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79)
“말씀하시오.”
나박은 헌원소야를 보았다.
“비무에 사용하는 무기에는 제한을 둘 건지, 그걸 알고 싶소?”
“무기에 대한 제한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나박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헌원소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검이나 도, 창처럼 일상적인 무기 말고 특수한 무기를 말하는 거요.”
“제가 생각하는 무기는 무인의 무공을 극대화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화왕께서 말한 특수한 무기가 그런 종류라면 그게 어떤 형태라도 상관없다는 게 공식적인 제 답변입니다.”
“다른 왕들의 의견도 듣고 싶소.”
헌원소야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 것은 나중에 다른 말을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저자가 무슨 무기를 숨겨 두었기에 저러는 거지?
무혼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무기라면 저렇게 확인할 필요 없겠지?
―그렇겠지요.
―저자도 타이탄을 가지고 있을까?
―신족이니까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한 무기가 철갑거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이중 삼중으로 다짐을 받을 필요가 없겠지.
―반대해 버릴까요?
금장생은 물었다.
―반대할 근거가 있어?
―보여 달라고 하죠, 뭐.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자식아. 그걸 보여 달라는 건 이번 비무를 위해 은밀하게 익힌 무공이 어떤 건지 가르쳐 달라는 것과 같은 말이잖아.
―그건 안 되겠죠?
―당연히 안 되지.
―그럼 찬성할 수밖에 없겠네요.
금장생은 나박을 보았다.
“팔왕께서는 반대하십니까?”
나박이 물었다.
“반대하는 게 아니라 비무할 때 어떤 걸 사용하더라도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상관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팔왕비무는 가주 자신은 물론이고 가솔들의 생사여탈권이 달려 있습니다. 즉, 새롭게 선출될 팔왕에게 목숨을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과 가솔의 인생이 걸린 비무에서 어떤 규칙 때문에 가진 걸 다 꺼내 놓지 못한 채로 패한다면 과연 그 패배를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겁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붓고 나서 패했을 때 비로소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걸 꺼내 놓는다고 해도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무혼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래야 뒷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타이탄을 동원해도 된다는 거야?
―이제 괜찮지 않을까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비무 규칙에 대한 건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지금부터 추첨을 통해 비무 상대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휙!
나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가 진영에서 두 명이 커다란 솥을 들고 호수 가운데로 갔다. 마자홍과 마광추 부자였다.
척!
두 사람은 수면을 밟고 섰다.
“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무거운 물체를 들고 수면 위에 선다는 건 두 사람이 그만큼 강자라는 걸 뜻하기 때문이었다.
호수 중앙에는 수면과 같은 높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지름이 두 자 정도 되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마자홍과 마광추 부자는 솥을 그 위에 놓았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저 솥 안에는 일 번부터 팔 번까지 새겨진 패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호명하는 왕께서는 솥 앞으로 가서 패를 하나씩 꺼내서 서시면 됩니다. 먼저 팔왕께서 가장 먼저 뽑겠습니다.”
나박이 소리치자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을 찼다.
허공을 난 그는 호수 가장자리 물 위로 내려섰다.
마가 진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와!”
“대단하네.”
“역시!”
물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금장생을 보며 팔왕가 가솔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솥단지 앞에 선 금장생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솥 안에서 검은색 주머니 하나가 솟구쳐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주머니의 길이는 한 자였다. 금장생은 주머니를 잡아챘다. 번호가 새겨진 패는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다.
“다음은 화왕입니다.”
나박의 말이 떨어지자 화왕이 나왔다. 그 역시 호수 가장자리에서 수면을 밟고 걸어가 허공섭물로 검은색 주머니를 꺼냈다. 그가 선 자리는 금장생의 반대편이었다.
“세 번째는 전왕입니다.”
나박의 호명에 막거성이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몸을 날려 솥이 있는 곳으로 내려섰다. 그가 내려선 곳은 동쪽이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허공섭물을 펼쳤다.
휙!
솥 안에서 주머니 하나가 솟구치더니 막거성에게로 날아갔다.
척!
막거성은 주머니를 낚아챘다.
“네 번째는 해왕입니다.”
나박이 소리치자 무혼은 걸음을 옮겼다. 그도 앞선 두 사람이 보여 준 신법으로 물 위를 걸어 솥 앞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손을 가볍게 내밀었다. 솥 안에서 솟구친 검은색 주머니가 그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섯 번째는 사왕입니다.”
나박의 호명에 태양제 혈사륵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의 손에도 자루가 들렸다.
혈사륵에 이어 철왕 최중헌, 혈왕 다이라토미, 암왕 유가람이 차례로 주머니를 뽑았다.
“주머니 확인은 역순으로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유가람이 주머니를 열고 패를 꺼냈다. 안에서 나온 패는 두 개였다.
패를 확인한 유가람은 오른편과 왼편을 향해 동시에 던졌다.
척! 척!
허공을 날아간 패는 양쪽 건물 처마 바로 아래쪽에 마련된 특이한 형태의 틀로 쑥 들어갔다.
“이 번이다!”
패를 확인한 가솔들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다음엔 혈왕 다이라토미가 주머니를 열고 패를 꺼내 좌우로 던졌다.
