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60)
“이건……?”
금장생은 옷과 임춘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임춘순이 내민 건 환관 옷이었다.
“일단 입어라.”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옷을 입었다.
임춘순은 금장생이 옷을 입는 걸 도와주었다.
다 입고 나자 바로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사위는 이미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이 밤에?’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는 어두컴컴해진 길을 따라 달렸다. 쉬지 않고 내달린 마차는 거대한 문을 앞에 두고 멈췄다.
“지금부터 이곳 지형을 잘 기억해라.”
임춘순은 마차 창을 가리고 있던 천을 슬쩍 걷었다. 가장 먼저 금장생 눈에 들어온 건 황금색 기와였다.
‘자금성?’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야심한 시간에 임춘순이 자신을 데려온 곳은 황제가 기거한다는 자금성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지형을 기억합니까?”
금장생은 은신술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으음!”
임춘순은 신음을 내뱉었다. 은신술로 모습을 감췄지만 금장생은 눈앞에 있다. 그런데 기척이 감지되지 않았다. 금장생이 육 갑자 공력을 지녔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과장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육 갑자가 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무공이면 지금 당장이라도 황제를 없앨 수 있지 않느냐?”
“초인삼황의 진짜 신분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앞에서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춘순은 부르르 떨었다.
만일 금장생이 공격을 해 오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자들이냐?”
“신족의 사장로 중 세 명입니다. 심무극의 이름은 크로헬이고 천우황은 카이헬이며 좌무백은 레드헬입니다. 이천 년 이상 무공을 익혔던 자들이고요.”
“…….”
임춘순은 할 말을 잃었다. 초인삼황 세 명의 진짜 신분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방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신족의 최고위층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겁먹은 것 같은데…….”
금장생은 얼굴만 드러낸 채 임춘순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형이나 살펴, 이놈아.”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곧바로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마차 지붕으로 온 그는 곧바로 천마구유이혼대법을 펼쳤다. 그러자 수많은 귀신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귀신이 공동묘지보다 더 많은 곳은 또 처음이네.’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은 장소라는 뜻이겠지.’
금장생은 귀신들을 살폈다. 그러다가 환관 복장을 한 늙은 귀신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쳤지만 귀신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금장생이 은신술을 펼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인간이 자신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지 않은 탓이었다. 귀신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오래 사셨습니까?
금장생은 말을 걸어 보았다.
귀신은 깜짝 놀라 다시 금장생을 보았다.
―전 금장생입니다.
―내가 보이느냐?
―네.
―귀신을 본단 말이냐?
―말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상당한 신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사례감이었다.
―사례감이면 환관의 우두머리 아닌가요?
―맞다.
―자객에게 당했군요.
―맞다.
―누가 보낸 자객인지는 알아냈습니까?
―최근에 알아냈다.
―어떤 자들입니까?
―삼사천가에서 보낸 천객 중 한 명이었다.
―지금 황실에 천객이 있나요?
―삼백 명 정도가 들어와 있다.
―그들이 왜 들어와 있다고 보십니까?
―가짜 황제를 암중으로 호위하고 있다.
―……황제가 가짜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귀신이 됐지만 늘 황제 처소를 드나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건천궁으로 들어갈 수가 없더구나. 나는 귀신을 물리치는 기물을 들여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찾았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기물을 들여오지 않았다. 도사도 들어오지 않았다. 건천궁에서 달라진 건 황제의 기도뿐이었다.
―그래서 황제가 달라졌다고 생각한 거군요.
―그것 때문에 환관으로 변장하고 들어온 거 아니냐?
―제가 변장한 표가 납니까?
―황실에서 평생을 살았던 나다. 그 정도는 기본이다.
―천객들이 주로 포진해 있는 곳을 압니까?
금장생은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그는 귀신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주변 사물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건천궁 주위에 주로 포진해 있다.
―인원수는 얼마나 됩니까?
―너는 누구냐?
―조금 전에 금장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름 말고 여기 온 목적을 묻는 거다.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 같은데, 모릅니다.
―마차 안에 있는 동창 제독을 따라온 거냐?
―네. 그런데 동창 제독을 아십니까?
―임춘순 아니냐?
―맞습니다.
―내가 황실에서 근무할 때 새끼 환관으로 들어왔던 녀석이다. 스스로 거세하고 들어온 아주 독한 녀석이었다. 독기를 품은 눈동자를 보고 한자리 하지 못하면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창 제독이 됐더구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유덕구다.
