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30화 (330/524)

황금가 (330)

가족

“폐쇄된 곳에서 평생을 살았던 분들이라 세상 물정에 어둡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어떻게 해 드려야 하죠?”

“이분들이 할 일을 찾을 때까지 머물 곳이 필요해서요. 황금표국이 완공됐더라면 거기로 데리고 가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요.”

“다들 비슷한가요?”

“쉰 명은 이분과 비슷하고 서른 명은 이분들처럼 키가 큽니다. 그리고 서른 명 중 열 명은 머리에 뿔이 나 있고요.”

금장생은 혁무심과 시하라, 헤리아를 차례로 가리켰다.

“중원인은 이 두 분인가요?”

미우는 나극과 나하려를 가리켰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거처를 마련할게요.”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숙였다.

“여기 주인은 제가 아니고 공잡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섭섭해요.”

“엄밀하게 말하면 제가 아니고 제 어머니죠.”

“어머니가 장기간 부재중일 때는 아들이 책임자가 되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사부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연락이 왔어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럼 먼저 이분들 쉴 곳이나 마련해 주세요.”

“알았어요. 제가 나갔다 오는 동안에 이거나 보고 계세요.”

미우는 금장생에게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금장생은 종이를 받아 들고 한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를 따라오세요.”

미우는 일행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금장생은 종이를 펼쳤다.

종이는 극락루에 대한 보고서였다.

극락루.

상천금가에서 운영하는 오대천루의 한 곳임. 상천금가에서는 극락루를 극락천루라고 부름.

루주 헌원유.

이백 명의 기녀가 있으며 하루 매출은 십오만 냥에 달함.

보유 무인은 백여 명가량으로 모두 상당한 강자들임. 환희루 공격 실패 후 다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걸로 보임.

참고로 상천금가 오대천루는 극락루, 천상루, 만화루, 세영루 화영루임. 각 천루는 열 개의 중급 주루를 거느리고 있고, 중급 기루는 다시 열 개의 하급 주루를 거느리고 있음.

“주루의 수만 오백 개가 넘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상천금가의 주업이 군납과 객잔이라는 건 알지만 설마 주루가 오백 개 이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주루에 객잔을 합치면 천문학적인 수가 될 게 분명했다.

“그것들을 깨트리려면…….”

금장생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업에 뛰어든 이상 언젠가 한 번은 부딪쳐야 하고 넘어서야 할 산이다.

“해내야겠지.”

금장생은 종이를 구겼다.

똑똑똑!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문이 열리고 미우가 들어왔다.

“그들은…….”

“후원에 있는 건물을 통째 내주었어요.”

“백 명이 기거하는 덴 무리가 없나요?”

“지하실까지 있으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거예요.”

“하긴 여자들 방만 마련해 주면 나머진 사내들이니까.”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조금 불편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

“그건 읽어 보셨어요?”

미우는 종이를 가리켰다.

“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환희루는 머잖아 문을 닫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게 방해가 심한가요?”

“교묘하게 영업 방해를 하고 있어요.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려 다른 손님을 상하게 하고, 기녀를 다치게 해서 영업을 못 하게 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어요. 후원에 있는 건물이 비어 있는 것도 기녀들이 떠나서 그런 거예요.”

“지금 상태로 가면?”

“반년 안에 문을 닫게 될 거예요.”

“심각하군요.”

“이젠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정보를 수집한 건가요?”

“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그것도 고생 고생 해서 알아낸 거예요.”

“그래서 정보는 정보를 다루는 자들로부터 얻어야 하는 겁니다.”

“하오밀문이나 개방을 이용하면 좋기는 하지만, 우리에 대하 알려지면, 상황을 더 나쁘게 할 것 같아서 참았어요.”

“그건 내가 처리할게요. 혹시 지필묵 있어요?”

“잠깐만요.”

미우는 종이와 붓, 먹을 가져왔다.

금장생은 글을 썼다. 극락루에 대한 모든 걸 조사해서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접어 밀봉해서 미우에게 주었다.

“하오밀문에 가져다주면 되나요?”

“하오밀문 문주에게 주면 됩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이 건물 지하로 가 보세요.”

“지하요?”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미우를 보았다.

“아무튼 가 보세요. 난 이걸 하오밀문에 전하도록 할게요.”

미우는 싱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방을 나와서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실은 건물 뒤편에 입구가 있었다. 그곳까지 금장생을 안내해 준 사람은 빙향이었다.

지하실은 상당히 깊었다.

계단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안에서 불빛이 새 나오고 있었다.

금장생은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안쪽 전경이 드러났다.

“어…….”

금장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안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노인 한 명과 육십 대 초반 사내 그리고 오십 대 후반 여자였다.

금장생을 발견한 세 사람은 벌떡 일어났다.

“엄마!”

금장생은 빠르게 걸었다. 놀랍게도 안에 있는 세 사람은 금장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였다.

“똥강아!”

금장생의 어머니 윤금이는 울먹이는 얼굴로 뛰어갔다. 그녀는 금장생을 힘껏 껴안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디 보자, 내 새끼.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얼굴이 반쪽이, 아니 뼈만 남았네, 뼈만 남았어.”