“사 번이다.”
가솔들은 다시 소리쳤다.
“철왕께서는 패를 공개해 주십시오!”
나박이 말하자 최중헌은 주머니를 열고 패를 꺼내 확인한 후 좌측과 우측으로 던졌다. 그의 패가 자리한 곳은 다이라토미 옆자리로 삼 번이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결정됐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최중헌이 포권을 취했다.
“부탁은 내가 드려야지요.”
다이라토미는 마주 포권을 취했다.
“사왕께서는 패를 공개해 주십시오.”
네 번째로 태양제 혈사륵이 주머니를 열고 패를 꺼냈다. 그리고 좌우로 던졌다.
척! 척!
“육 번이다!”
사가 무인들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해왕은 패를 공개해 주십시오.”
나박의 호명에 무혼은 주머니를 열었다. 그의 패에 적힌 숫자는 오 번이었다.
무혼은 먼저 오른편으로 하나를 던지고 나머지 하나를 왼편으로 던졌다.
“사왕 옆이다!”
가솔들은 크게 소리쳤다.
“잘 부탁드리오.”
무혼은 혈사륵에게 포권을 취했다.
“천만에요. 부탁은 오히려 내가 드려야지요.”
혈사륵은 싱긋 웃었다.
무혼이 정통 중원 무인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쉽게 보는 듯 혈사륵의 얼굴은 편해 보였다.
“내가 해 볼 만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군요?”
무혼은 혈사륵을 빤히 보며 말했다.
“진짜 중원 무공이 어떤 건지 보여 드리겠소.”
“기대되는군요.”
무혼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왕께서는 패를 공개해 주십시오.”
두 사람이 이야기가 끝나자 나박이 소리쳤다.
막거성은 자신의 주머니를 개봉했다.
“팔 번이오.”
그는 나직하게 소리치고는 패를 던졌다. 그의 패는 팔 번 자리로 가 안착했다.
“화왕께서는 패를 확인해 주십시오.”
헌원소야는 그의 주머니를 열었다.
“전왕께서 운이 없구려.”
그는 빙긋 웃고는 패를 던졌다. 그의 패는 칠 번 자리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마침내 함성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모두 막강한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을지 나쁠지는 비무가 끝나 봐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막거성은 포권을 취했다.
“팔왕께서는 패를 확인해 주십시오.”
금장생은 자루를 열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자리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패를 좌우로 던졌다. 그의 패는 일 번 자리로 들어갔다.
금장생, 유가람.
최중헌, 다이라토미.
무혼, 혈사륵.
헌원소야, 막거성.
각자가 뽑은 비무 상대였다.
“첫 비무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개 조씩 치르고 이차전과 최종전은 하루에 한 번씩 진행됩니다. 오늘 행사는 여기까집니다. 내일 아침 비무 때까지 자유롭게 쉬도록 하십시오.”
나박의 말이 끝나자 모두 일어났다.
* * *
휙!
검은 인형이 어둠을 뚫고 몸을 날렸다. 빠르게 달려가는 이자는 전가의 가주 막거성이었다.
막거성이 혼자 몸을 날려 가는 건 느닷없이 들려온 절대 명령 때문이었다.
잠시 후 막거성이 도착한 곳은 화가 건물 사 층이었다.
“들어와라!”
그가 도착하자 헌원소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화왕, 사왕, 철왕, 혈왕, 암왕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막거성은 헌원소야를 보았다.
“앉아라.”
헌원소야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네.”
막거성은 자리로 가 앉았다.
“내가 너희들을 부른 건 내일부터 시작될 비무에 대해 말을 하기 위해서다.”
“말씀하십시오.”
다이라토미가 말했다.
“유가람과 혈사륵, 너희 둘은 목숨을 걸어라.”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유가람과 혈사륵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최중헌, 너는 다이라토미에게 양보하되 최대한 힘을 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최중헌은 고개를 숙였다.
“모두 나를 보아라.”
헌원소야는 나직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영혼 지배 마법을 발동한 목소리였다.
다섯 명은 강시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 상태에서 헌원소야는 영혼 지배 마법을 풀었다.
“어?”
“억!”
“이건?”
각 가주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다 이내 의아한 얼굴로 헌원소야를 보았다. 헌원소야는 말없이 각 가주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다섯 명은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윽고 그들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다.”
헌원소야는 영혼 지배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다섯 명의 몸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헌원소야는 영혼 지배 마법을 풀었다.
“으음!”
“음!”
각 가주들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다섯 명은 자신들이 헌원소야에게 완벽하게 제압당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살기를 흘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처지를 확실하게 인식한 탓이었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압당한 상태라면 자결하라고 명령을 내려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게 분명했다. 즉, 헌원소야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들을 없애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금은 무작정 흥분할 때가 아니라 헌원소야의 말을 들어야 할 때였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가?”
“우리를 제압한 거요?”
막거성이 물었다.
“그렇네.”
헌원소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름 강하다고 자부해 왔소. 그리고 생각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강하기도 하오.”
언제 제압했느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전왕, 자네보다 더 강하네.”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제압한 거요?”
“내가 자네들을 제압한 건 고대의 기술인 마법이네.”
“마, 마법이라고요?”
일행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