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94화 (394/524)

황금가 (394)

“헉!”

헌원소야의 입에서 놀람에 찬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무혼이 대검만 신경을 썼고, 대검만 방패를 뚫고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검 끝에서 광채가 기다란 도가 튀어나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오는 것이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공격이라 피하거나 막을 여유가 없었다.

헌원소야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몸을 틀었다.

푹!

수라는 금강불괴지신에 오른 헌원소야의 손바닥을 뚫었다.

“억!”

헌원소야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하지만 손바닥으로도 무혼의 도를 막아 내지 못했다.

수라는 계속 직진하더니 헌원소야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갔다.

“커억!”

헌원소야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다. 추락하면서 헌원소야는 수라를 잡았다. 그리고 전 내공을 주입하면서 뽑아냈다.

쿠웅!

그는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죽일 놈!”

헌원소야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넘실댔다. 그는 수라를 쥔 손에 내력을 집중했다.

수라가 시뻘겋게 변하는 것 같더니 가루로 흩어졌다.

“이제…….”

헌원소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혼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너 또한 무사하지 못할…… 응?”

헌원소야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급하게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의 전신이 온전하게 핏빛으로 변했다. 신족의 힘을 모두 끌어 올린 결과였다.

슈아악!

바로 그때 거대한 황금색 물체가 헌원소야를 향해 쏘아져 갔다. 무혼의 철갑거인 아스였다.

“저건?”

“어?”

“저건?”

가솔들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 철갑거인?”

헌원소야 또한 가솔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질겁했다.

“타하!”

바로 그 순간 기합과 함께 아스의 그랜드 크로스가 허공을 갈랐다.

“차하!”

헌원소야는 오른팔과 왼팔을 십자로 교차시켜 머리 위로 힘껏 밀어 올렸다. 그러자 십자 형태의 강기가 허공으로 빠르게 솟구쳤다.

카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아스의 그랜드 크로스가 십자 형태의 강기를 잘라 내고 헌원소야를 향해 돌진했다. 헌원소야는 십자 모양을 하고 있는 양팔을 계속 내밀었다. 그러자 십자 형태의 강기가 연속해서 쏘아졌다.

콰앙!

풍덩!

둔탁한 소성과 함께 헌원소야가 쏘아 낸 십자 형태의 강기들이 박살 났다.

그리고 헌원소야의 신형이 호수 속으로 빠졌다.

스아악!

아스의 그랜드 크로스에 의해 호수 물이 좌우로 나뉘었다.

“놓쳤네.”

무혼은 입맛을 다셨다. 수라를 버리는 초식에 이은 아스의 공격은 완벽한 기습이었다. 아무리 잠마라고 해도 피해 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큰 타격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가슴에 구멍을 내기는 했지만 신족 특성상 금세 나을 게 분명하다.

‘어디 갔느냐?’

무혼은 좌우를 돌아보며 헌원소야를 찾았다.

하지만 헌원소야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 도망 다니면 실격이니까…….”

무혼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팔왕 자리를 노리는 헌원소야가 도망칠 리 없기 때문이다.

스윽!

바로 그때 수면 위로 붉은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혼은 긴장한 얼굴로 붉은 물체를 바라보았다. 불처럼 붉은 그것은 이마 한가운데 뿔이 달린 거대한 투구 모양이었다. 그런데 투구가 다가 아니었다. 투구에 이어 목이 나오고 어깨가 나오고 가슴이 나오고 배가 나오고 허리와 다리가 나왔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키가 오 장에 달하는 거대한 철갑거인이었다.

“맙소사.”

“저럴 수가.”

“어떻게 저런…….”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솔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먼저 나타난 이 장 크기의 철갑거인도 엄청난데 이번에 나온 건 무려 오 장이다. 저런 거대한 덩치가 물 위로 솟구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헬카이져?”

금장생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철갑거인은 과거 루하가 지니고 있던 신족 최강 철갑거인이었던 것이다.

‘맞아. 그랬지.’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전생에 라헬에게 당한 건 헬카이져와 계약이 파기됐기 때문이었다. 그때 계약을 파기하도록 유도한 자가 바로 라헬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죠?”

아수수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저 철갑거인을 알아요?

그때 불여하의 전음이 들려왔다. 불여하를 비롯한 팔장군 일행은 금장생 바로 뒷줄에 앉아 비무를 구경하고 있었다. 바로 앞뒤에 앉아 있었던 터라 금장생이 하는 말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그게…….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조금 전에 헬카이져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죠?

―내가 전란의 시대에 대해 아는 게 좀 많잖아요. 버려진 땅에도 다녀왔고요.

―그렇군요.

불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여하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저게 철갑거인이죠?”

아수수는 금장생에게 물었다.

“들어 봤나 보죠?”

“전설처럼 내려오긴 했지만 믿진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로 실존하는군요.”

“철갑거인은 전설이 아니고 실재했던 무깁니다.”

“얼마나 강하죠?”

“탑승하게 되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두 배에서 세 배 이상 강하게 해 준답니다.”

“엄청난 무기군요.”

“지금까지 창조된 최강의 무기죠.”

“만일 화왕이 여기서 승리한다면 내일 당신과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할 거죠?”

“같은 걸로 싸워야죠.”

“같은 거라면…….”

“철갑거인을 말하는 겁니다.”

“당신에게 철갑거인이 있어요?”

“전에 제가 팔전에 도전했던 거 기억나요?”

“네.”

