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70)
돌아와야 할 이유
창! 창창!
어둠 속에서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억!”
“크윽!”
“으윽!”
이윽고 나직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 적을 없애고 다니는 사람은 무혼이었다.
척!
무혼은 바위 옆으로 내려서자 자세를 낮췄다.
그는 천리지청술을 펼쳐 척사랑을 찾았다. 그가 호수에 도착했을 때 척사랑은 보이지 않고 살기만 사방에 깔려 있었다. 적을 없애면서 척사랑을 찾았다. 지금까지 없앤 적의 수는 열다섯 명이다. 하지만 아직 척사랑은 찾지 못했다.
‘어디 있느냐?’
“컥!”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무혼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빠른 속도로 몸을 날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조금 전 비명이 들려왔던 곳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주위에는 모두 다섯 명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가 척사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무혼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앗! 파앗! 파앗!
무혼이 모습을 드러내자 네 명이 몸을 날렸다. 무혼을 향해 몸을 날리는 자들은 드워프와 엘프가 각각 한 명, 인간이 두 명이었다.
차르르!
감아 넣었던 수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차하!”
무혼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곧 수라가 전방에 진득한 살기를 쏟아 냈다. 수라도법 일 초인 수라멸우였다.
네 명 또한 자신들의 무공을 펼쳤다. 드워프는 부법斧法을 펼쳤고 엘프와 인간들은 검술을 펼쳤다.
창! 창창! 창!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억!”
붉은 운무 속에서 다급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무혼의 수라에 의해 네 명의 무기가 잘려 나가 버린 것이었다. 무기를 잘라 낸 수라는 네 명의 몸통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크아악!”
“아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잘려 나간 몸통 조각 십여 개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각주!
무혼은 마지막 하나 남은 흔적으로 향해 전음을 보냈다.
―네.
척사랑의 대답이 들렸다.
―다친 덴 없어?
무혼은 물었다.
―없어요.
―이쪽으로 와.
―갈 수 없어요.
―왜?
―그게…….
척사랑은 말끝을 흐렸다.
―그럼 내가 갈게.
무혼은 척사랑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척사랑이 있는 곳까지 거리는 십 장이었다.
척사랑은 나무 넝쿨 아래 누워 있었다.
‘끙!’
무혼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척사랑은 알몸이었다. 낙엽을 긁어모아 대충 가린다고 가렸는데 그녀의 몸은 애초에 그런 것들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시선이 미치는 가슴 쪽은 낙엽이 조금 올려져 있지만 하체 쪽은 거의 없었다.
―이제 아셨어요?
―옷 입을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구나.
―갑자기 들이닥쳐서요.
―옷은 지금 어디 있지?
―호수 앞에요.
파앗!
느닷없이 척사랑이 바닥을 차며 벌떡 일어나더니 무혼 옆으로 쏘아져 갔다. 무혼을 지나친 척사랑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다.
순간 그녀의 손에서 검은색 검강이 튀어나와 전방을 찢어발겼다.
“컥!”
“큭!”
“윽!”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죽여라!”
무혼과 척사랑이 모습을 드러내자 숨어 있던 적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짙은 갈색 피부를 가진 그들은 굳이 은신술을 펼치지 않아도 어둠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혼이 척사랑 옆으로 몸을 날렸다.
“타하!”
바로 그때 척사랑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손이 붉은색 검탄강기를 뿌려 놓았다. 그러자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 머리가 허공에 나타났다. 드래곤 머리는 가공할 기세로 적을 도륙했다.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닫을 때마다 적의 몸통이 싹둑싹둑 잘렸다. 빙하공룡광무의 중삼식 중 일 식에 해당하는 공룡혈사파였다.
“커억!”
“크윽!”
“윽!”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차하!”
그녀에 이어 무혼의 입에서도 기합이 터져 나왔다. 곧 그의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수라도법 이 초인 수라폭우였다. 수라폭우는 말 그대로 붉은 강기의 소나기였다. 사방에서 작렬한 강기로 이루어진 소나기는 달려드는 자들을 조각조각 잘라 냈다. 무혼 앞쪽 오 장은 완전히 초토화돼 아무것도 없었다.
“하아!”
무혼의 공격이 끝나자 척사랑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후!”
무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척사랑의 뒷모습은 이곳이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전쟁터란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대단했다.
“빨리 안 오고 뭐 해요?”
“알았다.”
무혼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척사랑 곁으로 가며 수라도법을 펼쳤다. 무림십패의 일인과 천마, 잠마와 함께 활동했던 수라의 무공을 익힌 무혼의 무위는 엄청났다. 어둠의 힘으로 무장한 드워프와 엘프와 인간이 두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아니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정면 대결로는 무혼과 척사랑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암흑부족들은 숨어서 공격하는 걸로 방법을 바꿨다. 그러자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주위에서 풀벌레 소리가 흘러나왔다.
풀벌레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연에 완전하게 동화돼 버린 탓이었다.
이런 완벽한 은신술은 무혼도 처음이었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마법으로 은신술을 펼치는 어쌔신을 적잖이 겪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은신술만큼은 최강인 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요.
먼저 몸을 날린 사람은 척사랑이었다.
그녀는 비호처럼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녀가 몸을 날리자 곧바로 반격이 이어졌다. 어둠이 불쑥불쑥 나타나 공격을 해 온 것이었다.
차앙!
스악!
