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56)
“텅 빈 삼사천가를 공격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많을 겁니다.”
엘은 심무극이 삼사천가를 비울 거라고 생각했다.
“삼사천가가 왜 텅 빌 거라고 생각하느냐?”
“황실로 들어갈 때 대원들을 데리고 들어가지 않으실 겁니까?”
“하가인을 뺀 상가인만 데리고 들어갈 참이다.”
“하가인들에게 이곳을 맡기겠다는 거군요.”
“그럴 때 써먹으려고 키우는 거니까.”
“하가인들에게는 말하지 않을 참입니까?”
“가재는 게 편이란 말 아느냐?”
“그들이 배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우린 이미 한 번 배신을 겪었다. 인간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초무극이나 고독혼은 써먹을 곳이 많은 자들입니다. 오십객이나 십객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에게는 적당한 자리를 줄 참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황실로는 언제 들어가실 겁니까?”
“사흘 후다.”
심무극은 나직하게 말했다.
* * *
북경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삼사천가로 유배됐던 다정성모 주려아가 드디어 돌아온다는 소식이 북경 전역에 퍼진 것이다.
그녀가 돌아오는 날에는 수천의 인파가 자금성 북쪽으로 모였다.
“온다.”
북쪽을 쳐다보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잠시 후 군웅들 시야에 마차 한 대가 들어섰다. 수수하게 꾸민 마차였다.
“와아아아!”
“우와아아아!”
군웅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탁!
마차 문이 열리고 기품 있는 여자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는 다정성모 주려아였다.
“다정성모님 만세!”
“다정성모님 만세!”
중인들은 주려아를 환영하는 만세 삼창을 했다.
“왜라고 생각하느냐?”
주려아는 건너편에 앉은 시비 소화를 보며 물었다.
“마음이 바뀐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너도 알잖느냐.”
“그럼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그렇겠지.”
주려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웅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저녁 무렵 자금성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공주마마!”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남쪽 입구인 오문午門 앞에 이르자 수백 명이 마차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그들의 선두에는 당당한 체구의 무장과 말상 얼굴의 왜소한 자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의위 영반 금명세와 동창 제독 임춘순이었다.
“오랜만이군요, 두 분.”
주려아는 금명세와 임춘순을 가만히 바라보며 인사를 받았다.
“황제 폐하 명으로 저희가 나왔습니다.”
“창선군은 잘 살고 있나요?”
주려아는 뒤편을 살폈다. 혹시 남편이 나오지 않았나 해서였다. 그녀가 남편을 찾는 건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공주마마를 팔았다는 죄목으로 투옥됐습니다.”
금명세가 대답했다.
“정말 그가 투옥됐어요?”
주려아는 깜짝 놀랐다.
“폐하의 어명이 있었습니다.”
“풋!”
주려아는 피식 웃었다. 자신을 삼사천가로 보낸 건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다. 남편은 거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남편을 투옥했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또 누가 투옥됐죠?”
주려아는 물었다.
“공주님을 보낼 때 관여했던 자들은 모두 투옥됐습니다.”
“혹시 황제가 미쳤나요?”
“고, 공주마마!”
금명세가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황제가 미쳤다고 하는 건 용서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최측근을 투옥시킬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주려아는 금명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금명세는 얼른 몸을 돌렸다.
“모셔라!”
그리고 위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명령이 떨어지자 금의위 위사와 동창 무인들이 마차 좌우로 섰다. 잠시 후 마차가 자금성으로 들어갔다.
주려아가 황제를 만난 건 자금성으로 들어가고 두 시진 후였다. 황제는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여 주려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짐이 힘이 없어 너를 고생시켰구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게다. 앉아라.”
황제는 자리를 권했다.
“삼사천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지금쯤 오군도독부 군사들이 삼사천가에 도착해 있을 게다.”
“군인들로 거기를 쓸어버리겠단 말이세요?”
“거긴 끝났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아세요?”
“삼사천가 주위로 화포 일만 문을 설치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왜…….”
“우공을 보고 싶지 않느냐?”
우공은 주려아의 아들 이름이었다.
“보, 보고 싶어요.”
주려아는 금세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네가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 태자는 이리 오너라.”
황제가 말하자 뒤편 주렴이 걷히고 소년이 걸어 나왔다.
“우공아!”
주려아는 울먹이며 소년을 향해 뛰어갔다.
“어머니!”
주려아를 발견한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모자는 서로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그런 모자의 모습을 황제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수천 개의 눈동자가 한곳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수백 채의 고루거각이었다.
“준비하라!”
