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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48화 (348/524)

황금가 (348)

“저도 그만 놔주시는 게…….”

혁무심의 말이 들려오자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조금 전 예상대로 그가 쥐고 있는 건 혁무심의 가슴이었다. 그는 얼른 손을 풀었다.

‘어째 여자를 구할 때마다 가슴을 쥐는 건지 모르겠네. 정말로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인정해라, 녀석아.

라는 웃으며 말했다.

“절대 인정 못 합니다.”

금장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클클클! 강한 부정은 긍정의 소극적 표현이라는 말 아느냐?

“그건 궤변입니다.”

―아무튼 저 안이나 살펴봐라.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석문을 살폈다. 혹시 석문을 여는 장치가 있지 않나 해서였다. 하지만 석문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날개는 처음 펼친 건가요?”

혁무심이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네.”

“자유롭게 날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해요.”

“연습도 필요해요?”

“무공을 익히는 것과 비슷해요.”

“그럼 열심히 연습해야겠네요.”

금장생은 석문에 손바닥을 댔다. 그리고 가드헬을 약간만 나오게 하여 원을 그렸다. 그러자 석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석문 안쪽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금장생은 가방에서 마법 지팡이를 꺼내 라이트 마법을 펼쳤다. 곧 어른 머리 크기의 빛 덩어리가 생겨나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커졌네?”

금장생은 빛 덩어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마법이 전보다 많이 강해진 것 같았다.

“저, 저건?”

혁무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선을 들었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이 장 전면에 커다란 기둥 두 개가 서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헐!”

그는 멍한 얼굴로 혁무심을 보았다. 기둥처럼 보였던 그것은 철장거인의 다리였다.

“이런 곳에 철장거인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것도 그 사람이 남긴 거예요.”

혁무심은 철장거인 발치를 가리켰다. 그곳에도 귀운자가 남긴 글이 있었다.

파앗!

글을 읽고 있는데 철장거인 눈에 붉은 광채가 폭사됐다.

―나는 헤라넬이다. 계약하겠는가?

금장생과 혁무심의 머릿속으로 동시에 철강거인의 사념이 흘러들었다.

“헤, 헤라넬!”

혁무심은 깜짝 놀랐다. 헤라넬은 바로 자신 이름이었다.

“헤라넬은 대주 이름 아닌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마, 맞아요.”

“그럼 이 녀석은 대주 거네요.”

금장생은 빛 덩어리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철장거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철장거인은 다른 철장거인이 그런 것처럼 검은색이었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이마에 나 있는 뿔을 제외하곤 대체로 밋밋했다. 어깨와 팔꿈치, 무릎에는 입을 쩍 벌린 늑대 얼굴 조각이 붙어 있고 등에는 철장거인이 사용하는 대검이 걸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밋밋해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강한 기운을 풍기는 특이한 철장거인이었다.

“여길 발견한 분은 주공이에요. 철장거인은 저보다 주공께 더 필요해요.”

“난 한 기 있습니다.”

“철장거인이 있어요?”

“네.”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요.”

“멋진 녀석이 있다니까, 고집을 부리네요.”

“보여 주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을 거예요.”

“명령이라고 해도 듣지 않을 건가요?”

“네.”

“좋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신을 소환했다.

웅웅!

대기가 급격하게 왜곡되더니 마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마신의 위용에 혁무심은 탄성을 내뱉었다. 헤라넬이 여성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마신은 야성미가 물신 풍기는 남자 같았다.

“그런데 조금 전 마신이라고 했어요?”

문득 마신이란 철장거인을 어디선가 들어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철장거인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제 계약하세요.”

“알았어요.”

그제야 혁무심은 철장거인과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끝내고 내기 공명을 이룬 후 차원의 틈새로 보냈다. 그런 다음 동굴을 살폈다. 또 다른 걸 남겨 두지 않았나 해서였다. 두 사람이 발견한 건 철장거인 헤라넬을 이곳에 숨겨 둔 이유였다. 귀운자는 혁무심이 이곳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천수십병도 그렇고 철장거인도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겨 버렸던 것이다.

