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59화 (359/524)

황금가 (359)

“세 번째는…….”

“세 번째도 있느냐?”

“가장 중요한 겁니다.”

“뭐냐?”

“문서로 작성해 달라는 겁니다. 어명으로요.”

“……좋아. 해 주겠다.”

임춘순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자를 없앨 방법을 논의하도록 하죠.”

“은밀하게 숨어들어 가서 그자를 없애는 거 아니었느냐?”

“몇 개월 전에는 그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하다는 거냐?”

“삼사천가 무인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도 전에 발각되고 만다는 겁니다.”

“너?”

임춘순은 놀란 눈으로 금장생을 보았다.

황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금의위 영반 금명세, 그리고 다정성모 세 명뿐이다. 그런데 금장생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 너도 알고 있느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사업하는 사람은 중원이 돌아가는 걸 가장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제가 황실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게 아니라도 현 상황만 제대로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말이냐?”

“먼저 제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다정성모 주려아 공주님을 삼사천가로 보낸 사람이 누굽니까?”

“황제란 말이냐?”

“설마 부마도위가 권력을 얻기 위해 부인을 보냈다고 생각하진 않겠죠?”

“그렇겠지. 계속해라.”

“공주마마를 인질로 보낼 때나 지금이나 명 황실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떠났으니까 더 나빠졌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느닷없이 인질로 잡혀갔던 공주님이 돌아오고 삼사천가가 초토화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건 삼사천가의 주인 세 명의 부고장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뿐이지요.”

“어떤 가능성 말이냐?”

임춘순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늘에서 사는 게 지겨워졌을 가능성 말입니다.”

“양지로 나오고 싶어 했다는 거냐?”

“그게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설사 그들이 황실에 포진해 있다고 해도 육 갑자 공력이면 가능할 걸로 보이는데, 아니냐?”

이번에는 임춘순이 육 갑자 공력을 들먹였다.

“제가 걱정하는 건 심무극을 놓쳤을 땝니다.”

“황제가 심무극이라는 건 어떻게 아느냐?”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늘 끌고 가는 자가 있기 마련 아닙니까?”

“심무극이 그런 자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자를 놓치면 어떻게 되느냐?”

“강호무림으로 나가서 그가 뿌려 놓은 무인들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격해 올 겁니다.”

“그들이 뿌려 놓은 무인이 누구냐?”

“제 사업체를 찾아내는 노력의 반의반만 기울였어도 진작 알아냈을 겁니다.”

“자꾸 그렇게 비아냥대면 정말 판을 깨 버린다!”

“이때 아니면 언제 두 분께 큰소리를 쳐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에이, 썅! 나 안 해! 이 계약, 없었던 걸로 해.”

임춘순은 벌떡 일어났다.

“춘추오팹니다.”

“…….”

임춘순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안 하신다니까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라.”

임춘순은 그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금장생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세히 말해 봐라.”

“무림십패를 길러 낸 자들이 초인삼황이고, 초인삼황이 바로 삼삽니다.”

“…….”

임춘순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무림 최강자라고 불리던 열 명. 그들 중 다섯 명은 춘추오패의 수장이다. 그런데 그들을 길러 낸 자가 초인삼황이면서 삼사라니.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랬군.”

임춘순과 달리 금명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단 하나의 연결 고리가 무림십패와 춘추오패 그리고 삼사와의 관계였다. 그들 사이에 관계가 있는 건 분명한데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금장생의 한마디로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냐?”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던 임춘순이 입을 열었다.

“먼저 팔다리를 잘라 도망칠 곳을 없애 버려야지요.”

“팔다리를 어떻게 자르겠단 말이냐?”

“춘추오패를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느냐?”

“무림에는 춘추오패와 견줄 만한 세력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들이 누구냐?”

“팔왕가라고 들어 본 적 있습니까?”

“그들이 춘추오패에 버금갈 정도로 강자란 말이냐?”

“그들의 기원을 아십니까?”

“그들의 시작을 말하는 거냐?”

“네. 왜 여덟 가문인지, 어떻게 해서 팔왕가가 됐는지 등등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가문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당연히 아니지요.”

“말해 봐라.”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있었던 전란의 시대를 아십니까?”

“돌겠네.”

임춘순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는 금장생이 전란의 시대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시대에 이방인들이 만든 여덟 곳의 노예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팔왕가의 시작입니다.”

“그게 사실이냐?”

임춘순은 물었다. 사실 그와 금명세는 전란의 시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방인들이 여덟 개의 가문을 세워 중원인을 노예로 부렸다는 사실도 알고,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일어난 전쟁의 와중을 전란의 시대라고 부른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여덟 개의 노예 가문을 세웠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황실에는 여덟 가문에 대한 기록이 없나 보군요.”

“여덟 가문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여덟 가문을 별도로 보지 않고 하나로 봤다는 말이군요. 전쟁도 열여섯 가문이 치른 게 아니고 중원인과 여덟 가문이 치르는 걸로 됐고요.”

