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42화 (342/524)

황금가 (342)

혁무심의 과거

이정윤은 팔 상박을 빠르게 쓸었다.

화정루를 감시한 지 두 시진이 지났다. 차가운 밤공기로 인해 온몸이 꽁꽁 얼었다.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내기를 온몸으로 돌렸지만 금세 한계에 부닥쳤다. 한 시진이 지나자 내기는 바닥을 보였고 반 시진 전부터는 더 이상 내기 운용이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한겨울 추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안 올 모양이네.”

이정윤은 팔 상박을 부지런히 쓸며 중얼거렸다.

―틀렸어.

그때 귓전으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헉!”

이정윤의 눈이 커졌다.

슉!

바로 그때 아혈과 수혈이 뜨끔했다. 이정윤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이정윤의 수혈을 누른 자는 헤리아였다. 헤리아는 이정윤을 둘러메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녀는 대문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도착한 순간 혁무심과 시하라도 다가왔다. 그녀들도 사내를 한 명씩 둘러메고 있었다.

세 여자는 둘러메고 왔던 사내들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슥!

미약한 소성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금장생이었다. 혁무심 일행이 감시자를 처리하는 동안에 금장생은 다른 감시자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정찰했던 것이다. 혁무심 일행에게 숨어 있는 세 명을 가르쳐 준 사람도 금장생이었다.

혁무심 일행은 무공이 강하긴 하지만 감시자를 찾아내는 것 같은 세세한 일에는 아직 서툴렀다.

“이자들은 어떻게 하죠?”

혁무심이 물었다.

“여기 내려놓으면 됩니다.”

금장생은 바닥을 가리켰다.

세 여자는 둘러메고 왔던 사내들을 내려놓았다.

“두 분은 들어가세요.”

금장생은 시하라와 헤리아를 보며 말했다.

“알았어요.”

시하라와 헤리아는 은신술을 펼쳐 몸을 숨겼다.

그녀들이 사라지는 순간 금장생은 오른손을 내질렀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대문이 터져 나갔다.

금장생과 혁무심은 안으로 들어갔다. 본관 건물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오늘은 편하게 일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화정루 주인은 돈을 챙겨 기다리고 있었다. 금장생은 주류 대금에 밀린 이자까지 받아 들고 조용히 화정루를 나왔다.

그와 혁무심 일행은 곧바로 다음 주루로 갔다.

그곳은 금화루였다. 금화루 앞에 도착하자 금장생은 곧바로 하오밀문 문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로 가서 세 세력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세 세력은 금장생이 화정루를 다녀간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곧바로 금화루로 갔다. 감시자를 찾는 건 금장생의 일이었다.

물론 모두 일을 혼자 하진 않는다. 혁무심 일행이 주위를 돌며 수상한 자를 찾고, 결정은 금장생이 내렸다. 금화루 주변에는 총 다섯 명이 숨어 있었다.

그들을 모두 처리하고 이번에는 문을 부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금화루 주인도 화정루 주인처럼 돈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금장생은 동전 한 문 깎아 주지 않고 이자까지 전부 받았다.

그리고 조용히 기루를 떠났다.

“소식 없어?”

권말남은 백영대 대주 작설에게 물었다.

“없어요.”

작설은 고개를 저었다.

“감시하는 대원들은 얼마 만에 한 번씩 소식을 전해 오지?”

“그건…….”

작설은 말끝을 흘렸다.

“왜?”

“놈들이 나타나면 바로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어요.”

“그놈이 어떤 놈인데, 감시하는 자들을 살려 둘 것 같아! 당장 연락해서 반 시진에 한 번씩 상황 보고를 하라고 해!”

권말남은 버럭 소리쳤다.

“알았어요.”

작설은 급하게 뛰어나갔다. 잠시 후 동창 무인 수십 명이 낙양 곳곳으로 몸을 날렸다.

대원들이 돌아온 건 한 시진 후였다.

“화정루, 금화루, 천선루, 양화루 네 곳은 벌써 털렸대요.”

작설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길! 나머지 네 곳은 어디어디야?”

권말남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석정루, 운우루, 황루, 정루예요.”

“지도 가져와!”

“여기 있네.”

자운영이 지도를 가지고 들어왔다.

권말남은 지도에 네 개 남은 주루를 표시했다. 그런데 주루 사이 거리가 전력으로 달린다고 해도 한 식경이 걸릴 정도로 멀었다.

“약은 놈!”

권말남은 지도를 쏘아보았다. 주루 사이의 거리가 멀면 설사 들킨다고 해도 다른 주루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금장생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지만 쫓는 자들 입장에서는 여간 짜증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각 주루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도 한 식경 이상 걸린다. 결론적으로 네 주루 중 한 곳이 공격당하는 걸 안다고 해도 연락을 받고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면 상황은 종료되고 난 뒤다.

“우린 한 곳을 선택해서 갈 수밖에 없네.”

자운영이 말했다.

“놈이 어디로 갈 것 같아요?”

권말남은 지도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내가 그라면 낙하로 가겠네.”

“낙하 쪽은 삼사천가에서 나온 자들이 있잖아요.”

“그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거라고 보는가?”

“모르면 사상이 아니지요. 삼사천가 무인들뿐만 아니라 동쪽에 진을 치고 있는 화가 무인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놈이 갈 곳은 여기밖에 없어요.”

권말남은 북망산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만일 선택이 잘못되면 그를 놓치게 되네.”

“놈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뭔지 아세요?”

“뭔가?”

“너무 은밀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삼사천가나 화가 무인들의 발을 묶어 놨다는 거예요.”

“그들이 움직여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데, 움직일 여력을 주지 않았다는 거군.”

“맞아요. 우리도 그렇고 삼사천가나 화가 무인들도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북망산뿐이에요.”

