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62)
금장생은 정신없이 바빴다.
황실에서 나온 그가 가장 집중해서 한 것은 사업체 관리였다. 석 달 동안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었다.
마가로 들어가면 당분간은 사업체를 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가장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총관 당천리였다. 사천당문을 다스려 본 경험이 있는 그는 사업체를 운영할 역량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유월 초 금장생은 당천리와 함께 다시 북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은밀하게 동창 제독 임춘순과 금의위 영반 금명세를 만났다.
물론 두 사람을 만나러 갈 땐 혼자였다.
“이거 받아라.”
임춘순은 명패 두 개를 내주었다. 금의위 부영반과 동창 부제독을 나타내는 신분증명서였다.
“제게 줄 게 이것뿐입니까?”
금장생은 신분증명서를 받아 들고 물었다.
“또 뭐가 필요하느냐?”
임춘순이 물었다.
“면세 증명서도 주셔야 세금을 감면받을 거 아닙니까?”
“아무튼 장사꾼은.”
임춘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둘둘 말린 종이 한 장을 내주었다. 그가 금장생에게 준 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어명으로 보장하는 면세 증명서였다.
“동창과 금의위 이름으로 나가는 마지막 어명을 그따위 면세 증명서를 만드는 데 쓸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는 힘없는 황제를 대신해서 어명을 전국 각처로 내려보내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어명을 임의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지시가 내려오진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명을 생산해 내보내다가 잘못 걸리면 바로 목이 달아난다. 알아서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분은 어떻게 됩니까?”
“누구를 말하는 거냐?”
임춘순이 물었다.
“자 진무사와 권 첩형 말입니다.”
“네 종자다.”
“종자라면 마음대로 부려 먹어도 된다는 말이네요?”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게다.”
“그런 명령을 내려서 뭐 하게요. 아무튼 마음에 드네요.”
금장생은 면세 증명서를 받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임춘순 말대로 대문 앞에는 권말남과 자운영이 마차 옆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멀뚱한 눈으로 금장생을 보았다.
“이거요.”
금장생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건넸다.
“이건 왜?”
“이걸 왜 우리에게…….”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내일 이 시간에 돌려주세요.”
금장생은 마차에 오르며 말했다.
―무슨 뜻인 것 같은가?
자운영은 권말남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창 부제독과 금의위 부영반 금장생을 대가리 속에 새기라는 뜻이지 뭐겠어요?
권말남은 신경질적으로 전음을 보내고는 마부석으로 올라탔다.
“황금루로 갑시다.”
금장생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자운영은 말고삐를 휘둘렀다. 마차는 바로 출발했다. 마차가 황금루 북경 지점에 도착한 건 한 식경 후였다. 해시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황금루 안은 손님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술손님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안으로 연락을 하자 당천리가 나와 인사를 했다.
“이 시간에도 손님이 많네요?”
금장생은 식당을 들러보며 말했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손님들이 마시는 술 또한 대부분 천주였다.
“본격적인 여름이잖습니까? 게다가 우리 집 술은 시원하기까지 하니까…….”
“시원하게 해서 팔고 있어요?”
“네.”
“반응은 어때요?”
“보통 여름이면 술 매출이 삼분이 일가량 줄어드는데 시원하게 해서 판매를 하자 두 배가량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한 겁니까?”
질문을 하는 당천리의 얼굴에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술을 차게 해서 판다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니, 금장생이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과연 손님들이 차가운 술을 마실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시작해 보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병 마실 사람이 두 병을 마시고 두 명 마시던 사람은 네 명을 마셨다. 안주로 내놓는 양갈비만큼이나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게 바로 술이었다.
“이름도 바꾸세요.”
“이름요?”
“빙설주라고 하세요. 술잔도 약간 고급스럽게 하고요.”
“가격은…….”
“이미 받은 금액이 있는데 그대로 해야지요. 손님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동하기도 하고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금장생은 임춘순으로부터 받은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면세 증명서요.”
“면세 증명서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업에 대해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는 증명섭니다.”
“이런 걸 어디서…….”
“어명으로 받은 증명서니까 진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면세로 인해 생긴 부가 수입은 수익으로 잡지 말고 원가를 낮추는 데 사용하세요.”
“경쟁 가게보다 싸게 하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경쟁 가게를 모두 묵사발로 만들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황금가는 총관이 맡아야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회장님. 앞으로 십 년 안에 황금가는 중원 최고의 상단이 돼 있을 겁니다.”
당천리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당분간은 날 보기 힘들 겁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하오밀문을 통해 연락을 하십시오.
금장생은 전음을 보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동영이나 조선을 돌아보려고 그럽니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상단은 걱정 말고 몸 건강하게 다녀오기나 하십시오.”
“그럼 총관만 믿고 갑니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자운영과 권말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바꾸지 않을 겁니까?”
금장생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이곳을 나가면 바로 바꿀 참입니다.”
자운영은 정중하게 말했다.
“최단 기간 안에 섬서성 서안까지 가야 하니까 길을 잡아 보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자운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권 첩형은?”
금장생은 권말남을 보았다.
