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18)
‘어디 있느냐, 놈?’
옥구는 전방을 주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대원 두 명이 쓰러졌다.
그때부터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주위를 살폈지만 어떤 기척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대원들이 죽은 곳으로 왔다.
천천히 움직여, 어지간한 주의력을 지닌 자가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분명 이 근처에 있다. 분명.’
옥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으로 온 대원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다섯 명이 더 다가와 있었다.
모두들 사물로 변신하고 있어 자세히 봐야만 알 수 있다.
대원 한 명이 눈을 뜨고 이편을 보았다.
―놈은?
전음으로 물었다.
―안 보입니다.
턱!
그 순간 방금 전음을 나눴던 대원 뒤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옥구는 시선을 들었다.
‘헙!’
그의 눈이 커졌다.
대원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턱!
이번엔 왼편에서 한 명이 쓰러졌다.
대원은 머리와 목이 분리된 상태였다.
―놈이 바로 옆에 있다, 주의하라!
그의 전음은 부활전사단 대원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다.
스윽!
‘컥!’
옥구의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커졌다.
‘너? 넌…….’
―부하들보다 당신 자신의 목숨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습니다.
‘여기 있다! 놈이 여기 있다.’
옥구는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옥구는 경악했다.
자신을 없앤 자가 신족의 은신술을 펼치며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자가 펼치는 은신술은 자신들은 감히 따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
같은 신족이라고 해도 실력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은신술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하급이나 중급이 한 번에 변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즉, 내기를 끌어 올려 나무로 변했으면 내기를 풀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무로 변신한 상태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상급으로 가면 다르다.
그들은 매초마다 새로운 사물로 변할 수 있다.
즉 나무, 바위, 물, 땅이 순서대로 있다면 상급 이상은 걸어가는 도중에 그 모든 걸로 변할 수 있다.
사물로 변하는 것 또한 너무 자연스러워 바로 앞에서 지켜보아도 알아내기 힘들다.
그런데 저자가 그렇게 하고 있다.
걸음을 옮기는데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구덩이가 되고, 풀이 된다.
설사 상급이라고 해도 저렇듯 자연스럽게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무로 변했던 자가 몸을 돌려 이편을 본다.
사내는 나무 옆에 서 있는 바위를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사내의 손은 바위로 같은 색으로 변했다.
나무 중간 부분에 사람의 눈이 나타났다.
‘누구냐, 넌?’
시선이 마주치자 옥구는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툭!
츄악!
머리가 떨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피어올랐다.
―부단주가 당했습니다.
옥구의 사망 소식은 바로 이호에게 전달되었다.
―놈은?
이호는 물었다.
―알 수 없습니다.
―움직이지 말라고 해라.
“큭!”
“윽!”
십여 장 떨어진 뒤편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자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숨어 있는 상층부 대기가 요동쳤다.
대원들이 동요하자 주변에 영향을 미쳐 대기가 변화한 것이다.
―동요하지 마라!
이호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출렁이던 대기가 잠잠해졌다.
다시 침묵이 주위를 감쌌다.
턱! 털썩! 턱!
이번에는 전방에서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 달리 비명은 없었다.
‘놈이다!’
이호는 내심 소리쳤다.
그는 전 내력을 끌어 올려 소리가 난 곳에 집중했다.
스으윽! 스으윽! 스으윽!
마치 뱀이 천천히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재빨리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동 명령이었다.
잠시 후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천천히 전방으로 이동했다.
―멈춰!
십여 장가량을 나아간 이호는 소리쳤다.
그러자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일제히 멈췄다.
―모두 북동쪽을 봐라!
이호의 명령은 빠르게 전파됐고,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시선을 집중했다.
삼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다지 빠르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사물과 동화돼 있었다.
‘잡았다, 놈!’
이호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포획 작전을 시작하라.
이호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파앗! 파앗! 파앗!
더 이상 은신할 이유가 없었다.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사물로 동화돼 있는 물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먼저 다섯 명이 몸을 날렸고 그들 뒤로 열 명이, 그리고 맨 뒤에는 스무 명이 몸을 날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목표물 뒤에 내려섰다.
이제 반 장만 더 가면 목표물의 등이다. 검이나 혹은 도를 찔러 넣기만 하면 된다.
목표물이 몸을 돌린 건 그때였다.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가장 먼저 본 건 검은색 막대였다.
먹물처럼 새카만 광채를 뿌리는 그것이 팔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팔에서 검은 물체 수십 개가 쏟아져 나왔다.
검은 물체는 살아 있는 것처럼 부활전사단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먼저 가장 앞쪽에 있던 다섯 명이 목이 떨어져 죽고, 그들 뒤에 있는 열 명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무 명이 목을 그러쥐었다.
“크윽!”
“으윽!”
“커억!”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피를 뿜어내며 풀썩풀썩 쓰러졌다.
“공격하라!”
이호는 모습을 드러내며 고함을 내질렀다.
금장생을 발견했으니 더 이상 은신할 이유가 없었다.
주변에 있던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렸다.
“차아!”
금장생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죽여라!”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금장생을 쫓아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타하하!”
금장생은 흑사아를 뽑아 던졌다.
하나였던 흑사아가 순식간에 일흔두 개로 변했다. 그리고 아래를 향해 쏘아져 갔다.
검은 폭풍이었다.
푹! 푹푹푹! 푹푹푹!
흑사아는 거칠 것 없이 쏘아져 나가 부활전사단 대원들의 몸을 뚫었다.
“커억!”
