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15)
“이거 드세요.”
금장생은 방가려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이건?”
방가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접시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교자가 놓여 있었다.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영양 보충은 이걸로 해야 해요.”
금장생은 육포를 교자 옆에 놔 주었다.
안에 고기와 양념을 섞은 소를 넣으면 더 나은 음식이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냄새를 풍기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위치를 들키게 되는 냄새를 풍기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 가방은 뭐지?”
방가려의 시선이 금장생이 꺼내 놓은 가방으로 향했다.
교자와 육포가 들어 있던 물건이다. 지금은 크기가 한 자 반 정도지만, 주머니에서 나올 땐 두 치밖에 되지 않았다.
“고대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
“고대 기술이라면…….”
“마법이라고 들어 봤어요?”
“들어 봤어. 하지만 너무 황당무계한 것들이라…….”
“믿지 않았다는 거네요?”
“믿을 수가 없는 것들이잖아. 그런데 요즘 들어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
“어떤 것 때문에 바뀐 건데요?”
“날개 달린 인간을 봤으니까.”
“그건 날개가 아니고 강기의 변형이에요. 무림에서도 편복蝙蝠 어쩌고 하는 별호를 가졌던 자들은 그런 유의 무공을 익혔고요.”
“그렇긴 하지만 수백 명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는 건 충격이었어.”
신족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린 방가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놈들도 목이 잘리면 죽는 생명체에 불과해요. 그러니 겁먹을 필요 없어요.”
“겁먹은 건 아냐.”
방가려는 빙긋 웃으며 교자를 입으로 가져갔다.
“무슨 교자가 이렇게 맛있지?”
“식사를 언제 하고 안 했죠?”
“이틀 전.”
“그래서 맛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은 허기라는 거야?”
“네.”
“아무튼 맛있네. 그런데 그거 말이야.”
방가려는 턱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이방인이 준 겁니다.”
“이방인?”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사람인데, 마법삽니다.”
“마법사가 뭔데?”
“말이 안 되는 무공을 펼치는 무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떻게 말이 안 되는데?”
“이를테면…….”
금장생은 일라일라를 꺼내 라이트 마법을 펼쳤다.
작은 빛 덩어리 하나가 생겨나 허공에 자리했다.
“와!”
방가려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럼 너도 마법사?”
“이제 초보라, 마법사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건…….”
“엄청난 마법사가 만든 마법 창고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에 물건을 넣으면 상하지 않나 보지?”
“네.”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어?”
“숨을 쉴 수가 없으니까…… 안 될 겁니다.”
“그러네. 물건을 어느 정도나 넣을 수 있지?”
“그것도 측정해 보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아주 많이 들어가요.”
“그거 하나 있으면 아주 편하겠네.”
“맞아요.”
“그들에게도 이런 게 있을까?”
“누구를 말하는 거죠?”
“신족.”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럼 뭐로 배를 채우지?”
“굶어야죠.”
“신족은 먹지 않아도 될까?”
“아마 아닐걸요.”
“전쟁을 하는데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는데.”
“그래서 이번 싸움은 시간을 끌수록 내게 유리하다는 겁니다.”
“그건 시간이 아주 많다는 거네?”
“그런 셈이죠.”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됐지?”
“진시 말이나 됐을 거예요.”
“밤에 일하려면 지금은 자야겠지?”
“네.”
“그럼 자자.”
방가려는 금장생의 태극선의를 바닥에 깔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 때문에 어지간한 걸 깔아도 등이 얼어붙는 걸 막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태극선의였다.
태극선의를 펴고 개울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소금 있어?”
세안이 끝나자 물었다.
“네.”
금장생은 가방에서 소금을 꺼내 방가려에게 건넸다.
방가려가 양치를 하는 걸 보다가 옷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또 해?”
금장생이 목욕을 하는 걸 보며 방가려가 물었다.
“습관입니다.”
“무슨 습관?”
“임무를 마치고 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오랜 습관요.”
“목욕을 하지 않으면 찜찜해?”
“네. 피도 묻지 않고 땀도 흘리지 않아서 아무 냄새도 안 나지만 씻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어요.”
“그렇구나. 그럼 나도 해야겠다.”
방가려는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문득 전날 관계를 갖고 나서 아직 씻지 않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조두는 사용해선 안 됩니다.”
“물로만 씻어야 한다고?”
“조두를 푼 물은 쌀뜨물처럼 흰색이라 누군가 개울을 주시하고 있다면 금세 들키고 맙니다.”
“알았어. 오늘은 손으로 박박 문지르지 뭐.”
방가려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금장생은 머리부터 시작해서 꼼꼼하게 씻었다.
온몸을 정성스럽게 씻는 것도 목욕과 마찬가지로 습관이다.
“등은 내가 씻겨 줄까?”
방가려가 금장생 곁으로 가며 말했다.
“네.”
금장생은 등을 맡겼다.
“목욕할 때 어떤 생각으로 해?”
방가려가 등을 밀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죠?”
“우린 피로를 풀거나, 몸이 꿉꿉할 때 기분 전환을 위해서 목욕을 하거든.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아닌 것 같아요.”
