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57)
“엄청나군.”
초무극은 오군도독부 병력을 바라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이만 명의 병력. 사실 숫자로만 보면 별것 아니다. 이백 명의 고수가 일인당 백 명씩만 맡으면 없앨 수 있는 수다. 하지만 그건 이만 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눈으로 보는 이만 명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났다.
“아무래도 우린 토사구팽 당한 것 같네.”
고독혼이 말했다.
초무극은 고독혼을 돌아보았다.
수천 문의 화포가 삼사천가 주위에 장착되고 이만 명의 병력이 출병했는데 삼사가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그들은 알면서도 쉬쉬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이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초무극이 물었다.
“저것밖에 더 있겠는가?”
고독혼은 하늘을 가리켰다.
“그렇군. 일단은 빠져나가야겠지?”
초무극이 말했다.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고독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준비가 끝나자 초무극은 몸을 돌렸다.
삼사천가를 평지로 바꿔 놓은 포격 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모두 합쳐 이백 명 정도다. 저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초무극은 주먹을 불끈 그러쥐었다.
그리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와아아!”
“우와아아!”
“와아아!”
하가 무인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오군도독부 군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북경이 축제 분위기인 것 같은데 왜 그런 겁니까?”
금장생은 옥을 지키는 자를 보며 물었다.
“다정성모 공주님께서 돌아오셔서 그런 거다.”
“정말 그분이 돌아오셨습니까?”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그가 아는 한 다정성모 주려아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삼사천가 가주, 즉 초인삼황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신족이고 수백 년 혹은 천 년 이상의 삶이 더 남았다. 무공 또한 무림십패를 찜 쪄 먹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 자들이 죽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어떻게…….”
“삼사천가가 사라졌다고 하면 더 놀라겠구나.”
“삼사천가가 몰락한 겁니까?”
“십만 발의 화탄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됐다고 한다. 나도 들은 이야긴데, 풀뿌리 하나 남겨지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웃기네.’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십만 발이 아니라 백만 발의 화탄이 떨어진다고 해도 초인삼황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전부 죽었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을 지키는 자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다. 자세한 정보는 자운영이나 권말남을 만나야 나올 터였다.
“다정성모가 돌아오고 삼사천가가 불탔다면 정신없이 바쁘겠네. 정신없이 바쁘면 여길 돌아볼 새도 없을 테고…….”
금장생은 한편으로 가 드러누웠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할 듯했다.
“그게 아니지?”
한참을 누워 있던 그는 벌떡 일어났다. 드러누워서 세월을 죽일 게 아니라 마법을 익히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간수가 화장실을 가는 사이에 가방에서 마법 지팡이를 꺼냈다. 일라일라는 여전히 수다스러웠다. 그래도 마법은 잘 가르쳐 주었다. 금장생은 시간을 잊고 마법에 몰두했다. 이미 마나 서클이 만들어져 있어, 마법을 이해하는 순간 펼치는 게 가능했다.
―감옥에서 나가려면 어떤 마법이 필요합니까?
마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일라일라에게 물었다.
―네가 여기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환영 마법과 벽이나 혹은 동굴을 탈출할 때 쓰이는 블링크 마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금장생은 열심히 배웠다. 다행히 며칠 동안 얌전하게 지내자 간수도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죄수도 없었다.
금장생은 마음 놓고 마법을 익혔다.
“블링크!”
마법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원래 있던 장소를 떠나 옆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멋지네.”
금장생은 히죽 웃었다. 블링크 마법의 최고 장점은 좌우로 빠르게 방향을 바꾸면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모습을 숨길 수도 있다. 신법과 섞는다면 강력한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세상을 구성하는 마나여. 나 금장생의 이름으로 명하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라. 일루전!”
순간 마법 지팡이 끝에서 반투명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광채는 사방으로 퍼져 나더니 옥안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옥의 전경이 드러났다. 금장생은 한편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성공이네.”
왼편 구석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목소리의 주인은 누워서 자고 있는 금장생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바로 그때 금장생의 귓전으로 혁무심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어?”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옥 밖을 보았다.
―놀랄 사람은 주공이 아니라 저예요. 그거 마법 아닌가요?
얼굴만 드러낸 혁무심이 물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았습니까?”
―금의위와 동창 감옥을 모두 뒤졌죠, 뭐.
“조금 있으면 나갈 수 있는데 공연한 고생을 하셨네요.”
―그런데 마법 맞아요?
“네.”
―마법을 누구에게 배운 거죠?
“전에 드래곤을 안다고 했잖아요.”
―그럼 드래곤이…….
“네.”
―아무리 드래곤으로부터 배웠다고 해도 환영 마법은 오 클래스나 되는데…….
“제가 마법에 소질이 있나 보죠?”
―소질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거예요.
금장생의 심장에 고리가 생성돼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하는 혁무심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금장생은 마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믿음이 수반된다면 육 클래스 마법까지는 무리 없이 펼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소질이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북경은 어때요?”