“커억!”
창!
슉!
“큭!”
츄악!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은신술을 펼치는 적을 상대하는 데는 무혼보다 척사랑이 한 수 위였다. 무혼은 온 감각을 귀와 눈에 집중한 채 척사랑을 따랐다.
척!
그때 척사랑이 무혼의 왼손을 잡았다. 무혼은 본능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제가 있던 쪽을 공격하세요.
무혼은 반사적으로 수라도법을 펼쳤다. 조금 전 척사랑이 서 있던 장소 주변이 붉은 광채에 휩싸였다.
“커억!”
“크윽!”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위로!”
무혼은 버럭 소리치며 바닥을 찼다. 아래쪽에서 차가운 기운이 솟구쳐 올라왔던 것이다. 그에 이어 척사랑도 바닥을 찼다.
푸아악!
두 사람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순간 흙더미와 함께 네 명이 솟구쳤다.
“차하!”
“타하!”
무혼과 척사랑은 동시에 팔을 휘둘렀다. 수라와 척사랑의 손에서, 붉은 광체가 쏘아졌다.
퍽! 퍽퍽퍽!
“커어억!”
“크으윽!”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줄을 이었다.
휙! 휙휙! 휙휙!
바로 그때 무혼과 척사랑 위쪽 나무에서 검은 물체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암흑부족이었다. 엘프, 드워프, 인간으로 이루어진 암흑부족 열 명은 무기와 일체가 돼 두 사람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 무혼과 척사랑은 미처 무공 초식을 펼칠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암흑부족의 공격 시간은 절묘했다.
무혼과 척사랑은 초식을 펼치지 않고 곧바로 팔을 휘둘렀다. 초식은 펼치지 못했지만 내기를 싣는 건 가능했다.
슈캉! 슈캉! 슈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암흑부족의 무기가 잘려 나갔다. 적의 무기를 자른 수라는 곧바로 몸통도 잘라 냈다. 잘려 나간 몸통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무혼과 척사랑은 쏟아지는 피를 피할 여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팔을 잡아당겨 그 힘을 이용해 서로의 위치를 바꾸면서 적을 공격했다.
또다시 병기 잘려 나가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암흑부족 세 명이 죽임을 당했다.
슈육!
비록 두 사람이 절대 고수라고 하지만 초식을 펼칠 수 없는 상태에서는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가 죽임을 당하는 짧은 순간에 암흑부족은 무혼과 척사랑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끙!”
무혼은 척사랑을 품속으로 끌어당기며 등을 댔다.
검 두 자루가 그의 등을 찔렀다.
카앙! 카앙!
무혼의 등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옷이 찢겨 나가긴 했지만 행동을 묶을 만한 부상은 없었다.
“억!”
“어?”
공격했던 두 사람의 입에서 놀람에 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자기네들 검이 맨살을 파고들어 가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차하!”
그 순간 무혼의 품에서 검강이 튀어나와 두 사람의 목을 잘랐다. 두 사람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무혼과 척사랑을 덮었다.
“이쪽으로!”
무혼의 품에서 빠져나간 척사랑은 왼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무혼은 척사랑이 잡아당긴 힘을 이용해 앞으로 쏘아져 가면서 수라를 찔러 넣었다. 수라가 한편만 날이 있는 도刀지만 끝이 날카로워 찌르기용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쉽게 휘어지는 특성 덕분에 여러 지점을 공격하는 게 가능했다.
수라가 붉은 잔상을 남길 때마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사이 척사랑은 무혼 오른편으로 손을 찔렀다. 그녀가 찔러 낸 손끝에는 강기가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그 강기는 십여 개의 점을 허공에 남겼다.
“컥!”
“큭!”
“윽!”
비명이 이어지고 허공에 숨어 있던 암흑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비록 초식을 펼치지 못한 상태라고 하지만 그녀의 무공은 강했다. 단순한 공격만으로도 암흑부족을 없앴다. 그사이에도 암흑부족은 수차례 공격을 했고 몸으로 막아 낸 무혼의 옷은 너덜너덜해졌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몸을 날렸다.
멈추는 순간 더 많은 공격이 쏟아지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싸우고 나자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둘은 천천히 돌면서 주위를 살폈다. 왼손은 여전히 꼭 잡은 상태였다.
―아무도 없는 것 같죠?
척사랑이 전음을 보냈다.
―그런 것 같다.
“휴우!”
척사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자들이 누군지 모르지?”
무혼은 수라를 회수하며 물었다.
“키가 그렇게 작으면서도 그렇게 강한 사람은 처음 봐요. 귀가 뾰족한 사람도 처음이고요.”
“키가 작은 사람은 드워프라고 부르고 키가 크고 귀가 뾰족한 녀석은 엘프라고 해.”
“이방인들인가 보죠?”
“맞아. 그런데 피부는 그렇게 검지 않아.”
“여기 와서 달라진 건가요?”
“그런 모양이야. 그런데…….”
무혼은 척사랑을 보았다. 그녀의 전신은 피로 범벅이었다.
“호수 찾을 수 있겠어요?”
척사랑이 물었다.
“나에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그 옷 좀 빌려줄 수 있어요?”
척사랑은 무혼의 상의를 가리켰다.
“이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구나.”
무혼은 옷을 벗어 주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척사랑은 무혼의 옷을 받아 걸쳤다.
“킥!”
“풋!”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