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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99화 (399/524)

황금가 (399)

팔왕이 되다

설사 금장생이 방어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공격을 그대로 진행하여 아래쪽에 있는 아수수 일행을 없앤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헌원소야는 내력을 더 밀어 넣었다.

“나 루합니다, 셀라스.”

“허억!”

금장생의 말을 들은 헌원소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검에 주입하고 있던 내기가 끊어지고 말았다.

강한 광채를 뿜어내던 헬카이저의 검은 평범한 검으로 변했다.

그 순간.

금장생의 동체가 오 장 크기로 커졌다. 적수마신만마공을 극성을 끌어 올린 탓이다.

그 상태에서 금장생은 헬카이저를 향해 쏘아졌다.

퍼억!

붉게 변한 금장생의 오른손이 정확하게 헬카이저의 하트를 때렸다.

헬카이저의 동체가 허공으로 삼 장가량 솟구쳤다.

금장생은 재차 솟구쳐 헬카이저를 밟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이십 장 높이까지 솟구친 그는 마신을 소환했다.

금장생이 마신을 소환했지만 적수마신만마공으로 생성해 낸 마신상 때문에 알아차린 자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적수마신만마공으로 만들어 낸 마신상은 생김새도 실제 마신과 비슷했다.

금장생은 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헬카이저는 비무대 한편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정말 신왕 맞소?

헌원소야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죽이지 못했다고 하지만 신왕은 모든 능력을 잃고 추방되었다.

능력을 잃은 신족이 살아남을 확률은 일 할도 채 안 되는 곳이 그 당시 중원이었다.

그런데 루하라니.

―맞소, 제사장.

―맙소사. 어떻게…….

제사장이라고까지 부르는 걸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왕 루하가 분명했다.

―제사장 생각처럼 나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그런데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물론 처음엔 기억이 없었습니다. 기시감처럼 간간이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뿐이었죠. 그런데 당신을 보는 순간 확연하게 떠오르더군요.

―그럼 나를 처음 봤을 때 놀란 게…….

―맞습니다.

―그랬군.

헌원소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죽은 듯이 그냥 살았으면 천수를 누렸을 텐데 안타깝군요.

헌원소야는 내기를 끌어 올렸다.

헬카이저의 전신이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극성으로 끌어 올린 성천사력 때문이었다.

금장생 역시 적수마신만마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이미 붉은색을 띠고 있던 마신은 더욱 붉어졌다.

―네가 탑승한 철갑거인이 눈에 익은 것 같은데 이름을 알 수 있느냐?

헌원소야는 말을 내렸다.

수천 년 전에 버린 잔데 공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적수마신만마공으로 만들어 낸 마신상 속에 진짜 철갑거인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신입니다.

―마신?

―과거 마왕이 타던 겁니다. 이건 여덟 가문의 왕들이 충성을 맹세하면서 만들어 준 검이고요.

금장생은 마신검을 들어 올렸다.

―결국 마족과 신족의 최강 철갑거인의 싸움이 되겠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시작해 볼까요?

금장생은 마신검을 가슴 앞으로 세웠다.

―달라지는 건 없다. 너는 다시 죽을 테고, 나는 팔왕가를 장악한 후 황제가 될 것이다.

퍼억!

헬카이저가 발을 힘껏 굴렀다.

츄악!

그러자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스아아아아!

오 장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헬카이저의 움직임은 빠르고 유연했다.

창!

헬카이저와 마신의 검이 부딪쳤다.

헬카이저와 마신은 그 자리에서 위치를 바꿨다.

곧바로 검을 떼고 물러나며 상대방을 공격했다.

창! 창창창! 창창!

검끼리 부딪치면서 불똥이 튀었다.

단순히 부딪치는 것 같지만 두 검에는 두 사람의 혼이 담겨 있다.

상대의 검을 방어하지 못하는 순간 팔이 됐든 다리가 됐든 잘려 나가기 때문에 자기 몸이 아니라고 해서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반발력에 의해 호수 물은 좌우로 밀려나 바닥이 보였다.

호수에서 넘친 물은 좌우측 건물과 땅을 흠뻑 적셨다.

자르고, 찌르고, 흘리고, 베는 동작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왜 갑자기 그 구결이 떠올랐는지 금장생은 알지 못했다.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데 느닷없이 일월 대사가 남긴 일원의 구결이 떠올랐다.

딱히 일원을 펼친다는 생각은 없었다. 구결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차하!”

헌원소야의 공세가 거칠어진 건 그때였다.

그가 휘두르는 검에 광포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하더니 금장생을 압박했다.

금장생의 마신은 조금씩 밀렸다.

마신이 밀리자 헌원소야는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고, 마신이 물러나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밀리고 있구나.”

적순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수수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두 마신을 주시했다.

콰앙!

둔탁한 소성에 이어 마신이 비틀거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와아아아!”

건너편 건물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카카카캉!

바로 그때 헬카이저의 검이 마신의 가슴을 훑었다.

마신을 둘러싸고 있던 운무가 위아래로 쩍 갈라졌다.

카랑!

장갑이 갈라진 건 마신뿐만이 아니었다. 헬카이저의 하트 부분도 쩍 갈라졌다.

휙!

두 철갑거인은 뒤편으로 이동해 거리를 십 장으로 벌렸다.

“타하!”

“차하!”

잠시 숨을 돌렸다 싶은 순간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마신은 시뻘건 광채에 휩싸인 채고 헬카이저는 검붉은 운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철갑거인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차앙!

