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08화 (408/524)

황금가 (408)

귀신이 춤추는 땅

이호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건 금장생이 땅에 법기를 박아 넣는 소리였다.

법기 다섯 개를 박은 금장생은 전면을 바라보았다.

많은 곳을 다녀 보았지만 북망산 못지않게 귀기가 많은 곳은 처음이다.

이곳은 귀지鬼地, 즉 귀신의 땅이다.

도착하자마자 천마구유이혼대법을 펼쳤다.

천마구유이혼대법은 귀신만 보는 게 아니리 귀기가 모이는 지점도 파악하게 해 준다. 금장생은 그 자리에 법기를 꽂았다.

그가 꽂은 법기는 음사영이 가르쳐 준 혼천유령무형마진을 구축할 수 있게 해 준다.

바타르가 준 가방이 아니었다면 법기를 가지고 다닐 생각은 절대 못 했을 것이다.

“그 양반이 도와주면 금세 끝나겠구먼.”

금장생은 입맛을 다셨다.

무림십패가 어쩌고저쩌고해도, 현재 중원에서 가장 강한 자는 바타르다.

본체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본체로 변해서 쓸어버리면 황실이고 뭐고 모조리 박살 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절대 나서지 않는다.

자기는 인간의 역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괴상한 핑계를 대고는 힘을 쓰지 않는다.

자기가 사는 샤이칸드리아 대륙이라면 그런 법칙이 통용될지 모르지만 여긴 다른 차원인 중원이다. 그 법칙이 통용될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다.

“쫌팽이.”

금장생은 툴툴거리며 법기를 박아 넣었다.

그가 법기를 박아 넣는 지역은 광범위했다. 폐도관과 그 주변 모두가 혼천유령무형마진 영역에 들어갔다.

법기의 수가 많아질수록 폐도관을 둘러싼 귀기가 강해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귀기가 점차 많아지자 대기가 검게 변해 갔다.

도관을 배회하던 귀신들의 힘이 강해지는 모습이 금장생의 눈에도 보였다.

“이제!”

금장생은 마지막 법기를 집어 들었다.

그 법기가 꽂힐 장소는 진식의 중앙이다.

유골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서 천천히 꽂았다.

스으윽!

진식 구축이 끝나자 폐도관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크크크!

귀신들은 금장생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금장생이 자신들을 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금장생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힘이 강해진 귀신들은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어떤 귀신들은 신족들이 자고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아악!”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 오는 날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없지.”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귀, 귀신이다!”

또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집행사자단 대원 몇몇이 뛰쳐나왔다.

그들이 가장 먼저 접한 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이건…….”

대원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왜?

문득 머릿속으로 처음 듣는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대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동료 어깨 위에 희끄무레한 뭔가가 앉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형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쳐다보는 순간 극악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저, 저, 저, 저…….”

대원은 왼손으로 부정형의 물체를 가리켰다.

그의 오른손은 검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런데 ‘저, 저, 저…….’라고 외친 사람은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앞에 있던 대원도 왼손을 들어 올리며 동료를 가리켰다.

―크앙!

―크앙!

두 사람의 어깨에 앉아 있던 귀신이 동시에 괴성을 내질렀다.

“헉!”

“으헉!”

창!

슈캉!

두 사람은 동시에 검을 뽑아 휘둘렀다.

순식간에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창! 창!

“아악!”

“크악!”

처절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건?”

밖으로 나온 엘의 눈이 커졌다.

“단주!”

엘 곁으로 이호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엘은 이호를 보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이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 어둠이 뭔지 모른단 말이냐?”

“대원들 말로는 갑자기 생겼다고 합니다.”

“대원들이 서로 싸우는 이유…….”

엘은 말끝을 흐렸다.

발 디딘 데에서 반 장 떨어진 지점에 특이한 기운이 뭉쳐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엘은 그곳을 향해 오른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새하얀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순간 어둠이 밀려나며 통로가 생겨났다.

아울러 특이한 기운 또한 엘의 손에서 쏘아져 나온 기운을 피해 도망쳤다.

“응?”

엘의 눈이 커졌다.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원들이 있는 곳은 거무튀튀한 반면 그와 천상기사단 주위는 약간 밝았다.

“나와 천상기사단 근처로 어둠이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엘은 이호를 보며 물었다.

“저 어둠이 단주가 지닌 기운과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상극이라면, 이곳을 채운 어둠의 기운이 인위적인 거란 말이구나.”

“진식으로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진식을 구축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찾아라!”

“알겠습니다.”

이호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크악!”

“아악!”

“으아악!”

비명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를 따라라!”

이호는 부활전사단 대원들에게 소리치며 날개를 펼쳤다.

그가 날개를 펼치자 어둠이 밀려났다.

어둠이 밀려나는 걸 발견한 이호는 고함을 내질렀다.

“전 대원들은 날개를 펼쳐라!”

그러자 부활전사단 대원과 집행사자단 대원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쳤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약간 밀려났다.

하지만 귀신을 완벽하게 떨쳐 내진 못했다.

잠시 정신을 차린 듯하더니 이내 귀신에 씌어 동료들을 공격했다.

