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11)
인간 치료제
휘이익!
바람 소리는 음산했다.
휙!
양석대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운무가 지나갈 때까지 멈췄다가 다시 움직일 참이었다.
금장생의 왼손이 올라간 것도 그때였다.
그의 손바닥에서 투명한 막대가 튀어나와 쏘아져 갔다.
전문적으로 신족을 잡는다는 가드헬이었다.
소리 없이 날아간 가드헬은 왼편 앞에 선 신족의 옆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어…….”
비명을 지르기도 전, 두 번째 신족과 양석대 그리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신족의 목까지 뚫렸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앞 열 오른편 신족의 목을 뚫은 가드헬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뒤 열 신족 다섯 명의 목을 뚫었다.
열 명은 어찌해 볼 새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허!’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가드헬을 펼친 그조차도 이렇듯 가공할 위력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드헬은 말 그대로 지옥의 무기였다.
시체 열 구를 어두운 곳으로 가지고 가 차곡차곡 쌓았다. 그런 다음 다시 어둠 속을 헤집고 다녔다.
집행사자단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엘이 알아차린 건 일방적인 도살이 벌어진 지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
“모두 밖으로 나와라!”
엘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동굴을 수색하던 집행사자단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왔다.
“맙소사.”
엘은 신음을 내뱉었다.
대원의 수가 삼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운무 속으로 들어간 지 한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수색 중단하고, 지금부터는 동굴을 무너뜨려라!”
엘은 고함을 내질렀다.
“존!”
신족들은 운무 안쪽으로 들어갔다.
콰앙! 쾅쾅! 쾅쾅! 쾅쾅!
잠시 후 굉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수많은 바윗덩어리가 운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왼편으로 이동하면서 동굴을 무너뜨렸다.
그러다가 낭떠러지가 꺾이는 부분에 도착했다. 동굴은 거기에서 끊겼다.
직각으로 꺾여 뻗어 나간 부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동굴이 없습니다!”
장무옥이 엘을 향해 소리쳤다.
“집행사자단은 아래로 내려간다!”
엘은 아래로 내려가며 소리쳤다.
곧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모두 운무를 뚫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런 그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금장생을 찾아 나섰던 방가려였다.
“저자들을 보면 그들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네.”
방가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그들이란 제왕 초무극과 무적 고독혼이었다.
“아니면 그들도 알고 있으려나?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
방가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알기론 초무극과 고독혼은 세력을 거느리지 않았다.
세력을 거느리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다섯 세력의 수장이 됐다는 건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는 말이 된다.
“나쁜 새끼들. 미리 말을 해 줬으면 덜 놀라잖아.”
방가려는 날개를 펼친 채 아래로 내려가는 신족들을 보며 투덜댔다.
“그건 그렇고 그 자식은?”
방가려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십오 장 아래쪽이었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덩치 하나가 애벌레처럼 꾸물거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걸 모르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방가려가 알아차린 것도 풀 때문이었다.
조금 전 그녀는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발을 디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없다면 대충 내려갈 테지만 금장생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자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중하게 살피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느닷없이 풀과 함께 선반 형태의 바위가 나타난 것이다.
조금 전 그 자리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만일 발견했다면 디딤돌로 사용할 생각을 했을 테니까.
그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눈이 나쁜 것도 아니고 너무 잘 보여서 탈이다.
그래서 조금 전에는 뭔가에 가려져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뭔가는 바로 은신술을 펼치고 있는 금장생일 수밖에 없다.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오 장 아래쪽 지형을 기억해 두었다. 그러고는 그곳을 주시했다.
예상대로 잠시 후 그곳 지형이 사라졌다.
금장생이 내려가면서 몸으로 가린 것이었다.
금장생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자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도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어쩌다가 그 무서운 녀석들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 거야?”
방가려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면서 금장생을 따랐다.
그녀의 움직임도 금장생만큼 느렸다. 그녀 역시 은신술을 펼친 상태라 육안으로 확인하는 건 쉽지 않았다.
방가려가 따르고 있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금장생은 은신술을 펼친 채 천천히 내려갔다.
그렇게 바닥에 발을 딛기까지 한 식경이 걸렸다.
바닥은 옅은 운무로 뒤덮여 있었다.
낭떠러지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십여 장을 이동하자 집행사자단 대원이 보였다.
“여긴 날아가지 않으면 빠져나갈 곳이 없습니다!”
먼저 수색을 시작했던 부활전사단 대원이 소리쳤다.
“사역대는 하늘을 감시하라!”
엘은 크게 소리쳤다.
잠시 후 집행사자단 대원 백여 명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나는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 없는데.”
금장생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는 우뚝 멈췄다.
절벽에 한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있었다.
아래쪽은 붙어 있고 위로 갈수록 넓었다.
틈 아래쪽으로는 개울이 있었는데, 폭은 반 장에서 조금 모자랐다.
‘카!’
금장생은 악마수 안에 있는 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카가 대답했다.
‘저 안쪽을 확인해 주세요.’
금장생은 틈새 안쪽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카는 곧바로 악마수를 나와 틈새 안으로 향했다.
열기를 최대한 억제하고 바위를 타고 움직여, 카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잠시 후 카가 돌아왔다.
―오 장 정도 가면 틈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아래로 가면 공간이 나옵니다.
‘고마워요.’
금장생은 싱긋 웃고는 틈새로 들어갔다.
카의 말처럼 오 장 정도를 가자 틈새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금장생은 아래로 향하는 틈새을 따라갔다.
