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33)
시작하는 사람들
임사역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덩치의 괴인들이었다. 키는 팔 척이 넘고 검은색 갑옷을 걸쳤으며 피부 또한 검었다.
암흑마족과 암흑신족 그리고 암흑천사들이었지만 임사역은 알지 못했다. 다만 어둠과 같은 자들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저들이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불안감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제공격이었다.
“쳐, 쳐라!”
임사역은 자기도 모르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차앗!”
“타하!”
“이야합!”
천상대 대원들은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들의 검이 인간들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죽여라!”
검은 인간들 속에서 차가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스악! 스악! 스악! 스악!
순간 거대한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차앙! 차앙! 차앙!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크악!”
“아악!”
“으악!”
처절한 비명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몸통이 잘린 자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비명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천상대 대원 오십 명은 일 초를 막아 내지 못했다.
“시체를 치우고 불을 꺼라.”
나직한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일행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혁무심이었다.
혁무심이 대장을 맡게 된 건 시하라나 헤리아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있지만, 시하라나 헤리아가 서로 친구라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시하라나 헤리아 둘 중 한 명이 대장이 되면 친한 친구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럼 서로 불편해지고 지휘관들이 불편한 사이가 되면 부하들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나이가 가장 많고 팔십 명을 아우를 수 있는 혁무심이 대장을 맡았다.
스윽! 스윽! 스윽!
뭔가 끌리는 소리에 이어 불이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왔다.
한편.
밖에서 거인파 두목을 잡아 오기를 기다리던 유가영은 얼굴을 찌푸렸다.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싸우는 소리는 물론이고 밖으로 나오는 자도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들어가 봐라.”
한 식경을 더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옆에 있던 부하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자는 전방으로 내달렸다.
사내는 유가영을 흘끔 바라보더니 안으로 들어가다. 유가영은 부하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간 부하는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문득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쉰한 명이나 들어갔는데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
“전부 이쪽으로 모여라!”
유가영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건물을 포위하기 위해 흩어졌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의아한 얼굴로 유가영을 보았다. 임무가 끝나서 부른 걸로 알았던 탓이다.
“들어간 대원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최고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진입하라.”
유가영은 명령을 내려다.
대원들은 모두 무기를 뽑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건물로 진입했다. 먼저 들어갔던 갑조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맞이한 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대원들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먼저 들어갔던 자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어둠과 함께 피비린내가 부유하고 있었다.
“경계하라!”
을조 조장이 소리쳤다.
대원들은 사방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은 대주 유가영이었다.
유가영은 잔뜩 경계하면서 내기를 귀로 보냈다.
쿠웅!
그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헉!”
유가영은 질겁하여 몸을 돌렸다. 하지만 차마 문 앞으로 가지를 못했다. 온몸의 솜털은 모두 곤두서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앞서가던 대원들도 동작을 멈춘 채 동정을 살폈다.
“누구냐!”
유가영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유가영을 비롯한 천상대 대원들은 무기를 든 채 그 자리에서 천천히 돌았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파앗!
동시에 수십 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헉!”
“억!”
“학!”
여기저기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촛불이 밝혀진 실내에서 천상대 대원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거인들의 몸 일부였다. 촛불의 밝기기 높은 곳까지 미치지 못해 가슴부터 발까지만 보였다. 수십 명이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누구냐?”
가장 먼저 안정을 찾은 사람은 대주 유가영이었다.
“강도가 주인에게 누구냐고 묻는 건, 주객이 전도 된 것 같은데요. 당신 생각은?”
어둠 속에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가영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젠 내가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
유가영은 대답을 못 했다. 극락루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신 부하가 죽습니다.”
쇄액!
“헉!”
차앙!
“크아악!”
놀람에 찬 외침과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어둠 속에서 또다시 질문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유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쇄액! 쇄액!
창! 창!
“아악!”
“으악!”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공격하라!”
유가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으아아아!”
“와아아아아!”
천상대 대원들은 괴성과 함께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불이 꺼졌다.
창! 창창창! 창창!
“아악!”
“으악!”
“크아악!”
피아 구분도 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 정적이 찾아왔다.
“불을 켜라!”
혁무심이 소리치자 불이 밝혀졌다.
이번 불은 벽면에 걸린 등이었다. 줄을 맞춰 걸려 있는 등이 전부 켜졌다.
“시체를 태우고 내부를 치워라.”
혁무심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암흑마족과 암흑신족 그리고 암흑천사들은 극양공을 펼쳐 시체를 가루로 만들었다. 바닥에 뿌려진 피는 물걸레를 가져와 닦았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청소가 끝났다.
가장자리로 치워 두었던 책상과 의자가 나왔다.
