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63화 (363/524)

황금가 (363)

―그렇네.

―태자 전하가 황제가 됐겠지요. 하지만 너무 어리셔서 정무를 볼 수가 없으니까 다정성모 공주님께서 수렴청정을 하지 않을까 해요.

황실 상황을 떠올리며 권말남이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 황실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 하는 게 아니라 청부를 완수하고 난 사상이네.

―사상이라고요?

권말남의 눈이 커졌다. 그는 사상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황제로 가장하고 있는 자가 심무극이라고 하세. 그럼 사상이 죽인 자가 심무극인가, 황젠가?

―하!

권말남은 멍한 얼굴로 자운영을 보았다. 청부에 성공하면 사상이 없앤 건 분명 심무극이다. 하지만 그가 황제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이상 황제를 암살한 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황제가 암살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세. 가장 먼저 무얼 해야 하는가?

―범인을 색출해야지요.

―그 일을 하는 조직은 어딘가?

―금의위와 동창이 되겠지요.

―맞네. 황제가 암살당하게 되면 동창과 우리 금의위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자객을 잡아야 하네. 잡지 못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영반과 제독이 지게 되네.

―제독과 영반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야겠군요.

―맞네. 하지만 아무나 범인이라며 잡아다가 들이밀기엔 사안이 너무 크네. 그리고 단독 범행이라고 할 수도 없네. 혼자 모의해서 황제를 암살하는 자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자금성으로 침투가 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녔고, 반역을 시도할 정도로 힘을 가진 배후가 있는 자객이라야 하겠네요?

―중원을 통틀어서 그런 자객은 사상뿐이네.

―하지만 사상은 배후가 없잖아요.

―삼사천가 있지 않는가?

―삼사천가의 가주들은 황실에 있었잖아요.

―그건 우리만 아는 사실일 뿐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르네. 영반과 제독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럼 영반과 제독은 사상과 삼사천가를 연결해서 황제를 시해한 범인으로 지목하겠군요.

―그렇네. 지금까지 그가 행했던 모든 암살 사건과 황제 시해의 주범으로 그를 지목할 거네. 그런 다음 삼사천가 가주들의 명령으로 청부를 했다는 조서를 꾸밀 테고 세상에 알려지겠지. 그동안 그가 일궜던 모든 사업체는 몰수될 거네.

―그다음엔…….

―구족을 멸할 거네.

―저자 가족의 위치도 파악했을까요?

―가족을 찾으라는 명령이 진작 내려간 걸로 알고 있네. 그리고 절강성 어딘가에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고.

―금의위 영반과 동창 제독이 저자에게 청부를 맡긴 이유가 있군요.

권말남은 혀를 찼다.

금장생이 잡은 건 튼튼한 쇠사슬이 아니었다. 썩은 동아줄보다 더 못한 줄을 잡은 셈이다.

암살에 실패하면 삼사천가 가주들에게 죽고, 성공하면 황제 시해범으로 죽는다.

금장생이 처한 상황은 어디로 가도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완벽한 외통수다.

문득 금장생의 인생이 짠했다.

―저자는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알고 있으면 청부를 받지 않았겠지.

―왠지 불쌍해지네요.

―나도 이제 깨달았는데 영반과 제독이 우리를 보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네.

―우리 임무는 정보 입수가 아니라 저자의 감시라는 건가요?

―그렇네.

자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난 앞으로 잘해 줄 거예요.

권말남은 싱긋 웃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수십 명이 이편으로 달려왔다.

“손님이 오고 있어요.”

권말남은 마차 안을 향해 말했다.

“전 그만 가 보겠습니다, 마왕.”

석보산은 마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건물이 나오자 곧바로 몸을 날렸다. 금장생을 마중 나온 자들은 철웅 거석이 이끄는 마가대 일백 명이었다.

마차 앞까지 온 일행은 일제히 멈췄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마가대 대원들은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금장생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마왕을 호위하는 건 마가대의 임뭅니다.”

거석이 소리쳤다.

“일단 갑시다.”

“모시겠습니다, 마왕.”

거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마가대 대원들이 호위 대형으로 늘어섰다.

“저분들은 누굽니까?”

거석은 마부석에 앉아 있는 자운영과 권말남을 가리켰다.

“내 시종들입니다.”

‘저런 개새끼.’

시종이란 말에 권말남이 욕설을 내뱉었었다.

“계속 데리고 가실 겁니까?”

“갈 곳이 없다고 해서요.”

“알겠습니다.”

거석은 고개를 숙이고는 마부석 옆으로 갔다. 그리고 권말남과 자운영을 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냐?”

“…….”

“…….”

자운영과 권말남은 말없이 거석을 노려보았다.

“말을 잘 못하는 친구들입니다. 대주가 이해하시시오.”

“벙어리만 말이군요.”

거석은 측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있어야 하는 건가?

자운영이 권말남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권말남은 벙어리 행세를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통 벙어리는 귀도 문제가 있는데, 자네들 귀는 괜찮은가?”

