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06)
“그게 무슨 소리냐?”
옥천환은 의아한 얼굴로 앞에 선 자를 보았다.
해림 진영으로 들어온 자는 집행사자단 단주 엘이 보낸 전령이었다.
그런데 전령은 기존의 작전을 파기한다고 했다.
“팔왕이 된 마가 가주 적천영과 그의 부하 여덟 명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하시면서, 모든 작전을 중지하고 그자들을 없애는 데 집중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게만 온 명령이냐, 아니면 춘추오패 수장들 모두에게 내려온 명령이냐?”
“모두에게 내려간 걸로 압니다.”
“집행사자가 겁을 먹을 정도로 팔왕이 강자란 말이냐?”
옥천환은 물었다.
이번에 북경으로 가면서 조직에 대해 나름 조사를 했다.
그때 초무극이나 고독혼의 상전은 좌무백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초무극과 고독혼은 일꾼들의 수장, 즉 많은 하인들 중 우두머리일 뿐이었다.
많은 상전이 있고, 그들 중 기억해야 할 자는 엘, 사신마존 역부심, 환영마존 영제, 철마존 마적천, 야수마존 야율리가 있었다.
놀랍게도 사신마존, 환영마존, 철마존, 야수마존은 삼백 년 전 활동했던 전설의 구마였다.
하지만 마맹을 좌지우지하였던 과거와는 달리 그들의 권력은 미약했다.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닌 자는 집행사자단 단주 엘이었다.
그 엘이 명령을 변경한 것이다.
“바뀐 명령을 따르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철갑거인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철갑거인?”
옥천환은 의아한 얼굴로 전령을 보았다.
“크기가 오 장에 달하는 거대한 무기를 말합니다.”
“자세히 말해 보아라.”
“그러니까…….”
전령은 철갑거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부활전사단 소속인 그는 철갑거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울러 천년곡에서 아홉 기의 철갑거인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마왕이란 자와 그의 부하들이 철갑거인이라 부르는 엄청난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거냐?”
“네.”
“그걸 또 누가 가지고 있지?”
“천상기사단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천상기사단은 뭐지?”
“오백 명으로 구성돼 있는 삼신회 최강 조직입니다. 집행사자단에도 열두 명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갑거인의 약점은 나온 게 있느냐?”
“막강한 위력을 지녔지만 내공 소모가 심하다는 약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인의 내공으로 움직인다는 거냐?”
“네.”
“그럼 무인의 무공 고하에 따라서 탑승 시간이 달라질 수 있겠구나.”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몇 시진이나 되지?”
“한 식경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식경이라…….”
옥천환은 생각에 잠겼다.
한 식경이라는 건 내공이 완전히 소모된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소모해서는 안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최대로 반 시진은 사용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엄청난 무기네.”
그는 혀를 내둘렀다.
한 식경 혹은 한 시진 동안 두 배에서 세 배 강해진다면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차원 틈새라는 이상한 곳에 보관하고, 이름만 부르면 바로 나타난다고 한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하나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갑거인을 무기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주인이 없는 철갑거인은 바로 계약을 진행하면 됩니다.”
“해지는 어떻게 하지?”
“주인이 해지를 선언하면 됩니다.”
“주인이 죽으면?”
“그때는 자동으로 해지됩니다.”
“알았다.”
옥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전령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대주!”
전령이 나가자 옥천환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천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뚝 떨어져 내렸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풍만한 몸매의 이 여자는 림주 직할대라고 할 수 있는 해저암흑대 대주 화사 좌영영이었다.
화사 좌영영은 몸과 마음 모두 옥천환에게 굴복한 상태였다.
“부르셨어요?”
“영영 너는 갈수록 예뻐지는구나.”
“림주님 덕분이지요.”
좌영영은 빙그레 웃었다.
‘으음!’
옥천환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좌영영이 미소를 지으면 이상하게 욕정이 치민다.
처음엔 좌영영이 색공을 펼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좌영영은 얼굴 자체가 강력한 무기였다.
좌영영은 옥천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녀의 시선이 옥천환의 하체에 머물러 있었다. 옷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그녀는 바로 앞까지 가서 옥천환의 요대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옥천환의 하체는 완벽하게 기립해 있었다.
좌영영은 바지를 벗고 옥천환 위로 걸터앉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마왕을 찾아야 한다.”
옥천환은 좌영영의 허리를 가볍게 쥐며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죠?”
“구화산과 황산 사이에 있는 천년곡에서 북으로 이동 중이다.”
“명령을 내릴게요.”
좌영영은 곧바로 전음을 보냈다.
그녀의 전음이 끝나자 허리를 잡고 있던 옥천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 후끈한 열풍이 몰아쳤다. 끈적끈적한 신음이 두 사람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잔뜩 흥분한 건 두 사람의 입과 몸뿐이었다.
반대편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무서우리만큼 차분했다.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라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좌영영이 신음을 내뱉으면 옥천환이 반응을 보였고, 옥천환의 행동이 거칠어지면 좌영영이 격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좌영영의 시선이 옥천환의 목을 감싸 쥐고 있는 오른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손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때 갑자기 옥천환의 행동이 빨라졌다. 오른손으로는 좌영영의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좌영영은 격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새하얀 광채를 뿌리던 손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일다경 후 두 사람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심해전 원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문파의 움직임은 어떻소?”
옥천환은 심해전 전주 설천을 보며 물었다.
