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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19화 (419/524)

황금가 (419)

수십 명이 몸을 날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족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은신술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접전을 치른 방가려는 신족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 내는 게 가능했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그려 내는 신족 모습의 정확도는 십 할이었다. 손의 위치뿐만 아니라 무기의 모양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족을 머릿속에 그리는 데 사용하는 건 역장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삼 장 길이로 만들어진 역장은 안으로 들어온 자가 어떤 자세를 취하더라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역장을 만드는 건 금장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능력이었다.

내공이 십 갑자를 넘어서자 전에 가지지 못했던 능력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역장이었다.

지금은 지름 육 장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아니, 그것만 해도 엄청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역장 안으로 들어온 자는 완벽하게 그려진다.

머리숱이 많은지 적은지, 눈이 큰지 작은지, 키가 큰지 작은지, 검을 들었는지 도를 들었는지 모두 알아낼 수 있다.

사실 그런 능력은 역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모두 갖는 건 아니다. 방가려만 가지는 특수한 능력이었다.

아무튼 적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는 이상, 완벽한 은신술이라고 해도 그녀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온다!’

방가려는 가장 먼저 달려온 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의 양손은 달걀을 쥔 것처럼 오므려져 있었다.

허공을 살짝 차며 떠올랐다.

발아래로 검이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머리도.

오므린 손가락 중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튕겼다.

슉!

가느다란 실 같은 빛줄기가 허공을 꿰뚫었다. 그리고 아래쪽 사내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푸스스!

가루로 변한 사내의 머리가 허공에 날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자가 그 가루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모습이 드러났다.

사내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튕겼다.

새하얀 빛줄기가 사내의 이마를 뚫었다.

푸스스!

또다시 가루가 휘날려다.

역장의 이점은 상대를 완벽하게 파악하게 해 주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역장 안에서는 자신이 신이었다.

거리도 없었다.

‘저기!’라고 하면서 쳐다보면 몸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역장 안에서는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소림사의 금강부동심법을 자유자재로 펼치고 있는 셈이다.

왼편으로 재주를 넘고 약지를 튕겼다.

뒤로 커다랗게 재주를 넘으며 오므리고 있던 왼손 손가락을 모두 튕겼다.

네 줄기 빛줄기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고 적 네 명의 머리가 가루가 돼 흩어진다.

역장 안으로 들어온 자들이 죽임을 당한 건 순식간이었다.

스윽!

방가려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녀는 여전히 역장을 펼친 채였다. 다섯 명이 감지되었다.

‘여기선 내가 신이다.’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퍽! 퍽퍽퍽!

뭔가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곧바로 몸을 날렸다.

방가려와 무혼이 선두와 후미에서 없애고 있는 자들은 철마존 마적천의 부하들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철마존은 부하에게 물었다.

―적은 두 명입니다.

―한 명이 아니고?

―네. 그리고 놈들도 은신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은신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냐?

―우리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래?

철마존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은신술을 펼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은신술을 펼친 상태에서 당하면 발견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사이 적은 장소를 옮겨 버린다.

하지만 은신술을 펼치지 않은 상태에서 당하면 위치가 바로 드러난다.

―은신술을 풀라고 해라.

숨어 있는 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편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곧 철마존 휘하 대원들이 은신술을 풀었다.

그들은 이 장 간격으로 늘어선 채 주위를 살폈다.

“방어 진형을 구축하라!”

철마존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습을 드러낸 이상 전음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신족들은 재빨리 둥글게 늘어섰다.

‘음!’

적이 모습을 드러내자 방가려는 공격을 멈췄다.

무혼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공격을 멈춘 채 상황을 주시했다.

다만 금장생만 바쁘게 움직여 다니며 적을 없앴다.

금장생이 있는 곳은 환영마존 영제가 맡은 남쪽 절벽 앞이었다.

그는 한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자는 체격이 왜소한 흑의인, 즉 일행의 수장 환영마존 영제였다.

금장생이 이곳에 집행사자단과 부활전사단 외에 다른 자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조금 전이었다.

틈새 근처에 있던 부활전사단 대원들을 모두 없애고 추격을 피해 자리를 이동했는데 그쪽에도 신족들이 있었다.

그것도 수백 명이.

직감적으로 지원군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 며칠을 더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간다.’

그는 천천히 환영마존 영제를 향해 걸어갔다.

바로 옆에 신족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환영마존 이 장 뒤편에 도착했다.

환영마존 근처에는 쉰 명 정도가 은신해 있었다.

대원들 사이 거리는 일 장. 환영마존을 방어하기 위한 배치였다.

환영마존은 아직 금장생이 자신을 노린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저기 열 명을 먼저 없애고, 저자가 당황하여 몸을 돌리는 순간…….’

금장생은 다시 움직여 환영마존 앞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많은 자객행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무인은 암습을 눈치채면 가장 먼저 뒤편으로 돌아선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껏 앞을 보고 있었는데 암습자가 없다면 공격해 올 곳은 뒤편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장생은 왼손을 바닥에 댔다.

‘카!’

그리고 불의 정령 카를 불렀다.

―네, 주인님!

‘땅속을 통해 이동하는 거 가능해요?’

―네.

‘저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자 보이세요?’

―보입니다.

‘그자 앞에 열 명이 방사형으로 은신해 있어요.’

―그들을 없애란 말입니까?

‘정확하게 어느 방향에서 공격하는지 몰라야 해요.’

―땅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면 되겠습니까?

‘네. 그런데 열기를 발산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도 가능한가요?’

