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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77화 (377/524)

황금가 (377)

팔왕령

일행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강호 정세에 대한 본격적이 이야기가 나온 건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면서였다.

“춘추오패가 무림 장악을 시도할 거란 정보를 입수했는데 아는 사람 있소?”

헌원소야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나도 들었소이다.”

헌원소야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나온 자는 혈가의 가주 다이라토미였다.

“혈왕이 들은 건 어떤 거요?”

“춘추오패를 세운 자들은 무림십패가 아니라 초인삼황이란 말과, 초인삼황이 춘추오패를 이용해서 강호를 장악하려 한다는 거요.”

“내가 파악한 것과 같구려.”

―쟤들 뭐 하는 거지?

헌원소야와 다이라토미가 말하는 걸 지켜보던 무혼이 바타르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저자들은 주종 관계다.

―누가 주인인데?

―헌원소야다.

―저놈 혼자인 것 같지 않지?

무혼은 턱으로 다이라토미를 가리켰다.

―우리와 장생 저 녀석만 빼고 모두 저놈의 노예가 됐다.

―이번에도 역시 정신 속박 마법이냐?

―그렇다. 하지만 척사랑이 걸린 정신 속박 마법보다 훨씬 약하다.

―네 마법으로 풀 수 있다는 거냐?

―굳이 내 마법이 아니더라도 저자가 죽으면 풀린다.

“그럼 우리도 그들과 전쟁을 준비해야겠군요.”

철가의 가주 군자마검君子魔劍 최중헌이 말했다.

“어떻게 준비를 한다는 겁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준비에 대한 걸 언급하기 전에 초인삼황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하오.”

헌원소야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백 년 전에 활동했던 무인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금장생이 말했다.

“그건 그들의 겉모습일 뿐이오.”

“진짜 모습은 따로 있다는 겁니까?”

금장생은 모른 척 물었다.

“그렇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전란의 시대’를 아시는 분 있습니까?”

“각 가문의 가주는 모두 알고 있을 거요.”

사가의 가주 태양제太陽帝 혈사륵이 말했다.

“그럼 설명 없이 바로 말해도 되겠군요. 그들 세 명은 우리에게 패해 사라졌던 신족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혈사륵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렇소. 그들은 신족 사장로 중 세 명이오.”

“정말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겁니까?”

“이건 내가 그동안의 조사를 통해 알아낸 거니까 믿어도 좋소.”

“그자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삼사천가라고 들어 봤소?”

“과거 삼사를 지냈던 세 사람이 세운 가문이라고…… 혹시 그들이?”

“맞소, 사왕. 그 삼사천가 가주 세 명이 바로 초인삼황이고 신족 사장로 중 세 명이오.”

“세상에…….”

일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들은 멍한 얼굴로 헌원소야를 보았다.

“내가 알기론 삼사천가는 얼마 전 황실의 공격으로 인해 멸문했다고 하던데…….”

금장생은 슬쩍 떠보았다.

헌원소야가 초인삼황 중 심무극이 황제가 됐다는 사실을 일행에게 어떻게 말할지 궁금했다.

“오! 팔왕은 그 사실을 알고 있구려. 초인삼황이 자기네들이 기른 춘추오패를 이용해 무림을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오.”

“그 때문이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의밉니까?”

“그들은 먼저 무림을 통일한 후 황실도 장악할 생각이오.”

“아!”

듣고 있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금장생은 내심 피식 웃었다. 초인삼황 중 치천검황 심무극이 황제가 됐다는 사실을 밝히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는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하더니 그 말이 꼭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아니, 저자는 늙은 생강 정도가 아니라 수천 년 먹은 생강이지.’

“그런데 그 사실을 화왕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금장생은 다시 질문을 했다. 이번 질문 역시 헌원소야가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그건…….”

헌원소야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이건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황실에 밀정이 있소.”

“황실에 밀정이 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황제가 삼사천가를 공격한 이유가 바로 그들의 정체를 알았기 때문이라는 거요, 팔왕.”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헌원소야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받아친다.

역시 대단한 자가 분명하다.

“그럼 초인삼황의 표적은 우리가 되겠군요.”

다이라토미가 말했다.

“우리를 표적으로 삼을지 삼지 않을지 알 수는 없소. 하지만 무림을 통일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와 부딪칠 수밖에 없소. 그래서 우리도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오.”

“어떻게 대비를 하자는 겁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팔왕의 권한 강화요.”

“흠!”

각 가문의 가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시오?”

헌원소야는 물었다.

“권한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로 한정한다면 동의합니다.”

가장 먼저 금장생이 찬성표를 던졌다.

“팔왕의 의견에 동의하오.”

이어 무혼이 찬성표를 던졌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나머지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팔왕의 권한은 어느 선까지 하길 바라오?”

무혼이 물었다.

“과거 우리가 이방인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팔왕에게 모든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오.”

헌원소야가 대답했다.

“생사여탈권을 주자는 거요?”

무혼이 물었다.

“그렇소.”

