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39)
신
“웬 놈이냐!”
제갈영우의 오른팔이 허공을 갈랐다.
슉!
새파란 광채가 오른편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파앗!
곧바로 제갈영우는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창문을 타고 넘었다.
“허억!”
제갈영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방이 온통 불바다고 일하는 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극락루는 총 다섯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자신과 헌원유가 있는 이곳은 후원에 해당하는 곳이다.
기루와는 거리가 꽤 멀어 어지간한 소란은 들을 수 없다고 해도, 저렇게 불길이 솟구치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두 분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서요.”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금장생이었다.
“누구냐?”
제갈영우는 직감적으로 앞에 있는 자가 외부 소리를 차단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채권잡니다.”
“채권자?”
“주류 대금 말입니다.”
“서, 설마 네가?”
제갈영우의 눈이 커졌다.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
제갈영우는 황당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설마 그가 이곳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간은 이 안에 잘 있습니다.”
금장생은 가슴을 툭 쳤다.
“돈을 받으러 온 게냐?”
이번엔 창가에 서 있던 헌원유가 물었다. 그녀 역시 제갈영우처럼 놀랐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돈을 전장으로 입금했다.”
“그건 나도 봤습니다. 딱 오십만 냥을 입금했더군요.”
“그런데 여기로 찾아왔단 말이냐?”
“계약서에는 특별한 사유 없이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월 이 할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 조항으로 계산하면 귀사는 총 구십만 냥을 주셔야 합니다. 즉, 사십만 냥이 덜 입금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돈을 달란 말이냐?”
“돈거래는 정확히 하자는 게 제 신좁니다.”
“여기 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헌원유는 내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전신에서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건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저렇게 불을 질러 놓고 돈을 달라는 거냐?”
헌원유는 불길을 가리켰다.
“저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걸 대신한 겁니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거라는 건 무슨 뜻이냐?”
“나는 극락루가 운영하는 주루 백여 곳을 돌기 위해 보름이란 시간을 허비했고, 매일 팔십 명의 무인을 동원했습니다. 팔십 명을 부리는 데 들어간 인건비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일인당 오백 냥은 됩니다. 그렇다면 모두 사만 냥입니다. 그 돈도 함께 계산해 주신다면 지금 바로 불을 끄고 철수하겠습니다. 물론 불에 탄 것도 모두 변상할 거고요.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네놈은 그 주루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구나.”
“이 바닥에서 일을 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돈은…….”
“죽여!”
헌원유는 차갑게 소리쳤다.
스윽!
그러자 허공에서 검은 인형 두 명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은 암중에 헌원유를 호위하던 호위들이었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죽이려고 하는 건 가장 어리석은 짓인데. 최악의 선택을 하는군요.”
금장생은 왼팔을 들었다.
그의 입에서 ‘파이어’란 외침이 흘러나오고 악마수가 적안 두 개를 토해 냈다.
푹! 푹!
붉은 광채는 두 인영의 이마로 파고들어 갔다.
“컥!”
“큭!”
비명과 함께 두 명은 화살을 맞은 새처럼 뚝 떨어졌다.
파앗!
그 순간 제갈영우가 바닥을 차고 금장생을 향해 쏘아졌다. 금장생 앞에 도착한 제갈영우는 오른손을 칼날처럼 세워 쭉 찔러 넣었다. 그의 손은 푸른 광채를 뿜어냈다.
“벽라수검碧羅手劍?”
헌원유는 깜짝 놀랐다.
벽라수검은 팔이 검처럼 변하고 금강불괴지신마저도 깨트린다는 무림 삼대 수공 중 하나였다. 제갈영우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강함의 이면에 벽라수검이 있을 줄은 몰랐다.
파앗!
푸른 광채가 다가들자 금장생이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제갈영우는 멈추지 않았다.
재차 바닥을 차며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자 금장생도 제갈영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검인 흑사아가 들려 있었다.
슈캉!
제갈영우의 손과 흑사아가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두 사람의 위치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차앗!”
제갈영우는 기합과 함께 오른팔을 휘둘렀다.
벽라수검으로 펼치는 벽라천검碧羅天劍이었다. 수십 줄기의 검탄강기가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금장생은 흑사아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가 흑사아로 펼치는 무공은 도전에서 터득한 소도笑刀였다. 도가 아닌 단검으로 펼치는 도법이라 완전한 위력은 아니라고 하지만 주변을 모두 장악할 정도로 대단했다.
창! 창창창! 창창창!
소도의 도강과 검탄강기가 부딪쳤다.
푹! 푹!
퍼억! 퍼억!
바닥이 푹푹 파이고 벽이 터져 나갔다.
‘이놈?’
제갈영우의 눈이 커졌다. 그가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벽라수검을 펼친 이유는 금장생이 헌원유의 호위 두 명을 없앨 때 보여 준 무공 때문이었다.
두 명의 호위는 제갈영우가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강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기습을 가했는데 금장생은 단 일 초 만에 없애 버린 것이다. 그걸 본 제갈영우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도 호위처럼 당하고 말 거라 생각하였고 숨겨 두었던 무공을 꺼냈다. 기습을 할 때만 해도 승리를 확신했다.
십 초 정도면 금장생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십 초가 지났는데도 쓰러뜨리기는커녕 밀린다는 기분마저 든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창! 창창창!
“헉!”
섬뜩한 기운이 배로 다가들자 제갈영우는 얼른 엉덩이를 뒤로 뺐다.
스악!
하지만 한발 늦은 듯 씀벅한 느낌이 왔다. 그는 얼른 시선을 내렸다. 흰옷이 시뻘겋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죽일!”
