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02화 (402/524)

황금가 (402)

전쟁의 시작

들어갈 때는 따로따로였지만 나갈 때는 함께였다.

금장생을 비롯한 각 가문의 왕들을 필두로 팔왕가 가솔들은 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희미한 안개가 흐르고 있었다.

안개에 절벽이 만들어 낸 그림자까지 더해져 마치 어스름한 저녁 무렵 같았다.

“거 대주.”

금장생은 마가대 대주 철웅 거석을 불렀다.

“네, 팔왕!”

거석이 금장생 앞으로 다가왔다.

“정찰하세요.”

“알겠습니다.”

거석은 대원들과 함께 전방으로 달려갔다.

금장생이 정찰을 시킨 건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석과 마가대 대원들이 들어온 건 한 식경 후였다.

“아무도 없습니다.”

“흠!”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밤에 날개를 펼친 자들이 날아다니는 걸 분명히 보았고 그들의 수장이 이호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물론 이호는 팔왕인 자신이 가장 넘고 싶어 했던 일호란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을 받고 왔다면, 야망으로 똘똘 뭉친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갈 리가 없다.

‘그를 비롯한 부활전사단은 분명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금장생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호를 비롯한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절벽 꼭대기 부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가대 대원들이 이들을 발견하지 못한 건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였다.

“몇 명이나 되지?”

이호가 물었다.

“이천 명 가까이 됩니다.”

옥구가 대답했다.

“우리보다 네 배나 많구나.”

아무리 날개가 있어 날아다닌다고 해도 네 배는 너무 많다.

“일단은 기다린다.”

휘익!

그때 대원 한 명이 이호 옆으로 날아내렸다. 그는 은사대 대주 장척준이었다.

“계곡 입구에 아군이 나타났습니다.”

“아군?”

이호는 의아한 얼굴로 장척준을 보았다.

그는 좌무백으로부터 아군이 출병할 거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 합류한 자들입니다.”

“버려진 땅에서 나온 자들이라는 거냐?”

“네.”

“누가 나왔지?”

“키가 작은 자들로 구성된 오백 명입니다.”

“드워프란 말이구나.”

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까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일단 지켜본다.”

“알겠습니다.”

“저자들을 따라 이동하라!”

이호는 아래쪽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말했다.

부활전사단 대원들은 금장생 일행과 속도를 맞추며 이동했다.

“정지!”

앞에서 일행을 이끌던 거석이 소리쳤다.

쿵! 쿵쿵! 쿵쿵쿵! 쿵쿵!

멈춰 선 그들의 귓전으로 둔탁한 뭔가로 바닥을 찧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자주 듣는 소린 아니지만 처음 듣는 소리도 아니다.

이건 바로 철갑거인이 걷을 때 나는 발소리다.

이 정도 발소리면 최소한 다섯 기 이상이다.

“뭡니까, 팔왕.”

전왕 막거성이 금장생에게 물었다.

“철갑거인인 것 같습니다.”

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금장생의 말이 떨어진 순간 쿵쿵거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곧 일행 앞에 거대한 동체의 철갑거인이 나타났다.

“방어 대형을 구축하라!”

“진형을 구축하라!”

각 왕들은 무기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공격하라!”

이어 커다란 외침과 함께 수백 명이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키가 다섯 자 정도 되는 자들이 자신들의 키보다 더 큰 도끼를 들고 달려오는 광경은 약간 웃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웃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드워프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그만큼 위압적이었다.

드워프들은 한 번에 십 장을 건너뛰었다.

“전가 무인들은 나를 따라라!”

“철가 무인은 나를 따라라!”

“사가 무인은 나를 따라라!”

“화가 무인은 나를 따라라!”

“해가 무인은 나를 따라라!”

“암가 무인은……!”

각 가문의 왕들은 전방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지휘는 수수가 하시오!”

금장생은 뒤편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알았어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가 무인들은 나를 따라라!”

그리고 크게 소리치고는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아수수의 외침을 들으며 금장생은 적수마신만마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마신상이 나타나는 순간 마신을 소환했다.

적수마신만마공의 가장 큰 장점은 마신을 숨겨 준다는 것이었다.

적수마신만마공으로 만들어 낸 마신상이 철갑거인 마신을 감싸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마신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척!

마신에 탑승하자마자 마신행을 펼쳤다.

마신은 빠르게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곧바로 앞에 드워프 철갑거인이 나타났다.

드워프 철갑거인은 귀에 뿔이 나고 정수리가 둥근 특이한 형태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차하!”

우렁찬 기합과 함께 철갑거인을 향해 쏘아져 갔다.

마신은 이미 마신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마신의 표적이 된 철갑거인이 움찔했다. 그는 상대편에도 철갑거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아!”

놀라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드워프 철갑거인은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의 목표는 마신검이었다.

도끼와 마신검이 막 부딪치려는 순간, 갑자기 마신검이 모습을 감췄다.

“헉! 허초?”

드워프 철갑거인 탑승자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그는 상대가 일 초부터 허초를 사용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물러서려고 했지만 이미 한발 늦고 말았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검이 철갑거인의 목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다.

카앙!

마신검은 드워프 철갑거인의 목을 쳤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차르릉!

마신검은 당겨지면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곧 거대한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크아아악!”

철갑거인 안쪽에 형성돼 있던 마법 공간이 소멸되면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마법 공간이 소멸되면 그 안에서 철갑거인을 조종하던 자 또한 소멸하기 때문이었다.

