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05)
유인
“가시죠.”
금장생은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우리에게 부탁하기 위해 찾아온 거 아니오?”
금장생을 따르며 타고가 물었다.
“드워프족은 동굴을 찾는 데 귀신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동굴이 숨겨져 있는 거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절벽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 두었을 확률이 구 할 이상입니다.”
“알았소.”
일행은 곧 절벽에 도착했다.
마침 전방으로 나갔던 유공도 돌아와 있었다.
“어떻습니까?”
“절벽을 무너뜨려서 막아 버렸습니다.”
“우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거군요.”
“네.”
유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 주세요.”
금장생은 타고를 향해 말했다.
타고는 부하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통로를 찾아라!”
“네.”
드워프족은 절벽을 따라 움직였다.
그사이 금장생은 드워프족과 화해를 한 상황에 대해 일행과 각 가문의 수장들에게 설명했다.
드워프족이 동굴을 찾아낸 건 한 식경 후였다. 원래 천연 동굴이었던 곳을 고쳐 비밀 통로로 만든 모양이었다.
먼저 드워프족이 안으로 들어가 동굴을 살폈다.
“막다른 동굴은 아니오.”
밖으로 나온 타고가 말했다.
팔왕가 무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생각보다 넓었다. 성인 네 사람이 횡으로 늘어서서 걸어도 충분할 정도의 공간이었다.
잠시 후 일행 앞에 널따란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 중앙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태극천 물이네.”
건물이 있던 곳 중앙을 흘러 절벽 아래로 들어갔던 개울물이 이곳을 지나 밖으로 흘러 나가는 모양이었다. 동굴은 물길을 따라 나 있었다.
일행이 동굴 출구에 도착한 건 일다경 후였다.
먼저 금장생이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십여 장을 이동해 주변을 다시 살폈다.
그가 나온 곳은 천년곡 왼편 절벽 뒤쪽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절벽 정상까지는 무인이 아니면 오르기 힘들 정도로 급경사였다.
모두 나오자 전열을 정비했다.
각 가문은 적잖은 희생이 났다.
사망 이백에 부상자가 사백스물다섯 명이었다. 마가도 사망자가 스무 명에 부상자는 서른 명이었다.
금장생은 각 왕가의 수장들을 불러 회의를 했다.
혈왕이 없는 혈가에서는 신풍사의 사주 사이토가 참석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부상자 후송입니다.”
금장생은 입을 열었다.
“혈가가 안휘성에 있으니까 거기로 가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습니다.”
사이토가 말했다.
“우리가 거기로 간다는 걸 적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혈가로 가는 길목에 매복하고 있을 거란 말이군요.”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매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우린 천오백 명이 넘습니다, 팔왕.”
막거성이 말했다.
“우리 전력에 대해서는 그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흩어져서 갈 경우에 대한 대비도 해 두었을 테고요.”
“가문으로 돌아가는 길이 혈로가 되겠군요.”
혈사륵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예측을 뒤집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갈 때는 올 때와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거군요.”
“다른 길로 가되, 놈들에게 역습을 가할 수 있는 장소도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발 앞서가야겠군요.”
혈사륵이 금장생의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공격당하게 될 겁니다.”
“시간은 내가 벌어 주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철갑거인 아홉 기와 혈가의 신풍사 대원 백쉰 명이면 충분합니다.”
“철갑거인이 아홉 기라고요?”
“내가 가진 전력 중 하납니다. 여러분은 내가 떠나고 사흘 후에 길을 떠나도록 하세요. 별도의 지시 사항은 하오밀문을 통해서 하겠습니다. 아무 하오밀문 지부로나 가서 팔왕 이름으로 온 첩지를 찾으면 내 지시 사항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암호는 ‘전란 종식’ ‘팔왕 재림’입니다. 즉, 팔왕의 첩지를 달라고 하면 하오밀문 측에서는 ‘전란 종식’이라고 할 겁니다. 그때 ‘팔왕 재림’이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하오밀문보다 더 확실한 동창과 금의위가 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각 가문의 수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금장생은 마가 무인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괜찮겠어요?”
아수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강호무림에서 날 어떻게 할 사람은 없다는 걸 알잖아요.”
“그렇긴 한데…….”
“나보다는 어르신들이나 잘 모실 생각 하세요.”
“알았어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할게요.”
금장생은 곧바로 비탈을 타고 올라갔다.
그가 움직이자 팔장군과 신풍사 대원이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금장생과 팔장군은 절벽 정상 근처에 도착했다.
금장생은 팔장군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팔장군들은 일제히 철갑거인을 소환했다. 금장생 또한 마신을 소환하여 탑승했다.
쿵! 쿵쿵쿵!
철갑거인들은 일제히 정상을 향해 달려 올라갔다.
철갑거인 아홉 기가 가고 있는 정상에서는 집행사자단 오백 명이 아래를 향해 화탄을 던지고 화살을 쏘고 있었다.
“타하!”
“차하!”
“이얍!”
아홉 기의 철갑거인은 기합과 함께 정상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무차별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적이다!”
“기습이…… 아악!”
“으아악!”
“크아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철갑거인은 가차 없었다.
무기로 부수고 베고 자르고 발로 짓밟고 차올렸다.
