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61)
완벽한 외통수
“이렇게 일찍 만날 줄은 몰랐네요. 그것도 황실에서.”
주려아는 감격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제게 공대를 하시면…….”
“아!”
주려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밖에는 시비도 있고 경비도 있다. 그들 중 누군가 무공을 익혔고 천리지청술로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면 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물러가라고 할 수도 없다.
―제가 강기막을 치겠습니다.
금장생은 내기를 끌어 올려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강기막을 쳤다.
“공주님!”
그때 소화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
그녀도 금장생을 바로 알아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 그렇게 말하면…….”
“밖에서는 우리 말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괜찮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 환관 복장은 뭐고요?”
소화가 물었다. 사실 소화가 물은 건 주려아도 묻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게…….”
“소화야, 넌 들어가서 욕실 물 좀 받아 줘.”
“아! 알았어요.”
소화는 눈치가 빨랐다.
주려아가 욕실을 들먹인 이유가 거긴 감시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소화는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내기를 푸세요.
주려아는 금장생에게 말했다.
―풀었습니다.
“너는 네 일을 해라.”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은신술을 펼쳐 허공으로 숨었다.
―욕실로 오세요.
주려아는 전음을 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은신술을 펼친 금장생은 먼저 주변을 살폈다. 감시하는 자들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있네.’
금장생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다정궁 곳곳에 감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외부를 다 살피고 내부를 훑었다. 다행히 감시하는 자들은 다정궁 외부에만 있을 뿐 내부에는 없었다.
안쪽을 모두 살피고 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촛불이 은은하게 밝혀져 있었다.
“어?”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주려아가 옷을 입은 채 앉아서 기다릴 줄 알았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굳이 옷을 벗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알몸으로 욕조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옷을 벗고 있는 주려아가 아니었다. 그녀의 나신을 보자마자 급격하게 데워지는 피였다.
‘이런?’
금장생은 당황했다.
여자 알몸을 보고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치 춘약을 복용한 것 같았다.
“당신도 들어오세요.”
“그건…….”
금장생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주려아를 보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긴 자금성 다정궁이다. 그녀 역시 타락제일관 관주가 아니고 공주다. 함께 목욕한다는 건 불경 중의 불경이다.
“내가 몸을 팔았던 여자라 더러워서 그런 건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얼른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양손으로 아래를 최대한 가렸다. 하지만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었다.
“풋!”
그제야 금장생의 상태를 눈치챈 주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원인 제공자가 그러시면 안 되지요.”
금장생은 주려아의 건너편으로 앉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책임지면 되잖아요.”
“책임을 진다고요?”
“네.”
주려아는 금장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금장생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금장생의 성기를 쥐었다.
“고, 공주님…….”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이곳 황실에 내 편은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금의위 영반과 동창 제독인데 그들은 드러난 상태라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해요. 내게 필요한 건 드러나지 않으면서 날 도와줄 사람이에요.”
“제가 동창 제독이나 금의위 영반하고 거래를 한 건 이번 일에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공주님. 공주님을 배신할 것 같았으면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알아요.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라는 걸. 하지만 나는 좀 더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요. 그리고 육체로 맺은 계약이 구두나 종이로 맺은 계약보다 좀 더 강하다는 것도 알고요.”
주려아는 몸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금장생은 자기도 모르게 주려아의 엉덩이를 쥐었다. 둘 다 처음이 아니라 그랬는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육체의 향연으로 빠져들어 갔다.
두 사람이 현실로 돌아온 건 한 시진 후였다. 장소는 여전히 욕실이었다.
“물이 차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이화태양강을 펼쳐 욕조 물을 데웠다. 금세 물이 따뜻해지고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좋네요.”
주려아는 빙그레 웃으며 금장생의 팔을 베고 오른 다리를 금장생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 그리고 금장생의 오른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 위로 올렸다.
“관계 후 이런 나른함을 참 좋아하는데 사내들은 관계가 끝나면 서둘러 떠나려고만 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녀는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위축돼서 그런대요.”
“위축된다는 건…….”
“사내들은 관계 전과 후가 차이가 나잖아요.”
“아! 그러니까…….”
“주루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니까 신빙성은 없어요.”
“…….”
금장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말해 보세요.”
“어떤 말을…….”
“이렇게 건실한 성기를 가진 당신이 왜 환관 옷을 입고 있는지 말해 보라는 거예요.”
주려아는 금장생의 성기를 쥐며 말했다.
“동창 첩형과 금의위 진무사 때문입니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주려아가 아직 만족을 못 한 듯 자극을 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강을 건넜는데 뭐.’
공주라는 신분만 빼면 주려아는 완벽한 여자였다. 이런 여자라면 한번 살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장생은 그녀의 손을 내버려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자들은 당신이 사상이라는 걸 확신하는데 증거가 없어서 지금껏 그냥 두었다는 거네요? 그러다가 더 이상 끌려다니기 싫어서 체포를 해 버린 거고?”
“네.”
“그들이 당신에게 바라는 건 뭐죠?”
“건청궁에 있는 그자를 정리하는 겁니다.”
“심무극?”
“네.”
“그자만 없앤다고 황실이 정리되는 게 아니잖아요.”
“맞아요. 초인삼황의 두 명도 있고, 삼사천가 무인들도 있겠지요.”
“얼마 전에 합류한 암흑부족도 있어요.”
“그들도 아세요?”
“타락관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취합하면 나름 고급 정보들이 나와요.”
