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88화 (388/524)

황금가 (388)

흑철마신黑鐵魔神 적무황은 무영유마無影有魔 적보영과 함께 마가 오대철인의 한 명이면서 무공은 남아 있지 않은 가주다. 아울러 마가가 배출한 가장 강한 무인이란 말이 내려온다.

금장생은 그 석판을 내려놓고 다음 석판 무더기 중 가장 위에 있는 걸 집어 들었다.

마가 이대 가주 무영유마 적보영이 남긴다.

“역시!”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철마신 적무황과 무영유마 적보영은 마가가 아닌 이곳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 둔 것이다.

“왜 그러는데?”

데블헬의 구결을 암송하고 있던 무혼이 고개를 들어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마가에서는 가장 강한 가주 다섯 명을 일컬어 오대철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 중 두 명의 무공은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기에 무공을 남긴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읽어 봐.”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적보영이 남긴 석판을 내려놓고 다시 적무황이 남긴 석판을 들었다.

가문이 안정되자 나는 선조들의 유적을 찾아 나섰다.

전쟁 말미에 실종됐던 여덟 명의 왕들.

그들은 역대 왕 중 가장 강하다고 정평이 난 강자들이었다. 거대한 음모가 아니고는 그들 여덟 명이 동시에 실종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잊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들의 흔적을 더듬고 더듬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여덟 가주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들을 없앤 자가 루하라는 신족의 왕이었다.

이곳에서 팔왕과 루하가 남긴 글을 읽었다.

신족의 왕 루하가 남긴 기록은 뭔가를 운용하는 방법인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이곳에 있는 모든 걸 읽은 후, 반년을 더 머물렀다.

그리고 내 사연과 무공을 적어 석판으로 남겼다.

더 이상 마법을 찾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방인들이 남겼다는 죽은 자들의 군단을 찾을 것이다.

금장생은 다음 석판을 집어 들었다.

“적을 준비 하세요.”

그리고 무혼을 보며 말했다.

“알았다.”

무혼은 종이를 몽땅 꺼내 놓고 금장생의 말을 기다렸다.

적무황이 남긴 무공은 흑철마신만마검黑鐵魔神萬魔劍과 팔만사천수결八萬四千手結, 두 가지였다. 흑철마신만마검은 두 가지 무공이 합쳐져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가지 무공이다.

흑철마신만마검에는 수비가 없었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였다. 수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검법이다 보니 강할 수밖에 없었다.

흑철마신만마검은 금강불괴지신이 아니면 펼칠 수 없다.

적무황이 남긴 말이었다.

“금강불괴지신에 이른 몸으로 수비를 하라는 거네요?”

금장생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무공 명칭 중 흑철마신이 바로 금강불괴지신을 뜻하는 말이며 수비 초식이었다.

“몸으로 때우라는 거겠지 뭐.”

무혼은 빙긋 웃었다. 금강불괴지신이 되는 방법이 초식 속에 포함돼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구결 안에는 금강불괴지신이 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두 번째 무공 팔마사천수결은 말 그대로 수공手功이었다. 수만 개의 손바닥이 나타나는 절대 수공. 만일 상대가 펼친다면 막아 내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두 무공을 모두 적고 적보영이 남긴 석판을 들었다.

아버지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그랬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수가 적무황과 적보영은 동시대를 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둘은 부녀지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녀 역시 이곳에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 떠났다.

적보영이 남긴 무공은 권법은 무영마신만마무無影魔神萬魔武, 검법은 군마일천무群魔一千舞였다.

그녀의 무공 또한 아버지 적무황의 무공처럼 마가 오대철인에 들어도 충분할 정도로 강했다.

아니, 금장생과 무혼이 익힌 빙극천월강이나 이화태양강 그리고 야수도법보다 훨씬 강했다.

“이 두 사람, 무공만 익혀도 천하제일이 되겠네.”

무혼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적무황과 적보영의 무공은 그가 익힌 무공 중 가장 강한 수라도법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강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금장생은 네 번째 무더기에 있는 석판을 집어 들었다.

팔왕이자 마노왕인 적월이 남긴다.

우리는 이곳에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강한 무공만 남기기로 했다. 우리가 남긴 무공을 누가 익히든 상관없다. 다만 좋은 일에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쁜 사람에게 들어갈 게 걱정이면 남기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살았던 흔적을 남기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특히 성공한 삶을 살았던 자들은 그런 욕구가 더 강하다. 그래서 아들에 집착하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엄청난 규모의 무덤을 만들기도 해.”

무혼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석판으로 시선을 주었다.

마노왕 적월이 남긴 무공은 마신천마무魔神天魔舞로 수공手功이었다. 이 무공을 보자 마가는 전통적으로 수공에 강한 가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신천마무를 모두 적고 나서 다섯 번째 석판을 집어 들었다. 화노왕 금제황이 남긴 석판으로 그의 무공은 건곤열화신공乾坤熱火神功이었다. 건공열화신공은 장법이었다.

여섯 번째 석판의 주인은 해노왕 혁군왕이었다. 혁군왕은 창해파랑천결蒼海波浪天結을 남겼다. 창해파랑천결은 창槍으로 펼치는 무공이었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파도처럼 쉬지 않고 몰아치는 창강과 탄강의 파도였다. 최후 초식은 다른 이들이 남긴 무공처럼 심검이었다.

일곱 번째 석판은 사황 혈루아가 남긴 거였다.

혈루아는 흑사지옥해黑砂地獄解라는 검법을 남겼다.

