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00)
아수수는 곧바로 처소로 갔다.
먼저 금장생의 몸을 닦아 준 후 침대에 눕혔다.
가장 먼저 문병을 온 사람은 적순우와 사사봉이었다.
금장생은 그들을 맞았다.
“몸은 좀 어떤가?”
적순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내일이면 털고 일어날 겁니다.”
금장생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튼 나는 마왕이 자랑스럽네. 마왕은 우리 마가가 배출한 어떤 마왕보다 뛰어난 마왕으로 기록될 거네.”
“감사합니다.”
“우린 그만 가 볼 테니까 쉬게.”
“살펴 가십시오.”
금장생은 인사를 했다.
적순우와 사사봉은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에 이어 마가 수뇌들이 문병을 왔다.
그들 역시 적순우처럼 최고의 마왕이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세 번째로 찾아온 이들은 각 가문의 왕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몸이 나아지면 이야기하자며 돌려보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무혼과 바타르가 들어왔다.
“어떠냐?”
무혼이 금장생에게 물었다.
“며칠 요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받아라.”
바타르가 금장생에게 황금색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을 내밀었다.
최상급 포션이었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포션을 옆에 놓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냐?”
무혼이 차를 따르며 물었다.
“먼저 몸을 회복해야겠지요. 그런 다음 적에 대해 파악하고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야지요.”
“간단하구나.”
“우선은 큰 줄기만 가지고 생각을 해야지요.”
“그건 맞다. 사안이 복잡할수록 큰 줄기만 봐야 한다. 가지를 붙잡고 씨름해 봐야 시간만 허비할 뿐 소득은 없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문제는 화가에 대한 처립니다.”
“혈가는 대책이 있는 거냐?”
무혼은 혈가도 왕이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물었다.
“전대 혈왕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다시 불러들일 거냐?”
“다행히 혈가 가솔들 중에는 전대 혈왕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럼 혈가는 됐고, 화가는 어떠냐?”
“그들은 참 난젭니다.”
금장생이 당면한 문제였다.
혈가는 오다 아이만 돌아오면 해결되지만 화가는 다르다.
헌원소야의 장악력이 워낙 강해 이인자라고 내세울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 혈가를 팔왕가 일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는지 자신이 없었다.
“자 진무사와 권 첩형은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밖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문이 열리고 권말남과 자운영이 들어왔다.
“어서 와라.”
권말남을 보자 바타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바타르!”
권말남도 정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바타르를 부르며 옆으로 갔다.
“버터 같은 것들.”
무혼은 둘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앉으세요.”
금장생은 자리를 권했다.
“여기로 앉아라.”
바타르는 곧바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사 비주도 내려오세요.”
금장생은 천장을 보며 말했다.
휙!
곧 흰색 야행복을 걸친 사미염이 내려왔다.
“멋진 옷이네.”
사미염의 복장을 보고 무혼이 활짝 웃었다.
“눈동자가 여기로 향하는 순간 뽑아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사미염은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눈이 아주 높은 사람이다. 먹는 음식도, 아무리 맛있어도 천박해 보이면 입도 안 댄다.”
“그러니까 내가 천박하다는 건가요?”
“그런 뜻은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 고찰을 해 봐야 한다.”
“흥! 자긴 백수건달처럼 생겨 놓고는…….”
“너는 술 파는 여자처럼 생겼다는 거 아느냐?”
“이 아저씨가 보자 보자 하니까, 증말!”
“그만!”
금장생이 두 사람을 말렸다.
“마왕!”
사미염은 억울한 얼굴로 금장생을 불렀다.
“싸움은 나중에 따로 시간 줄 테니까 그때 하세요. 지금은 회의에 집중해 주시고요.”
“알았어요.”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진무사.”
금장생은 자운영을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화가에 대해 파악한 거 있나요?”
“얼마 전에 파악 끝냈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부영반도 아시겠지만 화가의 권력은 모두 헌원소야에게 집중돼 있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가진 권력은 일 할도 채 안 됩니다.”
“굳이 따진다면 권력 서열 이 위는 누구죠?”
“군사인 천통자 제갈현립니다.”
“제갈현리에 대해 나온 거 있나요?”
금장생은 사미염을 보며 물었다.
“전에 서천장 적지영의 군사였던 제갈휴의 조부가 제갈현리예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운영을 보고 질문을 했다.
“헌원중천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야망이 큰 자이긴 하지만 헌원소야의 위세가 워낙 강해서 드러내 놓고는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첫 번째는 화왕 직할대라고 할 수 있는 화천신대 장악입니다.”
“장악했나요?”
“완전히 장악한 상태는 아니고, 부대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부대주인 화후火后 화소연은 대주 장척우보다 더 지지를 받고 있는 실력잡니다.”
“만일 지금 상태에서 장척우가 죽으면 화소연이 대주가 되겠군요.”
“원래는 화왕이 지목하겠지만 현재 공석이니까…….”
“헌원중천과 화소연에 대한 정보, 얻을 수 있나요?”
“어느 정도까지 파악해야 합니까?”
“완벽해야 해요. 사소한 버릇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보름 안에 보고 올리겠습니다.”
자운영은 고개를 숙였다.
“자!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죠.”
“쉬십시오.”
“쉬세요.”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말남, 내 방으로 가자.”
“알았어요.
바타르와 권말남의 대화가 들려왔다.
“신음 크게 지르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이어 무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풋!”
아수수가 피식 웃었다.
