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37)
“지금 가지고 있느냐?”
“네.”
전연은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주머니 하나를 도인에게 건넸다.
“어떤 약이냐?”
“이름은 군자춘입니다.”
“군자춘?”
“군자산과 춘약이 합쳐졌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군자산은 내공을 무력화시키는 독이고 춘약은 말 그대로 사내나 혹은 여자를 성욕의 노예로 만드는 약이었다.
“군자산이 포함돼 있다면 금세 알아차릴 텐데?”
“군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삼 할 정도고 나머진 춘약이라고 합니다.”
“알아차리지 못할 거란 말이냐?”
“군자산은 춘약의 기운을 극대화하기 위해 집어넣은 거라 어지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자춘은 처음엔 약효가 아주 약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진다고 합니다.”
“약효는 얼마나 가는데?”
“최장 십일입니다.”
“만일 십일 안에 교접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
도인은 멍한 얼굴로 전연을 보았다.
“하지만 이걸 파는 자가 말하길 성에 길들여진 남자나 여자는 절대 거부하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겁탈하게 될 거란 말이냐?”
“네. 그리고 그때 겁탈당하던 사내가 자기도 모르게 악교교의 복면을 벗겨 내고 흉측한 몰골에 질겁하여 손을 쳐 내면…….”
전연은 오른손을 강하게 내질렀다.
“군자춘 때문에 내공이 별로 없는 악교교는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되겠구나.”
“설사 한 방에 죽지 않는다고 해도 겁탈을 당하던 자는 악교교를 죽여 증거를 인멸하려고 할 겁니다.”
“들킨다고 해도 모든 책임은 그놈이 지는 거고?”
“그렇습니다.”
“수고했다.”
도인은 고개를 돌려 악교교 처소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넌 끝난다, 하가인 계집.’
도인은 내심 중얼거렸다.
그는 악교교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약을 먹이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추밀의 행방에 대해 보고를 해야 할 때였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악교교와 오백객은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헌원유는 책상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과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책상이 박살 났다.
숨을 씩씩 몰아쉬던 헌원유는 앞에 서 있는 제갈영우를 보았다.
“어디까지 당했다고 했지?”
“상구에 있는 주루들이 당했습니다.”
“그게 언제지?”
“이틀 전입니다.”
“또 그놈들이야?”
“네.”
“이번에는 몇 명이나 당했지?”
“주루 해결사 열 명이 당했습니다.”
“죽일 놈!”
헌원유의 눈동자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산하 주루들이 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비가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일백 개의 주루를 운영하면서도 비상연락망을 구축하지 않은 건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주루 해결사가 먼저 손을 쓰고, 그들로 안 되면 천상대를 보내 해결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기 때문에 비상연락망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연락도 되지 않고 천상대도 없는 지금, 산하 주루가 당해도 조치를 할 방법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강주 대금을 극락루로 보내라고 할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두강주 대금 보관을 각 산하 주루에 일임한 건, 두강양조를 인수했을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만일 일이 잘못돼 관아에서 조사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주류 대금을 들여다볼 테고 극락루로 올려 보낸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럼 극락루와 백여 곳의 주루가 담합했다는 것도 밝혀질 테고, 자칫 잘못하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각 주루가 별개인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강양조에 지불하지 않았던 주류 대금을 각 주루에서 보관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그 지시가 결국 지금, 폭력적인 방법으로 수금하는 자를 도와주는 셈이 되고 말았다.
“상부에 요청한 병력은 어떻게 됐어?”
헌원유는 천상대가 당한 걸 확인하자 곧바로 화가로 연락을 해 병력을 요청했다.
그 연락이 오가면서 사흘을 허비했다. 그사이 주루 수십 개가 약탈을 당했다. 천상대만 당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 볼 텐데 그들이 가장 먼저 당해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내일 도착한답니다.”
“누가 오지?”
“권천좌가 온다고 합니다.”
권천좌는 화가 하급을 구성하는 권천좌, 대천좌, 천좌 중 가장 강한 집단이었다.
“이백 명 전부?”
“네.”
“좀 더 빨리 오라고 할 수 없어?”
“도착하기 전에는 연락할 수 없습니다.”
“젠장!”
헌원유는 욕설을 내뱉었다.
“권천좌가 오면 그놈들은 해결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루 또한 금세 정상화될 거고요.”
“계획적인 것 같지?”
먼저 천상대를 처리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천상대가 몰살을 당하면서 자신은 손발은 물론이고 눈과 귀까지 잃은 상태다.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산하 주루를 치고 있는 그놈은 그 주루들이 극락루와 관계가 있다는 걸 알까?”
“모를 겁니다.”
“그렇겠지.”
헌원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먼저 해결해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두강양조에서 술값을 두 배로 올렸습니다.”
“두 배?”
“네.”
“말도 없이 두 배로 올렸다는 거야?”
“어제 통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미수를 해결해 주면 값을 원래대로 할 거냐고 물었더니, 가격을 인상한 건 미수와는 상관없다고 하였습니다.”
“이하운 그놈이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현재 두강양조 주인은 이하운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헌원유의 눈이 커졌다.