“그 안에서 한 녀석을 주웠어요.”

“그 관문에 철갑거인이 있었어요?”

“네.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건 그 녀석을 꺼낼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사용할 생각도 없었고요.”

“굳이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나는 철갑거인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보다는, 당신에게 철갑거인이 있다는 사실에 더 안도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괜찮다고 그랬잖아요. 그보다 저들이 싸우면 이곳도 전쟁터가 될 것 같은데 자리를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린 구경이나 해요.”

“알았어요.”

아수수는 나박에게 상황이 급해지면 가솔들을 철수시키라는 지시를 내려놓고 팔왕대를 주시했다.

척!

헬카이져가 검을 뽑아 들었다.

두 철갑거인 사이 거리는 십 장이었다.

“차하!”

“타하!”

두 사람은 기합을 토해 내며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헬카이져의 대검이 허공을 가르고 아스의 그랜드 크로스가 대기를 잘랐다.

창!

두 무기는 거칠게 얽혔다.

휙!

부딪친 그랜드 크로스 앞쪽이 휘어지더니 헬카이져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갔다.

슈캉!

헬카이져는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아스 머리를 쪼개 왔다. 아스는 등에 걸려 있던 그레이 훼일을 뽑아 들고 휘둘렀다.

차앙!

쿠쿠쿠!

두 무기가 부딪친 여파로 인해 물이 좌우로 밀려나더니 호수 가장자리를 넘어 밖으로 흘러 나갔다.

“차하!”

“타하!”

무혼과 헌원소야는 기합을 내지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차앙! 차앙! 차앙! 차앙!

둔탁한 소성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두 철갑거인은 호수 위를 돌아다니며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했다. 간혹 헬카이져의 검과 수라가 상대방의 허점으로 파고들어 장갑에 깊은 자국을 남겼지만 승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저 둘의 승패는 내기의 대소가 결정을 하게 될 겁니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속삭였다.

“역시 화왕이 유리한 건가요?”

아수수가 물었다.

신족인 화왕은 수천 년 동안 내기를 쌓아 왔다. 그런 자와 내기 대결을 벌여 이긴다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닙니다.”

“왜요?”

“두 배 반이 더 크다는 건 무게가 그만큼 더 나간다는 걸 뜻하고, 무겁다는 건 내력 소모가 그만큼 많게 되니까요.”

“그런 차이점이 있군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으면 기동성에서 더 유리합니다.”

“승부는 끝나 봐야 안다는 거네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였다. 무혼이 탑승한 아스는 헬카이져보다 한발 빨리 움직여 무기를 휘둘렀다. 물론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 바람에 하트를 공격하지 못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진 못했지만, 헬카이져 하체는 점점 엉망으로 변해 갔다.

아스는 그레이 훼일과 그랜드 크로스를 연거푸 휘둘러 헬카이져를 밀어붙였다.

“차하!”

기합과 함께 아스의 동체가 둥실 떠올랐다.

아스가 삼 장 높이까지 솟구치자 비로소 헬카이져와 눈높이가 맞았다. 그 상태에서 아스는 수라도법을 펼쳤다. 삼 장이 훨씬 넘는 그랜드 크로스가 피보다 더 짙은 혈광을 쏟아 냈다.

“크아아아!”

헌원소야는 함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무혼은 오른팔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왼손에 쥔 그레이 훼일을 찔러 넣었다. 그레이 훼일 역시 그랜드 크로스처럼 붉은 광채를 뿜어내며 헬카이져를 향해 쏘아져 갔다.

카앙!

쇄애액!

두 무기가 부딪치면서 흘러나온 반발력은 호수 물살을 좌우로 밀어내 바닥을 드러내게 했다.

“피해라!”

물살이 밀려오자 앉아 있던 자들을 일제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금장생 일행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호신강기를 펼쳐 물살을 밀어내고는 자리를 지켰다.

그 상태에서도 헬카이져와 아스는 계속해서 공격을 주고받았다.

“저건?”

금장생의 눈이 살짝 커졌다. 헌원소야의 공격이 조금씩 검붉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스의 몸 표면에서도 검붉은 색 반점이 생겨났다.

“뭐죠?”

아수수가 물었다.

“성천사력입니다.”

“혼천오대천력이란 말인가요?”

“네.”

“그럼 해왕은?”

“그도 혼천오대천력의 하나인 역천패력을 지니고 있는데, 완벽하지 않습니다.”

“작은 철갑거인의 장갑 표면에 반점이 생기는 게 그 때문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 표면에 생겨나는 반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주기도 길어졌다.

철장거인끼리의 싸움이 시작된 지 한 시진 정도 흐르자 아스의 동작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검붉은 색으로 아스의 표면은 본래의 색을 회복하지 못했다.

“끝내야 할 시간이다, 해왕!”

헌원소야는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무혼은 수라를 확대시킨 형태의 그랜드 크로스를 들어 올렸다.

창!

그랜드 크로스는 부딪치자마자 검을 감아 돌았다. 순간 무혼은 전력을 다해 그랜드 크로스를 잡아당겼다.

“어림없다, 놈. 헬카이져는 너보다 두 배 반이나 더 무겁다는 걸 알아야 한다!”

버럭 소리치기는 했지만 헌원소야의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헌원소야는 전력을 다해 검을 잡아당겼다.

수면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선 상태지만 아스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기다렸다, 놈!’

무혼은 헌원소야가 잡아당기는 힘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검과 하나가 돼 헬카이져를 향해 폭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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