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72화 (372/524)

황금가 (372)

천사련, 지마련

마차의 바타르 일행도 싸움이 끝나 있었다.

부서진 철갑거인 열 기가 마차 주변에 너부러져 있었다.

“언니는 괜찮아요?”

무혼이 다가가자 태월령이 물었다.

“무림십패 일인인데 걱정하는 게 더 우습지.”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하기란 쉽지 않다고요.”

“그쪽으로 왔던 적을 다 없애고 떠났다.”

“떠나요? 어디로?”

태월령의 눈이 커졌다.

“정신 속박 마법을 건 자가 누군지 확인하러 개봉으로 갔다.”

“만날 장소가 개봉이래요?”

“맞아.”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완벽하게 해소시켰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혼.”

바타르가 우려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건 척사랑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갔다고요?”

이번엔 태월령이 물었다.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그 말만 믿고 보내 준 거예요?”

“어떤 자가 정신 속박 마법을 걸었는지 나도 궁금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만일…….”

태월령은 바타르를 보았다.

“마법을 걸었던 자가 풀렸다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정신 속박 마법을 걸게 되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노, 노예가 된다는 거예요?”

태월령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맞다. 하지만 평소엔 자신이 노예가 됐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생활한다. 그러다가 마법을 건 자가 마법 시동어를 말하면 그때부터 철저하게 그자의 명령만 따르게 된다.”

“어느 정도로 따르죠?”

“자살을 하라고 명령하면 바로 자기 목을 잘라 버린다.”

“세상에.”

태월령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정신 속박 마법이 그렇게까지 강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

“어떤 조건이죠?”

“우린 그걸 정신적 백지상태라고 부른다.”

“정신적 백지상태라는 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란 가족이나 연인을 말하는 건가요?”

“맞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의 행복이다. 즉,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자는 정신 속박 마법에 저항하는 힘이 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처음 정신 속박 마법을 걸 때는 어떤 상태라야 하죠?”

“정신적 공황 상태일 때가 가장 좋다.”

“정신적 공황 상태라면?”

“방금 말한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사람들이 죽었을 때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다면 언니는…….”

“가족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

“마, 맞아요.”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척사랑에게 부모님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척사랑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만 했을 뿐 더 이상 말해 주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에서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 아이가 철이 들었을 때 죽었을 게다. 부모는 물론이고 형제들까지 모두. 자기 혼자만 남겨 두고 가족이 몽땅 죽어 버리면 남은 사람은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때 정신 속박 마법을 걸면 백이면 백 완벽하게 걸려들게 돼 있다.”

“그렇다면 사랑 언니의 가족은 살해당했을 수도 있겠군요.”

“정신 속박 마법은 열에 아홉은 그런 과정을 거친다.”

“왜,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너무 놀란 태월령은 말을 더듬었다.

“그 아이는 아직 마흔 살도 되지 않았는데 중원에서 가장 강한 무인 열 명 중 한 명이 되지 않았느냐.”

“인재를 얻기 위해서란 말이군요.”

“너도 세상을 더 살아 보면 알겠지만 뛰어난 자들은 언젠가는 키워 준 사람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어떤 자는 본인의 의지로 떠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변에 있는 자들이 떠받들어 세상으로 나가게 되지. 그리고 조직을 세워 그 세력의 수장이 된다.”

“춘추오패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세력이라는 건가요?”

태월령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마도 정신 속박 마법을 건 자가 약간의 도움은 주었을 게다. 하지만 칠 할 이상은 춘추오패 수장의 능력이었을 게다.”

“도대체 그런 짓을 해서 세력을 만드는 자는 얼마나 뛰어나야 하는 거죠?”

“그런 방법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자가 사용할 수 있다는 건데요?”

“자기가 뿌린 씨앗이 커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다.”

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인간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세월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세, 세월이라고요?”

태월령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

“수명이 아주 긴 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말이군요.”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인간이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자기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기는커녕 나무가 되기도 전에 수명이 다해 자기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적어도 인간보다 몇 배 더 사는 존재들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 같았으면 그런 존재가 어디 있냐며 코웃음 쳤겠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믿는다. 눈앞에 있는 바타르만 해도 수천 살이 넘었고 무혼이란 자도 수천 년 된 사람이라고 하였다.

아니 언데드라고 부르는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공격하여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수천 년을 사는 게 무슨 대수일까.

이 세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하였던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아울러 자신이 딱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게 세상이었다.

“언니는 뭐라고 하면서 가던가요?”

태월령은 무혼을 보며 물었다.

“자기에게 정신 속박 마법을 건 자가 궁금하다고 하더구나.”

“그게 다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냐?”

“바타르 님으로부터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단 말이냐?”

“어쩌면 언니는 자신에게 정신 속박 마법을 건 자가 부모님을 해친 원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어. 그건 아닐 거야.”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였다면 구실이니 뭐니 하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각주님 말처럼 그랬으면 좋겠네요.”

태월령은 우려 어린 얼굴로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생포한 녀석 있어?”