이 장을 내려가자 틈새는 동굴로 변했다. 금장생은 동굴로 들어갔다.
바타르가 준 가방에서 마법등 형태의 물건을 꺼냈다.
벽에 박아 넣을 수 있게 위쪽과 아래쪽에 못이 박혀 있었다.
바위 벽에 대고 박아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라이트!’라고 소리쳤다.
마법등이 불량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불빛은 사물을 간신히 구분할 장도로 흐릿했다.
하지만 금장생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너무 밝으면 불빛이 동굴 밖으로 새어 나갈 수가 있으니까.
그는 동굴을 살폈다.
동굴 바닥은 장축의 길이가 이 장, 단축의 길이는 일 장 정도 되는 타원형이었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이 장이 조금 넘었다.
“수로였네.”
금장생은 동굴 절반을 차지한 채 흐르는 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로의 폭은 일 장이었다.
“이어져 있을까?”
금장생은 옷을 벗었다.
어차피 몸도 씻어야 하고, 이왕 물속으로 들어간 거 내부 상황이 어떤지 확인을 해 볼 참이었다.
물은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차가웠다.
수로 또한 생각보다 깊었다. 동굴에서는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았는데 벽 가까이 갈수록 깊어지더니 종내에는 허리까지 잠겼다.
곧바로 잠수를 했다.
좌우를 더듬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지하에 형성된 수로는 한 사람이 움직일 정도로 충분히 넓었다.
잠시 후 그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개울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밖을 살피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수로 안을 확인하는 사이 목욕은 마무리됐다. 조두로 머리를 감았으면 좋겠지만, 조두 물이 밖으로 나가면 들키기 쉽기 때문에 머리가 가려워도 참아야 한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몸을 닦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닦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동굴 중간 지점에 도착한 그의 신형이 비호처럼 움직였다.
벽 앞에 선 그는 왼팔을 쭉 내밀었다.
그의 왼팔은 눈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학!”
벽에서 여자 비명이 흘러나왔다.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당신의 무덤이 될 겁니다. 이름이 뭐죠?”
“미염.”
금장생이 묻자 방가려는 바로 대답했다.
“미염?”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아는 이름이 분명했다.
“네.”
“나도 미염이란 여자를 아는데, 올해 몇 살이죠?”
“서른다섯 살이에요.”
“그 여자는 신체적 특징이 한 가지 있는데, 혹시?”
“오른편 가슴 유두 아래쪽에 붉은색 점이 있어요. 점의 크기는 엄지손톱 정도고요.”
“그게 전부인가요?”
“아뇨.”
“그럼 또?”
“은밀한 곳에 흰색 반점이 있어요. 만일 당신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흰색 반점의 크기는 밤송이만 하고, 다른 곳과 달리 음모가 없다는 걸 알 거예요.”
금장생은 왼팔을 내렸다.
그러자 방가려가 은신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벽에 찰싹 달라붙은 상태였다. 마치 낙지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하나도 안 변했네요?”
방가려의 얼굴을 확인한 금장생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거 진짜 얼굴 아니지?”
방가려는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네.”
금장생은 본래의 얼굴로 되돌아갔다.
“맞아, 그 얼굴이야.”
방가려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흠!”
금장생은 방가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보기 좋네요.”
“뭐가?”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은 아닌 것 같아서요.”
“내 얼굴이 좋아 보여?”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굴도 나빠 보이지 않는데?”
“나야 뭐, 워낙 귀하게 자라서…….”
“열다섯 살까지는 귀하게 자랐을지 몰라도 그 후론 아닌 걸로 아는데.”
“나에 대해 알아요?”
“잘 알지. 열다섯 살에 동영으로 팔려 갔고, 거기서 무공을 익혔으며, 중원으로 돌아오다가 전대 사상의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삼사천가로 들어가 이대 사상이 됐고, 자객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그곳을 나와 어찌어찌하다가 마왕이 됐고…….”
방가려의 입에서 금장생의 과거가 줄줄 흘러나왔다.
금장생은 멍하니 방가려를 보았다.
방가려가 그 자신보다 그의 과거를 더 많이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나를 없애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 같은데, 맞아?”
방가려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미염 누이만 아니었으면 벌써 이렇게 했을 거예요.”
금장생은 손날로 목을 스윽 그었다.
“내가 미염이어서 다행이네.”
방가려는 빙긋 웃었다.
“그런데 그걸 다 어떻게 안 겁니까?”
“마왕 적천영의 시체 때문에 알아낸 거지 뭐.”
“시체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북망산에 네가 묻은 걸 우리가 파냈어.”
“정말이에요?”
“응.”
“내가 그를 묻을 걸 어떻게 알았는데요?”
“혹시 환살루라고 들어 봤어?”
“사인루와 함께 이대자객단체라고 불리는 곳 아닌가요?”
“그 환살루에서도 적천영에 대한 청부를 받았어.”
“사인루에만 넣은 게 아니라 환살루에도 넣었다고요?”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환살루에 청부를 넣었다는 건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우리 환살루에 청부를 넣은 건 적지영 일행이 아니라 사인루야.”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루에서 본 첩지 중에 재청부에 대한 건이 몇 개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적혀 있었는데, 그때는 재청부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방가려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건 바로 적천영에 대한 청부였다.
아마도 그들은 워낙 큰 건이다 보니 위험을 분산할 목적으로 재청부를 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환살루에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랬거나.
아무튼 적천영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