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53화 (353/524)

황금가 (353)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그건 곧 무림십패라고 부르는 모든 무인들이 삼사천가 소속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정말입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나도 최근에 안 사실이다.”

“그럼 춘추오패는 어떻게 된 겁니까?”

무림 최강 세력이라 불리는 춘추오패의 수장들은 모두 무림십패에 속해 있다. 천사 척사랑은 환수각의 주인이고 단천 파운양은 해림의 주인이며, 패도 천파는 마원의 원주다. 적룡 철전혼은 운성의 성주고 소수 방가려는 천야교의 교주다. 그런 그들이 모두 삼사천가 출신이라니 놀라운 말이었다.

거기에다 제왕 초무극과 무적 고독혼 그리고 혈류 추밀과 사상으로 불렸던 자신도 삼사천가에 있었으니까 무극 유적기를 제외한 아홉 명이 삼사천가 사람이 되는 셈이다.

“그들 역시 삼사천가 소속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무극 유적기는?”

문득 이곳에서 만났던 유적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귀운자가 남긴 천수십병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문득 그녀가 천수십병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곳이 삼사천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정성모의 호위로 따라왔다가 좌천심황 좌무백의 눈에 들었다. 원래 강한 자이긴 했지만 좌무백의 도움으로 두 배 이상 강해져 무림십패의 일인이 된 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삼사천가에서 사라졌다.”

“제거당했을까요?”

“삼사천가에서 사라졌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좋은 분 같았는데 안됐군요. 그런데 그런 고급 정보를 내게 들려준 이유가 뭐죠?”

“나는 네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추밀이 이렇게 나온 것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탓이다. 원래 출병 목적은 사상은 물론이고 금의위와 동창 무인들까지 모든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금의위와 동창 무인만 없앴을 뿐 수뇌는 잡지도 못했다. 악교교가 나오지 않은 걸 보면 당한 게 분명하다. 만일 지금 상태로 돌아가면 남는 건 책임 추궁뿐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어떻게 하면 면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금장생을 보는 순간 퍼뜩 해결책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살아 있는 사상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상부에서 사상을 죽이든 다시 복직시키든 상관없다. 수뇌들의 시선이 사상에게 쏠려 오백객을 잃은 책임을 면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마지막이 아니다. 설사 내가 여기서 당한다고 해도 그들은 계속 널 없애기 위해 병력을 내보낼 거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내 삶은 삼사천가가 아니라 강호에 있으니까요.”

금장생은 천천히 내기를 끌어 올렸다.

“권주를 마다하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

추밀은 편하게 양팔을 내렸다. 추밀을 무림십패의 일인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암기술이었다.

무림 삼대암기 중 하나인 사엽死葉의 주인으로 소문이 났지만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그와 싸웠던 자들은 모두 당했기 때문이었다.

추밀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거리가 삼 장으로 벌어지자 오른편으로 돌았다. 추밀이 돌자 금장생도 거리를 유지한 채 돌았다. 그의 오른손은 품속으로 들어가 흑사아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파앗!

갑자기 추밀이 속도를 냈다. 방향은 여전히 오른쪽이었다. 그가 속도를 내자 덩달아 금장생도 속도를 냈다. 둘은 마치 서로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두 사람을 보면 경공으로 겨루는 것 같았다.

‘암기가 아니라 경공 일절이네.’

금장생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몇 번의 기연으로 무공의 끝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가 끝을 봤다고 생각하는 무공에는 경공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추밀을 따라잡지 못했다. 결코 대충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는 중이다. 그런데도 추밀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다른 무공은 자신이 더 강할지 몰라도 경공에서만큼은 추밀이 더 강자였다.

하지만 금장생의 놀라움은 추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추밀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암기술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밀이 가장 자신 있는 무공은 경공이었다. 경공 하나만큼은 중원 최고라고 늘 자부했다. 아울러 공격 방식 또한 지금처럼 경공으로 쫓아가다가 사엽을 날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금장생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아니 따라잡지 못한 건 고사하고 따라잡히게 생겼다.

“이익!”

추밀은 암기를 던질 내공만 남겨 두고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가 달려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따라잡지 못하면 네놈의 속도를 늦추겠다.’

추밀은 양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팔소매 속에서 검은 낙엽들이 쏘아져 나왔다. 금장생이 나아가는 속도를 계산하고 펼친 수법이었다.

쓰쓰쓰쓰! 스스스! 쓰쓰쓰쓰!

검은 낙엽들은 스산한 소리를 내고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파앗!

사엽이 들이닥치자 금장생은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차아!”

그 순간 추밀의 오른팔이 강하게 허공을 갈랐다.

번쩍!

검은 광채가 그의 손에서 폭발했다.

“타하!”

금장생 또한 품속에 넣고 있던 오른손을 뽑아 전방으로 뿌렸다.

슈캉!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검은 물체 두 개가 허공으로 튕겨졌다.

추밀이 던진 사엽과 금장생이 던진 흑사아였다. 오 장 높이로 솟구친 두 암기는 살아 있는 것처럼 방향을 바꾸더니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허공으로 떠오른 암기를 다시 움직이는 건 이기어검술의 경지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놀랍게도 추밀은 이기어검술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절대 강자였다.

“차하!”

“타하!”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기합이 터져 나왔다. 곧 두 번째 암기가 두 사람의 손을 떠났다. 추밀의 손에서는 마지막 사엽이 떠났고 금장생의 손에서는 백사아가 떠났다.

