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58)
거래
금장생이 안내된 곳은 동헌루 꼭대기 층이었다.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호방한 인상이고 다른 한 명은 내시 관을 썼는데 얼굴이 길었다. 이 두 사람은 다정성모 주려아를 영접했던 금명세와 임춘순이었다. 금장생이 들어서자 금명세와 임춘순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꿇어라!
권말남은 전음을 보냈다.
금장생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금장생을 데려왔습니다, 제독.”
권말남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휙!
임춘순은 손을 휘저었다. 나가 보라는 표시였다.
“그럼.”
권말남은 허리를 숙인 채 물러났다.
권말남이 물러가자 임춘순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종이를 들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차례로 읽었다.
“낙양 망루, 천당사, 장상문, 감숙성 천주장, 낙양 황금철장, 서안 황금장, 감숙성 천금루, 감숙, 섬서, 하남성의 황금루. 정주의 황금표국.”
임춘순은 종이를 내렸다.
그리고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방금 내가 말한 것들 중 아는 거 있느냐?”
“제 사업쳅니다.”
금장생은 내심 질겁했다.
다른 누군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기업체를 점조직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동창에서는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다.
더러워서 사업 못 하겠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그 소리를 하면 정말로 큰일 난다.
“정주에 나타난 지 일 년여밖에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엄청난 수완이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단지 운만으로 이런 사업체를 일굴 수 있단 말이냐?”
“정당하게 번 돈으로 정당하게 차린 사업쳅니다.”
“내가 알기론 너희 황금전가는 동전 일 문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네가 돈이 어디서 나서 그런 사업체를 챙겼단 말이냐?”
“동영과 조선에서 돈을 좀 벌어 왔습니다.”
지금 당장은 거짓말로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뭐 동영과 조선을 다녀왔으니까 딱히 거짓말이랄 것도 없다.
“동영과 조선을 다녀왔단 말이냐?”
“열다섯 살 이후로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그럼 동영말과 조선말을 잘하겠구나.”
“네.”
“해 보아라.”
금장생은 동영어와 조선어를 섞어서 말했다. 그의 말투는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 임춘순은 금명세를 보았다. 금명세가 두 나라 말을 유창하게 잘하기 때문이었다.
“맞소.”
금명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공은 동영에서 배운 게로구나.”
“네.”
“이혈대법을 펼칠 정도인 걸 보면 최소한 삼 갑자 공력을 지녔구나.”
‘이 영감이?’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임춘순이 이혈대법으로 혈도 위치를 옮긴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금장생은 내심 피식 웃었다.
“삼 갑자가 아니라 육 갑잡니다.”
그는 임춘순이 말한 것보다 삼 갑자를 올려 말했다.
“…….”
일순 임춘순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금장생의 공력이 아무리 많이 잡아도 삼 갑자에서 삼 갑자 반 정도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일 갑자 반을 낮게 본 것이다. 그런데 오 갑자도 아니고 육 갑자라고 한 것이다. 자신은 동창 제독이 되면서 각처에서 올라오는 영약과 황실 약고에 있는 영약으로 영단을 연단하여 공력을 높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공력이 오 갑자다. 그런데 이제 서른 살도 안 된 자가 육 갑자 공력을 지녔다니. 솔직하게 말하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동창 제독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사실이냐?”
이번에 질문을 한 자는 금명세였다.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사상이냐?”
금명세는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무공을 동영과 조선에서 익혔습니다.”
“너는 사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운영 진무사는 물론이고 권말남 첩형은 네가 사상이 확실하다고 하더구나.”
“심증으로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곳이 동창과 금의위라는 걸 잊었느냐?”
“조금 전에 제 공력이 육 갑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공력이면 만들어진 죄를 없앨 수도 있을 줄 압니다.”
“…….”
금명세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맹랑한 녀석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녀석이 미리 공력이 육 갑자라고 밝힌 건 지금 말을 하기 위해서다. 즉, 제 녀석은 여차하면 동창이고 금의위고 개박살 내고 내빼면 그만이라고 협박을 한 것이다. 감히 동창 제독과 금의위 영반 면전에서 협박을 하는 녀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호호호호!”
임춘순이 웃음을 터뜨렸다.
음공을 펼친 듯 그의 웃음소리에는 진득한 살기가 실려 있었다.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간 웃음소리는 무형의 벽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임춘순은 웃음을 그쳤다.
“내가 널 죽일 수도 있다.”
임춘순이 말했다.
“제독께서는 절대로 절 죽일 수 없습니다.”
“자신하느냐?”
“네.”
“그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합리적인 판단?”
“절 죽일 것 같았으면 여기로 부르지도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아느냐?”
“이런 사소한 일로 마음이 바뀌어 대사를 그르친다면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고, 자격이 없는 자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저를 따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널 죽이면 나는 동창 제독 자격이 없는 자가 되고 머잖아 뒈질 거란 말이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에라, 이 썅노무 새끼야.”
휙!
임춘순은 탁자에 있던 찻잔을 사정없이 내던졌다. 찻잔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갔다. 암기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슈악!
