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09)
비명도 없었다.
아니, 금장생이 찌른 부위는 찔리는 순간 절명하는 부위라 비명을 지를 새가 없었다.
천상기사는 곧바로 숨이 끊어졌고, 펼쳤던 날개도 사라졌다.
척!
금장생은 천상기사가 떨어지지 않게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강한 힘을 지닌 귀신을 찾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하는 귀신이 있었다.
귀신의 힘은 음기의 세기로 파악할 수 있고, 원한이 깊을수록 많은 음기를 보유하여 강해진다.
‘저기요.’
금장생은 귀신을 불렀다.
귀신은 깜짝 놀란 얼굴로 금장생을 보였다.
―나를 보는구나?
‘여길 귀신의 땅으로 만든 사람이 난데 당연히 볼 수 있죠.’
―저놈들을 없애기 위해 귀지로 만든 거냐?
‘네.’
―고맙다.
‘제가 은혜를 베푼 건가요?’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자 보이느냐?
귀신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투명한 빛에 휩싸여 저승으로 떠나는 귀신이 보였다.
‘원한을 갚은 건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맞다.
‘저자들이 원수도 아닐 텐데 어떻게 저승으로 가는 거죠?’
―우리 태을도장을 공격한 자들은 전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자들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원한이 해소된다는 거군요.’
―그렇다. 그런데…….
‘이 녀석 안으로 들어가서 조종을 좀 해 주었으면 해서요.’
―알았다.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천상기사를 내버려 두고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조금 전 버린 자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쿠어어어어!
이윽고 괴성과 함께 어둠 속을 향해 달려갔다.
“저놈!”
금장생의 신형이 다시 아래로 내리꽂혔다.
곧 천상기사 한 명이 뒷목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죽었다.
이번에도 역시 금장생은 시체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카단이 부하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 건 다섯 명이 당하고 난 후였다.
“천상기사는 전부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카단은 버럭 소리치며 날개에 전 내공을 주입했다. 그러자 그가 있는 곳의 어둠이 소멸되며 환해졌다.
남아 있던 천상기사들은 카단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척!
그들 중 한 명의 등 뒤로 금장생이 내려섰다.
흑사아는 이미 천상기사의 뒷목으로 파고든 후였다.
파앗!
바로 황금빛 광채가 어둠을 갈랐다.
황금빛 광채는 천상기사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금장생을 비췄다. 그때 금장생은 흑사아를 뽑아내고 있었다.
빛을 비춘 자는 카단이었다.
부하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려고 빛을 뿜어낸 상태에서 한 바퀴 돌았는데 천상기사 한 명을 없앤 금장생을 비추게 된 것이다.
카단은 그 자리에 멈췄다.
금장생은 카단을 보며 씨익 웃었다.
“저기, 놈이다!”
카단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천상기사 세 명이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파앗!
금장생은 추락하는 천상기사의 등을 차고 솟구쳤다.
그의 신형은 금세 어둠 속에 묻혔다.
카단은 날개를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그러자 마치 거대한 지우개로 어둠을 지워 내는 것처럼 빛이 비추는 공간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금세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헉!”
카단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한순간 그가 지워 낸 어둠 속에서 상상도 못 했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황금색 날개를 펼친 채 날아가는 자.
지금 이곳에 상급은 천상기사단과 단주 엘뿐이다.
엘은 지상에서 귀신과 싸우고 있고, 천상기사단은 옆에 와 있다.
무엇보다 날개가 여덟 장이 더 되는 것 같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너무 순식간에 사라져 확인하지 못했지만 여덟 장이 더 되는 건 분명했다.
“말도 안 돼.”
그는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황금색 날개가 여덟 장이 넘는다는 건 열여섯 장이라는 뜻이 된다. 열 장이나 혹은 열두 장을 가진 신족은 없으니까.
그가 아는 한, 열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 자는 신족의 왕 루하뿐이다.
하지만 그는 수천 년 전에 죽었다.
“설마…….”
신족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인 부활이 떠올랐다.
정말 그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카단은 심무극의 말을 떠올렸다.
“카단 네가 복종하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냐?”
“신왕이십니다.”
“그 말 믿어도 되느냐?”
“네.”
“그렇다면 한 가지 명령을 내리겠다.”
“말씀하십시오.”
“우리 운명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내게 달려와야 한다. 그렇게 해 줄 수 있느냐?”
“엘 단주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물론 지금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 대화를 나눌 때는 엘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더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사안은 엘이 어떤 일을 획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하!
카단은 부하를 불렀다.
―네.
―놈을 찾아 없애라. 반드시 없애야 한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신왕을 만나러 간다.
―무슨 일로…….
―엘 단주에겐 비밀로 할 참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진식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십니까?
―시도해 보았느냐?
―계속해서 어둠만 나옵니다.
―하늘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어떤…….
―아무튼 수고해라.
카단은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하늘로 갈 수 없다면 지상으로 가는 방법뿐이다.
푸욱!
위쪽에서 뭔가가 파고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척!
쿠웅!
그가 내려선 순간 천상기사단 한 명이 떨어졌다.
