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89화 (389/524)

황금가 (389)

복수는 간단하게

둥둥! 둥둥둥!

휙!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청색 옷을 걸친 자가 팔왕대로 몸을 날렸다. 팔왕대 중앙으로 내려선 자는 혈가의 가주 혈왕 다이라토미였다.

다이라토미의 허리춤에는 왜도 두 자루가 걸려 있었다.

금장생은 자리에 일어나 팔왕대를 향해 걸었다. 그의 허리춤에도 다이라토미와 마찬가지로 왜도 두 자루가 걸려 있었다. 그가 차고 있는 건 사인루에서 얻은 마네무사 두 자루였다.

두 사람은 팔왕대 중앙에서 만났다.

“우린 감정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금장생은 다이라토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맞다. 네놈 때문에 우리 혈가가 큰 어려움에 처했다.”

다이라토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만일 금장생이 사인루를 없애지 않았다면 혈가가 이렇게까지 몰락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당신은 나에 대한 청부를 받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널 청부한 자가 누군지 아느냐? 그들은 바로…….”

“그들도 다 죽었습니다.”

“다 죽었다고?”

다이라토미의 눈이 커졌다. 그가 파악한 바로는 사인루에 청부를 넣었던 청부자는 적지영 형제들이었다.

사인루가 멸망하고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 죽었단다. 그건 곧 제 손으로 처단했다는 뜻이다.

“네. 이제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게 나란 말이냐?”

“사인루는 혈가에서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혈가의 주인은 혈왕이고요.”

“그래서 날 죽이겠다는 거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너는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다이라토미는 금장생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는 간밤에 헌원소야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가 헌원소야를 찾아간 건 동영으로 갔던 배가 피습당해 모든 투자금을 잃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들은 헌원소야는 처음엔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돈을 갚으라거나, 이젠 어떻게 할 거냐는 등의 책임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한 번 더 투자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헌원소야는 팔왕이 되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였다.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는 건 다시 투자할 의사가 있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더하여 ‘팔왕이 되면’이란 단서 조항은, 팔왕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제거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 첫 번째 걸림돌이 바로 저 앞에 있는 마왕이다.

‘죽여 주겠다.’

다이라토미는 주먹을 불끈 그러쥐었다.

그는 곧 내기를 끌어 올렸다.

스아악!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역장을 형성하면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그가 끌어 올린 무공은 태양이도류였다.

스르릉!

그는 장도를 뽑았다. 그리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타하!”

기합과 함께 아래로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쩌억!

다이라토미 앞 물이 좌우로 갈라지며 금장생을 향해 나아갔다. 물살이 바로 앞까지 왔을 때 금장생의 장도가 뽑혔다.

슈캉!

그의 왜도에서 푸른 광채가 솟구쳤다.

카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다이라토미가 쏟아 낸 기운이 스러졌다.

“응?”

다이라토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왜도는 중원도와 달라서, 익숙하지 않은 중원 무인이 사용하면 동작이 어색하게 보인다. 그런데 달랐다. 왜도를 뽑아 공격하는 모양새가 너무 자연스럽다. 수십 년 동안 전장을 누빈 사무라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왜도를 뽑았을 때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푸른색 광채.

그 광채를 보는 순간 동영 삼대 무공의 하나인 뇌섬류가 떠올랐다.

“아닐 거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그가 움직일 때마다 신발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척! 척척척! 척척!

다이라토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차앗!”

기합과 함께 왜도가 허공을 수직으로 갈랐다.

츄아악!

그이 앞 물이 쩍 갈라지며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척! 척척척! 척척척!

다이라토미는 갈라진 물을 밟고 금장생을 향해 내달렸다. 지금 달려가는 곳이 수면이란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가 달려가는 속도는 빨랐다.

척! 척척척!

금장생 역시 왜도 손잡이를 잡고 내달렸다.

“타하!”

슈캉!

기합과 함께 왜도가 뽑히고 조금 전보다 더 강한 광채가 그의 전면을 채웠다.

카카카캉!

섬뜩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슈캉!

어느새 금장생 앞에 도착한 다이라토미가 소도를 뽑아 횡으로 쓸었다. 소도 끝에는 한 자 길이의 도강이 솟구쳐 있었다. 소도에 솟구친 도강은 일 장 길이의 도강을 생성하지 못해서 길이가 짧은 게 아니었다. 소도의 기능에 맞도록 일부러 도강의 길이를 줄였다. 길이에서 손해를 보는 대신 그가 얻은 건 단단함이었다. 소도 끝에서 솟구친 한 자 길이의 도강은 소도보다 더 강하다.

그 도강이 금장생의 옆구리를 향해 번개처럼 쏘아져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금장생은 조금 전 다이라토미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들어 올렸던 장도를 아래로 내리긋고 있었다. 옆구리를 향해 다가오는 단도는 완전히 무시한 행동이었다.

‘놈!’

다이라토미는 차갑게 웃었다. 두 자루의 도를 사용해서 싸우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소위 사무라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늘 대비를 하고 있다. 상대가 동귀어진 수법을 쓴다고 해서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장도는 들어 올려 방어를 하고 소도는 계속해서 공격한다.

“차하!”

그는 기합과 함께 장도를 수평으로 눕혀 들어 올렸다.

카앙!

차앙!

도 부딪치는 소리가 연속해서 두 번 흘러나왔다.

“크윽!”