“이래서 인연이란 무서운 건가 보네.”

귀운자가 숨겨 놓은 천수십병과 철장거인을 혁무심이 찾아낼 걸 보면 그것도 인연이 아닌가 싶다.

“인연이라고 보세요?”

“아니면 귀운자의 바람이거나요.”

“어쩌면…….”

혁무심은 석실을 둘러보았다.

“그만 나가요.”

그녀는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석실을 나와 입구에 섰다.

거기서 금장생은 적신천사마공을 펼쳐 날개를 만들어 냈다. 이번에는 좀 더 자세하게 날개를 살폈다. 날개는 검이나 도에서 생성해 내는 검강이나 도강과 비슷했다. 날개를 이용해서 벽을 슬쩍 쳐 보았다.

서걱!

바위 벽이 대번에 잘려 나갔다.

“만일 날개가 잘리면 어떻게 되죠?”

“검강이 잘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네요.”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강력한 힘에 의해 검강이 잘려 나가면 시전자는 내상을 입는다. 하지만 내상 외에 다른 부상은 없다. 그건 곧 날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가 볼까요?”

금장생은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혁무심도 날개를 펼쳐 금장생을 따랐다.

“어떻게 날죠?”

금장생은 날개를 펼친 채 물었다. 바람을 탄 듯 아래로 바로 추락하지 않았다.

“먼저 날개와 교감이 통해야 해요.”

“날개는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날개가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니라 팔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흠! 그건 아직.”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등에서 기다란 뭔가가 외부로 뻗어 나가 있고 의지를 보내면 움직인다는 정도지 팔이나 다리처럼 생각되진 않았다.

“세세한 부분까지 인식해야 완전한 비행이 가능해요.”

“그건 나중에 해 봐야겠네요. 일단 내려가죠.”

금장생은 날개를 접고 허공답보를 펼쳐 아래로 내려갔다.

척! 척!

“저기다!”

두 사람이 내려서자마자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협곡 아래쪽으로 내려와 금장생을 찾아 헤매던 화가 무인들이었다.

“잡아라!”

화가 무인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금장생과 혁무심을 쫓았다. 그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건 금장생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였다.

“저기로 가요.”

금장생은 협곡 왼쪽을 가리켰다.

“와아아아!”

“우와아아!”

거기서도 수십 명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별수 없네요.”

금장생은 마치 뭔가를 쥔 것처럼 손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자 가드헬이 솟구쳐 나왔다. 넉 자 길이로 늘어난 가드헬은 왜도 모양으로 변했다.

“내가 왼쪽을 맡을게요.”

혁무심이 왼편으로 몸을 날려 갔다.

“조심하세요.”

금장생은 오른편으로 내달렸다.

달려가면서 금장생은 적안을 펼치는 구결을 읊었다. 그러자 악마수와 그의 왼팔이 모두 붉게 변했다.

“파이어!”

그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고 열 개의 적안이 발출됐다. 금장생의 머릿속에는 어둠을 뚫고 날아가는 적안의 모습이 그려졌다.

“암기다! 조심하라!”

선두에서 달리던 자가 적안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럴 수는 없지.”

금장생의 시선이 사내의 오른편으로 향했다. 그러자 적안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쪽으로 이동했다. 다시 금장생의 시선이 사내의 목으로 향했다.

슉!

적안은 사내의 목으로 파고들었다.

“파이어!”

금장생은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또다시 적안 열 개가 발출됐다. 적안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적이 허점을 보이면 그곳으로 파고들었다.

금장생의 머릿속에는 적안 스무 개의 위치와 움직임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물론 적의 위치도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그는 움직이는 적을 향해 적안을 날렸다. 하나가 날아가기도 하고 두 개, 세 개가 동시에 날기도 했다. 적안이 붉은 광채를 토해 내면 어김없이 화가 무인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화가 무인들이 마냥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차하!”

“타하!”

