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80화 (380/524)

황금가 (380)

비무

“그렇네.”

헌원소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금제한 상태를 밝힐 생각을 한 건 완벽하지 못한 영혼 지배 마법 때문이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영혼 지배 마법이 잘 먹히지만, 목숨이 걸린 비무처럼 극한의 긴장 상태가 되면 자칫 영혼 지배 마법이 깨질 수 있다. 마법이 깨지는 걸로 끝나면 상관이 없는데 자신들이 금제당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럼 가주들은 분노할 테고, 설사 팔왕이 된다고 해도 협조는 물 건너간다고 봐야 한다.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밝히는 게 최선이었다.

“정말 고대의 마법이란 말이오?”

막거성이 물었다.

“그렇네. 영혼 지배 마법이라고 부르네.”

“그 마법으로 우리를 금제한 게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요?”

“아니네.”

“하면 이유가 뭐요?”

“중원무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였네.”

“우리가 말을 듣지 않을까 봐 마법으로 제압을 했다는 거요?”

“그렇네.”

“지금 밝히는 이유가 뭐요?”

“강제하기보다는 자네들 스스로 나와 함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네.”

“만일 무림을 통일하게 된다면 우리 자리는 있소?”

막거성은 머리가 나쁜 자가 아니었다.

설사 협조를 한다고 해도 헌원소야가 마법을 풀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협조할 건 협조하고 필요한 걸 얻어 내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금제를 풀기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무림은 자네들 다섯 사람에게 넘길 참이네.”

“하면, 화왕이 얻는 건 뭐요?”

“나는 북경을 원하네.”

“북경이면 설마, 황제 자리를 원한다는 거요?”

“그렇네.”

“그건 역몹니다, 화왕. 만일 일이 잘못되면 구족이 멸하게 됩니다.”

“자네들에게는 멸할 구족이 없는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그건…….”

막거성은 할 말을 잃었다.

헌원소야의 말이 맞다. 아들들이 죽고 나서 더 이상 피붙이는 남아 있지 않다. 친척이 있기는 하지만 친구보다 못한 사이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인이나 병사를 이끌고 황실로 쳐들어가겠다는 게 아니네.”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황제 얼굴은 그대로고 사람만 바뀌게 될 거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시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가능하네. 그리고 현 황제도 진짜가 아니네.”

“그게 무슨…….”

“팔왕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멸문한 삼사천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걸 기억하는가?”

“기억하고 있소이다.”

막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네.”

“어떤 걸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오?”

“나는 그들 세 명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네.”

“어디 있습니까?”

“황실이네.”

“지금 황실이라고 하였습니까?”

막거성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충격을 받은 얼굴로 헌원소야를 보았다.

“그렇네.”

“정말입니까?”

막거성은 다시 물었다. 그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친구를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네.”

“그, 그들이 친구란 말입니까?”

막거성을 비롯한 가주들은 더 이상 놀랄 경황도 없었다.

“우리 넷은 함께 컸네. 함께 무공을 배웠고. 그 당시 나는 그들이 신족이라는 걸 알지 못했네. 다만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자들로 생각했다네.”

“어쩌다가 그들과 헤어지게 됐습니까?”

“사부는 나를 가장 총애하였고, 모든 걸 내게 넘겨주고 싶어 했네. 그걸 눈치챈 그자들은 사부와 나를 해치고 모든 걸 앗아 갔네. 그들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는 데 백 년이 넘게 걸렸다면 믿겠는가?”

“그럼 저번 천왕지회 때 마왕에게 패한 게……?”

“그때도 부상에서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네.”

“지금은 나 나은 겁니까?”

“아직 부상 중이라면 자네들에게 영혼 지배 마법을 펼치지 못했겠지.”

“그럼 황제가 되려는 건 복수 때문입니까?”

막거성이 물었다.

“그렇네. 그리고 이제 난 할 말 다 했네. 자네들 대답만 남았네.”

“만일 우리가 거부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막거성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나는 나와 사부님을 살해하고 낭떠러지로 던져 버린 놈들을 반드시 단죄할 거네. 그들을 단죄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네.”

“영혼 지배 마법으로 우리를 부리겠다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자네들이 나를 믿고 도와준다면 중원을 넘겨줄 참이네.”

“만일 우리가 따른다고 하면 영혼 금제 마법을 풀어 줄 겁니까?”

“가족보다 더 믿었던 동기들에게 배신을 당한 나네. 내 입장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네.”

“풀어 주지 않겠다는 말이군요.”

“대신 무림 장악이 끝나면 반드시 풀어 준다고 약속하겠네.”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막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해 주겠는가?”

헌원소야는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헌원소야의 시선이 나머지 네 명에게로 향했다.

“협조하겠습니다.”

“협조하겠습니다.”

네 명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헌원소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행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화왕께서는 약속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그건 걱정 말게.”

