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07화 (407/524)

황금가 (407)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녀는 해저암흑대 사화 중 한 명인 적화다. 그런데 천야교 총장로인 초전전이 교주님이라고 한 것이다.

“어때?”

방가려는 한편 바위로 가 앉으며 물었다. 그녀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포위망을 좁혀 가고 있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초전전은 차를 타 주며 대답했다.

“팔왕이란 자에 대해서는 알아봤어?”

“마가의 가주인 마왕 적천영입니다.”

“분명히 죽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자?”

“네.”

“전에 그자에 대해 조사를 하라고 지시를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됐어?”

“나오긴 했는데 너무 황당해서 믿어야 할지…….”

“어떤 건데?”

“황금전가 아십니까?”

“태양상인과 상천금가에 의해 멸문한 상단이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팔왕은 그 황금전가의 세 아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설마 금장생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정말?”

방가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네.”

“열다섯 살 땐가 실종됐다고 하지 않았어?”

그녀가 금장생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황금전가 안주인인 윤금이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사실 방가려의 사문은 환희궁이다.

친어머니가 환희교 부궁주였는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무리의 공격을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솔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준 자가 바로 초인삼황이었다.

초인삼황이 전수해 준 무공을 익히면서 강호를 떠돌다가, 환희궁이 공격받을 때 궁주였던 윤금이가 황금전가 안주인이 됐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그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무작정 찾아갔다.

윤금이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황금전가에서 무공을 익히며 오 년을 보냈다.

황금전가 세 아들도 보았다.

세 아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큰아들 금재천이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별 관심도 없었던 막내 금장생과는 몇 번 만났다.

그러다가 금장생이 절맥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 또한 특이한 체질을 안고 태어났기에 공연히 관심이 갔다.

먼저 찾아온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돌이켜 보니 금장생은 그 당시 여자 몸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던 것 같다.

주로 목욕할 때 찾아와 훔쳐보곤 했으니까.

한 번은 장난기가 발동해 금장생을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함께 목욕을 했다.

금장생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여자에 대해 가르쳐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모든 걸 보여 주고 은밀한 비밀을 알려 주는 걸로 목욕을 끝냈다.

금장생과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 우연히 시장에 갔다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노파를 구해 주게 되었다. 무공을 익히고 난 후 처음으로 펼친 날이었다.

그런데 그 노파가 천야교 교주 방사영이었다.

내상을 입은 그녀를 치료해 주다가 정이 들었고, 함께 가자는 말에 기꺼이 따라나섰다.

방사영이 행선지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여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짧은 서찰만 남기고 황금전가를 떠났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황금전가 소식을 다시 들은 건 황금전가가 몰락했을 때였다.

한때 은혜를 입었지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저런 조사 끝에 황금전가를 공격한 자들이 태양상인과 상천금가라는 것도 알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금장생이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실수로 동영으로 팔려 갔대요.”

“동영?”

“네. 거기서 이런저런 기연을 얻어 동영 최강 무공인 뇌섬류를 익혀 돌아와요. 하지만 오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배가 침몰했어요. 바다에서 죽어 가는 그를 구한 자가 사상이었어요.”

“사상이면 무림십패의 그 사상?”

“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를 따라 삼사천가로 들어갔어요.”

“그럼 그가 사상이 된 건?”

“임무를 나갔던 사상이 죽자 자기가 대신 임무를 나가기 시작했대요. 그는 사상이면서 삼사천가 천객 일호였어요.”

“거기서 왜 나간 거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자객 일에 대핸 염증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요.”

“어쩌다가 팔왕이 된 건데?”

“그게…….”

초전전은 금장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녀가 한 이야기 중에는 북망산에서 적천영의 시체를 발견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녀가 방가려에게 한 이야기는 몇 가지를 제외하곤 대부분 맞았다.

“파란만장하게 살았네.”

이야기를 듣고 방가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교주님 동생분을 찾았습니다.”

“살아 있어?”

방가려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지금까지 그녀는 여동생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죽은 줄 알고 있었다.

“네.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무인이 됐습니다.”

“어디에 있는데?”

“정주에 있는 환희루의 루줍니다.”

“환희루?”

“황금전가 안주인인 윤금이가 만든 기룹니다.”

“환희궁의 후신이구나.”

“네.”

“다행이네.”

방가려는 빙긋 웃으며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고요?”

초전전이 물었다.

“갑자기 옛 친구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십팔 년 만인데 날 알아볼까?”

“어떻게 헤어졌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헤어지기 전에 함께 목욕을 했어.”

“목욕만 했어요?”

“그 이상을 바라기엔 그는 너무 어렸어.”

“몇 살이었는데요?”

“여덟 살.”

“어쩌면 알아볼 수도 있겠는데요?”

“그래도 만나야 해.”

“왜요?”

“그가 내 치료제거든.”

“정말요?”

“응. 아무튼 다녀올게.”

“우린 계속 올라갈게요.”

“그렇게 해.”

방가려는 밖으로 나갔다.

은신술을 펼쳐 허공을 녹아들어 간 방가려는 소리 없이 모습을 감췄다.

* * *

파앗! 파앗! 파앗!

금장생을 비롯한 팔장군들은 빠르게 내달렸다.