“크윽!”
“으윽!”
비명과 함께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핏물로 녹아내렸다.
“맙소사.”
이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흑사아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있던 이들은 경악한 얼굴로 동료들을 보았다.
수십 명에 달했던 동료들 중 시체를 보존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핏물로 녹아 스며들고 만 것이다.
“어떻게…….”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넋을 잃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이호였다.
금장생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놈은 혼자고 인간이다! 공격하라!”
이호는 바락바락 고함을 내질렀다.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이호는 공격을 하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방어 자세를 취했다. 공격을 할 땐 하더라도 우선은 방어부터 해야 했다.
“…….”
침묵이 주위를 휩쓸었다.
“없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부활전사단 수십 명을 없앤 금장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찾아라.”
부활전사단은 다시 은신술을 펼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중간 지점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북쪽과 남쪽에 숨어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북쪽에 있던 엘과 야수마존 야율리가 부하들을 남쪽으로 이동시키고, 남쪽의 사신마존 역부심과 환영마존 영제가 부하들을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부활전사단 반대편에 있던 철마존 마적천을 비롯한 신족 이백 명도 절벽 쪽으로 이동했다.
포악한 맹수를 사냥하는 것처럼 한가운데로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갔다.
그들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그는 뒤늦게 합류한 무혼이었다.
마법 로브를 입은 채 이동한 무혼은 사신마존 역부심이 이끄는 신족 진영 후미에 멈췄다.
그가 있는 곳에서 천천히 이동 중인 신족 후미까지는 오 장 거리였다.
먼저 지름이 일 장 되는 강기막을 치고 허리춤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냈다.
막대기의 길이는 20센티미터 정도로, 마법 지팡이였다.
“진실의 눈은 환영을 뚫는다, 매직아이.”
그는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투명하게 변했다.
무혼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앞에서 움직이는 신족이 확연하게 보였다.
그는 혼천을 등에 찼다. 물론 혼천을 집어넣는 곳은 로브 안쪽이었다.
그러고는 마법 가방 안에서 대거라고 부르는 단검 두 자루를 꺼냈다.
오른손에 든 붉은 대거에는 9클래스 화염 마법이 걸려 있고 왼편에 쥔 백색 대거에는 궁극의 얼음 계열 마법이 걸려 있다.
대거를 역수로 쥐어 팔 하박에 붙인 후 강기막을 해제하고 몸을 날렸다.
그가 입은 마법 로브는 몸만 가려 주는 게 아니었다. 소리마저도 완벽하게 흡수했다.
잠시 후 그는 이동 중인 신족 후미에 도착했다.
전방만 신경 쓰고 있는 듯, 뒤돌아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곧바로 신족 바로 옆으로 가서 뒷목을 향해 대거를 찔러 넣었다.
푸욱!
대거가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신족은 움찔했다.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거가 파고든 부분이 바로 가루로 변해 버린 탓이었다.
대거를 뽑음과 동시에 왼편으로 이동했다.
신족의 뒷목에서는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거에서 쏟아진 가공할 열기에 의해 몸속 모든 수분이 증발하고 가루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몸 내부가 가루로 변한 신족은 은신술이 풀리며 풀썩 쓰러졌다.
내부가 가루로 변해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다 보니 앞으로 처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들은 자는 가장 가까이 있던 왼편 사내뿐이었다.
왼편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응? 저…….”
쓰러진 동료를 보고 뭐라고 하려는 순간 차가운 뭔가가 뒷목을 후벼 팠다.
입을 벌릴 새도 없이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쩌엉!
사내 몸이 순식간에 얼음덩어리로 변했다.
하지만 사내가 얼어붙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혼이 강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무혼은 잡고 있던 사내를 놓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강기막을 푼 무혼은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뒤편에서 소리 없는 학살이 일어나고 있지만 알아차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바로 앞에서 앞쪽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때문이었다.
“큭!”
“윽!”
“억!”
나직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오며 머리와 목이 분리된 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을 없애고 다니는 사람은 방가려였다.
그런데 방가려의 은신술 또한 금장생이나 마법 로브를 입고 있는 무혼에 비해 약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완벽한 은신술을 가르쳐 준 자는 바로 초인삼황이었다.
초인삼황은 신족의 능력을 바탕으로 은신술을 창안하였고, 그 은신술의 수혜자가 바로 방가려였다.
그 은신술에 적보영의 무영마신만마무가 더해지자 더 엄청나졌다.
‘아고, 추워라.’
최고의 은신술이긴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소위 절기라고 부르는 은신술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그녀가 익힌 은신술 또한 옷을 벗어야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녀가 든 무기라고는 머리에 꽂은 비녀와, 적을 없앨 때 새하얗게 변하는 소수가 전부였다.
방가려는 연신 몸을 문지르며 신법을 펼쳤다.
휙!
기척을 발견한 누군가 검과 하나가 돼 몸을 날려 왔다.
방가려는 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는 검이 감지되었다.
‘나쁜 자식. 속옷도 안 입었는데.’
공연히 움찔했다.
만일 사내의 검이 두 치만 위로 올라왔다면 소중한 곳에 상처를 입을 뻔했다.
‘넌!’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오므렸다가 튕겼다.
쉭!
새하얀 빛줄기 세 개가 사내 머리로 파고들었다.
“커억!”
푸스스스!
나직한 비명과 함께 사내의 머리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저기다!”
동료의 머리가 가루로 변하는 광경을 목격한 신족이 소리쳤다.
그러자 수십 명의 신족이 방가려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