명령이 들려오자 화포에 화탄을 장착했다. 그리고 불심지를 들고 기다렸다.
“발사하라!”
“발사하라!”
“발사하라!”
수백 군데에서 동시에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치이익! 치익! 치이익!
도화선이 맹렬하게 타들어 갔다.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쿠웅! 쿵! 쿵! 쿠웅! 쿠웅!
화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일만 발에 달하는 화탄이 밤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갔다.
“헉!”
초무극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그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저도 잘…….”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화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초무극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미 불바다로 변한 곳이 많았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또다시 화포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무극은 시선을 들었다.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검은 덩어리가 달빛을 가르며 이편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으악!”
“아악!”
“아아악!”
이번에는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쾅콰콰쾅!
초무극의 처소도 세 발의 화탄이 떨어져 박살 났다. 초무극은 화탄이 떨어지기 직전 호신강기로 몸을 감싸며 자리를 피했다.
하인들이 죽임을 당할 테지만 그들의 목숨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지금 그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화포 쏘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저 정도면 얼마나 많은 화포가 동원돼야…….”
달빛을 가릴 정도로 많은 화탄을 보며 초무극은 중얼거렸다.
“제왕!”
그때 무인 한 명이 초무극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는 천사 척사랑과 더불어 이검으로 불리는 무적 고독혼이었다.
“들은 거 있는가?”
고독혼이 물었다.
“없네.”
초무극은 고개를 저었다.
“저런 화력을 동원할 수 있는 건 황실뿐이네.”
고독혼은 하늘을 가리켰다. 수천 발의 화탄이 이편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황제가 죽으려고 환장한 모양이군.”
초무극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네. 그런데…….”
고독혼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는가?”
“저 정도 화력이면 화포가 수천 기 이상일 텐데 그걸 아무도 몰랐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네.”
“그렇지.”
초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살아남은 자들을 불러 보세.”
고독혼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하가 무인들은 총각전으로 집결하라!”
그의 목소리가 화탄 소리를 뚫고 퍼져 나갔다.
“하가 무인들은 총각전으로 집결하라!”
두 번의 외침이 있고 난 후 하가 무인들이 총각전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자들은 하가 최강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십객이었다.
그들에 이어 오십객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총각 각주는 어디 계시오!”
화마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여기요!”
초무극은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잠시 후 남의를 걸친 장한이 총각전 앞으로 왔다. 상가에서 일하는 자였다.
“상가 상황은 어떻소?”
초무극은 물었다.
“초토화됐소이다.”
“삼사께서는 어떻게 되셨소?”
“다행히 그분들은 피신을 하셨소이다.”
“우리를 공격하는 자는 황실이오?”
“그렇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하였소?”
“삼사 세 분께서는 그걸 알아본다고 황실로 가셨습니다.”
“우리에게 남긴 말은?”
“지금 이곳으로 오군도독부 병력 이만 명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만 명이라고 했소?”
초무극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만 명의 적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물론 이곳에 있는 오십객이나 십객은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게 분명하다.
“그렇습니다. 세 분께서는 오군도독부 병력을 두 시진만 붙잡고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안가로 가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초무극은 고독혼을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그렇지.”
초무극은 상가인 사내를 보았다.
“알았소.”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상가에서 온 사내는 곧바로 몸을 날려 자리를 떴다. 그사이 살아남은 천객들까지 합류하여 제법 많은 이들이 모였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잿더미가 돼 스러져 가는 삼사천가 건물을 바라보았다.
삼사천가를 지켜보는 자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삼사천가 밖에서도 엄청난 수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오군도독부 무장과 병사들이었다.
화르르! 화르르!
툭! 툭툭툭!
“이로써 삼사천가도 몰락이군.”
무장 중 한 명이 말했다.
중앙에 있는 이자는 좌군도독 이지상이었다.
“진작 없앴어야 할 자들이었네.”
이지상 옆에 있는 자가 말했다. 그는 우군도독 유기창이었다.
“그렇지.”
이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네. 삼사천가를 완벽하게 지우려면 저 불바다 속에 웅크리고 있는 놈들까지 모두 없애야 하네.”
유기창이 말했다.
“그렇게 해야지.”
이지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 뒤에는 오군도독부 병력 이만 명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이지상은 검을 뽑아 들었다.
“무기를 뽑아라!”
그가 외치자 이만 명이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진격하라!”
이지상은 검을 힘차게 내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진격하라!”
“진격하라!”
우렁찬 함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이만 명의 병력이 일제히 폐허로 변한 삼사천가로 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