대검 두 자루가 교차되어 얽혔다.

휙!

그 순간 마신은 왼손을 내뻗고 헬카이저는 오른발을 차올렸다.

퍼엉!

카앙!

헬카이저의 가슴과 마신의 왼 다리에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철벅!

철벅!

헬카이저와 마신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내력이 풀리면서 머리만 빼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물속으로 잠겼다.

두 철갑거인은 동시에 솟구치며 상대를 향해 검과 주먹과 발을 내뻗었다.

차앙!

콰앙!

퍼억!

두 철갑거인은 왼편으로 돌았다.

여전히 허리까지 잠긴 상태였지만 물 때문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차르르릉!

카앙!

이번엔 마신의 어깨가 쩍 갈라졌다.

마신도 왼손으로 헬카이저의 가슴을 쳤지만 먼저 공격을 당한 바람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마신은 뒤로 물러났다.

“타하아아아!”

바로 그때 헬카이저가 바닥을 차며 솟구쳤다.

수면을 박차고 솟구치는 헬카이저 모습은 천신 같았다.

순식간에 이십 장 높이까지 올라간 헬카이저는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금장생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헬카이저 뒤편으로 하늘이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던 구결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마신을 감싼 붉은색 운무 속에서 황금빛 광채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장생은 알지 못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구결을 응시했다. 물론 눈은 헌원소야의 헬카이저를 향해 있었다.

헌원소야의 헬카이저는 거대한 검으로 변해 마신을 향해 쏘아져 왔다.

금장생은 그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 방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혼이 빠져나가 버린 사람 같았다.

“앗!”

“억!”

“어?”

나직한 비명과 함께 아수수 일행이 벌떡 일어났다.

검은 들어 올리지 않더라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마신에게서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금장생의 의식은 머릿속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곳으로 모여든 구결은 둥근 원을 만들어 나갔다. 마지막 한 번만 힘을 주면 원이 만들어지는데 구결은 거기가 딱 멈췄다.

금장생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마신이 검을 들었다.

금장생은 천천히 원을 그렸다.

마신 또한 마신검으로 원을 그렸다.

원이 제 모습을 갖춰 갈수록 마신에게서 흘러나오는 황금색 광채는 더욱 짙어졌다.

마신검으로 그린 원은 마지막 한 부분만 남겨 두었다.

마신의 몸은 불상을 연상케 할 정도로 완전히 황금색이었다.

“헉! 이건?”

헌원소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황금색 광채 속에 어려 있는 기운.

그 기운의 정체는 천마보다 더한 숙적으로 여겼던 일월 대사가 지녔던 천불성력이었다.

“넌…….”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내가 지금 펼치는 무공은 당신에게 이름을 빼앗겼던 일월 대사 그분이 남긴 일원입니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원을 완성했다.

그러자 완성된 원에서 황금빛 광채가 폭사되었다.

황금빛 광채가 가장 먼저 닿은 곳은 헬카이저의 머리였다.

푸스스스!

순식간에 머리가 가루가 돼 흩어졌다.

머리를 가루로 만든 황금빛 광채는 계속 나아갔다.

“아, 안 돼!”

헌원소야는 한편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마법 공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사라지는 마법 공간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헌원소야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악!”

헌원소야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육신 또한 마법 공간과 함께 소멸되고 있었다.

가슴이 가루로 변하고 팔이 가루로 변하고 허리가 가루로 변했다.

더 이상 헌원소야의 비명이 들려오지도 않는데 황금빛 광채는 계속해서 철갑거인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까지 가루로 변하면서 헬카이저는 사라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소멸이었다.

마신이 아래로 추락했다.

풍덩!

곧 엄청난 물보라를 남기고 호수 속으로 빠졌다.

“여보!”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아수수가 몸을 날렸다.

아수수에 이어 마가 수뇌들도 호수로 뛰어들었다.

호수로 들어간 아수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금장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아래로 헤엄쳤다.

잠시 후 바닥에서 누워 있는 거대한 철갑거인이 보였다.

‘저게…….’

지금까지 붉은 운무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철갑거인의 본모습이었다.

그녀는 철갑거인 옆으로 내려섰다. 진짜 철갑인지 만져 보았다.

‘어떻게 이런 무쇠가…….’

만져 보니 분명 쇠다.

아니, 무쇠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금속인 건 분명하다.

칼로 베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이런 금속 덩어리가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이 녀석 돌려보내야 하니까 잡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때 귓전으로 금장생의 전음이 들렸다.

―당신 괜찮아요?

―견딜 만합니다.

금장생은 마신을 돌려보냈다.

그가 호수 속으로 추락한 건 마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굳이 마신을 드러내 황실에 있는 세 장로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필요는 없다.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숨길 수 있는 한 최대한 숨겨 볼 참이다.

철갑거인이 사라지고 금장생만 남았다.

이겼다고 하지만 그도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장기들이 제자리를 이탈할 정도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흘러나온 피가 물살을 따라 퍼져 나갔다.

아수수는 금장생을 안았다. 그리고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잠시 후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와아!”

“우와와아아!”

“와아!”

팔왕가 가솔들은 벌떡 일어나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금장생은 아수수 품에서 내려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팔왕 만세!”

“팔왕 만세!”

“만세!”

가솔들은 양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금장생은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함성이 뚝 그쳤다.

“몸 낫고 나서 한잔합시다.”

나직하게 말했지만,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던 가솔들의 귀에는 금장생의 말이 선명하게 들렸다.

“와아아!”

“우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천년곡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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