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55)
입성
금장생을 노려보는 자운영과 권말남의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까지 많은 희생이 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두 사람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건 금의위와 동창의 권위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두 분께서 우리 집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금장생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너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권말남이 빽 소리쳤다.
“위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았지만 우리 망루와는 상관없는 일…… 아! 장례 때문에 오신 거구나.”
“너, 사업 접고 싶어!”
권말남이 다시 소리쳤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리고 난 법을 어기면서 사업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사업체 몇 개 정도 없애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건 너도 알 텐데?”
“알겠습니다. 원하는 걸 말해 보십시오.”
“너, 사상 맞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진작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사천가 무인들이 왜 너를 노린 거지?”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들은 두 분을 노리고 온 걸로 아는데요?”
“우리가 아니고 너야.”
“나 한 명을 없애겠다고 무림십패의 일인인 추밀과 일면 악교교 그리고 무인 오백 명을 보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엔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네.”
자운영이 말했다.
“처음이란 말은…….”
금장생은 자운영을 보았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까 그들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오백객뿐만 아니라 천객을 전부 보냈어야 했다고 말이네. 그들이 없애길 원하는 사상은 그만큼 강자였단 말이네.”
자운영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오백객을 없앤 이들은 제가 아니고 화가에서 나온 무인 이백 명과 금의위 위사 백 명, 동창 무인 백 명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도록 한 사람이 자네가 아니라고 할 텐가?”
“제가 신도 아닌데 무슨 수로 천 명이니 되는 무인을 서로 싸우게 합니까?”
금장생의 대답에 자운영과 권말남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경우엔 증거를 들이밀어야 하는데 두 사람에게는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네 녀석은 말로 해서는 안 돼. 묵영대 있느냐!”
권말남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묵영대와 백영대 대원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부르셨습니까, 첩형.”
묵영대 대주 야환이 권말남 앞으로 가 고개를 숙였다.
“이자를 당장 체포해.”
권말남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무슨 죄목으로 날 체포한단 말입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병부상서 육구남, 조군도독 이벌계, 동창 제사첩형 윤구, 호부상서 석숭, 중군도독 윤허하, 상장군 하돈을 살해한 혐의야.”
야환과 작설이 금장생 앞으로 다가섰다.
―어떻게 할까요?
―주공.
그때 금장생의 귓전으로 혁무심과 불여하의 전음의 흘러들었다.
―이들을 없애면 일이 더 커집니다.
―하지만 잡혀가면…….
이번에 전음을 보낸 사람은 불여하였다.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금의위 위사와 동창 무인들이 주공 방 주위를 포위하고 있어요.
―저 둘은 들어오기 전에 날 체포하기로 작당을 했다는 거네요?
―그런 것 같아요.
“점혈을 할게요.”
작설이 금장생의 혈도를 눌렀다.
그리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자운영과 권말남도 일어났다.
“날 어디로 데려갈 겁니까?”
금장생은 방에서 나가며 물었다.
“몰라도 돼.”
일행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따라갈게요.
불여하는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금장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곳에 있어 봐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자운영과 권말남이 먼저 들른 곳은 낙양 관아였다. 그곳에서 금장생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그런 다음 감옥에 수감했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예요.
그때 불여하의 전음이 들려왔다.
―말하세요.
―제압된 거 아니었어요?
불여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이혈대법으로 혈도를 옮겼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계속 따라갈 거예요?
―권력을 쥔 자들이 체포해 가겠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이건…….
―천야에게 말해서 제 옷이나 챙겨 달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종이 뭉치 하나가 금장생의 품에서 나와 허공으로 날아가더니 쇠창살을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뭐죠?
―앞으로 사용할 돈입니다.
―그들이 주공을 오래 잡아 둘 거라고 보세요?
―그들이 날 체포한 목적은 내가 아니라 초인삼황이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구금 기간이 길어지게 될 겁니다.
―알았어요.
―따라오진 말고 먼저 북경으로 가 계세요.
―북경으로 갈 거라고 보세요?
―금의위와 동창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이 북경이잖아요.
―알았어요. 천야에게도 그렇게 전할게요.
불여하는 자리를 떴다.
금장생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이른 새벽 금장생은 마차에 올랐다. 새벽안개를 뚫고 달린 마차는 낙하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커다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의 선수 옆에는 적룡이라고 적혀 있었다. 동창에서 보유한 배들 중 가장 크고 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대형 전투함이었다.
적룡호는 지상 이 층과 지하 이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노잡이를 비롯한 승조원의 인원만 해도 사십 명이었다.
금장생이 수감된 곳은 지하 이 층이었다.
“따라오는 자들은?”
자운영은 금영대 대주에게 물었다.
“없습니다.”
대주는 고개를 저었다.
“없다고?”