헌원소야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사여탈권까지 주는 건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내가 춘추오패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겁니까?”

금장생은 꺼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했다.

“우리가 상대하는 자는 춘추오패가 아니고 신족 장로들이오, 팔왕. 모든 걸 내놓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가 없소.”

헌원소야는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 사안은 우리끼리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상의를 한다는 거요?”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내려면 가솔들도 알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차기 팔왕에게 팔왕가 소속 모든 무인의 생사여탈권을 주자는 의견에는 찬성하는 거요?”

헌원소야는 금장생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가솔들이 반대하면, 나는 팔왕가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찬성하지 않을 겁니다.”

“좋소. 그럼 이 사안은 내일 점심때 다시 논의하는 걸로 합시다.”

“그럽시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모두가 나가고 실내에는 금장생과 무혼만 남았다.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은데, 내 느낌이냐?”

무혼은 금장생을 빤히 보며 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금장생은 헌원소야에게 전권을 넘길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헌원소야가 마가 무인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둬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오히려 차기 팔왕에게 더 강한 권력을 쥐여 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왕 하나가 되려면 맨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완벽하게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변했다는 뜻이구나.”

“그자에게 모든 걸 넘기기에는 팔왕가의 힘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자가 나머지 장로와 손을 잡아 버릴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요.”

“잘 생각했다.”

무혼은 활짝 웃었다.

“하지만 마가 가솔들이 반대하면 없었던 일로 할 겁니다.”

“가주가 결정하면 따라야 하는 거 아냐?”

“그건 진짜 가주들에게나 통용되는 거고요. 난 아닙니다.”

“아무튼 잘했다.”

무혼은 금장생의 어깨를 툭 쳤다.

잠시 후 무혼은 그의 처소로 돌아갔다.

금장생은 사 층으로 올라갔다.

“심각한 일인가요?”

금장생의 얼굴이 약간 굳어 있는 걸 발견한 아수수가 물었다.

“그자가 차기 팔왕에게는 전 가문의 생사여탈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떤데요?”

“생사여탈권을 준다는 건 내가 가진 모든 패를 꺼내 보여야 한다는 걸 뜻합니다.”

“만일 그자가 팔왕이 되면 어떻게 되죠?”

“우리 마가와 해가는 늘 최전방에서 싸워야 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희생도 가장 많을 거고요.”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일단 가솔들의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가솔들이 반대하면 팔왕가 모임에서 탈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 않겠다고 했고요.”

“당신보다 우리 의견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네.”

“당신은 우리 마가의 가주예요. 가솔은 가주의 결정을 따라야 하고요.”

“전적으로 제게 맡기겠다는 겁니까?”

“네.”

“……팔왕이 돼야겠습니다.”

금장생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전엔 그자에게 맡기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생사여탈권 때문인가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바뀌었다는 거죠?”

“가솔들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면 다른 누군가의 명령보다 제가 직접 명령을 내리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당신이 팔왕이 되든 이인자 자리에서 팔왕을 따르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괜찮아요.”

“선택을 하지 않고 팔왕가를 탈퇴해 버리면 마가는 희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팔왕가를 탈퇴하면 나머지 가문이 가만있을 거라고 보세요.”

아수수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그건…….”

금장생은 아니라고 선뜻 말하지 못했다.

중원무림을 놓고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중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편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 공격받지 않을 거라는 건 아주 순진한 생각이다. 누가 승자가 되든 마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전쟁 중에 혹은 전쟁이 끝난 후에 살아남으려면 어딘가에 속해야만 한다.

“소속이 없으면 가장 먼저 당하거나 전쟁이 끝난 후에 당하게 될 거예요. 그렇죠?”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라는 건 한 가지뿐이에요.”

“어떤 겁니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전쟁에서 죽게 될 마가 가솔들의 죽음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솔들의 죽음을 가치 있게 해 달라는 건 팔왕이 돼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아수수는 다시 금장생을 보았다.

“말씀하세요.”

“팔왕이 되려는 진짜 이유는 말해 주지 않을 건가 보죠?”

“지금은 그자 때문이라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자면 헌원소야를 말하는 건가요?”

“네.”

“헌원소야는 잠마이면서 신족 사장로 중 한 명이라고 했죠?”

“그리고 상천금가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자가 헌원소야인가요?”

“그와 혈가의 가주 두 사람입니다.”

“팔왕이 되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복수라는 뜻이네요?”

“아니라고 하진 못하겠습니다.”

“황금전가 복수와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군요.”

“…….”

금장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나는 진작부터 당신에게 마가를 맡겼어요. 당신의 결정이 곧 마가의 결정이에요.”

아수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점심 때 팔왕가의 가주들은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내가 준비한 건 이거요.”

헌원소야는 손바닥 크기의 둥근 패 하나를 탁자 위로 놓았다. 패의 전면에는 팔왕령이란 글이 양각돼 있었다.

“뭐요?”

무혼이 물었다.

“팔왕가의 지존을 나타내는 팔왕령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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