안휘성은 해림 영역이라,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구 할 이상 파악이 가능했다.
“황산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거기로 가면 뭐가 있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거구려.”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림주.”
설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해림 심해전 무인 백여 명과 옥천환 그리고 좌영영이 길을 나섰다.
“황산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옥천환은 좌영영에게 물었다.
“글쎄요, 그게…… 가 보질 않아서.”
좌영영은 말을 더듬었다.
“전 림주를 몇 년 모셨다고 했지?”
옥천환은 시선을 전면으로 향한 채 물었다.
“십오 년 됐어요.”
“전 림주는 황산으로 자주 놀러 온 걸로 아는데 몰라?”
“그게…… 계속 마차에만 있어서요.”
“마차 안에서 뭘 했는데?”
“그분의 성격을 잘 아시잖아요.”
“널 특별히 사랑했다는 거냐?”
“사화도 가끔 불러들이긴 했지만 제가 가장 자주 모셨어요.”
“그랬구나. 전주!”
이번에는 설천을 불렀다.
“네, 림주.”
“황산까진 얼마나 걸리오?”
“내일 저녁이면 도착할 겁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천천히 가도록 합시다.”
“그래도 됩니까?”
“우리 말고도 네 곳이나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옥천환은 빙그레 웃었다.
마왕을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놈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번에도 또 마왕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천천히 이동한다고 했지만 설천의 말처럼 다음 날 저녁 무렵 황산에 도착했다.
“이곳에 있군.”
옥천환은 싱긋 웃었다.
굳이 이것저것 알아볼 필요가 없다. 황산 전역에 깔려 있는 서늘한 기운만 보아도 마왕이 이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들이다.
새처럼 보이는 저들은 바로 무공을 이용해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족이다.
“저기가 어디쯤이오?”
옥천환은 신족이 날아다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제운산입니다. 남쪽으로 한 시진만 가면 될 겁니다.”
“갑시다.”
“네.”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시진 후 제운산에 도착했다.
제운산 곳곳에는 신족 수백 명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파앗!
느닷없이 지상에서 뭔가가 허공으로 쏘아져 갔다.
“크아악!”
“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신족 두 명이 추락했다.
“화살이네.”
옥천환은 싱긋 웃었다.
“저쪽이다!”
“저기다!”
이어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멍청한 놈들!”
옥천환은 피식 웃었다.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 마왕은 더 멀리 도망을 칠 것이다.
화살이 쏘아진 곳을 발견했으면 소리 없이 이동해서 포위한 다음 몰아쳐야 한다.
저렇게 요란하게 떠들면 수십 년이 지나도 잡지 못한다.
“우리도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설천이 물었다.
“일단 다른 문파 위치를 파악해야지요.”
옥천환은 좌영영을 돌아보았다.
해저암흑대 대원들이 어디쯤 와 있는지가 궁금했다.
“한 식경만 기다리면 여기로 올 거예요.”
“그럼 우린 쉴 곳이나 찾아볼까?”
“네.”
좌영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의 눈에 뒤쪽에 절벽이 서 있는 아담한 협곡이 들어왔다.
절벽에 바싹 붙어 진영을 구축했다.
진영 구축이 끝나고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해저암흑대 대원들이 돌아왔다.
좌영영은 정보를 취합했다.
일다경 후 취합된 정보를 가지고 옥천환 앞으로 왔다.
“북쪽에는 환수각이 있고 동쪽에는 마원, 서쪽에는 운성이 있으며 우리와 한 식경 거리에는 천야교가 있습니다.”
“마왕은 저기 중부 능선 정도에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쉬어.”
“쉬어요?”
“다른 세력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우리까지 나서서 그들을 방해할 필요는 없잖아. 너는 대원들을 데리고 각 세력의 움직임을 감시해.”
“알았어요.”
좌영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온 좌영영은 사화를 불렀다.
잠시 후 네 명의 여자가 좌영영 앞으로 왔다.
삼십 대 중반에서 사십 대 초반으로 구성된 이들은 해저암흑대 최강 고수였다.
가장 어린 적화는 서른다섯 살, 청화는 서른여섯, 금화는 마흔, 백화는 마흔두 살이다.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 미모가 시들기 마련인데 이들 네 명은 달랐다. 피부는 윤기가 흐르며, 생기가 넘쳤다.
얼굴 또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미녀였다.
좌영영의 시선이 붉은색 옷을 입은 적화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적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무래도 절 의심하는 것 같아요.
―뭐라고 했는데?
―어제 이곳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어요.
―시험이구나.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림주와 자느라 마차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믿어?
―파운양이 워낙 밝히던 자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조심해야 해.
―잘 처신할게요. 그보다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조금씩 올라가고 있어.
―포위한 거예요?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을 못 한 것 같아.
―일단 올라가 본다는 거네요?
―그런 것 같아.
적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제가 갈게요.
좌영영이 말했다.
―수고해.
―알았어요.
사화는 산 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들을 지켜보던 적화도 몸을 날렸다.
한 식경 후 그녀가 도착한 곳은 천야교 진영이었다.
천야교 진영으로 들어가기 전에 적화는 얼굴을 바꿨다. 그리고 은신술을 펼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계는 더욱 삼엄했다. 하지만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진영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진영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옆에 두 평 정도의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교주님.”
머리가 하얀 노파가 적화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천야교 총장로 초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