떨어진 자의 뒷목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이허!”
카단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열두 명의 천상기사단 중 막내였다.
떨어진 바이허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지독한 음기 하나가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휙!
쓰러졌던 바이허가 벌떡 일어났다.
카단은 재빨리 바이허의 손을 잡았다.
―날 밖으로 안내해라. 그러지 않으면 너를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카단은 사념을 보내면서 신족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바이허의 몸 내부로 황금빛 광채가 스며들어 갔다.
캬아아아아아!
바이허는 괴로운 듯 몸을 배배 꼬며 괴성을 내질렀다.
―바로 소멸시켜 버리겠다!
카단은 다시 소리쳤다.
캬아아아!
바이허는 다시 괴성을 지르며 걸음을 옮겼다.
카단은 바이허를 따라 걸었다.
죽은 신족의 몸을 장악한 많은 귀신들이 있었지만 쳐다보기만 할 뿐 달려들지는 않았다.
쿠웅!
또다시 천상기사 한 명이 시체가 돼 떨어졌다.
이제 남은 부하는 하뿐이다.
―서둘러라!
카단은 힘을 약간 증가시켰다. 그러자 바이허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십여 장을 걷자 비로소 밖이 나왔다.
카단은 힘을 강화시켰다. 부하가 귀신의 노리개가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끄아아악!
바이허의 입이 쩍 벌어지고 황금색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 광채는 귀와 눈과 몸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캬아!
바이허는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잠시 후 머리부터 가루가 돼 흩어졌다.
바이허를 가루로 만든 카단은 날개를 펼치며 솟구쳤다.
이십 장 높이까지 솟구친 그는 곧바로 북경을 향해 날아갔다.
“단주님!”
천상기사 하는 엘을 불렀다.
“나 여기 있다!”
그러자 어둠 한편이 밝아지면서 엘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는 곧바로 엘 옆으로 날아내렸다.
“무슨 일이냐?”
엘은 라를 보며 물었다.
“카단 대장이 떠났습니다.”
“떠나?”
“네.”
“어디로 떠났단 말이냐?”
“신왕을 만나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신왕이면 제이장로를 말하는 거냐?”
“네.”
“으음!”
엘은 신음을 내뱉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천상기사단 열두 명은 완벽하게 장악한 줄 알았다.
특히 카단은 천상기사단 단장이기 때문에 반드시 포섭해야 할 자였다.
그런데 그가 치천좌 심무극을 신왕이라 불렀다고 한다.
결국 카단은 그동안 넘어온 척했다는 뜻이다. 카단은 감시자였던 것이다.
“내가 당했군.”
엘은 중얼거렸다.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엘은 하를 보았다.
“무슨 일로 갔는지 아느냐?”
“뭔가를 발견한 건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대원은 어떻게 됐느냐?”
“전부 당했습니다.”
“돌겠군.”
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현 상황을 짐작건대 카단이 떠난 건 진식을 구축하고 천상기사를 없앤 자 때문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자가 팔왕가의 수장 중 한 명이라면 심무극에게 보고한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데에 있다.
자신이 감시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어쩔 수 없는 어떤 걸 보았거나,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카단이 떠나기 직전 상황을 기억하느냐?”
엘은 물었다.
“그 전에 카단의 광명의 빛으로 우순을 비췄습니다. 그런데 우순의 등에 적이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우순은 어떻게 됐느냐?”
“죽었습니다. 적이 우순을 박차고 몸을 날렸고, 카단은 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광명의 빛으로 놈을 찾았…… 날갭니다!”
하가 소리쳤다.
“날개라니, 무슨 소리냐?”
“황금색 날개를 가진 자를 봤습니다.”
“신족을 봤다는 거냐?”
“네. 그런데 황금색 날개였습니다.”
“날개는 몇 개더냐?”
“그건…….”
하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날개를 봤는지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지금 생각하니 황금빛 날개로 둘러싸인 것 같았고, 그런 광채를 내는 건 날개밖에 없다는 결론을 무심결에 내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날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할 수도 없었다.
“황금색 날개를 가졌다는 건 상급이란 말인데…… 카단이 자신이 첩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 제이장로를 찾아갈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상급 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가장 중요한 건 하가 보았다는 상급 신족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카단이 그동안 숨겨 왔던 걸 드러낼 정도로 중요한 인물은 엘이 알기론 없다.
“제 생각엔 없습니다.”
하도 엘과 같은 생각이었다.
‘바움을 만나 봐야겠군.’
엘은 주위를 살폈다.
처음보다 어둠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어둠이 옅어졌다는 건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고, 아침이면 양기가 강해지고 음기가 약해지지. 고로 귀신도 약해지고.’
“부활전사단 단주는 어디 있느냐!”
엘은 버럭 소리쳤다.
“여기 있습니다.”
이십여 장 떨어진 곳이 환해지면서 이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손을 잡고 날아올라서 아래를 향해 광명의 빛을 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이호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부활전사단과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린 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타하!”
“차하!”
“하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신족 수백 명이 동시에 광명의 빛을 쏟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