“마치 의식을 거행하는 것 같아.”
그녀가 느끼기엔 그랬다.
먼저 머리에 물을 끼얹고 얼굴을 씻고, 손을 씻고 목과 가슴을 씻는다.
단순하게 슥슥 문지르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찾아 닦아 내는 사람처럼 꼼꼼한 손길이다.
“의식?”
“번뇌를 떨치기 위해 불공을 드리는 비구니 같다고 할까?”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살아서 다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몸을 씻었다.
그런 모습이 방가려의 눈에는 경건하게 보였나 보다.
“맞지?”
방가려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하니까요.”
“강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겠지.”
방가려는 금장생의 등을 슥슥 문질렀다.
그녀가 끝내자 금장생도 방가려의 등을 밀어 주었다.
목욕을 마친 방가려는 조금 전 깔아 놓은 태극선의 위로 누웠다.
옷을 입으려던 금장생은 방가려를 보았다.
“나는 옷을 입고는 못 자.”
“여긴 집이 아니고 야전이잖아요.”
“완전한 야전이면 불편해도 옷을 입겠지만, 여긴 아무도 없잖아. 춥지도 않고. 아무튼 신경 안 쓰이게 조심할게.”
“어쩔 수 없죠 뭐.”
금장생은 입던 옷을 벗어 놓고 방가려 옆으로 누웠다.
이미 잠까지 잤는데 그런 걸 따진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미안해.”
방가려는 금장생이 눕자 자신의 옷으로 시선을 주었다.
휙!
허공섭물을 펼치자 옷이 날아와 그녀와 금장생의 몸을 덮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바로 옆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사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뀐 밤낮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였다.
“풋!”
방가려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원래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금재천이었거든.”
“큰형?”
“응.”
“그런데…….”
“관심도 없던 너와 목욕을 하더니 이젠 잠까지 잔 상황이 우스워서.”
“형한테 말 안 해 봤어요?”
“네 형은 다른 여자에게 푹 빠져 있었어.”
“아!”
“아무튼 사람 인연이란 묘한 것 같아.”
“묘하기도 하고, 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게 인연이죠.”
“맞아.”
“참! 내가 무공 하나 가르쳐 드려요?”
“무공?”
“대단한 건 아니고, 누이 신법이 약한 것 같아서요.”
“약하다고 해도 나는 천야교 교주야.”
“장차 초인심황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가르쳐 준 무공으로 상대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그들과 싸울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데?”
“안 싸울 거예요?”
“내게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면 굳이 싸울 이유가 없지.”
“그럼 안 가르쳐 줘야겠네요.”
금장생은 입을 다물었다.
“어떤 무공인데?”
“내가 있는 마가는 수천 년 역사를 지니고 있고 많은 무인을 배출했어요. 그들 중 가장 강한 다섯 명을 마가오대철인이라고 하는데 그 오대철인 중 한 명인 무영유마 적보영의 무공이에요. 그녀의 무공은 두 가지인데, 신법이면서 권법인 무영마신만마무와 군마일천무란 검법입니다.”
“이름만으로 보면 대단한 무공 같은데?”
방가려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팔왕이 되기 위해 싸웠던 자들 중 마지막 사람이 화왕이었는데 그가 가졌던 신분 중 하나가 잠마였다고 하면 믿겠어요?”
“잠마면 천마, 잠마, 수라 할 때 그 잠마를 말하는 거야?”
“네. 그는 잠마 이전에 신족 사장로 중 제일장로였고요.”
“정말?”
“네.”
“맙소사.”
방가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다 문득 잠마가 천 년 이전 사람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신족의 수명이 얼마나 되지?”
“상급 신족의 수명은 오천 년이에요.”
“그, 그럼 초인삼황도?”
“초인삼황은 신족 사장로 중 나머지 세 명입니다.”
“…….”
방가려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 무림이라고 하지만 수명이 오천 년이나 되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놀랐어요?”
“나 놀리려고 하는 말 아니지?”
“누이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무튼 적보영의 무공은 내가 익힌 무공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한 무공입니다.”
“진짜?”
“네.”
“그럼 배워…… 볼까?”
“이미 배는 떠났습니다.”
금장생은 눈을 감았다.
“그 배, 돌아오지 않을까?”
“이미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돌아올 리가 없죠.”
“나는 돌아오게 할 자신 있어.”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내 몸으로 뱃사공을 유혹할 거야.”
방가려는 금장생 아래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건 반칙입니다, 누이.”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너잖아.”
방가려는 자신의 옷을 젖혔다. 그리고 금장생 위로 올라갔다.
“혹시 이걸 노리고 거절한 거 아니에요?”
“아마 그럴 거야.”
방가려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요염하게 웃었다.
“시집가고 싶어요?”
“시집?”
“나는 장가가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시집을 가고 싶다면 잘못 짚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서요.”
“나도 혼인을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 하지만 멋진 남자를 만나 잠은 자고 싶어.”
“내가 멋진 남잔가요?”
“내가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 중 최고야.”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
“응.”
“남자 입장에서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네요.”
“네가 최고라니까 그러네?”
방가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미끄러져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