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35)
“아는 사람들이에요?”
창가로 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하려가 물었다.
“나를 쫓는 사람들입니다.”
“일호를 쫓아요?”
“저 사람들 앞에서 일호라고 부르면 큰일 납니다.”
“누군데요?”
“저기 여성스럽게 생긴 미남자는 금의위 진무사 자운영이고 진짜 여자처럼 행동하는 자는 동창 첩형 권말남입니다.”
“자운영과 권말남이면 추혼살검과 옥호리로 금의위와 동창 권력 서열 이위인데?”
“맞습니다.”
“그들이 왜…….”
“저들은 사상을 쫓고 있습니다.”
“맙소사.”
나하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튼 지금부터 날 부를 땐 금 공자라고 해야 합니다.”
“원래 성이 금씨예요?”
“네.”
“그럼 이름은?”
“금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창문을 닫았다. 자운영과 권말남이 빈 가게로 들어오는 걸 보면 알고 들른 게 분명했다.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아래로 내려갔다.
“이 미꾸라지 자식, 드디어 만났구나.”
권말남이 금장생을 쏘아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미꾸라집니까?”
“우리가 감시하는 걸 몰랐다고 할 테냐?”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날 감시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유는 전에 말한 걸로 아는데.”
자운영이 말했다.
“나도 전에 말한 걸로 압니다. 사상과 나는 상관없다고요. 그리고 두 분에게만 처음으로 말하는 건데…….”
“뭐, 뭐냐?”
권말남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난 무인이 아닙니다.”
“……개자식!”
잠시 금장생을 노려보던 권말남이 차갑게 말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네놈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을 듣고 왔지 왜 왔겠느냐?”
“자주 보면 정이 든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봅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우리를 따돌리고 어딜 다녀온 거지?”
권말남이 물었다.
“이제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곳에 박혀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황금표국 지국이 들어설 곳 몇 군데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거짓말 마라, 놈. 네 초상화는 이미 전국에 뿌려져서 네가 나타나면 바로 보고가 올라오게 돼 있는데 너에 대한 보고는 한 건도 없었다.”
“내가 나라 밖이라도 다녀왔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아는 한 우리 동창의 눈길이 머무는 걸 허락하지 않는 곳은 중원 전체에서 딱 한 곳이다.”
“거기가 어딥니까?”
“삼사천가다.”
‘무서운 놈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설사 그것까지 알아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왜 동창의 표적이 되는 걸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내가 삼사천가로 갈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 사람은 삼사천가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곳인지도 모른다는 걸 아느냐?”
“나는 장사꾼의 자식이고 지금도 몇 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사꾼에게 삼사천가는 결코 신비스러운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네가 삼사천가를 아는 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냐?”
“내가 아는 건 삼사천가만이 아닙니다. 역사 이전에 이방인들이 중원으로 들어왔고 그들의 후예가 현재도 무림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억!”
“헉!”
권말남과 자운영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이방인에 대한 것은 황실에서도 아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기밀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금장생이 알고 있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권말남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했다.
“세상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측은 하오밀문이나 개방이나 동창이 아니라 상곕니다. 왜냐면 이방인이라고 해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죠.”
“너도 이방인이냐?”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하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중원 곳곳에 그들이 남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을 조금만 깊이 살피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삼사천가 가주는 어떠냐?”
‘얼레?’
금장생은 내심 깜짝 놀랐다.
문득 자운영과 권말남이 사상 체포에 매달리는 게 대신들의 암살 사건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네.’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네 머릿속에 있는 걸 다 토해 내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넌 중원에서 사는 걸 포기해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두 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래야 한다.”
“난 식사하러 갈 건데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금장생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우린 생각 없다.”
“그럼 먼저 나가겠습니다.”
―다음에 봐요.
나가면서 나하려에게 전음을 보냈다.
―가려고요?
―저 둘은 사상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 자들 앞에서 알짱거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도망치면 더 의심하지 않을까요?
―의심은 이미 하고 있어서 더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어요.
―알았어요. 다음에 봬요.
“다녀오겠습니다.”
금장생은 손을 흔들고 나갔다.
―감시해.
권말남은 밖에 있는 부하에게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부하가 떠나자 권말남은 나하려를 보았다.
“나는 동창 첩형이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건 상대방의 신분을 알고 싶을 때 흔히 써먹는 수법이었다.
“처음 뵙습니다. 저는 나하렵니다.”
나하려는 인사를 했다.
“금장생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냐?”
“저희들이 고용인입니다.”
“고용인?”