무기와 팔다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집행사자단은 어육으로 변했다.
집행사자단은 반격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홉 기의 철갑거인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으아아악!”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질겁한 이들은 공격을 당하고 있는 집행사자단뿐만이 아니었다.
건너편 절벽 위에 있던 엘 또한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뭐, 뭐냐, 저건?”
엘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건너편까지의 거리는 이십 장이다. 다른 곳에 비해 두 배 이상 되는 거리지만 타이탄은 확연하게 보였다.
“타, 타이탄입니다.”
집사대 대주 장무옥이 말했다.
“어떻게 저놈들에게 타이탄이 있다는 거냐!”
엘은 비명처럼 소리쳤다.
“맙소사, 저건?”
이번에는 장무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왜 그러느냐?”
“마, 마신입니다.”
“정말 저놈이 왕 중의 왕 칼베이더의 마신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것들은…… 맙소사! 전마팔신입니다.”
“전마팔신이라면 노예 가문에 주었던 그 철갑거인이 아니냐?”
“맞습니다. 최상의 철갑거인들이라 노예 가문에 주면서도 불안해했다는 그것들입니다.”
장무옥이 철갑거인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는 건 천상기사단 대원이 되는 걸 꿈꿨기 때문이다.
천상기사단이 되고자 했던 건 바로 철갑거인에 탑승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자질 부족으로 꿈만 꾸다 끝났다.
그러나 그때 공부한 철갑거인에 대한 지식은 고스란히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마신을 비롯하여 전마팔신까지 바로 알아본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엘은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그는 천왕지회에서 헌원소야가 승리할 걸로 보았다.
그럼 그와 손을 잡고 춘추오패와 황실의 세 장로를 몰아낸 다음, 마지막으로 헌원소야를 제거하고 중원무림과 황실의 주인이 되려고 했다.
그런데 시도도 해 보기 전에 헌원소야가 먼저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저놈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라는 건데.’
엘은 건너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마신의 위용은 엄청났다. 이십 장 가까이 떨어져 있는데도 위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놈을 없애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엘은 결심을 굳혔다.
“모든 대원들에게 마신과 전마팔신을 쫓으라고 전해.”
그는 장무옥에게 명령을 내렸다.
“춘추오패는 어떻게 할까요?”
“그들도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마신과 전마팔신을 없애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해. 나머진 저들을 없애고 난 다음이야.”
“알겠습니다.”
장무옥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일제히 절벽 아래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그들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방금 장무옥이 분 휘파람 소리는 퇴각 명령이었던 것이다.
금장생은 마신에 탑승한 채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마신 옆으로 엘프 형태를 하고 있는 철갑거인 카바야가 다가왔다. 불여하가 탑승한 카바야의 무기는 궁弓이었다.
“철갑거인에 얼마나 탑승할 수 있죠?”
금장생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고정돼 있는 자는 상천인 엘이었다.
“우리는 반 시진이에요.”
“반 시진은 어떤 경우를 말하는 건데요?”
“격렬하게 반 시진을 싸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만일 반 시진이 다 돼서 철갑거인으로부터 나오면 어떻게 되죠?”
“내공이 바닥난 상태니까…….”
“근처에 아무도 없으면 몰라도, 한 명이라도 있다면 바로 죽음이군요.”
“네. 그래서 통상적으로 격렬하게 싸울 때는 한 식경만 탑승하고 돌려보내요.”
“알겠습니다. 저기 저자 보이죠?”
금장생은 엘을 가리켰다.
“네.”
“한 방 먹여 주세요.”
“알았어요.”
불여하는 활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든 활은 카바야가 들고 있는 활보다 크기만 작을 뿐 모든 면에서 같았다.
시위를 당기자 투명한 화살이 생겨났다. 길이만 해도 일 장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화살이었다.
“뭐냐?”
엘의 눈이 커졌다.
“선물이야!”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터엉!
시위 놓는 소리가 들렸다.
푸아아악!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엘을 향해 쏘아졌다.
“차앗!”
엘은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은 마치 연환 공격을 하는 것처럼 수백 개가 연이어 뻗어 나갔다.
퍼어억!
거대한 화살은 주먹을 부수며 나아갔다.
콰앙!
“크윽!”
나직한 비명과 함께 엘의 신형이 뒤로 훨훨 날려 갔다.
“갑시다!”
금장생은 마신을 돌려보내고 몸을 날렸다.
그에 이어 팔장군이 철갑거인을 돌려보내고 몸을 날렸고, 사이토를 비롯한 신풍사 백쉰 명이 따랐다.
“쫓아라!”
장무옥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집행사자단과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일제히 날개를 펼쳐 금장생 일행을 쫓았다.
장무옥은 엘이 날려 간 쪽으로 내달렸다.
수십 그루의 나무가 폭풍을 맞은 것처럼 부러져 있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쫓아가라!”
숲속 안쪽에서 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습니다.”
장무옥은 고개를 숙이고 부하들을 쫓아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숲속에서 엘이 나왔다.
엘의 입가에서는 붉은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죽일 놈!”
그의 전신에서 질식할 듯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죽여 주겠다!”
엘은 하늘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바닥을 차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파앗!
곧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크아아아아!”
그는 괴성을 내지르며 날갯짓을 했다.
스아아악!
그의 신형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