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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98화 (398/524)

황금가 (398)

이른 아침부터 각 가문의 가솔들은 팔왕대 좌우측 건물 관중석으로 모여들었다. 드디어 오늘 팔왕가 팔왕이 탄생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선출되는 팔왕은 과거 팔왕과 완전히 달랐다.

각 가문에 속한 가솔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쥔 강력한 존재다.

차기 팔왕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비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금장생이 나온 건 비무 시간이 임박해서였다.

헌원소야는 먼저 나와서 금장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장생은 자리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고 비무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저기…….”

아수수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금장생에게 철갑거인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불안해요?”

금장생이 물었다.

“저자는 너무 강해요.”

“나도 충분히 강하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철갑거인은…….”

그녀가 가장 크게 걱정하는 건 바로 철갑거인이었다. 전날 해왕은 철갑거인을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반탄공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죽진 않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금장생은 굳이 써먹을 곳이 없을 것 같아서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건 곧 운용을 해 보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그건 마치 무공을 막 익히고 비무에 나선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철갑거인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래도…….”

아수수의 얼굴에서는 불안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았다.

둥! 둥둥! 둥둥둥!

비무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금장생은 조금 남은 차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팔왕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일어나자 헌원소야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멋들어진 신법을 펼친 그는 금장생보다 먼저 팔왕대 중앙에 도착했다.

잠시 후 금장생이 도착했다.

“비무를 하게 되면 마왕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오.”

“그 반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절대 일어나지 않소. 그건 내가 장담하오.”

“그래서 비무를 포기하란 말입니까?”

“나 같으면 그렇게 하겠소.”

“나는 화왕이 아니지 않습니까.”

“비무를 계속하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더 이상 제안을 하는 일은 없을 거요.”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소. 행운을 비오.”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헌원소야는 목례를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행운을 빕니다.”

금장생 역시 포권을 취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헬카이져.”

금장생이 자리를 잡자마자 헌원소야는 철갑거인을 소환했다. 곧 거대한 덩치의 철갑거인이 헌원소야 옆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철갑거인을 바로 소환하는 걸 보니 몸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군요.”

금장생은 헌원소야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금장생의 물음에 헌원소야는 움찔했다. 정곡을 찔린 탓이었다. 사실 그는 전날 밤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포션을 마시고 운기행공을 하고 영약을 복용했다.

그런데도 몸은 팔 할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몸이 좋지 않으니 비무를 미루자고 할 수도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상이 더욱 깊어지기 전에 빨리 끝내는 거였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렇소.”

“난 이거 전분데.”

금장생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왜도를 가리켰다.

“혹시 기억상실증이 아직 낫지 않은 거요?”

“아닙니다. 다 나았습니다.”

“그런 분이 천왕지회를 시작하기 전에 무기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걸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요?”

“그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말을 한 건 화왕이 철갑거인을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습니까. ‘나는 빈손인데 너는 칼을 들었네?’라고 하면 ‘좋다, 나도 칼을 버리겠다.’라고 하면서 무기를 던져 버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왕이 잘못 생각한 거요. 나는 내 강점을 포기하는 바보가 아니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절대 사람이 아니지요. 전에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면 모든 걸 내 던져서 잡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전에도라고…….’

헌원소야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에도’란 말에서 금장생이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를 더듬어도 금장생을 본 기억이 없었다.

“날 아시오?”

헌원소야는 물었다.

“그건 나중에 말해 주겠습니다. 그만 시작해 볼까요?”

금장생은 상체를 약간 구부린 채 전면을 응시했다.

“그럽시다.”

헌원소야는 곧바로 헬카이져에 올랐다.

헌원소야가 헬카이져에 오르자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북쪽과 남쪽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잠시 후 관중석에는 각 가문의 수뇌들만 남았다.

“아가야.”

적순우는 아수수를 불렀다.

“네.”

아수수는 대답을 하고는 적순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 철갑거인을 상대할 비책이 있는 것처럼 하던데…….”

적순우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녀를 걱정시키는 건 바로 저 철갑거인이었다.

금장생은 철갑거인이 발로 밟기만 해도 싱겁게 끝나 버릴 것처럼 약하게 보였다. 그만큼 둘 사이의 차이는 컸다.

“저이도 팔전에서 기연을 얻었대요?”

“팔전 기연?”

적순우는 철촌의 촌장 육전수를 보았다.

“우리 철촌의 관문에는 철갑거인 한 기가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 철갑거인을 마왕이 얻었단 말입니까?”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력은 어느 정돕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저 상태로 싸우는 거죠?”

적순우는 팔왕대를 가리켰다. 금장생은 철갑거인을 소환하지 않고 맨몸으로 헬카이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자세한 건 나도…….”

육전수는 말끝을 흐렸다.

차앙!

바로 그때 날카로운 소성이 팔왕대에서 들려왔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팔왕대로 향했다.

“쯧!”

적순우는 혀를 찼다.

철장거인이 내리찍는 검을 금장생이 왜도를 들어 올려 막고 있었다. 그런데 금장생의 몸 절반 정도가 물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둘은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고 그의 신형이 천천히 떠올랐다.