숲이 너무 울창해 한 번에 일 장 혹은 이 장 정도밖에 건너뛰지 못하지만 나아가는 속도는 엄청났다.

“오른쪽 계곡!”

오 장에서 십 장 크기의 나무로 빼곡하게 들어찬 계곡을 발견한 금장생은 소리쳤다.

그러자 팔장군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뛰어들어 갔다.

금장생은 계속해서 달렸다.

백여 장을 내달린 그는 한곳에 멈춰 서더니 나무 위로 올라갔다.

꼭대기 근처로 가자 하늘이 보였다. 하늘에는 신족 수백 명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어깨에 걸고 있던 활을 내리고 화살 두 대를 걸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활이 나온 곳은 바타르가 준 가방이었다. 그 안에는 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들이 들어 있었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다음 천천히 겨냥했다.

신족들의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화살을 쏘면 바로 알아내고 몸을 날려 왔다.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면 시위를 놓자마자 자리를 이동해야 한다.

물론 위치를 들킨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지만. 오래 붙잡아 두려면 최대한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

사정거리 안에 두 명이 들어오자 시위를 놓았다.

퉁!

두 대의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금장생은 곧바로 아래로 뛰어내려 내달렸다.

“크악!”

“아악!”

비명과 함께 하늘을 날던 신족 두 명이 뚝 떨어졌다.

“저기다!”

“저기서 화살이 날아왔다.”

신족 수십 명이 조금 전 금장생이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금장생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백여 장을 달려간 금장생은 다시 두 대의 화살을 쏘아 신족 두 명을 잡았다.

“뭣들 하느냐!”

엘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팔왕이 숨어 있는 곳을 발견한 건 제운산 북쪽 산자락에서였다.

그곳에서 스무 명이 공격을 했다가 모두 당했고 팔왕과 전마팔신의 주인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에 집행사자단과 부활전사단은 춘추오패를 기다렸다.

춘추오패가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수색 작업을 펼칠 생각이었다.

두 시진을 기다리자 춘추오패 중 네 곳이 도착했다.

바로 수색에 돌입했다. 날아다니기 때문에 아래쪽에서 짐승을 모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그런데 놈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화살에 당한 부하의 수는 쉰 명이나 된다. 그런데 여전히 놈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어둠이 밀려온다.

“아악!”

“으악!”

“크악!

비명과 함께 부하 세 명이 뚝 떨어진다.

지금까지는 화살이 날아오른 장소를 금세 찾아냈는데, 밀려온 어둠 때문에 이젠 불가능하다.

“찾아라!”

엘은 고함을 내질렀다.

“아악!”

“으악!”

“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엘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전부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내려가라!”

밤에는 허공에 떠 있는 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내려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쏴아아! 쏴아아! 쏴아아!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산 위쪽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저 정도 먹구름이면 비가 금세 멈추는 건 그른 일 같다.

“제길!”

그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먼저 내려섰던 집행사자단과 부활전사단 대원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호는 엘 앞으로 가며 물었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봐.”

“알겠습니다.”

이호는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원들은 곧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 식경 후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이백 장을 가면 폐장원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로 간다.”

“알겠습니다.”

이호와 엘을 비롯한 신족 무인들은 폐장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폐장원은 으스스한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째 귀신이 나올 것 같네.”

대원 한 명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대원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둑!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를 떨던 대원은 얼른 아래를 보았다.

“헉! 사람 뼈다.”

그는 불에 덴 듯 펄쩍 뛰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집사대 대주 장무옥이 엄하게 말했다.

대원들은 찔끔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골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습격을 당해 몰살한 듯, 여기저기 해골이 나뒹굴고 있었다.

“여긴 폐장원이 아니고 도관입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온 이호가 보고했다.

“습격을 당한 모양이구나.”

“규모로 봤을 때 상당한 재물이 있었을 겁니다.”

“약탈자가 산적이란 말이네?”

“네.”

“비를 피할 곳은 있더냐?”

“충분합니다. 들어가시지요.”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폐도관은 상당히 컸다. 과거엔 상당한 규모였던 듯, 건물만 해도 열 채가 넘었다.

집행사자단과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적당한 곳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상청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가운데 건물이 가장 멀쩡했다. 엘이 들어간 곳은 거기였다.

안으로 들어가 삼매진화를 펼쳐 옷을 말렸다. 옷이 뽀송뽀송해지자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엘은 전면을 보았다.

도교의 신인 원시천존과 몇몇 신이 조각된 상이 서 있었다. 상의 크기는 거의 반 장에 달했다.

“피곤하실 텐데 좀 쉬십시오.”

이호가 엘을 보며 말했다.

“그래야겠다.”

엘은 원시천존상 앞 단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꼬르륵!

누군가의 배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틀이나 굶었네.’

이호는 내심 중얼거렸다.

원래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음식을 사 왔어야 했다. 엘이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엘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쫓는 것처럼 대원들을 다그쳤다.

그 바람에 먹을 게 없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음식을 구하러 가겠다고 할 수도 없다.

엘이 다녀오라고 하면 갔다 오는 거고, 그러지 않으면 참아야 한다.

‘아버지가 황제면 뭐 하냐. 써먹을 데가 없는데.’

내심 툴툴거리며 눈을 감았다.

푹!

‘응?’

이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얼른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내가 너무 예민한 모양이네.’

그는 피식 웃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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