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85)
자연무의 가장 큰 특징은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기와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허점으로 파고들게 된다.
즉 가장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지가 개입하게 되면 처음엔 더 나은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손발이 꼬이게 되고 결국엔 자신도 허점을 드러내게 된다. 문제는 자신의 허점을 보지 못하고 남의 허점만 보인다는 점이다. 막거성은 자신이 만들어 낸 허점을 향해 주먹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치기 전까지는.
“허억!”
막거성은 질겁했다.
조금 전까지 주먹 앞에 있던 헌원소야가 사라지고 거대한 손바닥 하나가 가슴을 향해 쏘아져 왔다. 서역의 밀종대수인 같은 무공이었다. 이미 주먹을 내뻗은 상태고 무게중심도 앞에 있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막거성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몸에 힘을 주는 것뿐이었다.
퍼억!
“커억!”
막거성은 비명과 함께 훨훨 날아갔다.
오 장여를 날아간 그는 피를 뿌리며 간신히 내려섰다. 그가 내려선 곳은 팔왕대 밖이었다.
“우엑!”
그는 피를 토했다.
“와아아!”
“우와아아!”
관중석에 있던 자들은 열렬한 환호성으로 헌원소야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헌원소야는 손을 들어 답례를 했다.
“으음!”
그는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겉보기엔 쉽게 이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심한 내상을 입진 않았지만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면 내상약을 복용하고 운기행공을 해야 할 정도의 부상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헌원소야는 가솔들과 함께 팔왕대를 떠났다. 그가 떠나자 구경하던 이들도 곧 각자의 처소로 향했다.
금장생은 아수수와 함께 숙소로 갔다. 먼저 돌아온 이들이 빠르게 식사 준비를 했다.
식당에는 적순우와 사사봉 그리고 각 촌의 촌장들이 먼저 와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도 여기서 먹는가?”
적순우가 물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하라고 하더군요.”
금장생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소식 없는가?”
적순우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누가 오기로…….”
꾹!
아수수가 옆구리를 찌르자 금장생은 말을 멈췄다.
―그런 질문이 아니잖아.
―누가 오기로 한 게 아니라고요?
―이으그.
―그럼 뭘 묻는 건데요?
―아기가 어떻게 됐는지 묻는 거잖아요.
―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적순우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름이라 그런지 밤이 유달리 짧게 느껴집니다.”
“험! 조만간 좋은 소식 기대해도 되겠구먼.”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수수가 붉어진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이렇게 해 놔야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한 말이에요.
―이제 제대로 식사를 하자고요.
금장생은 빙긋 웃으며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신 후 숙소로 갔다.
씻고 나서 침대로 가 상의를 벗고 누웠다.
옷을 입고 버티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낮에 있었던 막거성과 헌원소야의 무공을 떠올렸다. 헌원소야는 역시 강했다.
막거성은 팔왕 중 세 번째로 강한 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막거성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헌원소야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쉬지 않고 쫓아다니다가 초초함을 견디지 못하여 무리수를 두었고, 무리수는 곧 패배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비무는 어른과 아이의 싸움 같았다. 그만큼 헌원소야는 강자였다. 그런 자를 상대로 과연 승리할 수 있을지.
문득 차가운 느낌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금장생은 눈을 떴다.
아수수가 옆으로 누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가리개와 아래 속옷밖에 입지 않은 상태였다. 가슴 가리개도 위쪽만 살짝 가려질 정도로 작았다.
“너무 야한 거 아닌가요?”
“이게 당신이 만들어 준 실내 활동복인데, 잊었어요.”
아수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나는 왜 기억이 안 나죠?”
“기억을 잃었으니까 안 날 수밖에 없잖아요.”
아수수는 손으로 금장생의 가슴을 쓸었다. 금장생은 처음엔 움찔했지만 아수수의 손을 치우지 않았다.
“더워요?”
금장생은 물었다.
“당신도 더워서 옷을 벗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금장생은 얼른 빙극천월강을 끌어 올렸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에 방 안이 금세 시원해졌다.
“역시 당신은 최고예요.”
아수수는 활짝 웃었다. 금장생의 몸이 시원해지자 이번에는 다리까지 올렸다.
“그 사람, 이길 수 있겠어요?”
“헌원소야요?”
“네.”
“강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본 무인들 중 가장 장자인 것 같아요.”
“나보다도?”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요.”
“그래도 내가 이길 겁니다. 왜냐면 내게는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맞아요. 내가 당신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니까 당신이 반드시 이길 거예요.”
가슴에 머물러 있던 아수수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가볍게 배를 쓸더니 단전까지 내려갔다. 그녀의 손은 거기서 잠시 멈췄다. 아수수는 시선을 들어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의 숨결이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아수수는 손을 쑥 밀어 넣었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아수수를 보았다.
“나는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입니다.”
“알아요.”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후회는 제가 안고 갈 거예요.”
아수수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순간 금장생이 아수수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입술을 맞췄다. 두 사람의 입이 벌어지면서 혀가 넘나들었다. 금장생의 손이 가슴 가리개 아래쪽으로 파고들어 가슴을 거머쥐었다. 아수수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수수의 입술을 떠난 금장생의 입술이 아래로 이동했다. 목을 지나고 가슴에 이르렀을 때 가리개가 떨어져 나갔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가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약간 처지긴 했지만 그 모양이 더욱 아름답다.