“수고했어요.”
금장생은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어떤 자들이죠?”
혁무심이 물었다.
“극락루에서 보낸 자들입니다.”
“극락루면?”
“환희루와 경쟁 관계에 있는 주룹니다.”
“그들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가 돈을 받으러 다녔던 곳의 주인이 모두 극락루였습니다.”
“아!”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목표는 극락룬가요?”
헤리아가 물었다.
그런데 그녀는 금장생에게 말을 올렸다.
혁무심이 대주가 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혁무심이 금장생을 주공으로 모시며 공대를 하자 그동안 반말을 하던 헤리아는 공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암흑마족과 암흑신족 그리고 암흑천사 모두는 금장생에게 공대를 했다.
“실은 여러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환희루가 제 어머니 가겐데 어제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인은 주공이란 거네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극락루가 환희루를 합병하려고 하는 건가요?”
“이미 한 번 시도를 했어요.”
“그랬군요.”
헤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금은 다시 해야겠네요?”
이번엔 시하라가 물었다.
“네.”
“그럼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합니다.”
금장생은 지도를 펼쳤다.
“내일 저녁에는 여길 수금할 겁니다.”
금장생은 하남성 남서쪽에 위치한 남양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오늘 밤 이동해야겠네요?”
혁무심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서 쉬어.”
혁무심은 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건물에는 회의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일 층만 회의실로 이용하고 나머지 층은 대원들 숙소였다.
다들 일어나고 회의실에는 금장생과 철마 나극, 그리고 나하려만 남았다.
“어떤 업종을 할 건지 생각해 보셨어요?”
금장생은 나극에게 물었다. 그는 며칠 전 나극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았다. 그때 나극은 장사를 해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게 몇 군데를 알아 놓은 상태다. 그 가게는 어떤 업종을 해도 잘될 정도로 목이 좋다. 물론 가게를 알아봐 준 이들은 하오밀문이다.
“식당을 하고 싶네.”
“식당요?”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나극을 보았다.
절대 고수인 나극이 식당을 하는 그림이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삼사천가에 있으면서 하가 주방장에게 요리하는 법을 배웠네.”
“직접 주방에서 뛰시려고요?”
“열심히 벌어서 자네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일단 자고 아침에 가게를 보러 가도록 할게요.”
“알았네.”
나극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차 드려요?”
혼자 남은 나하려가 말했다.
“그럴까요?”
금장생이 대답하자 나하려는 곧바로 차를 준비했다. 주전자에 물을 받고 삼매진화로 데워 찻잎을 집어넣었다. 잠시 차가 우려지자 찻잔과 함께 금장생 앞으로 가져왔다.
“고마워요.”
나하려는 차를 따르며 말했다.
“고맙기는요. 나 소저도 나와 같은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잖아요.”
“하지만 일호처럼 하진 못할 거예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장사를 하려고 한 건 나 소저 생각이라고 하던데…….”
“네.”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이 싫어서요?”
“저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아요. 피와 살이 튀는 무림보다는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잘할 자신 있어요?”
“항상 활짝 웃으면 된다고 하던데요?”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왜요?”
“맞아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간하고 쓸개는 빼서 따로 보관하고 나오세요. 그리고 이건 항상 웃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데, 그 집만의 특징이 있어야 해요. 그럼 이 년 안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거예요.”
“그 집만의 특징이 어떤 거죠?”
“다른 집에서는 못 먹고 이 집으로 와야만 먹을 수 있는 걸 말해요. 여기서 이 집으로 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게 특별한 재료로 조리한 특별한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집도 하는 요리인데도 다른 맛을 내야 한다는 거예요.”
“중독성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그게 없으면 처음엔 잘되던 집이라 할지라도 이삼 년 지나면 손님이 떨어지게 돼요. 그러다가 사 년째 접어들면 그동안 벌어 두었던 돈을 모두 까먹고 망하게 되죠.”
“우리 집만의 음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맞습니다.”
“노력할게요.”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찻잔을 놓고 일어났다.
“들어가려고요?”
“더 있어요?”
“그래 주면 좋고요.”
“풋!”
나하려는 피식 웃었다.
“왜요?”
“일호가 그런 말을 하니까 이상해요.”
“어떤 말을 말하는 거죠?”
“저보고 함께 있어 달라고 했잖아요.”
“아! 흑심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흑심이 있어도 괜찮은…… 아! 나는 이제 자격이 없구나.”
“그게 무슨 말이죠?”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나하려를 보았다.
“아니에요. 그만 들어갈게요.”
나하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하려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타락관에서 몸을 팔았다는 데에 대한 자격지심이다. 하지만 그건 금장생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금세 나아질 겁니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좀 붙이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