자운영은 권말남을 보았다.
“놈이 이미 조치를 취했을 거예요.”
“부하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단 말인가?”
“우린 이미 놈에게 부하가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상관이 잡혀가고 있는데 따라오지 않을 리가 없어요.”
권말남은 단언하듯 말했다.
“그런데 우리 작전이 먹힐 거라고 보는가?”
자운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와 권말남이 금장생을 북경으로 호송해 가는 건 상부의 지시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정이었다.
이번 싸움으로 두 사람은 동창과 금의위의 권위가 먹히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에서는 자신들이 패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무인과 무공을 익힌 관리와 싸우면 무인이 승리하는 건 당연하다. 지금까지 금의위와 동창 무인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무형의 힘은 권위다. 그런데 이번에 싸운 자들은 권위의 힘이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창과 금의위에게 유리한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 한다. 그곳이 바로 북경이었다. 둘의 작전은 금장생을 사상으로 확신했기에 시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북경으로 찾아올 거예요. 이번 작전에 내 모든 걸 걸어도 좋아요.”
권말남은 확신하듯 말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금장생도 배로 찾아온 오다아이와 도쿠가와 신켄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장생 근처에 은신한 채였다.
―일부러 북경으로 간다고요?
오다아이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실 금장생의 실력이면 자운영이나 권말남을 비롯하여 금의위 위사나 동창 무인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두 세력과 싸우는 상황이었으니까 완전범죄도 가능했다. 권말남과 자운영이 죽는다고 해도 금장생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절대적인 기회를 버리고 잡혀가더니 이젠 계획적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금의위 영반과 동창 제독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그들을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요?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사업 이야기라고요?
―지금은 그렇게만 알아 두세요. 그보다 가주가 신경 써야 할 건 태양상인 뱁니다.
―사실 여기 온 건 그걸 보고하기 위한 것도 있어요.
그녀는 이미 금장생으로부터 태양상인의 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계속 감시하는 중이었다.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동영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배에 실린 건 어떤 거죠?
―중원 가치로 따지면 은 이천만 냥이 실렸어요.
―태양상인에는 그 정도 돈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동영에서 은을 살 때 지불한 돈은 오백만 냥이에요. 나머지 오백만 냥은 외상이고요. 그리고 그 돈을 댄 측은 상천금가였어요.
―계획은 세웠겠죠?
―네. 그 배는 중원으로 들어오지 못할 거예요.
―그 일이야말로 완전범죄가 돼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수고 좀 해 주세요.
―알았어요.
오다아이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배가 출발한 건 한 시진 후였다. 배가 출발하자 금장생은 곧바로 자리에 누웠다.
* * *
추밀과 악교교 그리고 오백객의 몰살 소식은 곧바로 삼사천가로 전해졌다. 그 소식을 치천검황 심무극에게 보고하는 자는 엘이었다.
“몰살당했단 말이냐?”
“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완벽하게 당했습니다.”
“동창과 금의위냐?”
“오백객과 싸운 자들은 동창과 금의위 무인 그리고 화가 무인 이백 명입니다.”
“화가가 왜 끼어든 거냐?”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일로 왔다가 오백객과 부딪친 모양입니다.”
“사상은 어떻게 됐느냐?”
“북경으로 호송 중입니다.”
“체포됐단 말이냐?”
“네.”
“금의위 진무사와 동창 첩형이 사상을 잡을 정도로 강자라는 거냐?”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동창 첩형 권말남과 금의위 진무사 자운영은 사상으로 보이는 자를 체포해서 북경으로 압송 중입니다.”
“지금 어디 있느냐?”
“이삼일이면 북경으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금의위나 동창 감옥으로 투옥되겠지?”
“그럴 겁니다.”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객이 몇 명이나 되느냐?”
“천객은 대부분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백 명은 놈을 없애는 데 투입하고 오백 명은 불러들여라.”
“알겠습니다.”
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라.”
“할 이야기가 더 남았습니까?”
엘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황실을 접수하기로 했다.”
“……결심을 하신 겁니까?”
잠시 심무극을 바라보던 엘이 물었다.
“놀라지 않는구나.”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황제가 되실 생각입니까?”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 생각을 해 보긴 했다. 문제는 번거로운 일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들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현 황제를 제거하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거다.”
“현 황제는 신하들로부터도 신망을 잃어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상탭니다.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더 힘든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방법이라면…….”
“먼저 타락제일관 관주로 있는 다정성모를 복귀시키고 그 계집을 우리한테 넘기자고 했던 자들을 모두 없애는 거다.”
“그렇게 되면 삼사천가도 정리해야 합니다.”
“정리할 생각이다.”
“삼사천가도 없앨 참이십니까?”
“이곳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날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완전히 태워 버려야지.”
심무극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