드워프의 몸통은 마치 날이 잘 서 있는 도구로 잘라 없애 버린 것처럼 조금씩 사라져 갔다. 몸통이 사라진 곳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저게 뭐라고 생각해?”

절벽 위에서 철갑거인과 마신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호가 옥구에게 물었다.

그가 마신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헌원소야와 싸울 때도 보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봐서 정확하게 어떤 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확인을 못 했다.

“무공으로 만들어 낸 것 같지는 않은데…….”

옥구는 말끝을 흐렸다.

무공으로 만들어 냈다고 보기엔 위력이 너무 강했다.

그의 생각에는 철갑거인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세기였다.

“철갑거인 같지?”

“가까이에서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옥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철갑거인이 맞아. 철갑거인이 아니면 저럴 수가 없어.”

이호는 단언하듯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철갑거인이라면 길어야 한 식경이야. 그 후에 나선다.”

“알겠습니다.”

옥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금장생은 정신없이 철갑거인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차하!”

기합과 함께 도끼날이 마신의 어깨를 향해 날아왔다. 금장생은 마신검을 왼편 팔 앞에 세웠다.

차앙!

도끼와 검이 부딪치면서 커다란 소성이 터져 나왔다.

주르르!

거대한 동체의 마신이 오른편으로 삼 장이나 밀렸다.

마치 쟁기로 갈아 놓은 것처럼 깊은 자국 두 개가 바닥에 남았다.

오른편으로 밀린 마신은 왼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마신검을 휘둘렀다.

카앙!

마신검이 파고든 곳은 철갑거인 오른 다리였다.

순식간에 다리가 잘려 나가고 철갑거인의 동체가 오른편으로 넘어갔다.

퍽!

마신이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십 장 높이까지 솟구친 마신은 마신검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때 드워프 철갑거인 한 기가 쓰러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차하아!”

금장생은 기합과 함께 마신검을 내리그었다.

순간 마신검 끝에서 검붉은 광채가 쭉 튀어나왔다. 광채의 길이는 무려 오 장에 달했다.

허공을 가른 광채는 달려오는 철갑거인의 정수리로 파고들었다.

카라라라라랑!

날카로운 쇳소리에 이어 철갑거인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금장생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신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조금 전 오른 다리를 잘랐던 철갑거인의 하트를 향해 마신검을 찔러 넣었다.

마신검이 하트로 파고든 순간 손목을 틀어 뽑아내고 왼편으로 굴렀다.

카앙!

순간 거대한 도끼날이, 금장생이 조금 전 하트를 부순 철갑거인의 가슴으로 박혔다.

금장생은 몸을 일으키면서 왼편으로 빙글 돌았다.

그러자 마신은 방금 도끼를 내리찍은 철갑거인 뒤편으로 서게 되었다.

마신검을 번쩍 들어 올려 휘둘렀다.

슈캉!

마신검이 철갑거인의 목을 통과하고, 머리가 떠올랐다.

카캉!

바로 그때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도끼날 하나가 박혀 있었다.

호신강기를 펼친 상태가 아니었다면 절반 이상이 잘려 나갔을 강력한 일격이었다.

스아악!

공격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머리 위쪽에서 다른 철갑거인 한 기가 도끼와 하나가 돼 마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금장생은 마신검 손잡이를 뒤로 휘둘렀다.

퍼억!

손잡이는 왼편 철갑거인의 얼굴로 파고들었다.

“타하!”

기합을 내지르며 마신을 띄웠다. 그리고 오른손을 사정없이 뿌리쳤다.

그러자 마신이 옆구리를 공격했던 철갑거인 뒤로 돌아갔다. 철갑거인의 등과 마신의 가슴이 맞닿은 상태였다.

금장생은 곧바로 가슴을 튕겼다.

마신의 가슴에 강타당한 철갑거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곳은 방금 마신이 서 있던 자리였다.

카앙!

거대한 도끼날이 철갑거인의 정수리로 파고들었다.

“크아악!”

철갑거인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금장생은 마신검을 오른편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정수리가 쩍 갈라진 철갑거인을 왼편으로 밀어내면서 마신검을 사선으로 힘차게 내리그었다.

철갑거인의 하트가 쩍 갈라졌다.

쿠웅!

하트가 갈라진 철갑거인은 바로 쓰러졌다.

공격해 온 여섯 기를 전부 없앤 금장생은 주변을 살폈다.

“세 기는 어디로 간 거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아홉 기였는데 세 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왕가 왕들이 없앤 것도 아니었다. 무혼 또한 그의 철갑거인을 소환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이런!”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내공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 줄어든다면 반 시진도 못 버틸 것 같았다.

“큰일 날 뻔했네.”

금장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정신없이 없애다 보니 단전이 비어 가고 있는 걸 몰랐던 것이다.

“이게 철갑거인 하트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네.”

금장생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까지 철갑거인 하트만 사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내기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비로소 철갑거인들이 바쁘게 달려들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내기가 바닥을 보이기 전에 승부를 지으려고 그렇게 서둘렀던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 기는 한계에 도달해 돌려보낸 게 분명했다.

“마신, 돌아가.”

금장생은 마신을 돌려보냈다.

아울러 적수마신만마공도 해제했다.

“공격해!”

금장생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자 절벽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호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

휙! 휙휙! 휙휙!

부활전사단 오백 명이 일제히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