.
보통 무인이었다면 몸이 조각조각 잘렸을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닌 무공이지만, 마적천이라 피부가 베인 걸로 끝난 것이다.
마적천은 폭풍을 벗어나기 위해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타하!”
막 폭풍을 뚫었을 때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헉!”
마적천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폭풍 위에서 기다리는 건 무혼의 혼천이었다.
그는 황망히 팔을 들었다. 그가 범한 또 한 번의 실수였다.
워낙 경황 중이라 마적천은 자신의 왼팔이 잘리고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그래서 왼팔을 희생하고 그사이에 오른 주먹으로 공격해 전세를 역전시키려고 했다.
굳이 완벽하게 막아 낼 필요는 없다.
무혼의 도刀를 일 초만, 아니 수십분의 일 초만 잡아 줘도 오른손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악!
혼천은 일거에 마적천의 목을 갈랐다.
둥실!
마적천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적천을 없앤 무혼은 곧바로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의 두 번째 목표는 야수마존 야율리였다.
야율리는 보자마자 자신에게 혈랑도법을 전수해 준 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야율리를 향해 가면서 혈랑도법 일초 혈랑파를 펼쳤다.
시뻘건 광채가 파도처럼 야율리를 향해 밀려갔다.
“억!”
야율리는 깜짝 놀랐다. 적이 자신의 무공을 펼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놀람도 잠시, 그는 신속하게 무공을 펼쳤다.
그가 펼친 무공도 혈랑도법 일초 혈랑파였다.
콰쾅쾅!
두 혈랑파가 충돌하자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웃!”
쿵쿵쿵!
야율리는 신음을 흘리며 다섯 걸음 물러났다.
“이럴 수가!”
야율리는 경악했다.
분명 그의 무공이다.
같은 무공의 같은 초식을 펼쳤는데 무공을 창안한 본인이 밀린 것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놀라면 안 되지.”
무혼은 야율리를 향해 쇄도해 갔다.
“우리 인연도 여기서 마무리해야겠군.”
금장생은 앞에 선 이호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의 접전으로 인해 내상을 입은 이호는 입가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네놈만 없었으면 나는 천객 일호가 될 수 있었다!”
이호는 버럭 소리쳤다.
자기가 먼저 천객으로 들어갔고 이호까지 승진도 먼저 했다. 이제 천객 일호만 없어지면 수장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래서 천객 일호가 임무를 나갈 때 슬쩍 정보를 흘렸다.
살행의 실패는 시작부터 정해졌다.
예상대로 천객 일호는 그 임무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굴러온 녀석이 천객 일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그놈이 바로 앞에 있는 일호다.
“그 생각을 버렸다면 당신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강해졌을 겁니다.”
“집착 때문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했습니다. 천객 일호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이호의 눈이 커졌다.
“천객 일호의 눈을 감겨 준 사람이 납니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이 오는 걸 적이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조사를 했습니다. 그 끝에 당신이 있더군요.”
“왜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말한다 해서 믿어 줄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그 사실을 몰랐다면 삼사천가에 좀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나 때문에 떠났다는 거냐?”
“이호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나를 돌아보게 됐고 떠날 때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금장생은 하늘을 향해 오른손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손바닥 가운데에서 반투명한 물체가 솟구쳤다.
“크아악!”
“아악!”
두 번의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금장생과 이호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 두 개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야수마존 야율리와 사신마존 역부심의 머리였다.
그들이 죽임을 당하자 살아남아 있던 신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쳤다.
“안녕히 가십시오.”
금장생은 이호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타하!”
이호는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무인은 모름지기 그래야지요. 그런데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