척!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가던 찻잔이 얼굴 바로 앞에서 딱 멈췄다. 금장생은 찻잔에 시선을 맞췄다. 그러자 찻잔이 천천히 이동했다.
“이런 죽일 놈이?”
임춘순은 찻잔에 내기를 주입했다.
허공을 격하고 내기를 주입하는 고도의 수법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찻잔을 막아 내지 못했다. 천천히 다가온 찻잔은 임춘순 앞에 멈췄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이동해 탁자 위 원래 자리로 내려섰다.
“그래도 사상이 아니라고 할 테냐?”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금명세가 물었다.
“네.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그는 사상이 아니라고 끝까지 잡아뗄 참이었다.
“설사 네가 사상이라고 자백한다고 해도 우린 죄를 물을 생각이 없다.”
“저는 사상이 아닙니다.”
“독한 놈!”
금명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쪽으로 와 앉아라.”
그는 자기 옆 의자를 가리켰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금명세가 가리킨 자리로 가 앉았다.
“우리가 너를 왜 불렀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나와 제독은 네가 사상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청부를 하기 위해 불렀다.”
“사상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좋다, 아니라고 하자. 하지만 청부는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내 모든 걸 걸고 지금까지 네가 이룬 걸 부술 것이다.”
“…….”
이번에는 금장생이 말없이 금명세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성씨도 같은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네게 부탁하려는 건 우리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명 제국을 위해서다.”
“어떤 부탁입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나는 강기막을 칠 테니까 제독이 말하게.”
금명세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잠시 후 세 사람 주위로 강기막이 쳐졌다.
“우리가 네게 청부할 사람은 황제다.”
임춘순은 단도직접으로 말했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놀라지 않느냐?”
“황제가 숨어 있는 건천궁까지 가려면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몇 명을 없애야 하는지 아십니까?”
“그건…….”
“전부 쉰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천오백서른두 명을 없애야 합니다. 그들 중에는 나인으로 위장한 호위 서른 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
임춘순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쉰두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천오백서른두 명을 없애야 황제 침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건 그도 모르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자객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넌 정말 사상이 맞구나.”
“이미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개새끼!”
임춘순은 금장생을 빤히 보았다. 놈이 사상이라는 건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안다. 그런데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모양새가 얄미웠다.
“좋다. 네가 사상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그를 없앨 수 있겠느냐?”
“불가능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해야 한다. 못 하면 우리 명 제국은 멸망한다.”
“나라의 주인이 바뀌어도 우리 상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번엔 다르다. 우리 모두는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입수하신 겁니까?”
“그건 몰라도 된다. 너는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는지 그건만 생각하면 된다.”
“먼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만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제게 무슨 보상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첫째, 그는 가짜다.”
“증거가 있습니까?”
“없다. 하지만 가짜가 분명하다.”
“좋습니다. 그럼 제게 무슨 보상을 해 주시겠습니까?”
“원하는 걸 말하면 들어주겠다.”
“어떤 거라도 모두 가능합니까?”
“우리 머리 같은 건 안 되니까 아예 요구를 하지 마라.”
“제가 왜 두 분의 머리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왠지 네놈은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두는구나.”
“에이, 설마요. 두 분의 머리를 박제해서 어디에 쓰게요.”
“지금 박제라고 했느냐?”
“그런 용도 말고는 딱히 쓸 곳이 없을 것 같은데요?”
“갑자기 네 녀석이 정말 육 갑자 공력을 지닌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구나.”
“모든 군납을 원합니다.”
금장생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현재 명 제국 모든 군납을 담당하는 곳은 상천금가다. 만일 군납이 네게로 넘어가면 상천금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를 제거하려 들 거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임춘순이 말했다.
“그건 제가 바라는 밥니다.”
“그들이 널 공격해 주기를 바란다는 거냐?”
임춘순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임춘순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우리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자들이니까요.”
“정말 그들이 황금전가를 공격했단 말이냐?”
“공격한 게 아니고 태양상인과 협력해서 우리 집안을 몰락시킨 자들입니다.”
“몰랐구나.”
“해 주시겠습니까?”
“해 주겠다.”
“군납 기간은 명 제국이 멸망할 때까집니다.”
“황제가 바뀌면 전 황제가 한 약속은 무용지물로 변하는 수가 있다.”
“그래도 일단은 약속을 해 주십시오.”
“좋다.”
“두 번째는 세금 감면입니다.”
“세금 감면?”
“그건 오랜 기간을 요구하진 않겠습니다.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즉 지금부터 이십 년 동안 세금을 완벽하게 면제해 주십시오.”
“세금을 모아서 얼마나 부자가 되겠다고 면제를 시켜 달라는 거냐?”
“저는 세금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게 아닙니다.”
“하면?”
“세금으로 원가를 낮출 생각입니다.”
“물건을 상대보다 낮게 공급하겠다는 뜻이구나.”
“그렇습니다. 다른 가게보다 이 할이나 혹은 삼 할을 싸게 팔아도 비슷한 이익을 올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장사가 없지요.”
“좋다. 그것도 들어주겠다.”
임춘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꾼이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