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10화 (410/524)

황금가 (410)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광채가 지상을 향해 폭사되었다.

푸아아악!

어둠이 소멸되면서 주변이 환해졌다.

퍽! 퍽! 퍽퍽!

금장생이 꽂아 두었던 법기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곧 어둠이 사라지면서 주변이 드러났다.

“이런!”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신족들이 이런 식으로 진식을 파훼해 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법기도 완전히 부서져 회수할 수도 없었다.

“저기 있다! 놈이 저기 있다.”

“끙!”

금장생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날렸다.

“쫓아라!”

이호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신족들이 일제히 금장생을 쫓아 날아갔다.

다들 빠르게 날아가는데 그러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엘이었다.

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도관 안이 시체로 가득했다.

모두가 부활전사단과 집행사자단 대원이었다. 이곳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대원을 잃고 만 것이다.

만일 밤이 두어 시진만 더 길었다면 몰살을 당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카단 그놈이 그래서 간 거였군.”

임무는 성공하지도 못한 채 절반의 부하를 잃었다는 건 무능하다는 뜻이다.

게다다 상대가 한 명이었다면 그가 누구이건 간에 지휘관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카단은 그동안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저울추가 심무극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지자 노선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카단. 아니,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엘은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삼십 장을 솟구친 그는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금장생이 도망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스아악!

신족 십여 명이 낮게 활강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아래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낮게 나는 건 정찰을 위해서였다.

스악! 서걱! 스악!

신족들의 날개에 의해 소나무와 참나무가 잘려 나가며 공터가 생겨났다.

“타하!”

공터 한가운데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고 검은색 원반이 쏘아져 왔다.

원반의 수는 스무 개 정도였다.

“저기다!”

스악!

신족 한 명이 아래를 가리킨 순간 검은색 원반이 그의 목을 훑었다.

“컥!”

비명과 함께 사내의 머리가 뚝 떨어졌다.

비명은 거기에서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었다. 정찰을 하던 모든 신족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열 개의 머리가 일제히 지상으로 추락하고, 몸통은 날개와 갑옷이 사라진 채 추락했다.

“저기다!”

이호가 아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퉁! 퉁퉁퉁! 퉁퉁퉁!

신족들은 금장생을 쫓아 날아가면서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금장생 옆으로 박혀 들었다.

금장생은 화살을 무시하고 달렸다.

태극선의도 화살을 막아 주긴 하지만 그의 내공도 이미 화살로 어찌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이었다.

“낭떠러지입니다!”

옥구가 이호를 향해 소리쳤다.

이호는 앞을 보았다.

금장생이 달려가는 곳 앞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막 비가 그친 날씨 때문인 듯, 낭떠러지 중간에 운무가 걸려 있었다.

“드디어 잡았다, 놈!”

이호는 차갑게 웃었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고 해도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견디지 못한다.

더하여 허공답보 신법을 펼칠 수 있다고 하여 수백 장 높이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허공답보 신법은 허공을 걷기는 하지만, 그때 밟는 허공은 얇게 언 얼음과 같다.

자칫 잘못하면 얼음을 부수게 되고, 그럼 바로 추락하고 만다.

수백 장 높이에서도 허공답보 신법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다면 신족도 굳이 적신천사마공을 펼쳐 날개를 만들어 낼 이유가 없다.

‘어서 달려라, 놈!’

이호는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지상에서 반 장 높이로 낮게 날며 금장생을 쫓았다.

금장생이 달려가는 곳은 키 높이까지 자란 억새로 뒤덮여 있었다.

신족 수십 명이 날개를 펼친 채 수평으로 날아가자, 잘려 나간 억새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마치 거대한 가위로 한 번에 잘라 버린 것처럼 억새풀의 윗면이 평평했다.

금장생은 몸을 돌려 왼팔을 휘둘렀다.

슥! 슥슥슥!

흑안 이십여 개가 허공을 갈랐다.

“차하!”

“타하!”

“이얍!”

부활전사단과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 흑안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헉!”

“억!”

“이런!”

질겁한 외침이 각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눈앞에 있던 검은색 원반이 살아 있는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목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악! 스악! 스악! 스악!

원반은 강하게 회전하며 신족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원형 물체가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면 절삭력은 수십 배로 강해진다.

신족들의 머리가 뚝뚝 떨어졌다.

금장생은 왼팔을 뒤로 내뻗은 채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신족의 머리를 자른 흑안은 크게 원을 그리고 악마수 안으로 들어갔다.

금장생이 달려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는 저 앞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런!”

금장생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바로 앞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낭떠러지는 낫처럼 꺾여 있었는데, 좌우 폭의 길이가 이백 장이 넘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수백 명의 신족이 벌 떼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칠 거냐, 놈!”

하늘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풋!”

얼결에 피식 웃었다.

방금 소리친 자는 이호였다.

“저기로.”

금장생은 절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어?”

이호는 질겁했다.

설마 금장생이 뛰어내릴 줄은 몰랐던 탓이다.

“쫓아라!”

그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신족들은 일제히 낭떠러지 아래로 날아갔다.

낭떠러지 위에서 구름까지는 오십 장 정도였다.

구름층은 상당히 두터웠다. 십오 장은 돼 보였다.

구름층을 통과하고 나자 시야가 확 틔었다.

그런데 조금 전 떨어졌던 금장생이 보이지 않았다.

“없습니다!”

