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41)
“그럼 말해 보세요?”
“뭘 말하라는 거지?”
“나는 당신이 처음이 아니에요. 그동안 적잖은 사내를 만났고 깊은 관계까지 갔어요. 하지만 오늘처럼 흥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엉덩이를 허락한 적도 없고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그런 거 아닐까?”
“……그렇군요.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느낌, 또 가질 수 있을까요?”
“어쩌면?”
“당신이 아니면 안 되겠죠?”
“그럴 거야.”
제갈영우는 손을 들어 헌원유의 가슴을 지그시 그러쥐었다. 그러자 헌원유의 몸이 꿈틀댔다.
“지금부터 내가 불러 주는 구결 암기하세요.”
헌원유는 밀려오는 열기를 애써 누르며 말했다.
“뭔데?”
“부활대법이에요.”
“나도 신족일까?”
제갈영우가 물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종족은 신족뿐이에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일단 부활대법을 읊어 봐.”
헌원유는 부활대법을 읊었다.
제갈영우는 세 번 만에 부활대법의 구결을 모두 암기했다.
“만일 다시 살아나면 어떻게 할 거죠?”
“뭘?”
“아버지께 말씀드릴 거냐는 거예요?”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
“왜요?”
“그분은 내가 신족이라는 걸 몰랐잖아. 다행히 인정해 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제거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럼 나도 입 다물게요. 그놈이 나타났을 땐 당신은 심부름을 가고 없었다고 할게요.”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그놈은 어떻게 할 거죠?”
“두강양조의 새로운 주인?”
제갈영우는 일단 금장생에 대한 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
“네.”
“받은 만큼 돌려줘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냐.”
“녀석을 잡게 되면 내게도 반드시 말해 줘야 해요.”
“그렇게 할게.”
“이제 부활대법을 펼쳐요.”
“알았어.”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부활대법을 펼쳤다.
* * *
정주를 떠난 금장생은 곧바로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에 도착한 건 다음 날 새벽 무렵이었다.
가장 먼저 그가 찾아간 곳은 하오밀문 낙양 지부였다. 금장생을 맞아 준 사람은 낙양 지부 지부장 윤설모였다.
처음엔 경계하다가 황금표국 국주라고 소개하자 반색하며 반겨 주었다. 금장생은 낙양 지부 내실로 안내됐다.
“흉흉한 기운이 낙양 전역에 감도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습니까?”
금장생은 윤설모가 내놓은 차를 마시며 물었다.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윤설모는 고개를 저었다.
“아는 것만 말해 보세요.”
“근자에 하남성 각 주루가 폭력배들의 방문을 받은 걸 알고 있습니까?”
“주류 대금을 받으러 간 거라고 하던데요?”
“하긴 돈이 있으면서도 주류 대금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윤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특이한 거라도 있습니까?”
“동창과 금의위 무인 이백 명이 그들을 쫓고 있지 뭡니까?”
“그들이라면?”
“주류 대금을 수금하는 자들 말입니다.”
“수금하러 다니는 자들은 몇 명이나 되는데요?”
“은신술을 펼치고 다닌 바람에 다 파악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오십 명 이상 백 명 이하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오십 명 이상 백 명 이하라는 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겁니까?”
“아무리 은신해서 다닌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먹어야 하고, 많은 음식을 싸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상 객잔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늘 숨어 다닐 수만 없으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할 테고요. 그럼 발자국들이 남습니다. 그런 흔적들을 계속해서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수가 어느 정도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동창이나 금의위는 어떨까요?”
“그들도 아마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동창과 금의위 말고 또 누가 들어와 있습니까?”
“북경의 삼사천가 무인 오백여 명입니다.”
“삼사천가요?”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비록 들키긴 했지만, 삼사천가를 떠날 때는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삼사천가 무인 오백 명이 이곳까지 쫓아왔다니. 엄청난 자들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무뎌진 건가?’
금장생은 자신이 흔적을 남겨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런데 아십니까?”
윤설모가 물었다.
“전에 삼사를 지내던 세 사람이 세운 가문 아닙니까. 처음엔 위세 당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이 찾지 않았고 이젠 잊힌 권력이 됐다고 하던데.”
“권력 쪽으로는 잊힌 자들일지 모르지만 무력은 중원무림의 어떤 곳보다 강하다는 게 우리 하오밀문 생각입니다.”
“하오밀문에서는 그렇게 파악한 건가요?”
“네.”
“그것도 근거가 있겠지요?”
“이번에 오백 명을 인솔해 온 자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누굽니까?”
“무림십패의 한 명인 혈류 추밀과 무림십패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일면 악교굡니다.”
“그들이 삼사천가 소속이었다는 건가요?”
“네.”
“그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만 봐도 엄청난 조직이라는 걸 알겠군요.”
“그렇습니다. 우리 하오밀문은 중원무림에서 가장 강한 세력 중 한 곳으로 삼사천가를 꼽고 있습니다.”
“그럼 동창이나 금의위도 그렇게 알고 있을까요?”
“그럴 겁니다.”
윤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들 말고는 없겠죠?”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더 있어요?”
“상천금가에서 나온 무인 이백 명이 낙양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이 낙양으로 온 목적도 수금하는 자들을 잡기 위해선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상천금가에서 나왔다는 건…….”
“정확하게는 상천금가가 아니고 화갑니다.”
“화가요?”
“네.”
“하오밀문은 팔왕가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나 보죠?”
“국주님도 강호무림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군요.”
“많이 알면 알수록 오래 살아남는 곳이 강호잖습니까.”
“그렇지요.”