여덟 번째 석판 무더기의 주인은 전왕 묵현우로 그가 남긴 무공은 권각법으로 명칭은 파천투破天鬪였다.

“막거성이 보면 좋아하겠네.”

파천투를 적고 난 무혼이 말했다.

“가르쳐 주고 싶어요?”

금장생은 무혼을 보며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맞아요. 무 형이 전왕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건 거지가 부자에게 살림에 보태라고 돈을 주는 것과 같아요.”

“난 인마, 황제였어.”

무혼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왕년에 못나갔던 사람은 없습니다. 무 형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집도 엄청 잘나갔습니다.”

“황제하고 장사꾼하고 같냐?”

“아무튼 가르쳐 주지 마세요.”

“알았어, 자식아.”

무혼은 쏘아붙이고는 다음 글을 쓸 준비를 했다.

“다음은 해저무영海底無影이라는 은신술입니다.”

해저무영은 해노왕 신하가 남긴 무공이었다. 가히 은신술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했다. 금장생이 다음으로 집어 든 석판에는 철노왕 고척문이 남긴 군자천하보君子天下步라는 보법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암노왕 염하적은 유령파천지幽靈破天指라는 지풍을 남겼다.

총 열한 개의 무공을 전부 적고 난 무혼은 손가락을 주물렀다.

“하나 더 적어 달라면 날 잡아 죽이려고 하겠죠?”

금장생은 깨알처럼 적힌 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무혼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스럽게 말하네요?”

“난 황제라고 했잖아.”

“알았습니다. 종이나 좀 주세요.”

금장생은 무혼이 사용하던 펜으로 무공 구결을 하나씩 적었다. 열 개를 모두 적고 나자 반 시진이 훌쩍 지났다.

“이건 이대로 두는 게 낫겠지.”

무혼은 석판을 가리켰다.

“나는 부숴 버리려고 했는데…….”

“뭔 훗날 모든 걸 잃고 호수로 몸을 던진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기적을 안겨 줄 수 있도록 놔두자는 거군요.”

“맞아.”

“통로는?”

“들어올 수 있게 해 줘야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무공 구결이 적힌 종이를 각자 챙기고 통로에 걸린 마법을 해제한 후 밖으로 나왔다. 금장생은 하늘을 보았다. 달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이따가 봅시다.”

금장생은 작별 인사를 하고 그의 처소로 갔다. 그는 아수수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침실 문을 열었던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수수와 백팔무영비 비주 사미염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둘 다 알몸이었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달빛이 스며들면서 밤임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의 몸이 고스란히 보였다.

금장생은 잠시 창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산중의 새벽바람은 알몸으로 맞아들이기엔 너무 찼다.

그는 침대로 갔다. 가까이 갈수록 두 여자의 알몸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둘의 몸매는 누가 낫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빼어났다.

‘내가 빨리 죽으면 순전히 저 여자들 때문일 거야.’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한편에 내팽개쳐진 이불을 들어 덮어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가 들어선 곳은 집무실이었다.

한쪽에 놓인 기다란 의자로 가 누웠다.

잠시 후 그의 코에서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아수수는 벌떡 일어났다.

“왜?”

아수수 때문에 잠에서 깬 사미염이 물었다.

“그 사람…….”

아수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왔다 갔어.”

“왔다 갔다고?”

“응.”

사미염은 가슴을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언제?”

“한 시진쯤 전에.”

“그냥 갔어?”

“이불 덮어 주고 가던데?”

“이불?”

아수수의 시선이 사미염에게로 향했다.

휙!

그녀는 사미염의 하체를 가리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추워, 이것아.”

사미염은 얼른 이불을 끌어갔다.

“어, 어떻게 자고 있었어? 엎드려서 잤겠지?”

“아니?”

“그럼?”

“난 잘 때 큰대大 자로 자.”

“팔다리를 벌리고 잔다는 거야?”

“응.”

“다 봤겠네?”

“이불만 덮어 주고 아무 짓도 안 했어.”

“너, 간다고 그랬잖아.”

“잠이 들어 버린 걸 어쩌라고.”

사미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널어 두었던 야행복을 입었다.

“그것만 입어?”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는 걸 보며 아수수가 물었다.

“속옷을 입으면 볼일을 볼 때 번거롭거든.”

“안 추워?”

“겨울엔 환장하게 추워.”

“그럼 어떻게 해?”

“숨어서 누군가를 지키는 호위들의 비애지 뭐.”

“감내한다는 거네?”

“내가 고생해서 누군가는 편안하게 잘 수 있으니까 그걸로 된 거잖아.”

사미염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너도 얼른 남편 챙겨야지 뭐 하고 있어.

“맞다.”

아수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입고 금장생을 찾으러 나갔다. 그녀가 금장생을 발견한 곳은 집무실이었다. 금장생은 아직 잠자고 있었다. 다시 침실로 가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 주었다.

그때 금장생이 눈을 떴다.

“나 때문에 깬 건가요?”

아수수는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오랜 습관입니다.”

“나랑 잘 때는…….”

“내가 먼저 일어나면 당신도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수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는 아침잠이 많아 늦게 일어났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깨우세요. 알았죠?”

“곤히 자는 사람 깨웠다고 봉변당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짜증 내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오히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좋은 일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죠?”

“귀 좀 줘 보세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험! 씻고 식사나 하러 가죠?”

금장생은 앞장서 걸었다.

“꼭 깨워야 해요. 알았죠?”

아수는 활짝 웃으며 금장생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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