금장생은 급하게 얼굴을 묻었다.
그사이 아수수는 자유로운 양손으로 자신의 하의 속옷을 내리고 금장생의 옷을 벗겼다.
두 사람은 완벽하게 알몸이 됐다.
금장생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수수의 배는 심하게 요동쳤다. 신음도 점점 더 커졌다. 어느 순간 아수수의 허리가 튕겨졌다.
아수수는 부들부들 떨며 강렬한 쾌감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잠시 후 쾌감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수수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잡아당겨 입맞춤을 하며 두 다리로 허리를 감았다. 곧 육중하게 밀고 들어오는 금장생이 느껴졌다. 아수수는 금장생의 머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문득 이번엔 조금 전보다 더 큰 파도가 밀려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금장생이 방을 나선 건 자정이 일각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고개를 돌려 아수수를 보았다. 아수수는 상체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었다.
“정착할 때가 된 건가?”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수수 같은 여자라면 함께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금장생이 아니라 적천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건 차차 해결하면 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금장생은 자기 볼을 툭툭 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이 나간 순간 아수수가 반짝 눈을 떴다.
“풋!”
그녀는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슥!
바로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위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사미염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데?”
“근무 중이야.”
“언제부터 근무했는데?”
“원래 야간 근무는 밥 먹고 나서 하는 거야.”
“그럼 다 봤겠네?”
“처음도 아닌데 새삼스럽기는.”
사미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 정말 그럴 거야?”
아수수는 눈을 부라렸다.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내가 뭘 어쨌다고?”
“넌 이것아, 한 번 갔잖아.”
“뭘 갔다는 건데?”
“시집 말이야, 시집.”
“그래서?”
“한 번 갔으면서 또 가려는 건 반칙이라는 거지, 뭐겠어.”
“그러니까…….”
“나도 시집이라는 거 한 번 가 보자는 거야?”
“내가 너 시집가지 말라고 잡았어? 잡았냐고! 말리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가고 싶으면 가.”
“네가 양보를 해야 시집을 가든지 할 거 아냐.”
“양보?”
“나도 그 사람을 원해.”
“옴마야.”
아수수의 눈이 커졌다. 사미염이 직접적으로 금장생을 원한다고 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양보해.”
“이건 양보하고 말고 할 게 아니잖아.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거라고. 아니, 그 사람은 너나 나하고 함께 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조금 전에 한 말 못 들었어?”
“무슨 말을 했는데?”
“‘정착할 때가 된 건가?’라고 말했잖아.”
“그 사람이 정착하고 싶다고 했지 그 상대가 나라는 말은 안 했잖아.”
“네가 아니라는 거야?”
“그 사람하고 우리하고 나이 차가 얼마나 나는지 알아?”
“그거야 뭐…….”
“정신 차려, 이것아.”
“좀 심하긴 하네.”
사미염은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정말 저기 숨어 있었던 거야?”
아수수는 천장을 가리켰다.
“응.”
“나는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아수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미염이 간혹 들어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천장을 확인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금장생 옆에 눕기 전에 먼저 천장을 확인했다. 그때는 맹세코 아무도 없었다.
“내 은신술을 완성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너희들 둘이라는 것만 알면 돼.”
사미염은 욕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럼 천장에 숨어 있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야?”
“응.”
사미염은 욕실 앞에서 옷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지금 뭐 하는데?”
“너희들 때문에 푹 젖었거든.”
“젖어?”
“땀으로 젖었다고, 이것아.”
옷을 벗은 사미염은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벗으면 되지 밖에서 벗고 지랄이야.”
아수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가장 먼저 아수수 눈에 들어온 건 사미염의 엉덩이였다. 다른 건 자신이 앞선다고 자신하는데 엉덩이만큼은 사미염이 최고였다. 탄탄하면서도 전혀 처짐이 없는 엉덩이를 보자 공연히 질투가 났다.
‘그 사람 앞에서 엉덩이만 흔들어 봐라.’
아수수는 암팡진 얼굴로 욕실을 쏘아보았다. 잠시 후 사미염이 나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그녀는 알몸이었다.
“옷 안 입을 거야?”
“내 옷은 빨았어. 네 옷 하나만 빌려줘.”
“싫어.”
“그럼 이대로 있어야지 뭐.”
사미염은 침대로 와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러다가 그 사람 오면 어쩌려고 그래?”
“옷이 없는 걸 어쩌라고.”
“이걸 콱 그냥.”
아수수는 눈을 흘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더니 옷장으로 갔다.
“나도 네가 입고 있는 걸로 줘.”
“이건…….”
“아니면 그냥 벗고 있을래.”
“나쁜 년.”
아수수는 인상을 쓰더니 옷을 가지고 침대로 갔다. 사미염은 옷을 흘끔 보더니 한편으로 내려놓고 침대에 엎드렸다.
“옷 안 입어?”
“몸 좀 마르면 입을 거야.”
“너, 앞으로도 계속 올 거야?”
“응.”
사미염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