“팔았답니다.”
“누구에게 팔았다는 거지?”
“새로운 주인에 대해서는 조사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자야?”
“현재까진 그렇습니다.”
“매매 조건 같은 것도 모르겠네?”
“무인을 동원해서 수금을 하는 걸 보면 받지 못한 대금까지 모두 인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놈이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구나.”
“두강양조는 어떻게 할까요?”
“주류 대금을 주지 않고 거래를 끊으면 당장 관아로 달려가겠지?”
“하는 짓으로 봐서는 그러고도 남을 놈입니다.”
“미수를 모두 정리하고 거래를 끊어. 돈은 전에 거래하던 전장으로 집어넣고.”
“우린 새로운 주인이 어떤 전장과 거래하는지 모릅니다.”
“새 주인이란 녀석은 우리에게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술값을 인상했어. 그런 놈에게 굳이 먼저 연락해서 주류 대금을 어떻게 지불하면 되냐고 물을 필요 없어. 전에 거래하던 곳으로 집어넣어.”
“알겠습니다. 공격받고 있는 주루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쪽은 놔둬야 권천좌들이 놈들을 없앨 거 아니냐.”
“알겠습니다. 그쪽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그럼 두강주는 어떤 술로 대체할까요?”
“두강주를 대신할 수 있는 술은 천주밖에 없지 않아?”
“그렇긴 합니다만 천주가 병당 한 냥 비쌉니다.”
“비싸도 어쩔 수 없지. 천주로 전부 교체해.”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 *
금장생은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한 도심을 바라보았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개봉의 번화가였다. 널따란 길 양옆으로 주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금장생은 그 주루 중 한 곳으로 향했다.
거리 중심부에 위치한 주루였다.
주루 이름은 백화루였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여섯 명이 금장생 옆으로 날아내렸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은 암흑천사들이었다.
“길을 트겠습니다.”
대문 앞으로 간 암흑천사 한 명이 오른팔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강력한 장력이 쏘아졌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대문이 터져 나갔다.
“적이다!”
금장생이 들이닥칠 걸 알고 있는 듯 대문이 터져 나가자 ‘누구냐?’가 아니라 ‘적이다!’라는 말이 먼저 흘러나왔다. 이어 수십 명이 대문 쪽으로 몸을 날려 왔다. 대문 앞으로 온 자들은 총 오십 명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뽑아 들고 밖을 내다보았다.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온 누구요?”
사십 대 중반 사내가 무기를 든 사내들 사이에서 나오며 물었다. 그는 백화루 루주 조영빈이었다.
“두강양조에 밀린 술값이 이십만 냥 있던데, 맞습니까?”
금장생은 정중하게 물었다.
“맞소. 그런데 귀하는 누구요?”
“밀린 주류 대금을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두강양조는 이하운 사장이 주인인 걸로 알고 있소만.”
“얼마 전에 두강양조를 인수했습니다. 이건 두강양조 주인임을 나타내는 증서고요. 그리고 이건 귀하가 내 양조장으로부터 술을 가져간 후 작성해 준 주류 대금 지불 증섭니다.”
금장생은 서류 두 개를 들고 조영빈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다가가자 좌우측에 서 있던 자들이 진득한 살기를 흘려 댔다.
“무기,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게 좋습니다. 휘두르는 건 좋은데 그러다 죽는 건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장한들은 루주 조영빈을 보았다.
조영빈은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보시죠.”
조영빈 앞으로 다가간 금장생은 서류를 내밀었다. 조영빈은 서류를 받아 들고 훑어보았다. 서류를 다 읽고 난 그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서류는 이것뿐이오?”
“그걸 없애고 싶은 모양이죠?”
금장생은 조영빈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할 거요?”
“죽어요.”
“내가?”
“네. 그리고 여긴 불태워질 거예요.”
금장생은 주루 건물을 가리켰다.
“누가 죽을지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겠소?”
“그럼 한번 태워 보든지요.”
“…….”
조영빈은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곧 조영빈은 부르르 떨었다.
금장생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살기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영빈은 극심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
“주세요.”
금장생은 손을 내밀었다.
조영빈은 서류를 건넸다. 금장생은 서류를 받아 들고 처음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제 돈을 주셔야겠습니다.”
금장생은 정중하게 말했다.
“돈이 없소.”
“이미 다른 주루에 대한 소문들 들었을 텐데,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아예 줄 의사가 없다고 간주해도 되겠군요.”
금장생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 아니오. 줄 거요. 지금은 돈이 없어서.”
“우측 건물에 불을 지르세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퍼억!
그러자 우측 건물의 창고로 보이는 곳에서 불길이 올랐다.
“날 핍박하지 마라!”
조영빈이 버럭 소리쳤다.
“내 돈을 내놓으면 활짝 웃으며 돌아갈 겁니다. 저 불이 더 커지기 전에 돈을 내놓으세요.”
“건방진 놈! 쳐라!”
공격 명령을 내린 자는 조영빈이 아니라 무기를 들고 있던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차하!”
“타하!”
“하아!”
사내들은 기합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