―그자들은…….
“굳이 전음으로 말하지 않아도 돼요.”
“알았어요. 삼사천가가 사라졌어요.”
“사라져요?”
“수만 발의 화탄 공격에 의해 삼사천가가 있던 자리는 평지로 변했어요.”
“그 안에 있던 자들은요?”
“시체를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나 봐요. 그래도 사오백 구 정도는 발견됐대요.”
“그자들은 어떻게 됐는데요?”
“흔적도 없어요.”
“살아 있겠죠?”
“다른 자들이라면 모를까, 그자들이 죽임을 당할 리가 없다는 건 주공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렇다면 어디론가 숨었다는 뜻이네요. 그런데 황제가 삼사천가를 공격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왜요?”
“거길 공격할 힘도 없을뿐더러, 딸을 인질로 보내면서까지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한 자거든요.”
“인질로 잡힌 게 아니라 보냈다는 거예요?”
“네.”
“그 자식, 완전 쓰레기네요?”
“딸 목숨보다는 자기 목숨과 권력이 더 좋았겠지요.”
“돌아왔어요.”
“돌아와요?”
“조금 전에 주공이 말한 다정성모 주려아가 며칠 전에 황실로 돌아왔다고요.”
“정말요?”
“네.”
“둘 중 어느 쪽이 빠르죠?”
“다정성모 주려아가 돌아오고 나서 공격이 있었어요.”
“북경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 뭐라고 합니까?”
“황제가 드디어 적폐를 청산했다며 환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만간 다정성모를 삼사천가로 보내자고 했던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있을 거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고요.”
“공주 남편은 어떻게 됐죠?”
“주공과 같은 처지예요.”
“옥에 갇혔다는 건가요?”
“네.”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네요.”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원래 권력자는 그런 거잖아요.”
“자기가 잘못해 놓고 아랫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건가요?”
“그걸 잘하는 자가 오래 살아남더라고요. 나중에 성군으로 기록된 자도 있고.”
“그렇겠죠. 하지만 이번은 아닐 겁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죠?”
“황제가 삼사천가에 반항한 게 아닐 거라고요.”
“그럼?”
“그자들이 황실로 들어갔을 겁니다.”
“황실로요?”
“최근에 새로 생긴 직책 없어요?”
“대사공과 대사헌 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들었어요.”
“그자들입니다.”
“그럼 황제는…….”
“심무극일 겁니다.”
“세상에. 그럼 삼사천가를 황실로 옮긴 게 되는 건가요?”
“내 생각은 그래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다. 초인삼황은 은자의 삶을 버리고 세상에 나서기로 한 게 분명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을까요?”
혁무심이 물었다.
그녀 생각에 심무극은 황제가 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모든 걸 버리고 돌아섰다. 그랬던 자가 이제 와서 황제가 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버려진 땅에서 나온 자들 때문일 겁니다.”
“그들 때문에 왜요?”
“사장로가 루하를 비롯한 전천사를 쫓아낸 이유가 뭐죠?”
“그건 일인자가 되기 위해…… 아!”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암흑신족의 왕 아락은 초인삼황도 잘 아는 자일 것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그들을 내쫓았는데 이룬 건 아무것도 없다.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겠군요.”
“그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그나저나…….”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삼사천가에 웅크리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명나라 황제가 돼 최강의 권력까지 쥐었다.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는지.
‘다행히 그들이 눈치를 채 주면 좋은데…….’
지금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동창 제독과 금의위 영반이 눈치를 채고 견제를 해 주는 거다. 그들마저 심무극 편에 붙는다면 중원은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자신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고.
‘무 형을 따라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가서 다시 시작할까?’
문득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혁무심이 물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죠, 뭐.”
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은 두고 보는 수밖에.
바로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그만 가 볼게요.
혁무심은 전음을 보내고는 자리를 떴다.
금장생은 얼른 일루전 마법을 해제했다.
지하 감옥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권말남이었다.
“잘 지내고 있느냐?”
감옥 앞으로 온 권말남이 물었다.
“밥도 나쁘지 않고 모처럼 잘 쉬고 있습니다.”
“쉰다고?”
“열다섯 살 이후로 하루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거든요.”
“미친 자식.”
권말남은 금장생을 쏘아보았다. 그러고는 열쇠로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었다.
“나와라!”
“석방인가요?”
“석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럼?”
“널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다.”
“북경엔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요?”
금장생은 궁금한 얼굴로 권말남을 보았다. 하지만 권말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조금 후면 알게 될 텐데…….”
금장생은 투덜거리며 따라나섰다.
잠시 후 금장생이 안내된 곳은 동헌루란 현판이 걸려 있는 오 층 건물이었다.
“여긴?”
금장생은 권말남을 보았다.
자신이 아는 한 동헌루란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명나라 권력 서열 이위와 삼위를 다투는 동창 제독뿐이다.
“네가 생각하는 그분이다.”
권말남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