거석은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 자운영과 권말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 듣는 모양이네. 쯧,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어쩌다가…….”

거석은 혀를 찼다.

“마왕, 이 친구들 글은 압니까?”

거석이 뒤편 금장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글은 잘 아는 걸로 압니다.”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겠군요.”

거석은 권말남의 어깨를 툭 쳤다.

‘이런 썅노무 새끼가!’

권말남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험악한 얼굴로 거석을 보았다.

“내가 마차를 몰 테니까 저쪽으로 가라고.”

거석은 자운영 옆자리를 가리켰다. 마부석은 세 사람이 앉아도 될 정도로 자리가 넓었다.

권말남은 거석을 노려보다가 자리를 옮겼다.

“내가 여기 앉은 건 마가로 가는 길을 알기 때문이네. 귀머거리에 벙어리 자리를 빼앗을 만큼 인정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말게. 참, 귀머거리라고 했지.”

거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차를 몰았다.

권말남은 귀에서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거석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았다.

“참! 난 거석이네. 직책은 마왕을 호위하는 마가대 대주고. 이런, 귀머거리라고 했는데 자꾸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원래 내가 별것 아닌 일은 깜빡깜빡 잊어버리곤 한다네. 자네들이 이해하게. 이런 젠장,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거석은 제 머리를 툭 치고 마차 모는 데 집중했다.

마차가 서천왕부에 도착한 건 저녁 무렵이었다.

서천왕부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고 정문을 지나 벽돌이 깔린 길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왕의 처소인 서천전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총관 나박이 먼저 나와 인사를 했다.

“나 총관을 보니 집에 돌아온 기분이 나는군요.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너무 별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매달 월급을 받는 게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반납해도 되는데.”

“네?”

“월급 받는 게 미안하다는 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뜻하고, 그럴 경우엔 미안해하지 말고 월급을 되돌려 주라는 뜻입니다.”

“에…….”

나박은 황당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해 달라는 뜻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나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분들은 내 시종이니까 숙소를 마련해 주도록 하십시오.”

금장생은 권말남과 자운영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부인은 잘 있습니까?”

금장생은 아수수의 근황을 물었다.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집 안보다는 밖이 더 안전한데 부인은 인정하지 않는군요.”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그런데 어떤 사황입니까?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음을 보냈다.

―어떤 질문이신지?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월급을 반납해야 합니다, 총관.

―감시하는 자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적지영 일파도 모두 없앴는데 더 많아졌다는 건…….

―다른 가문에서 보낸 자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감시가 심해진 건 왜죠?

―천왕지회 때문입니다.

―천왕지회?

―보름 있으면 천황지회가 열립니다.

―경쟁자에 대해 더 많은 걸 파악하기 위해 감시자를 보낸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자들 중에는 나를 제거하려는 자들도 있겠군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밀정을 보내나요?

―네.

―책임자는 누구죠?

―백팔무영비 비줍니다.

―다른 가문에 대해서 알려면 사 비주를 만나 봐야 하겠군요.

―네.

―알겠습니다. 총관은 천왕지회에 대한 사항을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금장생은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쉬십시오, 마왕.”

나박은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금장생은 계단을 올라갔다. 이 층 집무실을 슬쩍 보았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집무실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인기척은 없었다. 삼 층으로 올라가자 비로소 인기척들이 감지됐다.

“어서 오세요, 마왕.”

시비들이 인사를 하며 맞았다.

“부인은…….”

“씻고 계십니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비의 말처럼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욕실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나요, 수수!”

갑자기 물소리가 뚝 그쳤다.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내공을 끌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끙!”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천장에 다섯 명이 숨어 있었다.

‘또 어떤 자들이……. 그들이네.’

가장 먼저 떠오른 자들은 금의위 영반 금명세와 동창 제독 임춘순이다. 자운영과 권말남을 못 믿어서가 아니고 동창이니 금의위 속성이 이중 삼중의 감시망이다.

‘날 우습게 보면 큰일 납니다, 제독, 영반.’

금장생은 빙긋 웃으며 아수수 앞으로 갔다.

“미안해요. 당신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씻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이왕 들어온 건데 당신도 씻는 게 어때요?”

연락을 받고 씻기 시작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목욕을 한 건 금장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도 어색하기도 해서였다. 그래서 욕실에서 알몸으로 만나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금장생이 탄 마차가 보이자마자 욕실로 들어왔다.

“그럴까요?”

금장생은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다.

그러고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 아수수 옆으로 앉았다.

“제가 씻어 드릴 테니까 저기로 가서 누우세요.”

아수수는 욕조 옆에 있는 단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몸을 일으켰다.

“참! 천장에 쥐들이 많은 것 같던데 덫은 놓았습니까?”

금장생은 천장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당신이 여행을 떠난 후로는 조용해서요.”

“쥐덫을 놓지 않았다는 거네요?”

“놓으라고 할게요.”

“내일 내가 놓는 게 낫겠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천장에 숨어 있던 자들이 빠르게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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