“그분은 이곳에 식당을 내고 싶어 하셨고 요리사를 구하던 중 제 할아버지와 연이 닿았습니다.”
“네 조부가 요리사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지금 어디 갔느냐?”
“식당에서 사용할 집기를 구입하기 위해 나가셨습니다.”
“그랬구나.”
권말남은 자운영을 보았다. 금장생도 나가 버렸고 의자 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운 기운만 감도는 이곳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가요.”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나오긴 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근처 찻집에 들어갔다. 권말남과 자운영이 금장생에 대한 보고를 받은 건 한 시진 반 후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권말남은 대로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금장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였다.
“당장 놈을 찾아!”
권말남은 버럭 소리쳤다.
“놈이 간 곳은 알아냈습니다.”
“어디냐?”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당장 출발해!”
권말남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보고하던 사내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에 이어 권말남과 자운영도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동창 무인 백 명과 금의위 위사 백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원래는 오십 명씩만 데리고 다녔는데 인력 부족을 느낀 두 사람이 상부에 추가 인원을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해 늘어나게 된 거였다.
금의위는 추밀원 무인 오십 명이 합류했고 동창은 백영대 대원 오십 명이 합류했다.
“출발해!”
명령이 떨어지자 동창과 금의위 무인들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떠나고 일각 후 검은 옷을 걸친 자가 나타났다. 사내는 한참 동안 자운영과 권말남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휙!
그러다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한 식경가량을 쉬지 않고 내달려 사내가 도착한 곳은 공사가 한창인 황금표국 근처 객잔의 최고급 객실이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사내를 맞은 두 사람은 삼사천가를 떠나온 혈류 추밀과 일면 악교교였다.
추밀과 악교교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건 금장생, 즉 천객 일호가 이곳에 없어서였다. 만일 금장생이 있었다면 진작 공격하여 금장생과 자운영, 권말남을 없앴을 것이다. 그런데 세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천객 일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추밀과 악교교는 금장생이 천객 일호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다만 권말남과 자운영이 찾는 자가 천객 일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권말남과 자운영이 움직이지 않자 추밀과 악교교도 감시만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악교교가 물었다.
“자운영과 권말남이 급하게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쪽으로 가고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남쪽으로 가는 목적은?”
“누군가를 쫓아가는 걸로 보였습니다.”
“누군가라…….”
악교교는 추밀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소. 그랬던 자들이 움직인다는 건…….”
“놈이 나타났다는 뜻이군요.”
“그런 것 같소.”
“도인을 불러와라.”
악교교는 사내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오백객 객주 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야기 들었겠지?”
“네.”
“지금 당장 놈들을 쫓아라.”
“알겠습니다.”
도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추밀과 악교교 그리고 오백객이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하지만 그들은 권말남과 자운영 일행을 따라잡지 못했다. 숭산에서 행적을 놓쳐 버린 탓이었다.
“흩어져서 흔적을 찾아라!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
악교교는 고함을 내질렀다.
오백객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다수가 이동한 흔적을 찾아낸 건 두 시진 후였다.
그곳은 숭산 서쪽이었다.
“얼마나 늦어진 거냐?”
악교교는 도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헤맨 것까지 합치면 세 시진 이상 늦어졌습니다.”
“지금부터는 확실한 흔적을 더듬어 간다. 절대 추측만으로 움직이지 마라.”
악교교는 나직하게 말했다.
오백객이 동창과 금의위 흔적을 잃어버린 것은 어디로 갔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흔적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발자국의 끝이 향하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달리다 보면 새로운 흔적이 나타날 거라 믿었다.
그렇게 한 식경 이상을 달리다가 흔적을 완벽하게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새로운 흔적을 찾느라 두 시진을 허비했다.
악교교는 나아가는 속도가 조금 늦더라도 흔적을 따라 이동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도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때부터 오백객의 이동 속도는 느려졌다.
그리고 그들이 남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환하게 밝은 후였다.
“빌어먹을!”
악교교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밤새도록 쫓았는데 금의위와 동창 무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도인이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계속 추격해!”
악교교는 버럭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도인은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오백객은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수가 너무 많아 한꺼번에 이동하진 못하고 오십 명씩 조를 짜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만 움직여 다녔다.
남양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제법 이름난 주점이었다. 밤 장사를 끝내고 휴식에 들어갔어야 할 주점은 밤새 벼락을 맞은 것처럼 엉망이었다.
“무슨 일이야?”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들어갔다 나온 도인을 보며 악교교가 물었다.
“간밤에 습격을 당했답니다.”
“습격?”
“네.”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