사엽 두 개와 비수 두 자루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며 파고들 기회를 노렸다. 하나는 상대방을 공격하고 다른 하나는 방어를 했다. 공격을 주고받으면서도 두 사람은 계속 경공술로 상대방을 쫓았다.

“대단하네요.”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불여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게요.”

혁무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추밀이 저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보다 더 강하네요.”

불여하가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요.”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위대함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과거 인간은 단순한 손짓만으로 목숨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고 하였다. 그랬던 인간이 지금은 신족이나 마족을 넘어섰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저런 강자가 나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말이 된다.

“응!”

갑자기 혁무심의 눈이 커졌다. 허공으로 솟구친 붉은 광채, 즉 금장생의 무기가 수십 개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저, 저건?”

비수의 수가 늘어나는 광경에 가장 놀란 사람은 마노왕 적사월이었다.

“저, 저건 데스 케이나인?”

적사월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말 저게 데스 케이나인이란 말인가?”

질문을 한 사람은 화노왕 금웅이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건 마족 무기 서열 이위에 올라 있던 데스 케이나인이 맞네.”

적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사월이 이렇듯 마족 무기에 능통한 건, 그가 수장으로 있던 마가가 마족들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저 전설의 무기가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네.”

금웅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로 그 순간 검은 물체가 유성처럼 추밀을 향해 쏟아졌다.

“어떻게…….”

추밀은 멍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검은 물체를 보았다. 수십 개에 달하는 검은 물체는 허상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거력을 머금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한 저 공격을 막아 낼 무공이 자신에겐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없애려고 발악을 했던 거였어. 그래서…….”

추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세 가주가 금장생을 없애려고 하는 이유를 지금껏 몰랐다. 머리를 가져오라고 하기에 오백객을 이끌고 출병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상의 실제 무공을 보자 그들이 금장생을 없애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금장생은 지금까지 본 무인들 중 가장 강했다.

“빌어먹을!”

그는 눈을 감았다.

퍽! 퍽퍽퍽! 퍽퍽퍽!

“크아악!”

추밀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온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추밀은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곧 앞으로 처박혔다.

금장생은 손을 슥 저었다. 그러자 흩어졌던 흑사아가 한데 모이더니 한 자루로 바뀌었다.

잠시 흑사아를 바라보던 금장생은 백사아와 함께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과 추밀의 몸에서 흘러나온 강한 기운 때문에 다가서지 못했던 귀신들이 모여들었다.

“태극선의를 입어야 할 모양이네.”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귀신 중 한 명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물었다.

“싸움은 어떻게 됐는데요?”

―금의위와 동창이 이겼다.

“그들은 떠났나요?”

―진식 속을 헤매고 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금장생은 인사를 하고 건물로 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처음 올라왔던 이들이 서 있었다.

“수고했어요.”

금장생이 올라오자 불여하가 말했다.

“수고는 무슨. 내 집에 들어온 도둑을 처리한 것뿐인데요.”

금장생은 벌판으로 시선을 주었다. 오백객을 모두 처리한 금의위와 동창 무인들은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잠식해 들어오는 귀신들의 사념을 몰아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운영과 권말남도 다르지 않았다.

“절반이 더 죽었네.”

남은 자들의 수는 금의위는 사십 명, 동창은 서른다섯 명이었다.

“저기 있는 말뚝을 뽑으면 되나요?”

금장생은 십 장 떨어진 곳 무덤에 꽂힌 쇠말뚝을 가리켰다. 그 쇠말뚝이 바로 진의 중추였다.

“네.”

뒤에 있던 천야가 대답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암노왕 염라가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말뚝을 뽑아 가지고 왔다.

“저치들이 망루로 올지도 모르니까 황금수호대는 숨도록 하세요.”

금장생은 혁무심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혁무심은 시하라와 헤리아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세 명은 곧 어둠에 동화돼 모습을 감췄다.

“우리도 그만 내려가죠.”

금장생은 아래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서 식사를 하던 이들은 깔끔하게 치우고 모습을 감춘 후였다. 장례식장을 나선 그는 그의 처소로 향했다.

“손님들은 떠났나요?”

금장생은 천야에게 물었다.

그가 말한 손님이란 태천야와 그녀의 딸인 태월령 그리고 척사랑이었다.

“척 소저를 따라갔습니다.”

“척 각주를 도와주기로 한 모양이죠?”

“네.”

“안 될 텐데…….”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안 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

“환수각을 장악한 무 대협을 제가 좀 알거든요.”

“그 사람을 안단 말씀이십니까?”

“어쩌다가 친분을 맺었고 친구가 됐습니다.”

“조금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 됐군요.”

“알아서 잘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척 각주와 태 소저가 힘을 합쳐도 회장님 친구분에게 안 될 거라고 보십니까?”

“싸움은 머리 둘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척 각주는 일대일 비무를 제안하겠다고 하던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쪽에는 엄청난 강자가 있는데…… 쯧!”

금장생은 혀를 찼다.

금장생이 말한 엄청난 강자는 천마다. 무혼이 천마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지하를 나와 밖에서 살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누가 있는데 그러십니까?”

“그 사람이 자신을 밝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아무튼 그들은 패할 겁니다.”

그는 처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금의위 진무사와 동창 첩형이 오거든 여기로 안내해 주세요.”

금장생은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천야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은 찻잔을 팔장군 앞으로 하나씩 놓았다. 그리고 우려낸 차를 따라 주었다. 모든 잔을 채운 그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팔장군들을 차례로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