또다시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펼치면서 힘이 강해지자 싸움은 더욱 격렬해지고, 죽는 자도 더 많아졌다.

“천상기사단은 날개를 펼쳐라!”

엘은 카단 일행에게 소리쳤다.

“존!”

명령을 받은 카단 일행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그들의 날개에서 황금색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황금색 광채가 나오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마치 강한 열에 얼음이 녹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솟구쳐라!”

카단은 소리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나머지 열한 명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이 날아오르면서 광채를 쏘아 대자 어둠이 빠르게 지워졌다.

슉!

어둠 속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헉!”

라힘은 질겁했다.

날개를 이용해 어둠을 없애고 있는데 느닷없이 섬뜩한 기운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는 재빨리 호신강기를 펼쳤다.

그런데 섬뜩한 기운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푸욱!

“커억!”

라힘이 비명을 내질렀다.

섬뜩한 기운의 정체는 바로 화살이었다.

“라힘!”

천상기사 한 명이 떨어지는 라힘을 받았다.

하지만 라힘의 숨은 이미 끊어진 후였다.

“천상기사는 갑옷을 입어라.”

슉!

퍼억!

“크윽!”

어둠을 뚫고 나온 화살 하나가 다시 천상기사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화살이 얼마나 강한지 머리를 관통했다.

다른 천상기사가 동료를 잡았다.

“맙소사.”

화살이 관통한 머리를 바라보던 천상기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머릿속이 가루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적은 한 명이다. 찾아라!”

천상기사단 수장 카단이 소리쳤다.

천상기사들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그들이 펼친 날개에서 쏘아진 광채가 어둠을 몰아내긴 했지만 그 시간은 잠깐에 불과했다. 어둠은 금세 들어찼다.

그러다 보니 바닥에 숨어 있는 암살자를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슉!

또다시 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퍽!

이번에는 천상기사의 투구만 뚫었을 뿐 머리까지는 파고들지 못했다.

화살에 맞은 천상기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화살이 파고든 순간 펼친 호신강기 덕분이었다.

만일 투구가 없었다면 호신강기를 펼치는 것보다 화살이 더 빨랐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투구가 일차적인 저지선 역할을 했다.

화살을 감지하자마자 펼친 호신강기는 온몸을 둘러싸게 되고, 피부에 생채기 정도의 상처만 남았다.

“놈의 화살은 갑옷을 뚫지 못한다!”

천상기사는 투구를 파고든 화살을 꺾으며 소리쳤다.

“흠!”

금장생은 활을 바라보았다.

동영에서 화살 쏘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내기를 싣는 건 배우지 못했다.

중원으로 와서는 화살을 쏠 일도 없었고, 바타르가 준 가방 안에 활이 없었다면 쏘지도 않았을 것이다.

쏘면서 내기를 실어 보긴 했지만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갑옷은 뚫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건 필요 없다는 거네.”

금장생은 활을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지금은 이게 필요할 때지.”

그리고 삼천혼을 집어넣는 집을 풀어 밖으로 찼다.

흑사아와 백사아가 위치한 곳은 명치 바로 앞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족들은 날개를 펼쳐 귀신과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지.”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수십 명의 신족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갯짓을 하지만 금세 내려오고 만다.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귀신 때문이다.

귀신들은 신족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다른 자를 죽여 없애라고 끊임없이 충동질을 한다.

정신력이 강한 보통 때 같으면 귀신의 충동질에 넘어가지 않겠지만 지금 신족들은 공포에 질려 반공황 상태고, 혼천유령무형마진 내부의 음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이런 곳에서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다.

‘저자를 죽여! 그럼 너는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어!’라는 머릿속 외침을 거부할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저놈들은 진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들이지.”

금장생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색 갑옷을 걸친 열 명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날아다니고 있었다.

“황금색이면 상급이고.”

스윽!

금장생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혼천유령무형마진의 영향이 허공으로는 몇 장까지 미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십 장이네.”

어둠이 들어찬 최대 높이였다.

“귀안을 지닌 내게는 십 장이지만 너희에게는 백 장도 더 될 거야. 아니, 끝이 보이지 않을 거야. 왜냐면 이곳은 오감이 아니라 뇌를 속이는 진식 안이니까.”

소위 절진이라고 부르는 진식의 무서움이다.

일반 진식은 단순히 눈이나 귀, 코만 속인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냄새를 맡지 않으면 빠져나갈 방법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절진이라고 부르는 진식은 다르다.

감각을 속이는 게 아니라 머리를 속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힘으로 부수지 않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런데 혼천유령무형마진은 절진일 뿐 아니라 강력한 힘을 지닌 귀신들까지 있다.

신족들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여기선 내가 신이다.”

금장생은 좌우를 살폈다.

오 장 아래쪽에 붉은색 갑옷을 입은 자들이 보였다.

“너!”

맨 오른편에 있는 자를 보았다.

몸을 틀어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다리를 위로 향하게 한 채로 허공답보 신법을 풀었다.

그러자 몸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금장생은 순식간에 천상기사 뒤에 가 있었다. 손에는 흑사아가 들린 채다.

척!

푸욱!

내려서는 순간 뒷목을 향해 흑사아를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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