“북망산이면…… 정루군.”

지도를 보던 자운영이 말했다.

“일차 저지선은 정루로 하고 이차 저지선은 북망산으로 하면 될 거예요. 우리 동창에서 북망산을 맡을게요.”

“그럼 난 정루군. 그런데…….”

자운영은 권말남을 보았다.

“삼사천가 무인과 화가 무인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돼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와 부딪칠 수도 있소.”

“그자들이 개입하면 우리는 빠져서 놈이 사상이란 증거만 확보하면 돼요.”

“잘 빠질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자운영이 우려 어린 얼굴로 말했다. 확인한 바로는 오백객은 말 그대로 오백 명이고 화가 무인은 이백 명이다. 그들과 얽히게 되면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빠져나오는 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놈을 찾아야 해요.”

“정루로 이동합시다.”

자운영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잠시 후 동창과 금의위 무인 이백 명이 숙소를 나섰다. 그들이 떠나고 한 식경 후 효시가 동시에 하늘로 솟구쳤다. 그들은 동창과 금의위를 감시하던 오백객과 화가 무인 측 사람이었다. 서로 색이 다른 화살은 시간 차를 두고 몇 대가 더 쏘아졌다.

화살을 본 자들은 서쪽과 남쪽에 있던 화가 무인과 오백객이었다. 화살의 의미를 파악한 양쪽 무인들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달려가는 곳은 북망산 방향이었다.

북망산 쪽을 향해 달려가던 자들 중 가장 먼저 정루에 도착한 측은 금의위 위사들이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정루는 조용했다.

“대주.”

자운영은 금영대 대주를 불렀다. 그러자 일곱 자루의 검을 등에 찬 자가 다가왔다. 금영대 대주 칠검사야 오만상이었다. 물론 하오밀문의 동로 오만상과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인물이다.

“네.”

오만상은 고개를 숙였다.

“대원들이 들어갈 곳을 알아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오만상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금의위 대원들은 정루 옆 기루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정루를 감시했다.

금장생 일행이 정루로 온 건 감시를 시작한 지 한 시진 후였다.

“왔습니다.”

정루를 감시하던 오만상이 다가와 보고했다.

“삼사천가 무인들은?”

“아직 도착…….”

피우우우!

바로 그때, 푸른색 효시가 허공을 갈랐다. 그 효시는 금의위 무인이 쏜 걸로 삼사천가나 화가 무인이 나타났다는 의미였다.

오만상은 방금 효시가 올랐던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삼사천가 무인이 도착하면 한 발, 화가 무인이 도착하면 두 발을 쏘기로 했던 것이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효시는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방금 도착한 자들은 삼사천가였다.

“왔습니다.”

그때 감시하던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운영은 얼른 창가로 고개를 내밀었다.

정루 대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쿵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대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이로 보면 빚쟁이가 아니라 술을 마시러 온 손님 같았다.

“가자!”

자운영은 벌떡 일어났다.

잠시 후 금의위 무인들은 정루 왼편으로 집결했다.

“들어간다.”

자운영은 바닥을 찼다. 잠시 후 그를 비롯한 금의위 위사들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악!”

“으아악!”

“크악!”

정루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둘러라!”

자운영은 낮게 소리치고 안으로 내달렸다. 그 순간 오백객 대원들도 담을 넘어 뛰어 들어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정루 동쪽에 진을 치고 있던 화가 무인들에게도 감지됐다.

“어떻게 할까요?”

화가 무인 중 한 명이 수좌 조철웅을 보며 물었다.

“적에 대해서는 파악했느냐?”

조철웅이 물었다.

“금의위와 동창 무인은 확인했는데 나머지는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우린 일단 상황을 지켜본다.”

조철웅은 지금 당장 나서는 것보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처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정루 안에서 계속해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북쪽으로 간다!”

이어 안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가자!”

조철웅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한밤중에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가장 선두에서 달리는 자는 금장생과 혁무심이었다.

두 사람 옆에서 암흑마족과 신족 그리고 암흑천사들은 은신술을 펼친 채 내달리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죠?”

금장생 옆에서 달리던 혁무심이 물었다.

“우리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은 혁 대주도 잘 아는 이들입니다.”

“누군데요?”

삼사천가에서 나온 자들로 오백 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백객?”

“그들을 오백객이라 부르는가 보죠?”

“누가 이끌고 있죠?”

“혈류 추밀과 일면 악교교가 이끌고 있습니다.”

“오백객의 수장은 살부 도인이고 도인은 상가인인데, 이상하네요.”

“도인이 추밀이나 악교교보다 더 강해요?”

“도인이 약하지 않다고 해도 추밀이나 악교교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을 거예요.”

“무공도 더 강하고 지리도 잘 아는 자를 지휘관으로 택한 모양이네요.”

“그렇군요.”

혁무심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수백 명이 메뚜기처럼 이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들이 삼사천가 무인이군요.”

금장생을 따라 고개를 돌렸던 혁무심이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 조장.

혁무심은 양홍에게 전음을 보냈다.

―네.

―우리를 쫓는 자들의 정체를 파악해서 알려 줘요.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양홍이 뒤로 빠졌다.

“좀 더 속도를 내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파앗! 파앗!

금장생과 혁무심이 몸을 날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도인!”

악교교는 오백객 객주 도인을 불렀다.

“네, 수좌!”

도인은 악교교 곁으로 달려가며 대답했다.

“북망산에 있는 자들에게 신호를 보내서 놈을 막으라고 해라.”

유일한 탈출구가 북쪽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권말남뿐만이 아니었다. 악교교 또한 권말남과 같은 생각을 했고 병력을 배치해 둔 상태였다.

피우우우!

곧 효시 석 대가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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