―저는 최상급 정령이지만 힘은 정령왕에 버금갑니다. 그런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알았습니다.

카는 악마수에서 나와 땅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로부터 반 각 후!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땅속 깊은 곳에서 가공할 열기가 솟구쳤다.

그 열기는 곧바로 땅을 뚫고 나와 한편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신족의 턱 밑으로 파고들어 가 정수리를 뚫고 나왔다.

“커억!”

“크윽!”

“으악!”

“크악!”

처절한 비명이 신족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헉!”

영제는 질겁했다.

자신 주위에는 이백 명이 포진해 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열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앞에는 아무도 없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환영마존은 뒤편을 향해 손을 휘두르면서 몸을 돌렸다.

스윽!

그 순간 금장생이 움직였다.

이 장 거리는 한 걸음에 불과했다.

“헉!”

그제야 환영마존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곧바로 앞으로 엎어졌다.

무릎을 전혀 굽히지 않고 뒤로 넘어지는 철판교와 같지만, 넘어지는 방향이 뒤가 아니라 앞이라는 점이 달랐다.

턱!

상체가 닿으려는 순간 양쪽 어깨를 털어 옷을 벗으며 발끝으로 땅을 찼다.

그의 몸은 바닥에서 반 자 정도 뜬 상태였다.

몸이 쑥 빠져나갔다.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금선탈각 수법이었다.

빠져나갈 때 은신술을 펼쳤기 때문에, 그의 수법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금장생은 환영마존보다 한 수 위였다. 이미 금선탈각 수법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환영마존이 벗어 놓은 옷을 무시하고 쏘아져 갔다.

턱!

그리고 왼손으로 환영마존의 목을 그러쥐었다.

‘여자?’

팔 하박에 두툼한 살집이 느껴졌다.

‘상관없지.’

곧바로 백사아를 환영마존의 왼편 목으로 찔러 넣었다.

막 백사아를 찔러 넣으려는 순간, 익숙한 살냄새가 감지되었다.

‘이런 제길!’

그는 다급하게 백사아를 거뒀다. 그리고 환영마존의 몸에 상체를 밀착하고 발을 튕겼다.

하나가 된 환영마존과 금장생은 바닥에서 반 자 정도 뜬 상태에서 쏘아져 갔다.

환영마존은 박수 치듯 금장생의 머리를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은 새카만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접니다, 형님.

금장생은 다급하게 전음을 보냈다.

놀랍게도 환영마존 영제는 의형제를 맺은 무극 유적기였다.

척!

환영마존의 손에서 내력이 거둬지고, 그녀의 손이 금장생의 머리를 가볍게 그러쥐었다.

―장생?

그녀는 전음으로 물었다.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서 금장생밖에 없다.

―네.

―맙소사.

―일단 이 안으로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태극선의 상의를 풀어 헤쳐 유적기를 끌어들였다.

“저기다!”

“저기 놈이 있다!”

금장생을 발견한 신족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금장생은 재빨리 은신술을 펼쳤다.

그와 유적기의 모습이 사라졌다.

주변을 살피던 금장생은 절벽을 타고 올랐다.

이십여 장을 날아오르자 동굴이 있었다.

그는 그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의 깊이는 일 장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금장생은 유적기를 놓았다.

“어떻게 된 거지?”

유적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금장생이 무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팔왕이 돼 나타난 것이다.

“사연이 길어요.”

“지금 바빠?”

“그다지…….”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보물이야?”

유적기는 금장생의 태극선의를 가리켰다.

“왜요?”

“조금 전에는 안 추웠는데 지금은 몹시 추워.”

금장생의 품에 파묻혀 올 때는 추위를 전혀 못 느꼈다. 그런데 품에서 벗어나자마자 추위가 몰려들었다.

조금 전 추위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금장생의 장포 때문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 옷은…….”

“이건 옷이 아니라고 했잖아.”

“환영 마법이군요.”

이제야 유적기의 몸에 펼쳐진 게 마법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전에 유적기가 진식이라고 했던 건 마법을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런 거다.

“마법을 알아?”

“신족과 엮이다 보니 알게 됐어요.”

“그럼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네.”

유적기는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남자 몸이 사라지고 가슴이 튀어나온 여자 몸이 나타났다.

금선탈각 수법을 펼칠 대상을 다 벗어 버린 듯, 가슴 가리개 하나뿐이었다.

환영 마법으로 얼굴까지 함께 바꾼 듯, 목걸이를 벗자 얼굴도 원래의 유적기로 돌아왔다.

“그 목걸이가 마법 매개체군요.”

금장생은 유적기의 손에 들린 목걸이로 시선을 주었다.

새끼손톱 크기의 홍옥이 달린 고급스러운 목걸이였다.

“응.”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요.

금장생은 태극선의를 벗어 주었다.

“고마워.”

유적기는 태극선의를 걸치고 머리를 풀었다.

“이제야 형님 같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원래 환영마존 영제였어요?”

“환영마존 영제가 몇 살인지 알아?”

“삼백 살이 넘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보여?”

“전혀.”

“진짜 영제는 내 손에 죽었어.”

“영제로 변장하기 위해 죽였다는 건가요?”

“응.”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자를 없앤 건데요?”

“내 뒤를 캐고 다녔거든.”

“뒤를 캤다는 건 형님의 다른 신분이 또 있다는 건데…….”

“물론.”

“뭔데요?”

“구룡어사대九龍御史隊 대주.”

“구룡어사대 대주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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