제갈영우는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크아아아!”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전력을 다해 벽라수검을 펼쳤다. 그의 전면이 온통 푸른 광채로 들어찼다. 벽라천검의 마지막 초식인 벽라만광碧羅滿光이었다.
퍼억!
그 광채 중 하나와 금장생이 부딪쳤다.
“커억!”
금장생의 신형이 뒤로 밀렸다.
그러자 제갈영우는 더욱 거칠게 밀어붙였다. 놀랍게도 그가 펼치는 벽라만광은 단발성 공격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계속해서 금장생을 향해 밀려갔다. 마치 검탄강기로 만든 푸른 덩어리가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가는 것 같았다.
차앙!
“커억!”
또다시 비명이 흘러나오고 금장생이 물러나는 거리가 반 장에서 일 장으로 늘었다.
휙!
금장생이 바닥으로 내려선 순간 푸른 광채 하나가 금장생의 등을 향해 쏘아져 갔다. 검을 뽑아 든 헌원유였다. 그녀가 공격을 감행한 건 금장생이 허점을 보였다고 판단한 탓이다. 그녀 또한 제갈영우와 비슷한 강자였기에 공격의 강도는 대단했다.
금장생의 등을 향해 쏘아져 간 푸른 광채는 검탄강기였다. 검탄강기가 금장생의 등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비명과 함께 금장생의 신형이 아래로 쑥 꺼졌다. 그러자 금장생을 공격하기 위해 쏘아 냈던 검탄강기가 제갈영우를 향해 밀려갔다. 본의 아니게 제갈영우를 공격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이런!”
헌원유는 얼른 내기를 거둬들였다.
“컥!”
헌원유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거둬들인 내기도 뻗어 내던 내기와 부딪쳐, 그때 생겨난 반발력이 몸 내부를 강타한 것이었다.
그녀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바로 그때 제갈영우의 검탄강기가 그녀를 덮쳤다.
“커억!”
헌원유의 입에서 피 화살이 터져 나왔다.
“왜?”
헌원유는 멍한 얼굴로 제갈영우를 보았다. 자신이 멈추면 제갈영우도 멈출 줄 알았다. 그런데 제갈영우는 공격을 더욱 강화시킨 것이었다.
“컥!”
하지만 제갈영우도 그녀의 의문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는 시선을 내렸다. 폐가 있는 부분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갈영우가 내기를 거두지 못하고 더욱 강화한 건 금장생의 공격 때문이었다.
쓰러진 것처럼 주저앉은 금장생은 제갈영우를 향해 흑사아를 내던졌다. 만일 흑사아가 화살처럼 날아가 제갈영우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갔더라면, 제갈영우는 공격을 강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금장생은 흑사아의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적당한 속도로 나아가기는 하되 폭풍의 힘을 담았다. 그 기운이 자신의 검탄강기를 뚫고 들어오자 제갈영우는 방어를 하기 위해 힘을 강화했다.
그 순간 헌원유는 내기를 거두고 있었고, 강화된 제갈영우의 벽라만광은 헌원유를 덮쳤다.
상관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충격에 빠진 그의 폐로 흑사아가 파고들었다.
실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상을 당한 게 아니었더냐?”
제갈영우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물었다.
“부상을 당한 게 아니고 저거에 걸려서 넘어진 겁니다.”
금장생은 바닥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터져 나간 벽에서 떨어진 나뭇조각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와 천상화를…….”
“말은 바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저 여자분의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저분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그래도 다들 널 의심할 거다.”
“그것까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이 상황에서 돈을 달라고 하면 나쁜 놈이라고 하겠죠?”
“책상 아래에 보면 고리가 있다. 그걸 잡아당기면 헌원유의 비밀 창고가 있을 게다.”
“그래요?”
금장생은 제갈영우가 가르쳐 준 책상 앞으로 갔다. 책상을 밀자 정말 고리가 나왔다.
고리를 잡고 잡아당겼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두 자 정도 되는 뚜껑이 열리고 내부 공간이 나타났다. 안에는 전표 다발과 책 몇 권 그리고 검은색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먼저 전표를 세어 보았다. 백만 냥짜리 묶음이 다섯 개로 총 오백만 냥이었다.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그럼 두고 가든지.”
“그럴 수는 없죠.”
금장생은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챙기고 다시 뚜껑을 닫고 책상을 원위치 시켰다.
“그런데 이걸 가르쳐 주는 이유가 뭐죠? 내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닌 것 같은데…….”
“그 얼굴, 진짜냐?”
제갈영우는 턱으로 금장생의 얼굴을 가리켰다. 행동이 너무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묻는 말이었다.
“이런 데 오면서 진짜 얼굴로 올 수는 없잖아요.”
“진짜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느냐?”
“그건 어려운 건 아니죠.”
금장생은 유마환영대법을 풀었다. 그리고 말했다.
“두강양조의 새로운 주인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 그 돈 말입니다. 거기에 돈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화왕도 알까요?”
“그게…….”
제갈영우의 눈이 커졌다.
강호 무인들 중 화가 가주를 화왕이라 부르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아니 여덟 가문에 속한 자들이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앞에 있는 자가 화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극락루를 비롯한 백여 개의 주루를 돌며 수금을 가장하여 부순 건 다른 뜻이 있어서란 말이 된다.
“너는 누구냐?”
“내 성은 두 가집니다. 원래 성은 금씨고 요즘 사용하고 있는 건 적씨입니다.”
“금씨와 적씨?”
“네.”
“금씨면 금재천이나 금재산은 아닐 테고, 금장생이구나.”
역시 제갈영우는 머리가 좋았다. 금씨라고 한 한마디로 금장생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역시 머리는 이거군요.”
금장생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문득 제갈영우를 없앤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자가 살아서 적이 된다면 두고두고 힘이 들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