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87화 (387/524)

황금가 (387)

“네가 열어라.”

무혼은 자리를 비켜 주었다.

금장생은 마법 지팡이 일라일라를 꺼내 들고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마나를 주입하면서 오픈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수면처럼 생긴 통로가 되는 게 아니라 자물쇠가 풀리는 듯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보고 있던 무혼이 석문을 밀었다.

그르릉!

둔탁한 소성과 함께 석문이 열렸다.

쿵!

곧 내부가 드러났다. 석실를 밝혀 주고 있는 건 천장과 벽에 박힌 마법등이었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타원형의 커다란 탁자가 있고, 탁자 주위에는 의자 여덟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돌로 만든 탁자 위에는 석판 수십 개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저기 유골이 있다.”

무혼은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가리켰다. 의자의 등받이가 높아 바로 뒤에 서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금장생과 무혼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체…….”

찌르르!

시체를 보는 순간 금장생은 번개가 머릿속을 관통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멍한 얼굴로 시체를 보았다. 수천 년이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시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다.

시체를 바라보던 무혼은 이상한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탁자 건너편으로 가서 시체와 금장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거참!’

무혼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탁자에 기대앉은 자와 금장생은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았다. 물론 지금의 적천영 얼굴이 아니라 금장생의 진짜 얼굴을 말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눈동자가 다른 것 같은데…….”

무혼은 탁자 위로 올라가 시체 바로 앞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눈동자 색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파란색이네…….”

눈동자 색을 확인하고 말을 하자 그의 숨결이 시 체에게로 쏟아졌다.

번쩍!

순간 시체의 눈에서 파란색 뭔가가 무혼의 눈 안으로 들어갔다.

풀썩!

그리고 시체가 주저앉으며 가루로 변했다.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그런데 그 가루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무혼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무슨……?”

무혼은 당황했다. 그는 시체와 금장생의 다른 점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시체가 오래돼서 그랬을 겁니다.”

금장생은 시체가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나는 단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뭘 활인하려고 했는데요?”

“장생 너와 다른 점을 찾아내고 싶었어.”

“나와 닮았던가요?”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야.”

“나도 제대로 좀 볼 걸 그랬네요.”

“나 쪽으로 왔어야지. 그런데 이건 뭐지?”

시체가 앉아 있던 곳에 주먹 크기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시체가 가지고 있던 게 가루로 변하면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신의 눈물이라고 부르는 녀석입니다.”

“신의 눈물?”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거기 적혀 있잖습니까?”

금장생은 조금 전 시체가 앉아 있던 의자 앞 탁자를 가리켰다.

“아!”

무혼은 탄성을 내뱉었다.

석판으로 가려진 아래쪽에 글로 보이는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무혼은 조심스럽게 석판을 들어냈다. 그러자 상당히 장문의 글이 나타났다.

“읽어 봐.”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조금 전 시체가 앉아 있던 의자로 가서 앉았다.

나 신족의 마지막 왕 루하가 남긴다.

“어?”

무혼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 팔왕이란 자가 남긴 글에 의하면 신족의 왕 루하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그를 죽이기 위해 왔다고 하였지만 함정이었다고 했다. 정말로 함정이었다면 신족의 왕 루하는 이곳에 없어야 한다. 그런데 신족의 왕 루하라니.

“계속 읽어 봐.”

문득 루하와 팔왕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라헬의 암수에 빠져 왕위에서 쫓겨난 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모든 능력을 잃은 나는 과거 노예였던 가문으로 스며들어 갔다. 결코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내 신민들을 보호하고 싶었다.

노예 가문에서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불여하였다. 그녀와 살면서 자식도 얻었다.

“맙소사!”

금장생은 신음을 내뱉었다.

불여하.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정신을 차려 완전한 인간이 된 사노왕의 이름이었다.

“왜?”

무혼이 물었다.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젓고는 다시 글을 읽었다.

만일 그녀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인간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공격을 받았다. 두 자식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운영과 순을 잃었다. 그때부터 천하를 떠돌며 두 아이와 아내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두 아이도 아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들이 사라지자 더 이상의 삶은 무의미했다. 무덤을 만들고 내 힘으로는 나갈 수 없도록 입구를 무너뜨린 후 수혈을 눌렀다.

잠을 자다가 죽을 셈이었다.

거기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른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라헬에 의해 제거됐던 힘이 돌아와 있었다. 아마도 육체가 한계에 이르자 몸속 어딘가에 흩어져 있던 힘이 나타나 날 살려 낸 모양이었다. 물론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으로 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무덤을 나와 세상을 떠돌았다.

전쟁은 종반으로 치달았고 승자는 중원인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이방인들이 죽은 자들의 군단을 만들었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이대로 두면 나를 쳐 낸 장로는 물론이고 신민들까지 위험해진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미워한 건 라헬을 비롯한 네 장로지 신민들이 아니었다. 나는 신민들을 구하고 싶었다. 그들을 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건 바로 팔왕가의 왕들을 인질로 잡아 시간을 버는 거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만든 ‘죽은 자들의 군단’이 묻힌 곳으로 가서 백 구를 발굴했다.