그때 달려가던 마차가 멈춰 섰다. 곧 경비를 서던 자들이 마차 옆으로 다가왔다. 동창 제독을 나타내는 깃발이 걸려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동창 제독이다.”
임춘순은 패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경비는 패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패를 확인한 경비가 물었다.
경비가 물었다.
“다정궁이다.”
“들어가십시오.”
경비는 길을 터 주었다. 곧 마차는 안으로 달렸다.
그렇게 다섯 번의 검문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다정궁에 도착했다.
‘건청궁보다는 좀 낫네.’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다정궁의 주인을 암살하러 온 건 아니겠지?
유덕구 귀신이 물었다.
―설마요.
―그런데 여긴 왜 온 거냐?
―제 생각인데,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사?
―네.
―공주님께 인사를 하러 왔다는 거냐?
―여기 주인이 공주님인가요?
―다정성모 주려아 공주님의 거처다.
―아!
금장생은 탄성을 내뱉었다. 다정궁이라 해서 임춘순이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처소라고 생각했을 뿐 주려아의 거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다정궁의 다정이 그녀의 별호에서 따온 것이었다.
곧 다정궁 문이 열렸다.
마차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느냐?
―삼사천가에서 뵀습니다.
굳이 귀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삼사천가에서 보았다고?
―네.
―너, 모를 녀석이구나.
―언젠가는 차차 말씀드릴 날이 있겠지요. 다음에 또 들르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때 길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곳까지 오는 동안 길을 암기하는 것 같던데 또 안내가 필요한 거냐?
―그때는 여기가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거든요.
―다른 곳 어디?
―건청궁입니다.
―…….
유덕구 귀신은 말없이 금장생을 보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숙였다.
―알았다.
유덕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와라!”
그때 마차 안에서 임춘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얼른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임춘순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금장생은 자연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감시하는 자는 없는 것 같았다.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문을 지나 다정궁에서 가장 깊숙한 내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면 바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임춘순은 주의를 주며 안으로 들었다.
주려아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금장생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어?”
환관 관을 쓰고 있었지만 주려아는 금장생을 바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본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왜 그러십니까?”
임춘순이 물었다.
“아, 아니에요.”
주려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금장생을 보았다.
“처음 뵙습니다, 금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인사를 했다.
“반갑구나.”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거죠?
그리고 혜광심어로 물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가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알았어요.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기로 해요.
“누구죠?”
주려아는 임춘순을 보며 물었다.
“공주님의 검이 돼 줄 잡니다.”
“믿을 만한가요?”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주려아는 금장생이 이번 일을 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검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배신할 때를 대비해서 약점도 잡아 두었습니다.”
“어떤 약점을 잡아 두었다는 거죠?”
“사업체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모두 파악해 두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언제 파악해 두었다고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전음을 보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번거로워 둘러댄 거야, 인마.
“강압적으로 하면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은데, 아닌가요?”
주려아는 금장생을 보았다.
“아닙니다, 공주님. 이번 일은 강압적인 것보다는 거랩니다.”
“거래?”
“제가 황금전가 셋째 아들입니다.”
“황금전가면 멸문한 상단 아닌가요?”
“맞습니다. 저는 상단을 다시 일으켜 세우길 원하고, 제독은 황실을 바로 세우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거래가 성립된 겁니다.”
“어떤 대가를 받기로 했지?”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우리 황금전가에서 군납을 하기로 하였고,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제가 운영하는 모든 사업체의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황금전가를 다시 세우는 조건으로 이번 일을 수락했다는 거구나.”
“군납과 면세 두 가지면 황금전가는 오 년 안에 중원 최고의 상가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배포는 좋구나.”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춘순을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실력은 믿을 만한가요?”
“제 녀석 입으로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 동창과 금의위에서 파악하기론 중원 제일의 자객 사상이 분명합니다. 사상이 하지 못하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자가 사상인지 알 수가 없는 게 문제잖아요.”
“그건…….”
“먼저 실력을 보고 싶어요.”
“실력을 어떻게…….”
“오늘 밤 내 처소에 자객이 들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정말입니까?”
임춘순의 눈이 커졌다. 지금껏 공주 주변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하지만 공주를 암살하려는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네.”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어떤 놈이 공주마마를……. 죄송합니다, 마마.”
임춘순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먼저 알았으니까 됐죠, 뭐. 제독을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됐네요. 오늘 밤 내 호위를 저자에게 맡기고 싶어요. 가능하겠죠?”
“알겠습니다, 공주님.”
임춘순은 고개를 숙였다.
“제독은 저녁 무렵에 저자를 데리러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해라, 금장생.
임춘순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내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