“암흑오부족은 심무극 일행에게 완전히 굴복한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자기네들을 버려진 땅으로 내몬 자가 심무극 일행인데도요?”
“그렇다고 해도 같은 이방인이잖아요. 중원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게다가 가족까지 있으니까.”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거군요.”
“그런 것 같아요. 이제 침실로 갈까요?”
“침실은 괜찮아요?”
“거기까지는 감시하지 않아요.”
“하지만 침실까지 가는 게 문제잖아요.”
“사상의 은신술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럴까요?”
금장생은 주려아를 안고 일어났다. 내기를 끌어 올려 은신술을 펼치고 주려아가 가자는 곳으로 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웠다.
“폭신한 게 더 좋죠?”
주려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자세는 조금 전과 같았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금장생의 왼팔을 베고 오른 다리를 금장생의 허벅지에 올렸다. 그리고 금장생의 오른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왼 가슴을 쥐여 주었다. 그런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장생은 주려아를 보며 모로 누울 수밖에 없다.
금장생의 옆으로 눕자 손을 아래 쑥 집어넣어 성기를 쥐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암흑오부족 무인들도 모두 황실로 들어와 있나요?”
“그래요.”
“삼사천가 무인을 모두 합치면 몇천 명 되겠군요.”
“맞아요. 사실 지금 명나라는 끝장났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나를 비롯한 명나라의 유일한 희망은 당신이에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나는 금의위 영반과 동창 제독을 잘 알아요. 그분들이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나를 따르는 건 어렸을 때 인연 때문이에요. 나를 키운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라 그 두 분이에요.”
“그래서 두 분이 공주님을 기다렸군요.”
“맞아요. 그리고 그분들이 당신을 데리고 왔다는 건 명나라를 구할 방안이 당신에게 있다는 걸 뜻해요. 나는 그걸 듣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이마제맙니다.”
“이마제마라고요?”
“네.”
“말해 보세요.”
“중원무림에는 과거 전란의 시대 때 이방인들과 전쟁을 치렀던 자들의 후예가 팔왕가란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덟 가문인가 보죠?”
“네. 그들은…….”
금장생은 팔왕가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팔왕가의 한 곳인 마가의 마왕이란 말이죠?”
“마왕이 아니라 마왕 대역입니다. 제가 가짜라는 건 마왕의 부인도 알고요.”
“다시 팔왕이 된다고 해도 삼사천가와 전쟁을 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거네요?”
“네.”
“그럼 어떻게 할 건데요?”
“화왕을 이용하면 될 것도 같은데…….”
“화왕은 어떤 사람인데요?”
“원래 이름은 라헬이라는 신족이고, 그동안 수많은 신분으로 살아왔던 잡니다. 천마와 함께 활약했던 잠마도 신분 중 하나고요.”
“지금 라헬이라고 했어요?”
주려아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는 잔가요?”
“라헬은 신족 사장로의 한 명이에요.”
“신족 사장로면 심무극 일행과 한패라는 건데 어쩌다가 혼자가 된 거죠?”
“심무극 일행이 라헬을 쫓아냈어요.”
“왜 쫓아낸 거죠?”
“사신마존도 아는 건 많지 않았어요.”
그녀가 신족에 대해 알게 된 건 단골이었던 천수마존 사역남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무극 일행이 라헬을 쫓아낸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알 것 같습니다.”
이제야 그들 사이가 파악이 됐다.
그건 바로.
“신족의 왕 루하 때문이었습니다.”
“신족의 왕이 왜요?”
“신족은 승리를 확신하자 전쟁 후를 생각하고 권력 다툼을 벌였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자신들의 왕 루하를 내치게 돼요. 그 일을 주도했던 자는 라헬이에요. 라헬이 권력을 쥐려 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세 장로는 힘을 합쳐 라헬을 공격했고, 라헬은 도망을 쳤어요. 하지만 그가 숨을 곳은 많지 않죠.”
“중원인으로 위장을 했다는 거군요.”
“맞아요.”
“그럼 심무극 일행과 라헬은 서로 원수지간이라고 해야 되겠네요?”
주려아가 물었다.
“네.”
“그들 사이를 이용하겠다는 건가요?”
“네.”
“만일 라헬이 암흑오부족처럼 심무극 일행과 손을 잡아 버리면 어떻게 하죠?”
“제가 그자를 일인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부하로 부리는 게 더 편하지 않나요?”
“배신은 늘 이인자가 합니다. 일인자는 절대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금장생은 되물었다.
“그렇군요.”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를 봐도 일인자가 부하들을 배신하고 적에게 항복한 예는 없다. 배신은 늘 이인자가 하고, 배신자가 속해 있는 국가나 단체는 망했다.
“그를 대장으로 만드는 게 낫겠죠?”
“네.”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속이 시원한가 봐요?”
“고민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그리고 호위 좀 두실래요?”
문득 혁무심 일행을 써먹을 방법이 떠올랐다.
“호위요?”
“암흑천사와 암흑마족, 암흑신족으로 구성돼 있는데 총 팔십 명입니다.”
“그들의 존재를 숨기는 게 관건이군요.”
“네.”
“보내 주세요.”
“숨길 수 있겠어요?”
“황실에 사는 인원만 해도 이만 명이 넘어요. 팔십 명을 숨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보내 주기만 하세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저녁 무렵.
금장생은 환관 복장을 하고 임춘순과 함께 다정궁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