“오!”

“허!”

“역시 마왕.”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휙!

“차하!”

철갑거인의 검이 떠나고, 오른발이 수면을 가르며 금장생을 향해 날아왔다.

금장생은 수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타하!”

헌원소야는 왼팔을 쭉 내질렀다.

잠마파천황이라는 권법이었다. 비록 천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무공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내지르는 주먹엔 파천의 힘이 담겼다.

‘역시 잠마…….’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어떤 무공이 됐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잠마의 무공은 그럴 여지를 없애 버린다. 뒤로 물러나는 것 말고는 피할 공간이 없다.

뒤쪽으로 물러나는 것만 허락한다는 건 저 무공이 연환 공격이란 뜻이다. 연환 공격은 두 번째 공격이 처음보다 두 배 강하고 세 번째 공격이 두 번째보다 두 배 강한 공격 방법을 말한다. 물론 연환 공격을 상대가 방어해 내면 공격한 자가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문제는 물러나면서 방어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연환 공격은 그만큼 무서운 무공이었다.

“차하!”

금장생은 왜도를 집어넣고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오른 주먹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가 주먹을 통해 펼치는 무공은 수라의 양극천강이었다. 양극천강으로 만든 주먹 형태의 강기가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퍽!

그리 크지 않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만 크지 않을 뿐, 두 힘이 부딪친 파급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스아아악!

십 장이 넘어가는 깊이를 가진 팔왕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좌우로 밀려났다. 밀려난 물은 해일처럼 좌우측 건물을 덮쳤다.

“타하!”

“차하!”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은 기합과 함께 강기로 막을 쳤다. 그러자 밀려오던 물이 우뚝 멈췄다. 그들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물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얍!”

“하아!”

헌원소야와 금장생의 입에서 두 번째 기합이 터져 나왔다. 헌원소야의 왼손은 수십 개의 손 그림자를 허공에 남겼다. 금장생의 키보다 더 큰 손 그림자는 금장생을 완벽하게 포위한 채 다가들었다.

무혼과 싸울 때도 선을 보였던 여의만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펼친 무공은 단순한 여의만박만이 아니었다. 여의만박에는 조금 전 펼친 잠마파천황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는 여의만박이라는 금나수로 잠마파천황을 펼친 거였다. 금장생도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면서 내질렀다.

팡! 팡팡! 팡팡팡!

둔탁한 소성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그럴 때마다 팔왕대는 바닥을 드러내 보였다. 금장생이 펼친 무공은 마수였다.

금장생도 헌원소야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양극천강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상태에서 마수를 펼쳤다. 그러자 그가 펼치는 마수는 과거보다 몇 배 강해졌다.

금장생이 무리 없이 받아 내자 헌원소야는 검으로도 여의만박을 펼쳤다. 한 손으로 펼치는 여의만박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촘촘했는데 두 손으로 펼치자 금나수는 더욱 완벽해졌다.

금장생의 손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여의만박은 사방이나 팔방만 방어하면 되는 일반 무공과는 궤를 달리했다. 모든 방향해서 공격을 해 왔다. 손바닥 하나하나가 이기어검술의 기운을 내포한 검이었다.

스아아아악!

거대한 검이 다가오자 금장생은 상체를 약간 구부정하게 숙였다. 그리고 왜도 손잡이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 상황에서도 그의 왼손은 계속해서 마수를 펼쳤다.

슈캉!

왜도가 뽑히는 소리와 함께 푸른 광채가 금장생의 오른편 허공을 잘랐다.

슈캉!

“응?”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왜도가 시원스럽게 나아가야 하는데 중간에 멈춰 버린 것이었다. 그건 곧 상대의 무기를 잘라 내지 못했다는 걸 뜻했다.

스악!

잠시 멈칫하는 순간 거대한 손바닥이 쏘아져 왔다. 금장생은 쥐고 있던 왜도를 놓아 버림과 동시에 오른손 주먹을 내질렀다.

퍽!

그의 주먹과 헬카이져의 왼손 손바닥이 부딪쳤다.

픽! 픽픽픽! 픽픽픽!

주변 대기가 진공상태로 변하면서 엄청난 압력이 금장생을 향해 밀려왔다. 금장생은 호신강기를 펼쳤다. 그리고 양팔로는 가슴을 보호했다.

퍼억!

압력은 둔탁한 소성과 함께 금장생을 쳤다.

휘익!

강풍에 휘말린 낙엽처럼 금장생의 신형이 뒤편으로 날렸다. 헬카이져 또한 뒤로 밀렸지만 워낙 많이 나가는 무게 덕분에 밀려난 거리는 반 장도 되지 않아다. 물러난 거리가 짧으면 빠르게 반격을 가할 수 있다는 건 무공의 기본이다.

헌원소야는 그대로 바닥을 차고 뒤편으로 날려 가는 금장생을 쫓았다. 금장생이 날아간 곳은 왼편 건물, 즉 아수수 일행이 앉아 있는 건물 위였다.

십여 장을 쫓아간 헬카이져는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받지 않으면 아래쪽에 있는 자들이 죽는다, 마왕!”

헌원소야는 버럭 소리치며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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