그리고 비명과 함께 다이라토미가 물러났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됐다. 이마에 난 상처 때문이었다. 그가 상처를 입은 건 자신의 도에 의해서였다. 금장생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들어 올린 도가 힘에 밀리면서 자신의 이마를 쳤고 가로로 찢어지는 상처가 난 것이다. 날이 없는 부분이라고 하지만 도강으로 감싸고 있어 날에 베인 거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다이라토미는 금장생 옆구리로 시선을 주었다.

‘젠장!’

내심 욕설을 뱉어 냈다. 금장생이 자신의 소도 공격을 무시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옷자락이 잘린 곳에 소도가 자리해 있었다.

척! 척척척!

금장생이 빠르게 다가왔다.

금장생이 펼치는 보법 또한 다이라토미와 비슷했다.

“그 보법은…….”

다이라토미는 경악했다. 금장생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면서 펼친 건 사무라이만이 펼치는 보법이었던 것이다.

“그런 걸 따질 시간에 공격을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슈캉!

허리춤에 도집에 들어가 있던 왜도가 뽑힘과 동시에 생성된 푸른 광채가 다이라토미의 전신을 쪼개 버릴 것처럼 쏘아져 갔다.

“헉!”

다이라토미는 질겁하여 장도를 세웠다.

카앙!

철컥!

다이라토미가 푸른 광채를 막아 낸 순간 금장생의 도는 다시 도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서 다시 도를 뽑아 휘둘렀다. 이번에는 푸른 광채 두 개가 생성됐다. 왜도 모양의 푸른 광채는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갔다.

슈캉!

다이라토미는 소도까지 뽑아 들고 방어를 했다.

카앙! 카앙!

날카로운 소리가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철컥!

욱!

왜도가 검집 안으로 들어간 소리에 이어 다이라토미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뒤로 물러났다.

슈캉!

금장생의 왜도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총 네 개의 푸른색 광채가 생겨났다. 혈가 가솔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이, 이건?”

다이라토미는 질겁했다.

금장생의 두 번의 공격에서는 설마 했다.

중원인이, 그것도 마가의 마왕이 동영의 무공을 펼칠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지금 펼치는 걸 보니 이 무공은 의심할 나위 없이 뇌섬류다.

―뇌섬륩니다.

의심을 불식시키는 전음이 들려왔다.

다이라토미는 두 자루의 왜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금장생을 보았다.

캉! 캉캉캉!

철컥!

“크으윽!”

다이라토미는 나직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가슴팍의 옷이 좌우로 나풀거리며 피가 확 번졌다.

“어떻게…….”

―그분의 진전을 내가 이었습니다.

슈캉!

또다시 금장생의 왜도가 허공을 갈랐다.

푸른색 도강 여덟 개의 쏟아져 나왔지만 다이라토미의 눈에는 수십 개로 보였다.

다이라토미는 반사적으로 두 자루의 도를 휘둘러 도막을 형성했다.

캉! 캉캉캉! 캉캉캉! 캉!

“크윽!”

도막을 뚫고 들어온 몇몇 강기가 가슴과 팔과 배를 훑고 지나갔다.

철컥!

금장생의 왜도는 다시 본래 자리로 들어갔다.

“누구를 말하는 거냐?”

다이라토미는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요시아키 님입니다.

슈캉!

또다시 왜도가 뽑혔다. 이번에도 푸른 광채를 띠는 도강은 여덟 개였다. 다이라토미는 검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그의 앞에는 도막이 생겨났다.

하지만 요시아키란 말 때문에 충격이 큰 듯 도막의 색이 조금 전보다 옅었다.

캉! 캉캉캉! 캉캉! 캉캉!

철컥!

“커어억!”

고통스러운 비명이 다이라토미의 입에서 비어져 나왔다. 도막을 파고들어 간 도강은 다이라토미의 전신을 시뻘겋게 만들었다.

―그리고 태양선단을 집어삼킨 사람도 납니다.

“너, 너라고?”

다이라토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태양상인 배를 습격한 자가 마왕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네.

슈캉!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뇌섬류를 펼쳤다. 이번에도 그가 만들어 낸 강기의 수는 여덟 개였다. 같은 초식이면 방어하는 게 쉬워야 하는데 다이라토미는 그렇질 못했다. 그를 막다른 곳으로 밀어붙이는 건 뇌섬류가 아니라 금장생의 말이었다.

“커억!”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전신은 피투성이였다. 도강에 베일 때는 흰색이었다가 금세 붉게 변하는 걸 보면 뼈까지 잘린 게 분명했다.

철컥!

금장생의 도가 본래 자리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당신네 상단은 건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인루 비밀 창고에 있던 첩지를 확인하던 중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자들이 당신네들이란 걸 알아 버렸습니다.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왜냐면 내가 황금전가 셋째 아들 금장생이기 때문입니다.

슈캉!

금장생의 허리춤에서 푸른색 광채가 폭발했다.

광채는 총 열두 개였다. 광채의 수도 네 개로 늘었지만 그보다 더 엄청난 건 광채가 나아가는 속도였다. 푸른 광채는 다이라토미가 방어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들이닥쳤다.

“이건?”

다이라토미는 멍한 얼굴로 푸른 광채를 바라보았다.

―발도뇌섬륩니다.

“빌어먹을!”

욕설이 흘러나오는 순간 푸른 광채가 다이라토미의 전신을 덮쳤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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