기합과 함께 협곡으로 내려가는 절벽에서 십여 명이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은 원거리에서 공격을 펼치는 금장생을 없애기 위해 협곡 절벽을 통해 이동해 온 자들이었다.

순간 금장생이 들고 있던 가드헬이 허공을 갈랐다. 가드헬은 수많은 잔상을 허공에 남겼다.

슈캉! 슈캉! 슈캉! 슈캉!

가드헬과 부딪친 검이 뎅겅뎅겅 잘렸다.

그리고 검에 이어 화가 무인들의 몸통이 잘렸다. 가드헬은 몸통과 목을 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려 나갔다. 가장 먼저 떨어진 다섯 명이 죽임을 당하고 두 번째로 뛰어든 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죽임을 당한 자들이 흘린 피가 금장생의 전신으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금장생은 가드헬을 휘두르면서 적안을 조종했다. 마치 바둑을 두고 난 사람이 복기를 하는 것처럼 이십여 개의 적안은 그의 머릿속에서 날아다녔다.

“커억!”

“크윽!”

“아악!”

오 장여 떨어진 곳에서는 적안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바로 위에서는 가드헬에 당한 자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위에서 달려들던 자들을 다 없앤 금장생은 왼편을 보았다. 혁무심이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도 피로 범벅이었다. 움직임을 봐서는 다친 거 같지는 않은데 지금은 알 수 없다.

“파이어!”

금장생은 다시 열 개의 적안을 발출했다. 이번 적안이 날아가는 곳은 혁무심의 머리 위였다. 금장생의 머릿속에서는 총 서른 개의 적안이 사방으로 움직여 다녔다. 금장생은 그 모든 적안을 자유롭게 제어했다. 적진에서 비명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머리는 괜찮은 게냐?

금장생이 서른 개의 적안을 조종하자 라가 물었다. 적안을 발출하는 것과 조종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 발출하는 건 검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면 조종하는 건 이기어검술을 펼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한두 개도 아니고 서른 개를 동시에 조종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에 이미 오십 개를 조종하긴 했지만 그때는 적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금장생은 사념을 보냈다.

―엄청나게 발전했구나.

―발전이 아니라 적응이지요.

“컥!”

“큭!”

“윽!”

또다시 비명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금장생은 혁무심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혁무심은 싸움을 하면서 물러났다. 금장생도 혁무심 쪽으로 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등을 맞댔다.

“파이어!”

금장생은 다시 열 개를 더 발출했다. 적안은 붉은색 광채를 뿌리며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삼 장 높이로 날아간 적안들은 적진 위에 멈췄다.

“폭暴!”

금장생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터졌다.

슉! 슉슉슉!

그러자 적안이 유성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허공에 있던 적안이 아래로 쏟아진 건 오른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혁무심 앞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고 아래쪽에 있던 자들이 전부 죽임을 당했다.

“파이어!”

금장생은 다시 열 개의 적안을 더 발출했다.

오십 개의 적안. 악마수가 발출할 수 있는 적안의 최대치다.

“합合!”

금장생은 짤막하게 외쳤다. 그러자 적안이 맹렬하게 날아가 허공에서 모였다.

“회回!”

쟁반 형태가 된 적안이 무서운 속도로 돌았다. 얼마나 빠른지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파破!”

우렁찬 기합이 금장생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자 회전하고 있던 적안이 튕겨져 나갔다. 적안은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마, 막…… 커억!”

“크윽!”

“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화가 대천좌들은 단 한 명도 적안을 막아 내지 못했다. 그들이 적안을 막아 내지 못한 건 부족한 실력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사방을 채운 어둠과 난생처음 대하는 특이한 공격 방식 때문이었다. 적안에 대해 좀 더 알고 밝은 대낮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커억!”

나직한 비명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전멸.

화가 대천좌 이백 명이 금장생과 싸워 얻은 전과였다. 아니 아직 완전하게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대천좌를 이끌고 왔던 철검마존 조철웅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로 금장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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