“맞다. 처음 해석한 자가 중원인과 여덟 가문과의 전쟁이라고 하는 바람에 후대 사람들도 모두 그 해석을 따랐다.”

“그건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방인들은 중원을 다스릴 가문 여덟 곳을 만들어 가문의 수장에게 노예의 왕이란 칭호를 줍니다. 그래서 마가의 수장은 마노왕, 화가의 수장은 화노왕, 해가 수장은 해노왕이 되고 그렇게 해서 팔왕가가 생겨난 겁니다.”

“그럼 전란의 시대 때 그들이 중원인들의 대표가 돼 싸운 거냐?”

“그렇습니다.”

“그랬구나.”

임춘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는 그들을 이용해서 춘추오패를 없애겠다는 거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원을 구할 수…… 제기랄, 내가 왜 중원을 구하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너도 중원인이기 때문이다.”

임춘순은 잘라 말했다.

“황제 폐하도 제가 먹고사는 데 도와준 건 눈곱만큼도 없는데도요?”

“중원에 태어난 죄라고 생각해라. 그래, 그들을 어떻게 이용하겠다는 거냐?”

“방법은 두 가집니다. 화가 주인인 헌원소야를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무림오패와 싸우게 하는 것과, 제가 육 갑자 공력으로 그자를 없앤 후 팔왕가의 수좌가 돼 무림오패를 쓸어버리는 겁니다.”

“팔왕가를 장악할 방법이 있느냐?”

“그들은 천왕지회라는 모임을 통해 팔왕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팔왕을 뽑습니다. 평화 시에 팔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되면 여덟 가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서는 팔왕이 돼야 한다는 거구나.”

“네.”

“하지만 팔왕이 되려면 여덟 가문 중 한 곳의 수장이어야 할 것 같은데…….”

“마가의 수장인 마왕 신분이면 될 것 같습니다만.”

“마왕?”

“저의 또 다른 신분 중 하나가 마왕 적천영입니다. 현재 마왕은 팔왕이기도 하고요.”

“헐!”

“…….”

금명세와 임춘순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이 나오는 옥총(양파) 같았다. 처음엔 사상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자객이었다가 다음엔 육 갑자의 엄청난 공력을 지닌 초극 고수, 그리고 지금은 팔왕가 중 한 곳인 마가의 수장 마왕이란다. 아니 여덟 가문의 대표인 팔왕이란다.

“팔왕이면 나머지 가문에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는 거냐?”

“얼마 후면 천왕지회가 열립니다. 차기 팔왕은 거기서 결정될 겁니다.”

“임기가 다 됐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만일 네가 다시 팔왕이 되고 무림오패와 전쟁을 한다면 다른 가문이 따를 거라고 보느냐?”

“그걸 알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면 화가의 가주 헌원소야가 팔왕이 되면?”

“얼굴을 봐야 하겠지만 살아온 세월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저보다는 훨씬 잘 이끌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네가 없애려고 하는 상천금가의 주인이 화가인 걸로 아는데, 그자에게 전권을 준다는 건 너무 위험한 생각 아니냐?”

“두 분만 입 다물면 그는 제가 금장생이란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모를 겁니다.”

“방금 네가 한 말을 뒤집으면, 헌원소야가 네 진짜 신분을 알게 되면 그건 우리 둘 책임이란 거구나.”

“……!”

금장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맹랑한 놈!”

임춘순은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저는 두 분이 명나라를 망하게 할 결정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좋다. 너의 비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겠다. 대신, 너도 우리 모르게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조건 우리에게 보고해야 한다.”

“무슨 수로 보고를 합니까?”

“금의위와 동창 인물을 한 명씩 데리고 가면 된다. 보고는 그들이 하게 될 것이다.”

“혹시 자운영 진무사와 권말남 첩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알려졌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해야 합니다.”

“동창과 금의위에서 전란의 시대와 신족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그 둘뿐이다. 다른 자들까지 끌어들이면 비밀 유지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얼굴은 바꾸면 된다.”

“얼굴을 바꾼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신분이 저보다 높습니다. 그 관계는 제가 마왕이 돼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럼 작전을 펼치기가 힘들어집니다.”

“네게 부제독과 부영반의 직위를 줄 것이다.”

“그런 직책도 있습니까?”

“그동안 권력이 분할될까 봐 두질 않아서 그렇지, 원래 존재하는 직책이다.”

“만일 제가 두 직책을 수락하게 되면 권말남 첩형이나 자운영 진무사가 제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개가 아니라 허리를 꺾어야 한다.”

“허리라…….”

금장생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두 분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임춘순과 금명세는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설사 제가 하는 일이 성공한다고 해도 두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황제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남들에게 간신배 소리를 듣더라도 금의위 영반과 동창 제독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해야겠지.”

“해야지.”

금명세와 임춘순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나흘째 되던 날, 임춘순이 금장생을 찾아왔다.

“이걸 입어라.”

그는 금장생에게 옷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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