내가 발굴한 백 구는 죽은 자들의 군단 소속 대원들 중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었다.

그런 다음 팔왕가에 소문을 흘렸다.

“아!”

“왜?”

금장생이 탄성을 내뱉자 무혼이 물었다.

“나, 아니 신족의 왕 루하였습니다.”

“뭐가?”

“팔왕을 이곳으로 유인한 사람 말입니다.”

“신민들에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팔왕을 없앤 거란 말이야?”

“네.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내버려 두면 신족은 멸망하게 생겼거든요.”

“그런데 루하는 왜 죽은 거지?”

“죽은 자들의 군단 일백 명의 영혼의 그릇을 자신의 심장으로 대체해 버렸거든요.”

“그럼 그는 영혼의 그릇이 어디 있는지도 알았다는 게 되는 건가?”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왕을 없애고 죽은 자들의 군단에서 데려온 일백 명을 없애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는 거구나.”

“네.”

“그런데?”

무혼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득 금장생이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아냐.”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 전 루하의 시체에서 나온 상자를 금장생에게 내밀었다.

“난 필요 없습니다.”

“나도 필요 없어.”

“신의 눈물은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보물입니다.”

“그래서 필요 없다는 거야.”

“몸 때문인가요?”

“응. 지금도 내 몸은 포화 상태야. 여기서 더 들어가면 몸이 폭발하고 말아.”

“그럼 이건 일단 내가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신의 눈물을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몸속으로 뭔가가 들어온 것 같다.”

“데블헬일 겁니다.”

“데블헬이 뭔데?”

“신족 최강 무기로 루하가 지니고 있었던 겁니다.”

“혹시 데블헬이 어떤 무기인 줄 알아?”

“살인광殺人光입니다.”

“빛이라고?”

“네.”

“어떻게 사용하는데?”

“저기 있는 석판 중에 운용법이 나와 있을 겁니다.”

“헌원소야하고 비무할 때 사용 가능할까?”

“몸에 안착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그건 모릅니다. 흡수를 했다면 이제부터 안착을 시작할 테고, 안착이 끝나면 느껴질 겁니다.”

“아쉽네.”

무혼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 엄청나 행운을 얻었으면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모레 당장 필요하니까 그러지. 아무튼 이거나 한번 봐 봐.”

무혼은 석판을 가리켰다.

“한번 볼까요?”

금장생은 쌓여 있는 석판으로 시선을 주었다.

석판은 열 장에서 스무 장 사이였다. 각자가 석판을 만든 듯 크기와 모양이 다 달랐다.

“그런데…….”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팔왕 여덟 명과 루하가 남긴 거라면 총 아홉 무더기라야 한다. 그런데 열한 무더기였다. 모양이 다른 걸 보면 한 사람이 두 무더기를 쌓은 것도 아니다.

금장생은 가장 왼편에 있는 석판을 집어 들었다.

그건 신족의 왕 루하가 남긴 석판이었다.

루하가 남긴 건 데블헬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지필묵 있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잠깐만 기다려.”

무혼은 아공간을 열고 펜과 잉크, 종이를 꺼냈다.

“뭡니까, 그건?”

금장생은 물었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이걸로 글을 써.”

무혼은 펜을 들어 보였다.

“붓보다 덜 번거롭겠네요.”

“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펜은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되고 보관도 더 용이한 것 같아.”

“악필이나 명필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렇지.”

“장사를 시작하며 그것도 수입해야겠네.”

“나는 장사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불러 줄 테니까 적으세요.”

금장생은 데블헬을 사용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도 나와 있어?”

글을 적다 말고 무혼이 물었다.

“어떤 걸 말하는 건데요?”

“호흡과 함께 뻗어 내면 효과가 배가된다는 내용 말이야.”

“네. 적혀 있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금장생은 계속해서 불러 주었다. 데블헬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주 길었다. 글자 수로 따지면 이천 자는 될 것 같았다.

“상당히 기네.”

“그래도 그건 한번 익혀 놓으면 초식처럼 구결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니까 아주 편리해요.”

“방금 내가 적은 건 몸속에 있는 빛의 기운에 의지를 실어서 외부로 뻗어 내는 방법인 것 같은데, 맞아?”

“맞습니다.”

“심검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거지?”

“심검은 단전에 있는 내기를 사용하지만 데블헬은 몸속에 퍼져 있는 힘과 외부의 힘을 더해서 사용하는 거잖아요. 심검보다는 공령에 더 가깝지요.”

“변형된 공령이라는 거야?”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렇겠네요.”

“이거 말이야…….”

“말씀하세요.”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는 거야?”

“무 형도 루하에게 받았잖아요.”

“그렇네.”

무혼은 피식 웃었다.

“이건 끝났고, 이번엔 이걸 한번 봐 보게요.”

금장생은 루하가 남긴 석판 바로 옆 석판을 집어 들었다. 다른 석판보다 두께는 얇고 장수는 많았다.

나 마가 초대 가주 적무황이 남긴다.

세인들은 나를 흑철마신이라 불렀다.

“에!”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석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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