윤설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들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네.”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한 식경만 기다리시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윤설모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한 식경이 지나자 세 세력이 은신해 있는 곳을 알아 왔다. 그리고 각 세력에 대한 상세 정보도 따로 정리해서 함께 가져왔다.
금장생은 그걸 받아 들고 꼼꼼하게 살폈다.
“이자들의 움직임을 반 시진 간격으로 파악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글을 읽고 난 금장생이 물었다.
“어디서 정보를 받고 싶습니까?”
“내가 그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받고 싶은 곳은 주루 근첩니다.”
“주루요?”
“네. 거기가 어디냐면…….”
금장생은 낙양에서 밀린 대금을 받아야 할 여섯 곳을 말해 주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윤설모는 안으로 들어가 낙양성 지도를 가지고 나왔다. 그 지도는 술집, 기루, 객잔 위주로 작성한 생활용 지도로 제작한 곳은 하오밀문이었다.
윤설모는 금장생이 말한 주루에 붉은색 동그라미를 했다. 그리고 기루 근처 건물 중 한 곳에는 검은색 동그라미를 쳤다.
“검게 칠한 이 건물에 하오밀문 문도가 상주해 있을 겁니다. 물론 조금 전 말한 세 단체에 대한 정보도 함께 가지고 있을 거고요.”
윤설모는 지도를 금장생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윤 대협. 그리고 이건 일 끝나면 문도들과 함께 회식이나 하십시오.”
금장생은 품속에서 백 냥짜리 전표 다섯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윤설모는 손을 저었다.
“혹시 돈이 너무 적어서 그런 거라면…….”
“아이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런 걸 받으면 전 하오밀문을 떠나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제발 거둬 주십시오.”
“나만 아무 말 하지 않으면 되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리고 부하들에게 밤새도록 일을 시켰으면 술 한잔은 사 줘야 상관의 체면이 서는 겁니다. 마음으로 할 게 있고 돈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 겁니다. 윤 대협이 이 돈을 받지 않으면, 내 일을 대충대충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받겠습니다.”
윤설모는 마지못해 돈을 받았다.
“수고 좀 해 주십시오.”
금장생은 윤설모를 향해 슬쩍 미소를 보냈다.
“걱정 마십시오. 그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적당한 기름칠.
때로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잘만 사용하면 투자 대비 수십 배의 효과를 주기도 하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하오밀문 낙양 지부를 나와 남쪽으로 반 시진을 걷던 금장생이 간 곳은 용문석굴의 동굴 중 한 곳이었다.
용문석굴은 낙양 남쪽의 이하를 끼고 있는 동산과 서산에 만들어진 수천 개의 석굴을 말한다. 이곳에 동굴을 최초로 조성한 사람은 북위의 효문제였다. 그 이후 사백 년 동안 강 양편 절벽에 수천 개의 석굴이 생겨났고, 동굴 내부는 불상과 불화 등으로 채워졌다.
금장생과 암흑마족 일행이 머물고 있는 이곳은 불상을 모신 석굴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 동굴이었다. 동굴은 상당히 깊고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 팔십 명 이상이 들어와 있는데도 흔적이 거의 나지 않았다. 금장생이 들어가자 혁무심이 다가왔다.
금장생은 사십 명씩 두 개 조로 나눴는데 이 조 조장이 혁무심이었다.
“헤리아와 시하라도 오라고 할까요?”
혁무심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혁무심은 헤리아와 시하라를 불렀다.
곧 두 사람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금장생은 하오밀문에서 가져온 지도를 꺼내 펼쳤다. 그런데 내부가 너무 어두워 지도가 잘 보이지 않았다.
금장생은 가방을 열어 마법 지팡이를 꺼냈다.
“라이트!”
그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오고 불빛이 나타났다.
“혹시 그거 마법인가요?”
혁무심이 놀란 눈으로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그들에게 마법은 수천 년 전에 잊힌 지식이었던 것이다.
“우연히 익히게 됐습니다.”
“무공보다 더 강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혁무심이 다시 물었다.
“아직은 마법이 강하지 않아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익히면 그때 말해 주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자! 이제 일에 집중하도록 하죠.”
금장생은 지도로 시선을 주었다.
“붉은색으로 칠한 부분이 오늘 밤 수금할 주룬가요?”
지도를 들여다보던 혁무심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부터 할 거죠?”
혁무심이 다시 물었다.
“오늘 밤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어떻게요?”
“여기, 여기, 여기에 우리를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금장생은 금의위와 동창 무인, 삼사천가 무인, 화가 무인을 차례로 가리켰다.
“어떤 자들이죠?”
혁무심이 물었다.
“여긴 금의위와 동창 무인입니다. 이들은 적인지 아군인지 아직 확실치가 않습니다.”
금장생은 먼저 금의위와 동창 무인이 은신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아래쪽은 어디죠?”
“삼사천가에서 나온 자들로 오백 명입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무림십패의 한 명인 혈류 추밀과 무림십패와 견주어도 부족할 게 없다고 알려진 일면 악교교고요.”
“우리를 쫓아온 걸까요?”
“여러분을 쫓아온 건지 아니면 날 잡으러 온 건지는 아직 모릅니다.”
“우리일 가능성이 높은 거예요. 마지막은 누구죠?”
“우리가 수금하고 있는 주루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 무인입니다.”
“그들을 다 정리할 건가요?”
혁무심이 물었다.
“동창과 금의위 무인은 몰라도 삼사천가와 화가 무인은 모두 정리할 참입니다.”
“좋아요. 작전을 말해 보세요.”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