무혼은 바타르를 보며 물었다.

“있다.”

“질문은?”

“그런 건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지.”

“귀찮다는 말?”

“인간이 할 일이지 우리 드래곤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 있는데?”

“저기 마차 옆에.”

바타르는 마차를 가리켰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무혼은 주육승을 보았다.

“절반이 당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묻어 주고 부상자는 치료해 줘. 치료는 바타르 네가 맞아.”

“나보고 인간을 치료하라는 거냐?”

바타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인간이 아니고 천왕지회에서 바타르, 네 수발을 들 자들이야. 저들이 없으면 너는 음식도 직접 가져다 먹어야 하고, 세탁물도 직접 가져다줘야 해. 그런 거 혼자 할 수 있으면 치료하지 않아도 돼.”

“움직일 수 있도록만 치료해 줄 거다.”

바타르는 환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를 지켜보던 무혼은 마차 옆으로 갔다.

포로로 잡힌 자는 암흑신족이면서 암흑마족인 아르카를 따랐던 바살라였다.

바살라는 단전이 파훼된 상태였다.

무혼은 바살라를 살폈다. 키는 팔 척에 가깝고 피부는 짙은 갈색이다. 커다란 눈, 코, 입은 중원인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하다.

무혼은 바살라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궁금한 건 아니고 호기심 때문에 질문을 하는 거야. 대답해도 되고 그냥 죽는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게.”

“묻는 말에 대답하면 살려 줄 거냐?”

바살라는 물었다.

“그러지 뭐.”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질문해라.”

“먼저 이름과 신분을 알고 싶어.”

“이름은 바살라고 아르카 님의 최측근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

“아르카 님을 알려면 버려진 자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아.”

무혼은 바위를 하나 가져와 바닥에 놓고 걸터앉았다.

“전란의 시대를 아느냐?”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넘어온 다섯 종족과 그들이 노예로 부리던 중원인들과 전쟁을 일컫는 말이라고 들었어.”

“맞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버려진 건 전쟁의 승기가 우리 쪽으로 기울었을 시기였다. 승기가 보이자 각 부족은 승리하고 난 다음을 생각했고 수뇌들은 권력 암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쪽은 우리 신족이었는데 사장로 중 라헬이 주도하여 신족의 왕 루하를 내쫓았다. 하지만 그 일을 빌미로 세 장로의 협공을 받아 라헬 또한 추방되고 만다. 라헬을 추방한 세 장로는 이번엔 우리, 즉 전천사족을 추방했다. 추방할 때 우리가 지녔던 모든 능력을 제거했다.”

“전천사면 신족 중에서 가장 강한 자들인가 보지?”

“그렇다.”

“마족이나 엘프, 드워프, 인간도 같은 상황이었어?”

“맞다. 그들도 먼저 축배를 들고 나중에 해가 될 소지가 있는 자들을 추방했다. 그래서 우린 함께 살게 됐다.”

“수천 년 동안 안 나올 걸 보면 나올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나온 거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살 곳이 없어서였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누군가가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는 말이네?”

“맞다.”

“그들이 누군데?”

“세 장로다.”

“세 장로면 너희들을 내쫓았던 자들 아냐?”

“맞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원수지간인데 세 장로가 지시한 걸 따른다는 건…… 속셈이 있다는 거네.”

무혼은 빙그레 웃었다.

“으음!”

바살라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니들이 순순히 협조한 이유를 알고 싶은데.”

“우린 햇빛을 보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바살라는 아르카로부터 엘에 대해 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는 극비 사항이라고 하였다. 그걸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네가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고문을 해야 하고, 그럼 피차 서로 피곤해져. 그리고 네가 숨기니까 점점 더 알고 싶어져.”

무혼은 바살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정말이다. 우리가 세 장로의 제안을 수락한 건 정말 제대로 한번 살아 보고 싶어서였다.”

“좋아. 믿어 줄게. 암흑부족은 다 나온 거야?”

“전사들만 나오고 가족은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

“전부 몇 명이나 되는데?”

“모두 삼천 명이다.”

“많네. 좋아.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 세 장로 말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지?”

“세 장로는 그러니까 그들은…… 커억!”

바살라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들은…… 크아악!”

퍼억!

바살라의 머리가 폭발했다.

“이런.”

무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바살라에게 어떤 금제가 심어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조금 전에는 망설이는 걸로 여겼다.

“무슨 일이냐?”

바타르가 다가오며 물었다.

“신족의 세 장로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저 모양이 됐어.”

“세 장로의 신분이나 위치에 대한 건 금제를 걸어서 보호해야 할 정도로 극비 사항인가 보구나.”

“그런 것 같아.”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한 금제라면 내가 있었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자책하지 마라.”

바타르는 무혼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자책할 거라고 생각해?”

“지금 자책하고 있는 거 아니었냐?”

“앞으로도 계속 올 건데 자책은 무슨…….”

무혼은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다. 앞으로도 또 올 테고, 궁금한 건 그때 물어보면 된다.

“그렇군.”

바타르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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