자리 정리를 끝낸 아수수는 포션을 챙기더니 금장생을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금장생을 침대에 앉히고는 천리지청술을 펼쳐 천장을 살폈다.
‘없네.’
그녀의 얼굴에 싱긋 미소가 어렸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전 내공을 끌어 올려 천장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아수수는 옷을 벗었다.
“왜……?”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아수수를 보았다.
“당신 치료하게요.”
“치료? 그러니까…….”
“대라합환음양대법을 펼치려면 옷을 벗어야 하잖아요.”
“그걸로 날 치료하겠다는 거예요?”
“부부 사이인데 뭐 어때요.”
“그래도 이런 대낮에…….”
“당신은 바빠요. 요양한다며 침대에 누워 있을 시간 없어요.”
아수수는 침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금장생의 옷을 벗겼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은 금장생만 익히고 있었는데 졸라서 그녀도 배운 상태였다.
아수수는 바타르가 준 포션을 먹이고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세 번째 단계를 넘지 못했다.
결합한 상태에서 운기행공을 해야 하는데 관계에 집중하고 만 것이다.
“혹시 이러려고 치료해 준다고 한 건 아니겠죠?”
“미안해요. 이번엔 잘할게요.”
아수수는 다시 시작했다.
* * *
두 남녀가 뱀처럼 엉켜 있었다.
하체는 딱 붙어 있고 아래쪽 여자의 다리는 사내의 허리를 바짝 감고 있다. 사내의 엉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여자는 신음을 내질렀다.
허리를 쳐들고 신음을 뱉어 내는 여자의 머리는 짧았다.
휙!
순식간에 두 사람의 체위가 바뀌었다.
여자가 위로 올라오자 비로소 얼굴이 제대로 나타났다.
쾌락에 겨운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이 여자는 화신천대 부대주 화소연이었다.
화소연은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바로 헌원소야의 아들 헌원중천이었다.
“머리 기를까요?”
화소연은 물었다.
“머리를 기르면 넌 화소연이 아냐.”
헌원중천은 화소연의 가슴을 아프게 그러쥐었다.
화소연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가 이렇게 머리를 짧게 자른 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게 싫어서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내들이 갖는 저속한 선입견에 진절머리가 났다.
처음 보는 사내들에게 화신천대 부대주라고 하면 그들이 가장 먼저 보는 건 얼굴과 몸매다.
무공이 강해서 부대주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뛰어나 부대주가 됐다고 생각한다.
몸으로 출세했다고 단정 짓곤 한다.
그런 선입견을 없애는 방법은 머리를 자르고 사내처럼 옷을 입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사내와 멀어졌고, 사귈 기회도 없었다.
장척우가 젊었을 때 잠시 사귀기도 했지만, 대주가 되면서 멀어졌다.
십 년 이상 혼자가 되면서 무공은 대주를 넘어설 정도로 강해졌지만 외로움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이 헌원중천이었다.
헌원중천을 만난 곳은 화가 뒷산에 위치한 작은 온천에서였다.
혼자만 알고 있던 그곳에서 자주 외로움을 달랬다.
원래는 침실에서 해야 하지만 신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신경을 쓰느라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고 만족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찾아낸 곳이 온천이었다.
그곳은 완벽했다.
그날도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자위를 했다.
그녀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이 바로 헌원중천이었다.
처음부터 모두 지켜본 듯, 헌원중천도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달려들었고, 격렬하게 관계를 가졌다. 그 후로 연인이 되었다.
“그자에게 넘겨줄 건가요?”
화소연은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
“뭘?”
헌원중천이 물었다.
“화왕 자리 말이에요.”
“내가 화왕이 되라는 거야?”
“당신이 되지 않으면 군사가 화왕 자리에 오르게 될 거예요. 그럼 가장 먼저 화왕의 아들인 당신을 제거할 테고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자를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거네?”
“그것도 선수를 쳐야 해요. 늦으면 당신이 당해요.”
“그자만 없애면 되나?”
“그자와 함께 장척우도 없애야 해요.”
“그들을 없애려면 명분이 있어야 해.”
“명분은 없애고 나서 만들어도 돼요.”
“그런데 어떻게 없애지?”
“제갈현리는 당신이 맡으세요. 장척우는 내가 제거할게요.”
“어떻게 하려고?”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화소연은 하체를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엄청나지.”
헌원중천의 목소리에 신음이 섞여 나왔다.
“그걸 이용할 거예요.”
“미인계?”
“그가 대주가 되기 전에 나와 연인 관계였거든요.”
“그랬어?”
“네. 내가 차지 않았다면 당신을 못 만났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질투가 나려고 하는데?”
“질투할 필요 없어요. 그보다 당신이 백배는 더 나으니까요.”
화소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실내의 열기가 고조될수록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은 점점 커졌다.
헌원중천이 제갈현리를 만난 건 다음 날 저녁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제갈현리는 헌원중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화가의 미래를 상의하기 위해서 청했소이다.”
헌원중천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전 화왕의 아들인 대공자께서 화왕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화왕이 되면 충성 맹세를 하겠소?”
“그건…….”
제갈현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헌원중천과 허물없는 사이라면 모를까 업무적인 일 말고는 대화를 나눈 적도 거의 없다.
단지 전 화왕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충성을 맹세하기엔 사이가 너무 멀다.
“군사는 날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군사를 믿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십오 년을 주겠소.”
“네?”
제갈현리는 의아한 얼굴로 헌원중천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