“그런데 마왕과 해왕은 거두지 못한 겁니까?”

막거성이 물었다.

“그 둘은 자리에 없었네.”

“만나지를 못했다는 거군요.”

“그렇네.”

“그렇다면 비무에 대한 작전을 짜야겠군요.”

“작전은 이미 전했네. 그들을 보는 순간 떠오를 거네.”

“알겠습니다.”

막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휙!

헌원소야는 오른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슉!

붉은 광채 하나가 벽을 향해 폭사됐다.

퍽!

광채는 벽을 뚫고 밖으로 쏘아졌다.

스윽! 콰앙!

헌원소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싶은 순간 창문이 박살 났다. 고도의 축지성촌이었다. 창을 부수고 밖으로 뛰어나온 그는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재빨리 위아래를 살폈다. 하지만 지붕 위는 물론이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바람 소리를 착각한 건가?”

헌원소야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막거성이 창가로 와서 물었다.

“아니네.”

헌원소야는 고개를 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이목을 동원해서 외부를 감시했다.

“그만 일어나게.”

막거성 일행에게 말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외부 동정을 살폈다.

“쉬십시오.”

“혹시 마왕이나 해왕이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의하면서 가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다섯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그 건물 역시 다른 건물처럼 방 밖은 정원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소?

막거성은 혈사륵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가 혈사륵에게 전음을 보낸 것은 다른 가주들과 달리 혈사륵과 친분이 있어서였다.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 아니오?

―내가 궁금한 건 금제를 풀었을 때도 계속 따를 건지를 묻는 거요?

―방법이 있소?

―아직은 없소이다. 하지만 찾아보면 나올 것 같기도 하오.

막거성이 떠올린 사람은 무혼이었다. 어쩌면 무혼은 영혼 지배 마법을 해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 지배 마법이 풀린다고 해도 일단은 함께하고 싶소.

―우리에게 무림을 넘겨주지 않을 때 그와 싸워도 늦지 않다는 겁니까?

―그렇소.

―알겠소이다. 아무튼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오.

―알았소.

―내일 봅시다.

휙!

막거성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이어 다른 가주들도 은밀하게 몸을 날렸다. 그들이 떠나고 잠시 후 검은 인형이 나타났다. 안에서 밖을 지켜보던 헌원소야였다.

헌원소야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살피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헌원소야가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뭇가지에서 뭔가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허공으로 솟구친 물체는 폭포를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물체가 도착한 곳은 이호의 동굴이었다.

“접니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옥구였다.

“다쳤어?”

옆구리가 벌겋게 물든 옥구를 보며 이호가 물었다.

“라헬 장로는 역시 무섭더군요.”

옥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은신술을 알아차렸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완전한 상태인가 보네?”

이호는 신음을 흘렸다. 죄수들로부터 정보를 알아내려면 최고의 은신술은 필수다. 옥구가 옥사장이 된 이유도 신족 중에서 은신술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숨어 있는 걸 알아차린 라헬은 어쩌면 세 장로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때?”

“전왕, 사왕, 철왕, 혈왕, 암왕이 한팹니다.”

옥구는 그가 본 걸 자세하게 설명했다.

“영혼 지배 마법에 당했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르기로 했다는 거냐?”

“네.”

“배알도 없는 자식들.”

“이렇게 되면 이간질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자들이 마가와 혈가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오늘 밤 혈가를 공격해서 이십여 명만 없애.”

“알겠습니다.”

옥구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이십여 명이 날개를 펼쳐 혈가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 * *

“아악!”

놀람에 찬 비명이 혈가를 깨웠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시녀였다. 시녀의 비명에 혈가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헉!”

“억!”

그들의 눈이 커졌다. 선혈이 낭자한 방 안에는 혈가 무인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어서 가서 혈왕께 보고해.”

가장 직급이 높은 자가 수하를 향해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무인은 황급히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앞 건물에 있던 다이라토미가 현장으로 왔다.

“이건?”

다이라토미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그의 시선이 총수사 묘한에게로 향했다. 먼저 와서 조사를 한 듯 그의 장포 자락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마갑니다.”

“마가?”

“네.”

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가라는 증거가 있느냐?”

“대원 중 한 명이 단서를 남겼습니다.”

“어디냐?”

“이쪽입니다.”

묘한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멈춰 선 곳에는 대원 한 명이 엎드려 있었다. 집게손가락으로 뭔가를 써 놓았는데 팔八 자였다.

“우리 중 팔 자로 시작한 조직은 없다, 묘한.”

“팔 자로 시작한 조직은 없지만 직위는 있습니다.”

“직위?”

“이곳 천년곡은 우리 팔왕가만 아는 장소고 팔왕가 무인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그렇다면 우리 대원을 살해한 자들 또한 우리들 중 한 곳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들 중 팔八 자를 별호로 사용하는 자는 한 명뿐이고요.”

“팔왕이란 말이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