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36)
수금
권말남은 백영대 대주 작설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어 보았다. 그를 비롯한 금의위와 동창 무인들은 반나절 거리로 금장생을 쫓는 중이었다.
금장생이 남양에서 벌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금장생은 남양의 주점 십여 개를 돌면서 조직폭력배들이나 할 수 있는 사건을 저질렀다. 그가 거쳐 간 주점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수금을 돌려주었다고 진술했다.
즉, 미수금을 받기 위해 남양까지 와서 주점을 돌며 사고를 치는 기행을 벌인 것이다.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영대를 시켜 지금까지 금장생이 거쳐 간 주점의 공통점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읽고 있는 보고서였다.
보고를 읽고 난 권말남은 백영대 대주 작설을 보았다. 작설은 여자처럼 생긴 내시가 아니고 실제 여자였다.
“그러니까 그놈이 지금까지 미수금을 받아 낸 주점이 마흔 곳이 넘는다는 거야?”
글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했다.
“네, 첩형. 그리고 그 주점들의 주인은 모두 정주의 극락루였어요.”
“극락루?”
“네.”
“극락루면 상천금가의 오대주루 중 한 곳 아냐?”
“맞아요.”
“그런데 그 녀석이 왜 자기하고 상관없는, 아니지 혹시 황금전가 멸망에 상천금가가 관련된 거야?”
권말남은 물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상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상천금가와 태양상인이 힘을 합쳐 황금전가를 몰락시켰다고 해요.”
“그럼 여기에 적힌 건 뭐야?”
권말남의 생각에 그런 사정이 있다면 금장생이 극락루를 부수고 있는 건 복수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맞는 이야기예요.”
“주점에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주류 대금을 받기 위해 주점을 박살 내고 있다는 거야?”
“네.”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삼백만 냥이에요.”
“정말?”
권말남은 깜짝 놀랐다. 삼백만 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아니, 그 돈을 받지 못하고도 망하지 않은 양조장이 더 신기했다.
“그것도 모든 술에 대해 신용거래를 한 게 아니고 두강주 한 가지에 대해서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그랬다는 거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두강양조는 그동안 어떻게 버틴 거지?”
“전장에서 돈을 빌렸다고 해요.”
“이자가 엄청날 텐데?”
“그래서 양조장을 살리려면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도산 직전까지 몰렸다고 해요.”
“그때 금장생이 손을 내민 거야?”
“그자보다 먼저 손을 내민 자가 있었어요.”
“혹시 그들이 극락루야?”
“네. 제삼자를 내세우긴 했지만 극락루였어요.”
“결국 돈을 수금해 주지 않았던 건 두강양조를 삼키기 위해서였다는 거네?”
“저희들도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두강양조 사장은 거절했구나.”
“그랬어요.”
“그런 그들 앞에 금장생이 나타난 거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두강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지?”
“사 할이 넘는다고 해요.”
“두강주가 가장 많이 팔려?”
“천주도 점유율이 사 할 정도 된다고 해요.”
“그런데 왜 두강주만 노린 거지?”
“두강주는 하남성에서만 유통되는 술이고, 천주는 전국 단위로 유통되거든요.”
“천주는 건들 수가 없다는 거네?”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극락루 루주는 누구지?”
“이름은 헌원유고 별호는 천상홥니다.”
“여자인 것 같은데 맞아?”
“맞습니다. 나이도 이제 서른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나이에 극락루 오대주루의 한 곳의 운영자가 되려면 엄청난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아비가 누구지?”
“상천금가 주인입니다.”
“헌원소야?”
“네.”
“역시.”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을 듣는 순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지금까지 녀석이 거쳐 간 데가 어디요?”
듣고 있던 자운영이 물었다.
“남쪽부터 훑어서 북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대도시로만 움직이겠군.”
“맞아요. 그자가 가장 먼저 갔던 곳은 하남성 최남단에 있는 신양이에요. 그다음에 주마점, 우리가 추격을 시작한 날 남양, 그다음 날 누하, 주구, 어젯밤에는 평정산에서 극락루 소유 주점들을 박살 냈어요.”
“오늘 밤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요?”
“평정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허창이고 그다음은 여정이에요.”
“허창과 여주 둘 중 한 곳이란 말이군요.”
“지금 허창과 여주 중 극락루가 주인인 주점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바로 그때 동창 무인 한 명이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말해.”
권말남은 동창 무인을 보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동창 무인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권말남은 접힌 종이를 펼쳤다.
여주: 환대루, 성화루, 황루, 설루.
허창: 청화루, 화홍루, 상화루, 추설루, 화루.
“끙!”
권말남은 얼굴을 찌푸렸다.
금장생은 오늘 밤 둘 중 한 곳으로 가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밀린 주류 대금을 받아 낼 것이다.
이미 따라잡기는 불가능하고, 금장생이 여주로 가면 허창에서 기다리고, 허창으로 가면 여주로 먼저 가서 녀석들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놈이 어디로 갈 것 같아요?”
자운영을 보며 물었다.
“내가 놈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없잖은가?”
“우린 한 곳을 결정해야 해요.”
“굳이 어디로 갈 건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린 인원이 이백 명이나 되네. 이백 명이면 여주와 허창을 다 가도 충분하다는 거 아닌가?”