가장 먼저 구름층을 뚫고 내려간 옥구가 위를 향해 소리쳤다.

휙!

이호가 날개를 펼친 채 옥구 옆으로 왔다.

그는 아래를 보았다. 아래쪽도 운무가 들어차 있어 바닥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뭐가 없다는 거지?”

옥구를 보며 물었다.

“떨어지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네가 운무에서 빠져나온 것보다 먼저 떨어졌거나 운무 속 절벽 어딘가에 숨어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저 아래쪽보다는 운무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뛰어내리기엔 너무 높습니다.”

“그렇지.”

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방을 보았다. 뒤따라 내려온 신족들이 허공에 멈춰 선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엘이 운무 속에서 나왔다.

이호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놈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은 저기와 저 아래쪽이겠구나.”

엘은 운무 속과 아래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부활전사단은 바닥을 수색해라. 우린 이곳을 살펴보겠다.”

“알았습니다.”

이호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절벽을 수색하고 싶은 건 그였다. 그런데 엘이 바닥을 수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가자.”

이호는 고개를 숙이고는 아래로 날아갔다.

그를 따르는 부활전사단 대원의 수는 이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삼백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운무 안쪽을 수색하라!”

부활전사단이 아래로 내려가는 걸 지켜보던 엘이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존!”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일제히 소리치고 운무 안쪽으로 들어갔다.

운무 안쪽 절벽은 다른 곳과 조금 달랐다.

많은 동굴이 뚫려 있고, 각 동굴 바닥에서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엘은 동굴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동굴은 허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입구가 작았다. 하지만 깊이는 상당했다.

“바람?”

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왔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건 어딘가가 뚫렸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차가운 바람이 절벽에 형성된 운무와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모든 동굴이 뚫려 있는 건 아니겠지?”

“동굴이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엘은 욕설을 내뱉었다.

낭떠러지 벽면은 튀어나온 곳도 들어간 곳도 많다. 그런 곳만 해도 숨을 곳 천지인데 동굴이 있고 이젠 서로 뚫려 있기까지 하단다.

몸을 숨기는 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이었다.

‘하지만 난 네놈이 여기 없을 거라고 믿는다.’

엘이 이곳을 택한 건 금장생이 바닥으로 내려갔을 거란 확신에서 기인한다.

그는 부활전사단이라는 희생양이 있는데 집행사자단을 먼저 소모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부활전사단이 금장생의 힘을 빼놓으면 그때 사냥을 할 생각이다.

물론 그 와중에 부활전사단이 대부분 죽겠지만 상관없다.

그들의 죽음으로 적을 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즉 집행사자단의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운무 속 수색을 택했는데 팔왕이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되는 일이 없네.”

엘은 작게 투덜거렸다.

전날 밤에 겪었던 어둠과 달리 이곳 운무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거라 광명의 빛으로도 소멸시킬 수 없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원들은 주의하라!”

엘이 해 줄 수 있는 건 경고뿐이었다.

엘의 예상대로 금장생은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고 운무가 낀 낭떠러지 동굴 속에 숨어 있었다.

그는 극한의 은신술을 펼친 상태였다.

반 장 앞에 신족 두 명이 조심스럽게 이동 중이었다.

금장생은 백사아를 빼 들었다.

은신술을 펼칠 땐 흑사아보다 대기와 구분이 되지 않는 백사아가 더 좋다.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가볍게 튕겼다.

그가 쏜 지풍은 신족 오 장 건너편 벽을 쳤다.

다른 동굴로 이어지는 모서리 부분이었다.

툭!

나직한 소리가 나자 두 신족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금장생이 몸을 날린 건 그때였다.

소리 없이 이동한 그는 엎드린 채 나아가고 있는 신족의 뒷목에 백사아를 꽂았다.

푹!

백사아가 목으로 파고든 순간 왼손 손바닥을 펴 왼편 사내의 뒷목 바로 위에 멈췄다.

슉!

투명한 물체가 왼손 손바닥 가운데에서 빠져나갔다.

가드헬은 소리 없이 신족의 뒷목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비명은 없었다.

금장생은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방금 없앤 신족을 유인하기 위해 지풍을 쏘았던 장소였다.

가까이 가 보니 깊이가 이 장 정도 되는 동굴이 있었다.

동굴 안쪽은 막다른 곳이었다.

시체를 들고 가장 깊은 곳에 내려놓았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안쪽을 살폈다. 동굴 안이 어두워서 시체가 눈에 띄지 않았다.

“최고의 무덤 자리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금장생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 후로도 대여섯 번이나 동굴을 오갔다. 동굴로 들어갈 때마다 그의 양팔에는 시체가 들려 있었다.

금장생의 움직임은 워낙 은밀해서, 오백 명이나 되는 신족들이 수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징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집행사자단 중 강자들은 운무와 어둠 속에서 불길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사자대 대주 양석대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어디 있느냐, 놈?’

양석대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좌우측과 뒤에는 사자대 대원 아홉 명이 서 있었다.

좌측과 우측에 각각 두 명씩 서 있고 뒤에는 다섯 명이 서 있다.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서로 등을 댄 채다.

양석대는 앞으로 걷는 상태고 등을 댄 부하들은 뒷걸음치며 이동 중이었다.

금장생이 양석대 일행 왼편에 모습을 드러낸 건, 바람이 날린 운무가 동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였다.

바람을 탄 운무는 동굴 안을 할퀴며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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