“전 권 첩형이 아니고 권 시윕니다, 부제독님.”
“시위의 목소리에 날이 서려 있는 것 같습니다. 서천왕부로 들어가지 전까지는 고치도록 하십시오. 고치지 않으면 서천왕부로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아, 알았어요.”
“자, 갑시다.”
금장생은 마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서안까지 가는 길은 선박을 이용했다. 서안에서 내려 곧바로 서천왕부로 향했다. 가장 먼저 금장생을 마중 나온 사람은 대륙황가 상단주 석보산이었다.
“안으로 모시세요.”
금장생이 말하자 마차 문이 열리고 석보산이 안으로 들어왔다.
“인사 올립니다, 마왕.”
석보산은 허리를 숙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더 이상 마왕 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없어서 그런지 마가는 아주 평온했습니다. 다만…….”
“다만?”
“가모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바람을 쐬러 간다고 말하고 나왔는데요?”
“아무리 말을 하셨다고 해도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사업은 어떻습니까?”
“이상 없이 잘되고 있습니다. 단, 술 조달이 조금 어렵습니다.”
“술이 부족한가 보죠?”
“주당들은 갈수록 입이 고급으로 변하는데 술이 따르지 못하고 있거든요.”
“하남성에서 두강주를 마셔 보니까 괜찮던데…….”
“그 술이 좋은 줄은 저도 압니다. 문제는 생산량이 너무 적어 하남성에서 모두 소비된다는 겁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두강양조에서 제이 양조장을 세운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세운다고 하더군요.”
“그거 굉장한 정보군요. 당장 하남성으로 사람을 보내야겠습니다.”
석보산은 반색하며 말했다.
―저 자식,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죠?
앞에서 마차를 몰던 권말남이 옆에 앉은 자운영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두강주를 팔아먹고 있잖는가.
―두강주는 저 녀석 거잖아요.
―자기 거니까 파는 거지 남의 거라면 소개시켜 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네요.
―아무튼 사업적인 머리는 대단히 뛰어난 자가 분명하네.
―뛰어난 건 사업적인 머리뿐만이 아니지요.
―또 뭐가 있다는 건가?
―옥에 있던 녀석이 우리 상관이 돼 나타났잖아요. 그건 사업적인 머리보다 더 뛰어난 거라고요.
―쿡!
자운영은 피식 웃었다.
권말남의 말대로다. 자신과 권말남은 금장생이 자신들의 상관이 돼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녀석을 데리고 갈 때만 해도 고문이 허락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녀석은 부제독과 부영반이 돼 있었다. 물론 한시적인 직책이고 어떤 일이 끝나면 본래 자리로 돌아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부영반이나 부제독 자리를 내린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저 녀석이 받은 임무가 뭐라고 생각해요?
권말남이 물었다.
―이방인들을 없애는 거 아니겠는가?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자객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네.
―이미 삼사천가도 멸문하고 더 이상 적이 없는데 굳이 자객을 써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삼사천가가 멸망했다고 생각하는가?
―지상에서 지워졌으면 없어진 거 아닌가요?
사실 권말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삼사천가에서 없어진 건 건물뿐이고 안에서 살던 자들은 모두 황실로 들어왔다는 걸 정보원을 통해 확인했다.
지금은 황실이 삼사천가인 것이다.
―정말로 없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자운영은 권말남을 돌아보았다.
―그게…….
권말남은 말끝을 흐렸다.
―그들이 황실로 들어갔다는 걸 모르는가?
―그럼 저자에게 관직을 준 게 그들 때문이라는 건가요?
―내 생각은 그렇네.
―아닐 거예요. 황실에 들어온 자들은 금의위나 동창이 보유한 자객들로 충분히 처리가 가능해요.
―그럼?
―내 생각엔 저자가 처리해 줘야 할 사람은 삼사천가의 세 가주인 삼사일 거예요.
―그들이 어디 있다고 보는가?
―지금까지는 감이 안 잡혔는데 자 형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비로소 파악이 됐어요.
권말남은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이제야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황실에 심어 둔 정보원으로부터 모르는 자들 상당수가 들어와 활동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직감적으로 삼사천가 무인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인질로 잡혔던 공주가 돌아오는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일어난 탓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정보를 모으면서 황실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뭔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자운영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상이 필요한 이유가 퍼뜩 떠올랐다.
―무슨 파악이 됐다는 건가?
―영반과 제독에게 사상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이유요.
―두 분이 절실하게 부탁했을 거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감옥에 있던 녀석을 꺼내서 부영반과 부제독이란 직책을 줄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하면, 사상에게 절실하게 청부할 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두 분이 그렇게 저자세로 청부할 게 한 가지밖에 없잖아요.
―하늘이란 말인가?
자운영은 권말남을 돌아보았다.
―내 생각은 그래요.
―그럼 그들이 차지한 건 하늘과 삼사 두 자리겠군.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영반과 제독은 그 일을 할 사람은 중원에서 사상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테고요.
―생각하는 게 아니고 확신일 거네.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암살을 해냈으니까.
―그런데 말이네, 그가 하늘을 없애고 나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황제를 없애고 나서?
권말남은 직설적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