“그렇군요.”
권말남은 자운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걸 몰라서 함께 움직이려고 하는 건 아니다.
병력을 나누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건 잘 안다.
문제는 자신이 간 곳에 금장생이 없었을 때다.
자운영이 이끄는 금의위 위사들이 금장생을 생포한 후 사상이란 증거마저 찾아낸다면 바로 임무는 종료된다. 모든 공은 자운영에게, 아니 금의위에게 돌아가고 만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고생은 모든 물거품으로 변하고 동창에서 입지도 약화된다. 차기 동창 제독이 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그건 둘 다 잡지 못한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내가 공을 혼자 가로챌까 봐 걱정하는군.”
자운영은 권말남의 내심을 꿰뚫어 보았다.
“우린 편의상 함께 행동하고 있을 뿐 같은 편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금장생은 이방인의 존재까지도 알고 있는 상태예요. 그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사상을 잡더라도 절대 먼저 돌아가지 않겠네.”
“믿어도 돼요?”
“나 자운영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네.”
“좋아요. 그럼 따로 움직이도록 해요.”
“자넨 아직 맹세하지 않았네.”
“나도 권말남이란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
“좋네. 이제 갈 장소를 정하세. 먼저 선택하게.”
“선택권을 먼저 주겠다는 건가요?”
“그렇네.”
“그럼 난 허창으로 갈게요.”
“오늘 밤에는 여주로 갈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군.”
자운영은 빙그레 웃었다. 금장생의 목적지가 여주라면 지금 출발하면 따라잡기 힘들다. 그럼 내일 목적지인 허창에서 기다리면 놈을 잡을 수 있다. 권말남이 허창으로 가겠다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지만 이미 양보를 했으니 어쩔 수 없다.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이 큰 곳으로 가겠다는 거예요.”
“알았네. 그럼 난 여주로 가겠네. 만일 놈이 훑고 지나간 후라면 바로 허창으로 가도록 하겠네.”
“알았어요. 그 반대의 경우라면 내가 여주로 달려갈게요.”
권말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자운영을 비롯한 금의위 위사 백여 명은 여주로 길을 잡고 권말남과 동창 무인들은 허창으로 길을 잡았다. 권말남과 동창 무인이 허창에 도착한 건 다음 날 점심 무렵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동창 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금장생이 왔다 갔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흩어졌던 이들은 한 식경 후 바로 돌아왔다.
“훑고 지나갔습니다.”
묵영대 대주 야환이 굳은 얼굴로 보고했다.
“허창을 먼저 쳤다고?”
권말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여주가 먼저고 허창이 다음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허창이 먼저 털린 것이다.
“네.”
“제길! 바로 여주로 출발해!”
권말남은 버럭 소리쳤다.
잠시 후 권말남과 동창 무인은 여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이 떠나고 세 시진 후 일단의 무리가 허창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동창 무인을 쫓고 있는 오백객 대원들이었다. 오백객 역시 둘로 나눠 한 개 조는 여주로 가고 한 개 조는 허창으로 왔다. 허창으로 온 자들의 수장은 악교교였다.
“떠났습니다.”
악교교가 허창에서 받은 보고였다.
“어디로?”
“여주로 간 것 같습니다.”
“바로 출발해.”
악교교는 지체 없이 출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여주에서도 동창 무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동창 무인들은 이미 여주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한 후였다.
“추밀은 어떻게 됐느냐?”
악교교는 여주를 살피고 돌아온 도인을 보며 물었다.
“연락이 안 됩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지금 대답이라고 하는 거냐!”
악교교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연락책도 남기지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찾는 건…….”
“상가의 수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
악교교는 도인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없습니다.”
도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뇌물을 먹인 거냐?”
“…….”
도인은 말없이 악교교를 바라보았다.
“잘 아는 상가인도 없고, 뇌물을 쓰지도 않았는데 너처럼 머리 나쁜 놈이 어떻게 오백객의 객주가 된 거지?”
도인은 주먹을 지그시 말아 쥐었다.
“보고라는 건 말이다. 뭔가 거리가 있을 때만 하는 거다, 도인. 지금 너처럼 ‘없습니다. 모릅니다.’라는 말만 할 거면 보고를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도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도인.”
다시 말하는 악교교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알았습니다.”
그제야 도인은 대답했다.
“알았으면 당장 나가서 추밀이나, 금의위나, 동창 무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 오란 말이야, 자식아. 그렇게 서 있으면 정보가 나와!”
악교교는 버럭 소리쳤다.
도인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도인은 전면을 노려보았다.
‘네가 화를 자초하는구나, 계집.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절대.’
도인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추밀은 물론이고 금의위, 동창의 흔적을 찾으라는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말을 할 기회도 없이 욕만 실컷 먹은 것이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객주님!”
그때 도인의 심복 혈운검 전연이 다가왔다.
“찾았느냐?”
“그들 모두가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동쪽?”
“네.”
“동쪽이면 어디냐?”
“그것까지는…….”
“흔적은 찾은 거냐?”
“이가웅이 남긴 흔적을 찾았습니다.”
이가웅은 추밀과 함께 움직이는 조의 책임자였다.
“이가웅도 목적지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거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그건 구했느냐?”
도인이 슬쩍 물었다.
“구했습니다.”
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