윤금이는 금장생의 볼을 잡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무려 구 년 만에 보는 막내아들이었다.

“반쪽은 무슨. 얼굴만 좋구먼.”

옆에 있던 금고웅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해요!”

윤금이는 금고웅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나는 사실 그대로를…….”

“이게 어디가 좋은 얼굴이에요. 피죽만 먹고 살아도 이것보다는 백배는 더 나을 거예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릴 하면 자식 잘못 키운다고 욕먹소. 내가 본 장생이는 누구보다 더 건강하오. 안 그렇습니까, 아버지.”

금고웅은 자기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이렇게 금장생의 얼굴이 좋다며 고집을 부리는 건 동영으로 보내 버린 사건에 대한 책임을 조금은 줄여 보기 위해서였다.

휙!

윤금이가 고개를 돌려 시아버지 금사윤을 보았다.

“글쎄 그게, 어,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금사윤이 찔끔한 얼굴로 말했다.

“거봐요. 아버지도 우리 똥강이 얼굴이 반쪽이 됐다고 하잖아. 어이구, 우리 똥강이 정말 고생 많았다. 너에 대한 복수는 내가 두고두고 해 줄 테니까 걱정 마라.”

“복수요?”

금장생은 아버지를 보았다.

“복수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구경만 해라. 참, 밥 안 먹었지?”

“네? 네.”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라.”

윤금이는 안으로 들어갔다.

“절부터 받으셔야지요.”

“절을 왜 네가 해. 널 동영으로 팔아넘긴 아버지가 해야지.”

윤금이가 소리쳤다.

“그래도 절은 해야죠. 엄마도 나오세요.”

금장생의 말에 안으로 들어갔던 윤금이가 다시 나왔다. 금장생은 조부와 아버지, 어머니께 큰절을 올렸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금장생 조부 금사윤이 물었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지냈습니다.”

“다행이구나.”

금사윤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아비가 잘못했다. 날 용서해라.”

금고웅은 금장생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뭐. 그리고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왜요?”

“미우 말을 듣자니 무공을 익혔다고 하더구나.”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엄마, 밥 주세요.”

“내 정신 좀 봐. 알았다.”

윤금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식사 준비를 했다. 이곳은 지하지만 주방까지 만들어져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음식 조리가 가능했다. 음식 냄새가 문제였는데 그 부분은 안에 있는 이들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황금전가 옛터에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하던데 어떤 건물이냐?”

금고웅이 물었다.

“이름은 황금표국입니다.”

“표국을 할 참이냐?”

“겉모습은 그렇습니다.”

“겉만 표국이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한다는 거냐?”

“황금표국의 주력은 유통이 될 겁니다.”

“너?”

금고웅의 눈이 커졌다. 과거 황금전가 주력 사업이 유통이었기에 그 업이 어떻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유통은 어지간한 자본과 인력으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엄청난 사업이다. 황금전가 또한 유통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고, 그게 약점이 돼 무너졌다. 그런데 아들이 다시 유통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더구나 유통은 이미 태양상인과 상천금가가 모두 가져간 상태다. 복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력과 돈이 무한정 들어간다는 걸 아느냐?”

“모두 준비했습니다.”

“준비가 됐다고?”

“현금 일천만 냥, 무공 고수 팔백 명, 그리고 하오밀문 정보력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마, 말도 안 돼.”

금고웅은 믿어지지 않았다. 아들 금장생이 말한 것은 한 가지 한 가지가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돈은 어디서 난 거냐?”

“벌었죠.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납니까.”

“그러니까 그 돈을 어디서 벌었냐는 말이다.”

“훔치거나 강도를 해서 번 돈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좋다, 돈은 넘어가고. 무인 팔백 명은 뭐냐?”

“우연히 전 혈왕을 구해 주게 됐는데 팔백 명은 혈왕을 따르는 무인들입니다.”

“그럼 그들은 혈가의 혈왕을 통해 너와 이어져 있는 거구나.”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들은 저를 쇼군이라 부르니까요.”

“너를 쇼군이라 부른다고?”

금고웅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금고웅보다 더 놀란 사람은 어머니 윤금이였다. 음식이 든 접시를 가져오던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젊은 시절 무인으로 살았던 그녀였기에 동영의 쇼군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연히 전 쇼군의 인연이 제게 닿았거든요.”

“전 쇼군?”

윤금이는 물었다.

“축출된 쇼군이에요.”

“그러니까 유배된 쇼군을 만났다는 거구나.”

“네.”

“그 사람의 모든 걸 물려받은 거냐?”

“임종을 지켰으니까 그렇게 된 셈이에요.”

“그렇다면 너를 쇼군으로 부르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냐?”

윤금이가 걱정하는 건 아들 금장생이 동영의 역모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동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여기서 살 거라는 거냐?”

“네.”

“동영과는 상관없는 게 확실해?”

“네.”

“다행이다.”

윤금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금장생 앞에 음식을 놓았다. 잠시 후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놓였다.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금장생은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다 먹지 않으면 이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걸로 생각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엄마!”

“식기 전에 어서 먹어.”

윤금이는 얼른 자리를 떴다. 금장생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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